매일성경 묵상
이스라엘의 멸망_앗수르냐? 애굽이냐? 아니 오직 하나님이어야 했다! [왕하 17:1-23]
 – 2024년 10월 02일
– 2024년 10월 02일 –
이스라엘은 호세아 왕 때 앗수르에게 망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로 끌려가게 된다. 본문은 북이스라엘의 멸망 원인을 저자의 신학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1~6절은 북이스라엘의 멸망 부분을, 7~23절은 북이스라엘 멸망의 신학적인 해석을 기록해 놓았다.
    
호세아는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이스라엘 왕 베가를 죽이고 대신 왕으로 세운 인물이다. 하지만 호세아는 앗수르 세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굽의 왕 ‘소’와 협상하였지만 실패한다. 이를 알게 된 앗수르는 살만에셀 5세(주전 727-722) 때에 사마리아를 3년 동안 포위하였고, 결국 주전 722년에 사마리아 성을 함락하고, 이스라엘 영토를 황폐하게 만든다. 살만에셀의 동생으로 왕위를 계승한 사르곤(주전 721-705)은 사마리아와 이스라엘을 함락한 뒤, 이스라엘 백성을 앗수르로 데리고 갔고, 또한 다른 피정복 민족들을 사마리아 영토로 이주시켰다.
    
    
    
1. 이스라엘의 멸망(1~6절)
호세아가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위에 오른다. 그는 9년 동안 통치한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지만, 이스라엘 여러 왕과 같지는 않았다고 기록한다. 이는 호세아 통치 때 우상숭배가 이전 왕들보다 덜 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미 이전의 수많은 악한 왕이 쌓아 놓은 악을 호세아 홀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막지는 못했다. 호세아는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침입하여 베가를 죽이고 세운 왕으로 친 앗수르 정책을 유지했다. 디글랏 빌레셀 3세 다음 왕인 살만에셀까지 조공을 바치며 봉신국의 예를 갖추었다. 그런데 4절에서 갑자기 호세아가 앗수르에 반기를 든다.
    
호세아가 애굽의 “소”에게 사자를 보내 앗수르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동맹과 원조를 요청한다. 그리고 해마다 앗수르에게 보내던 조공을 보내지 않는다. 이런 행동은 앗수르 왕이 보기에 호세아의 반역을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이 때문에 앗수르 왕은 호세아를 사로잡아 감옥에 감금한다. 이렇게 호세아 왕은 앗수르의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다.
    
애굽을 의지하여 앗수르의 압제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시도가 이스라엘과 호세아 자신의 멸망을 앞당긴 것이다. 당시 유다에서 북이스라엘을 향하여 활동하던 “이사야 선지자”는 애굽에 의존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을 전하였다. 하지만 호세아는 하나님이 아닌 애굽을 의지하였고 결국 그의 시도는 실패로 막을 내린다. 결국 앗수르는 호세아를 폐위하고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마지막에는 사마리아 성을 3년이나 포위하고 공격하여 결국 함락한다.
    
앗수르는 주로 완벽하게 포위하고 오랫동안 기다리며, 그곳이 기근으로 자멸하는 전법을 사용하였는데,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고사 작전에 견디지 못하고 호세아 9년인 주전 722년 함락된다. 백성은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가 앗수르의 여러 지역에 분산해서 거주하게 된다.
    
    
    
2. 이스라엘의 배교 상황(7~12절)
7~23절은 이스라엘 멸망에 대한 신명기 신학에 기초한 신학적 해설이다. 7절 시작에서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를 명시하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첫째 죄는 다른 신을 섬긴 것이다. 둘째 죄는 가나안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왕들의 규례를 행한 것이다. 여로보암이 단과 벧엘에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새로운 규례를 만든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9절부터 이들이 저지른 죄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처음에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을 비밀리에 행했다고 한다. “하지 말라는 것”은 우상숭배로 처음에는 비밀리에 행하던 우상숭배가 점차 이스라엘에 만연해졌다. 모든 곳에 산당을 만들고 목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다. 혼합주의와 우상숭배로 변질된 것이 하나님을 진노케 만든 원인이다.
    
    
    
3. 하나님의 경고와 이스라엘의 배교(13~18절).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배교의 길로 가는 이스라엘을 그대로 두지 않으셨다. 13~14절에서는 많은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하시며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지만 듣지 않은 이스라엘의 모습을 그린다. 엘리야와 엘리사뿐 아니라 다른 많은 선지자를 보내셨는데, 멸망 직전에는 아모스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요나서를 보면 앗수르의 니느웨가 회개하는 모습이 나올 뿐이다.
    
