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멸망 그 후 [왕하 25:8-30]
 – 2024년 10월 16일
– 2024년 10월 16일 –
예루살렘 함락 후 성전은 철저하게 파괴된다. 성읍은 폐허로 변한다. 많은 사람이 처형 되었고 바벨론으로 유배된다. 왕과 백성의 죄로 인해 하나님 공의의 심판을 처절하게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유다의 역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 먼저 끌려가 투옥 중이던 여호야긴 왕을 석방하신다. 이로써 다윗과의 언약을 지키셨고, 그의 후손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구원의 계획을 완성하신다.
 
 
 
1. 예루살렘 성과 성전의 파괴(8~17절)
시드기야 왕을 잡은 바벨론 왕은 5월 7일에 그의 부하인 느부사라단을 예루살렘으로 보낸다. 함락 후에 한 달 정도 지난 주전 586년 7월 어간이다. 그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민가들과 귀족들의 집까지 모조리 불태운다. 그리고 성벽을 모두 헐어버린다. 성벽이 없으면 전혀 보호받을 수 없기에 예루살렘을 더 이상 사람들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예루살렘의 파괴는 이미 예언서에 예고되어 있었다(사 3:16~26; 겔 7장). 예루살렘에 있는 백성들과 항복한 자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고 간다. 그리고 이전처럼 가난한 백성들만 그 땅에 남겨두어 포도원 관리인과 농부가 되게 하였다. 이는 그 땅에서 경작하는 것을 허락하고 완전히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으로 두지는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느부사라단은 여호와의 성전을 부수고 야긴과 보아스로 불리던 성전의 두 놋 기둥과 받침들과 성전의 놋 바다를 부수어서 바벨론으로 가져간다. 갖고 가기에는 너무 크기 때문에 조각내어 들고 간 것이다. 14절에서는 가마들, 부삽들, 불집게들 등 성전에서 제사 지낼 때 쓰던 모든 놋그릇을 가져갔다고 기록한다. 불 옮기는 그릇들과 금과 은으로 만든 모든 그릇을 가져간다. 여호야긴 때 가져가고 남은 것을 이번에는 놋그릇과 함께 모두 가져간 것이다. 16~17절은 여호와 성전의 두 기둥인 야긴과 보아스와 놋 바다에 대한 부연 설명이다. 저자는 그것들의 놋 무게가 셀 수 없다는 것과 그 크기와 모양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덧붙인다. 이는 솔로몬 시대의 영화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이제 그 영화가 사라지고 철저히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대조하며 이스라엘이 왜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반성하게 만들고 있다.
 
장엄하던 성전 기둥이 무너지고 조각조각 잘려 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 시대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영광이 사라진 것과 여호와께서 더 이상 그들을 돌보시지 않는다는 아픔에 통곡했을 것이다. 두 기둥의 파괴를 두 번이나 반복하며 기록한 것은 이스라엘에 있던 영광이 사라졌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대의 세계관에서는 전쟁에서 지고 신전이 헐리는 것은 그 땅의 신이 패배하고 수치를 당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범죄하고 부정해진 유다와 예루살렘과 성전을 버리고 심판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의 손에 파괴되고 모욕당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2. 종교, 정치 지도자들의 죽음(18~21절)
예루살렘과 여호와 성전을 파괴한 느부사라단은 대제사장과 부제사장, 성전 문지기 등 종교 지도자들을 체포한다. 예루살렘 성 중에 남아있는 위협이 될 만한 인물들은 모두 잡아들인다. 군사를 가진 내시나 왕의 시종들과 군대 장관의 서기관과 군사 60명 등 끝까지 저항하고 반란을 꾀하며 남아있는 자들을 모두 잡아들여 립나에 주둔하고 있는 바벨론 왕에 끌고 간다. 바벨론 왕은 이들을 모두 죽인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지 않은 반란 세력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느부사라단과 바벨론 왕은 마지막 반란의 불씨까지도 완전히 제거한다.
 
21절 하반절은 유다 멸망의 결론이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민족을 쫓아내시고 주신 그들의 땅에서 유다가 쫓겨나고 제거되었다고 기록한다. 이것은 신명기 28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앞에 놓아주신 축복의 길과 멸망의 길 중에서 멸망의 길을 택한 결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신명기 28:30~37; 47~57; 63~67에서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 땅에서 쫓겨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경고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눈에 좋은 대로, 주변 나라들이 하는 대로 우상을 따르며 불의를 행하고 약자를 억압하고 수탈하며 지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서 날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여호와께 제사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지만, 삶은 여호와와 무관하게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땅도 하나님의 백성이란 이름도 빼앗기게 된 것이다.
 
