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말씀으로부터 시작된 개혁, 말씀의 선포대로 성취된 개혁 [왕하 23:1-20]
 – 2024년 10월 12일
– 2024년 10월 12일 –
요시야는 율법책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은 후 백성과 함께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마음과 뜻을 다해 그의 명령을 따를 것을 함께 맹세한다. 언약 백성으로서 여호와 신앙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함으로써 그 땅을 정결하게 한다. 이 정결 작업은 유다만이 아니라 북이스라엘 각 성읍까지 이루어진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영적 쇄신의 기반을 이루었다.
 
 
 
1. 백성들과 언약을 갱신하다(1~3절).
여호와의 말씀을 듣게 된 요시야는 세 가지 개혁을 단행한다. 먼저, 언약갱신이다. 훌다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사람을 보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들을 불러들인다. 왕은 유다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성전에 올라간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모든 백성’이라고 언급하며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언약갱신에 불렀다고 기록한다. 왕은 그들에게 성전에서 발견한 여호와의 언약의 말씀을 직접 읽어주었다. 그리고는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운다.
 
언약의 내용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따라 살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세우라는 것이다. 이 표현은 신명기 6장의 언약갱신과 거의 동일하다. 저자는 이 사건을 신명기의 언약갱신과 같은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의미다. 왕의 말에 백성은 다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종이 되기로 약속한다. 저자는 요시야가 이 모든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왕정 시대에 백성을 하나님께로 이끌고 하나님의 법을 지킬 책임이 왕에게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2. 여호와의 성전에 있던 모든 우상을 제거함(4~7절)
언약갱신을 단행한 요시야는 두 번째 개혁으로 먼저 여호와의 성전에서 우상을 제거한다. 요시야는 대제사장 힐기야와 제사장들과 문 지키는 자들에게 명령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우상을 위해 만든 모든 기물들을 내어다가 예루살렘 밖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것을 벧엘로 가져가게 했다. 이것들은 므낫세 시절에 만들었던 우상들과 일월성신을 위한 제단과 기명들이다(왕하 21:5). 또한 그는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을 모두 제거한다. 당시 유다와 예루살렘에 우상을 섬기기 위한 제사장들이 따로 있었는데, 이들은 유다의 왕들이 세운 사람들이었다.
 
또한 산당에서 우상들을 위한 분향 제의를 행하는 자들도 모두 제거 되었다. 5절을 통해 유다 땅에 여호와 제사장 말고도 우상을 위한 제사장과 산당의 분향을 위한 사제들이 존재했고, 이 제사장들과 산당과 제의를 모두 왕실이 관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절은 여호와의 성전에서 아세라 상을 꺼내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가서 불태우고 가루를 내어 백성들의 묘지 위에 뿌렸다. 우상을 철저하게 파괴할 뿐 아니라 묘지 위에 뿌려서 모독하고 부정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에서 시체는 부정한 것으로서 접촉만으로도 부정해질 수 있기에, 우상을 빻은 가루를 무덤에 뿌림으로 신을 철저하게 부정하게 만들어 신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7절은 여호와의 성전 안에 있던 남창의 집을 부순다. 이곳은 아세라를 위한 천을 짜는 곳이기도 하다. 남창은 미동이라고 불린 이방 신앙에서 성전을 찾아온 예배자를 상대로 성행위를 했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가증하고 충격적인 일들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횡행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3. 예루살렘과 유다,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우상을 제거함(8~20절)
예루살렘과 성전에서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제사장을 제거한 뒤, 우상 제거 범위를 유다 땅으로 확대한다.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그들이 분향하던 산당을 부정하게 만든다. 게바는 유다 땅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이다. 게바에서 브엘세바는 유다 땅 전체를 나나태는 표현이다. 충격적이게도 유다 땅 전체에 우상을 섬기는 산당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성문의 산당’이라는 표현은 성읍의 성문들 중에서 한 곳에 산당을 두고 그곳에서 제사를 드렸다는 것인데, 일상 속에서 쉽게 산당에 갈 수 있었음을 드러낸다.
 
9절은 산당 제사장들에 대한 처리를 기록하고 있는데, 산당들에서 봉사하게 했던 레위인은 여호와의 제단에 올라가는 일을 금지했다. 다만 그의 형제 중에서 무교병을 먹을 뿐이라고 기록한다. 이것은 레위인으로서 산당에서 봉사한 것으로 인해 원래 성전에서 봉사하는 직임을 맡은 것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니 제사를 집례하는 것은 금지하고 성전에서 다른 일로 제사장으로서의 신분을 유지하게 했다는 것이다. 10절에서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의 도벳을 부정하게 만들어서 자식을 번제로 드리는 제사를 드릴 수 없게 만들었다. 11절에서는 유다의 왕들이 드렸던 태양을 위해 바친 말들을 제거하였다. 이 말들은 태양 숭배하는 데 드려진 조각상들을 가리킨다. 이 조각상들은 여호와 성전으로 들어가는 곳 근처 건물에 있는 내시 나단멜렉의 방까지 가는 길에 있었다. 그것을 모두 제거하였고, 태양 수레까지 불태워버렸다. 충격적이게도 이 우상들도 성전 근처에 있었다는 것이다.
 
12절은 아하스의 2층 지붕에 있던 제단과 여호와 성전 두 마당에 세운 제단도 헐고 빻아서 기드론 시내에 버리고 있다. 13절은 솔로몬이 직접 만들었던 산에 있던 산당을 부정하게 만들었다고 기록한다.  충격적이게도 솔로몬이 지었던 산당이 요시야 시대까지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참담하게도 유다의 모든 곳에서 지속적으로 우상숭배가 지속적이면서 견고하게 성행한 것이다.
 