15절에서 헛된 것을 따라가며 헛되게 되었다는 것도 우상숭배를 가리킨다. 우상은 실재하지 않는 허상이며 나무나 돌로 인간이 만든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신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헛된 것을 따라갔다. 16~17절은 이스라엘이 행한 우상숭배를 열거한다. 이는 우상숭배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과 벧엘에 황금송아지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우상들이 점점 늘어나고 심지어는 자녀를 번제로 드리는 죄까지 저지른다. 결국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다. 이것이 열왕기 저자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국제 정세나 주변 나라들의 강성함에 영향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흥하고 망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손에 달렸다는 것이다.
    
    
    
4. 이스라엘을 버리신 여호와(19~23절).
본 단락은 이스라엘을 버리신 이유를 다시 정리한다. 19절은 유다와 관련된 것으로 이스라엘이 죄를 유다까지 퍼뜨렸다는 것이다. 아합 가문의 악행과 우상숭배가 유다 왕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말하며, 이것이 이스라엘이 유다보다 먼저 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21~23절은 간략하게 이스라엘의 역사를 신학적으로 요약하였다. 이스라엘은 다윗 왕가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에 나누어 주신 것인데, 그가 이 사실을 잊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여호와를 떠났고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내쫓으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쫓아내다(20, 23절)”라는 표현을 통해 이스라엘의 멸망은 신명기 28:36과 많은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징벌이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러한 열왕기 저자의 신학은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왜 망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또, 지금까지 앗수르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을 보면 열왕기는 포로기에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타국에서 포로로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왜 망했는지에 대한 신학적인 물음을 가졌고, 저자는 역사를 신명기 언약의 축복과 징벌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답을 제시한 것이다.
    
    
    
나는?
-앗수르와 애굽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이스라엘 왕 호세아는 결국 앗수르 왕 살만에셀의 보복 공격을 받고 생포되어 감금당하고, 사마리아는 3년간의 포위 공격 끝에 함락되고 만다. 상당수의 백성이 앗수르로 끌려간다. “구원자”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호세아는 자신과 백성을 파멸로 이끌고 만다.
    
-영적으로 보면 오늘날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도 “애굽과 앗수르”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삶을 멈추어야 한다.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받은 은혜를 저버리고 하나님 말고 다른 신들도 숭배했으며, 이방 사람들의 규례를 쫓아 살았고, 실패한 선왕들이 걸어간 길을 뒤 따라갔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도 믿고 우상도 믿은 것이다. 율법도 지키고 죄도 지었다. 작은 순종으로 더 큰 불순종을 가렸다. 율법적인 제의와 많은 제물로 음란하고 탐욕스러운 삶을 가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지 않으셨다. 눈감지도 않으셨다. 격노하셨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한 일을 계속하면서도 괜찮을 거라고 자신을 설득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죄는 죄일 뿐이다. 어떤 것으로 포장하여도 죄를 가릴 수 없다.
    
-선지자와 선견자를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보내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셨다. 약한 길을 떠나 율법대로 살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유다 모두 그 말씀을 듣지 않았고 여호와를 믿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명령을 버린 자들을 하나님도 버리셨고, 악한 죄를 떠나지 않은 자들을 약속한 땅에서 살지 못하게 하시고 이방 땅으로 떠나게 하셨다. 뿌린 대로 거두게 하신 것이다.
    
-오늘 나의 삶이 훗날 하나님 심판의 근거가 된다. 경고의 말씀이 들려올 때가 은혜의 시간이다. 경고도 말씀도 들리지 않는 심판의 때가 곧 다가옴을 늘 각성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도 좋고 다른 것도 좋다는 모습은 오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에서도 쉽게 드러난다. 하나님 말씀의 기준보다, 이런저런 세상의 기준도 함께 가지고 취사선택하는 기회주의적이고, 혼합적인 신앙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할 뿐이다.
    
-앗수르냐? 애굽이냐? 하나님이냐? 금송아지냐? 말씀이냐? 죄냐? 오직 하나님, 오직 말씀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주님, 북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은 단순하고 명료했습니다. 이 단순한 기준을 나와 세상의 복잡한 논리와 기준으로 흐트러뜨리지 않도록 늘 성령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주님, 섞지 않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기준이 되도록 집중하고 또 집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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