 
 
3. 부록(22~30절)
22~30절은 열왕기의 부록이다. 이스마엘의 반란과 여호야긴의 석방이라는 두 개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22절에서 바벨론 왕이 유다 땅에서 살게 한 사람들을 위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세운다. 그달리야는 예레미야 26:24에서 예레미야를 여호야김의 손에서 지켜낸 인물이다. 그 뒤에 예루살렘에서 친바벨론 그룹을 대표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기에 총독으로 적합하다고 여긴 듯하다.
 
그런데 그달리야가 총독으로 임명되자 그 땅에 남아있던 군대 장관들과 군인들이 그를 중심으로 모여든다. 이는 그달리야를 중심으로 유다를 다시 일으키고 안정시키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그달리야는 이들에게 바벨론 왕을 섬기며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을 섬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예레미야 40장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포도주와 과일과 기름을 모아 저장하며 얻은 성읍에서 살 수 있다고 보장해 준다.
 
하지만 왕족, 즉 남아있던 다윗의 후손인 이스마엘이 그달리야의 친바벨론 정책에 반감을 품고 부하 열 명을 데리고 와서 그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바벨론 사람들을 죽인다. 이스마엘이 달랑 열 명으로 바벨론에게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유다와 예루살렘에 남아 살면서 후일을 기약하고 있었던 군인들과 군대 장관들이 바벨론의 보복과 응징을 두려워하여 모두 애굽으로 도망가 버린다. 소위 다윗의 후손인 이스마엘의 어리석은 반란 사건으로 그나마 유다 땅에 남아있던 희망이 산산이 부서진 것이다. 유다 역사의 마지막은 이렇게 역 출애굽으로 끝나게 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 다시 애굽에서 거류민으로 이방인으로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게 된 것이다.
 
27~30절은 유다가 멸망한 뒤 37년이 흐른 뒤의 이야기로 갑자기 여호야긴 왕이 감옥에서 풀려나온 이야기를 언급한다. 여호야긴은 감옥에서 풀려나 왕의 호의를 받으며 왕의 식탁에서 식사하며 좋은 대접을 받게 된다. 이렇게 여호야긴의 신세가 좋은 것으로 바뀌는 것을 통해 저자는 하나님께서 유다의 포로 생활도 끝내시고 곧 그들의 땅에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있다.
 
저자는 비록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멸망했으나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끝나지 않았다는 희망의 메시지로 열왕기를 끝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폐허가 된 약속의 땅. 바벨론에 의해 왕궁과 성전과 귀족들의 집이 불탔다. 항복한 자들은 사로잡히고 비천한 자만 남아 포도원을 경작하게 하였다. 젖과 꿀이 흐르는 영광의 땅에서 하나님이 떠나시자 황량한 폐허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 없는 부요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가난이 더 큰 축복이다.
 
-철저하게 파괴된 성전, 조롱과 모욕 거리가 된 성전. 고대에는 승자가 패전국의 신상을 훔쳐 가는 풍습이 있었다. 그런데 유다의 성전에는 신상이 없었기에 성전 기명들을 대신 탈취해 갔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던 거룩한 성전 기구들이 이제는 금속 덩어리로 전락하여 파괴되고 분해되고 녹여지고 있다. 건물이든 장식이든 책이든 관습이든 그 안에 복음이 없고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그것만이 영원하다.
 
-대제사장, 부제사장, 성전 문지기, 군사를 거느린 내시, 왕의 시종, 백성을 징집하는 장관의 서기관 등 유다의 종교, 정치 관료들이 붙잡혀 처형된다. 그들은 왕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행을 행하도록 도왔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눈치 외교를 조언했던 자들이다. 짧은 영화와 권력을 누리다가 영원한 멸망을 자초한 자들이다.
 
-풀려나는 여호야긴 왕.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이 옥에서 풀려나 죄수의 옷을 벗고 종신토록 바벨론의 여느 왕들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았다. 다 끝나버린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과 자기 백성 간의 언약이 다시 회복될 희망이 있고,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영원한 나라에 관한 약속을 잊지 않으셨다는 징표이다.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희미한 희망이 명백한 현실이 되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의 포로들이 희망의 상속자들이요 그 희망을 위탁받은 사람들임을 선언했다(렘 24:4~7).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의 가능성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뿐이다.
 
-바벨론은 그달리야를 유다의 새로운 총독으로 세워 담당하게 한다. 그러나 바벨론 적대 세력들은 그달리야를 죽였고, 그와 함께 있던 유다와 갈대아 사람들도 죽인다. 이 일로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워진 남은 자들이 애굽으로 모두 도망친다. 출애굽한 땅을 다시 피난처로 찾아가는 역 출애굽의 사건이었다. 웅대한 품격과 규모를 가진 유다 왕국이 이제는 소수의 사람에게도 전복당할 만큼 초라해지고 말았다.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향 땅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주님, 하나님이 떠난 땅에 폐허가 깃든 것을 교훈으로 삼습니다. 내 삶에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과 함께 할 것을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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