15~20절에서는 유다의 우상을 제거한 요시야가 이스라엘의 가장 근본적인 죄인 여로보암이 세운 벧엘의 제단과 산당을 헐었음을 기록한다. 무덤에서 해골을 가져다 불살라 그곳을 부정하게 만드는데, 이것은 열왕기상 13장 2~3절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말한 대로 된 것이다. 17~18절은 이 예언을 한 하나님의 사람 무덤에 대한 것으로 300년 전에 여로보암에게 주어진 여호와의 예언이 온전하게 성취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며, 그 무덤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은 그에 대한 존중을 의미한다. 여호와의 예언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반드시 성취된다는 열왕기 저자의 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 후에 요시야는 이스라엘 왕들이 세운 산당들을 모두 부순다. 마지막으로 그 산당에서 봉사하던 제사장들을 모두 제단 위에서 죽이고, 제단도 사람의 뼈로 모두 부정하게 만든다. 유다의 레위인 제사장을 살려둔 것과는 다른데, 이들은 레위인이 아니며 단지 사마리아의 우상을 섬기던 제사장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요시야는 예루살렘과 유다와 이스라엘의 모든 우상을 파괴하고 이스라엘 땅에서 우상을 모두 몰아낸다. 요시야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다윗 시대처럼 여호와만 섬기는 이스라엘 땅이 된 것이다. 요시야의 개혁은 유다와 이스라엘에 얼마나 많은 우상이 팽배했는지 역설적으로 보여주었다. 결국 개혁이란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 우상과 죄가 있는지 드러내는 과정이며, 이것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는 작업인 것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은 시작되어야 했다. 요시야는 이미 유다가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언약의 책을 장로들과 백성에게 읽어주며 언약을 갱신한다. 백성도 이제부터라도 마음과 뜻을 다하여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요시야의 개혁은 이렇게 맺은 언약에 대한 순종의 표현이었다.
 
-요시야가 전국적으로 철저하게 우상을 척결할 수 있었던 것은 개혁에 앞서 온 백성이 율법을 중심으로 언약을 체결하였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특정한 개혁가의 선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개혁을 주도할 때 하나님의 의가 세워질 수 있는 것이다.
 
-요시야의 개혁은 철저하고 포괄적으로 빠짐없이 진행되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하나님과 예루살렘 성전 외의 모든 것은 척결 대상으로 보아도 무관하다. 또 그것들 다시 재건될 수 없도록 철두철미하게 파괴되었고, 유다와 이스라엘을 막론하고 자신의 통치가 미치는 곳이면 어디든 가만두지 않았다. 특히 성전을 장악하고 있던 우상들을 제거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선왕들이 건들지 못했던 산당들도 요시야의 단호한 개혁에는 살아남지 못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우상들을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용납하지도 말고, 봐주지도 말고, 깨뜨리고 불사르고 빻아서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요시야의 개혁은 유례가 없었던 개혁이었다. 유다 왕들이 인정하고 용납한 모든 우상들이 제거되었다. 그 오랜 역사 동안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악취 나는 우상과 그들의 제단과 악한 관습들이 떠나기 시작하였다. 묵히고 쌓여서 이젠 그들의 친숙한 문화가 되고 영적으로 무감각해져버린 죄악들이 깨어있는 지도자에 의해 폭로되고 파괴되고 전복된 것이다. 율법이 허용하지 않는 것이기에 위대한 왕 솔로몬이 한 일이었고, 많은 왕들이 묵인해온 산당 제사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의 용기가 놀라울 뿐이다. 
 
*요시야의 개혁 중심에는 왕이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 책이 있었다(1~3절). 모든 백성을 모아서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읽어주며 언약을 체결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제쳐놓고 시도하는 인간의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개혁이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이루어지기를 놓치면 안된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먼저 하나님이 계신 성전을 정결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4~7절). 여호와의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혼합종교를 철저하고 단호하게 제거한다. 우리 공동체 안에도 시대의 조류와 관습에 물든 부분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나의 삶이 하나님이 편하게 거하실 만한 거룩한 성전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지방의 산당들과 종교 지도자들을 개혁한다. 므낫세와 과거 유다의 왕들이 섬겼던 우상과 제단을 허물고, 심지어 솔로몬 왕이 세운 산당까지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8~14절). 요시야의 개혁은 철저했다. 매우 단호하게 차근차근 진행한다. “제하고, 불사르고, 빻고, 깨뜨리고, 찍고” 어떤 영역도 예외 없이 진행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유다의 경계를 넘어 이스라엘의 벧엘까지 확장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회복을 위해 종횡무진으로 개혁하는 요시야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의 믿음의 열정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나의 신앙개혁의 영역은 어디까지 확장하고 있을까?
 
*무엇보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여로보암 시대에 예언된 말씀의 성취였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면서 율법에 어긋난 종교정책을 실시했을 때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전한 경고와 심판의 메시지가 지금 요시야를 통해 성취되고 있는 것이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이뤄진다.
 
 
 
*주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 개혁이 변화를 완성하는 것을 봅니다. 나의 계획, 주관, 주장이 아니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말씀이 나를 개혁하도록 늘 말씀 앞에 나를 내어 놓겠습니다.
*주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을 실감합니다. 말씀의 약속이 더디 이루어진다고 낙망할 일이 아니라는 것도 확인하게 됩니다. 말씀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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