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위로자가 없다. 시기심 때문에 만족함도 없다…[전 4:1-6]
 – 2022년 12월 04일
– 2022년 12월 04일 –
코헬렛은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힘 있는 자들의 억압에 학대받는 자들에게 위로자가 없음을 한탄한다. 또 아무리 성공했을지라도 이웃의 시기와 질토로 인해 평온치 못하는 세상에 대한 헛 됨도 토로한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는 세상은 이렇게 한탄스럽기만 하다.
 
 
 
1.위로받을 길 없는 억압의 현실(1-3절)
먼저 지혜자는 “해 아래에서 온갖 학대(억압)”를 보았다고 말한다. 학대로 번역된 “아슈크”는 “압제, 압박, 억압, 강탈, 착취”등을 의미한다. 문제는 억압당하여 눈물을 흘리지만, 위로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당혹스럽다(1절).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억압의 문제가 고대 시대만의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정치, 경제, 문화, 종교, 가정, 일터, 법정 등 다양한 영역에서 지금도 일어나는 악이다. 자신이 법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권력자들이 자신의 이윤만 추구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강탈하는 행동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즐기며, 자신의 힘을 자랑한다. 결국 학대받은 자들은 고통을 받으며 죽은 자들이나, 아직 출생하지 않는 자들이 복되다고 한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 큰 문제점은 억압받는 자들의 눈물을 위로해 줄 자가 없다는 것이다. 학대받는 것도 힘들고 참기 어려운데 위로자가 없다는 소외감은 고통의 무게를 더하게 한다.
 
공포와 두려움의 낯선 길을 걸어갈 때에 힘이 되는 것은 동행하는 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전도서 4장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지혜자는 의도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된 해 아래의 문제를 극대화시켜 보여준다. 해 아래에는 죄로 말미암아 위로와 희망의 빛을 발견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이다.
 
기억하는가? 애굽의 학대와 억압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부르짖음으로 출애굽의 놀라운 구원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은 탄식의 부르짖는 소리에 하나님께서 언약을 기억하심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출애굽한 이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으셔서 *학대와 억압의 죄(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를 금하신다. 이뿐 아니라 *주님께서도 학대받는 자의 위로자가 되어 주셨다. 죄인과 소외받는 자들에게 복음의 기쁨으로 위로자가 되신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고 고백한다면 억압받는 자들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강도당해 쓰러져 있는 자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억압 받고 있는 이들에게 참 이웃인지를 살펴야 한다. *예수님이 억압 받던 나의 참 친구가 되어 주신 것처럼, 나도 이 땅의 억압 받는 이들의 참 친구가 되기 위해 한 발짝 떼어야 하지 않겠는가?
 
 
 
2.시기심에서 온 경쟁의 헤벨(4-6절)
해 아래 사는 많은 사람들은 돈, 권력, 명예를 얻으려고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를 사용한다. 그런데 지혜자는 이러한 노력이 이웃의 시기로 인해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고 했다. 왜냐하면 일에 대한 기쁨을 경쟁적인 시기심 때문에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여 기대하는 경제적인 부나, 명예를 가지면 다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었더라도 자신보다 더 나은 수준의 이웃을 보고 시기심이 일어난다. 이 시기심으로 결코 만족할 수 없게 되고 그들과 시기하며 경쟁하는 관계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는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욕심과 절망의 늪이 되어 버린다.
 
이웃을 시기하거나 이웃에게 시기를 받는 이유는 “욕심” 때문이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기 두 손에 가득 채우기 원한다. 어떤 이들은 더 많이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렇게라도 채운 곳간을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이 인간이라는 점이다. 욕심이 잉태하여 끝없는 욕망을 부추긴다. 끝없는 욕망은 결국 파멸이 이르는 죄와 벗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지혜자는 분명하게 권면한다. “이 수고는 헛되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다!(4절)”, “적게 가지고 편안한 것이 많이 가지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낫다(6절).” 즉 수고로 얻은 것을 한 손에만 채우고 평온함을 가지라는 것이다. 내 손에 채워진 것에 만족하라는 것이다.
 
 
 
3.주님만이 나의 참 친구
이와 같은 자족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평안은 헛된 욕심 가득한 기도로부터 나오는 간구가 아닌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감사의 기도에서 나온다. 이와같은 믿음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잘 아시고 그를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기쁨으로 채워 주시는 분이심을 아는 것에서 출발 한다. 세상은 억압하나, 오직 우리 주님은 참 친구 되신다는 믿음에서 가능하다.
 
위로자가 없는 세상, 경쟁과 시기에 지쳐있는 세상… 누가 세상의 억압과 고통에 짖눌린 나의 아픔을 알아줄까? 비교의식, 시기심이 불러온 경쟁은 평안을 사라지게 한다. 그토록 추구했던 부와 명예는 주위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 허무함과 함께 올 수도 있다. 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주님, 세상은 억압하나 주님은 나의 참 친구 되심을 믿습니다. 용기를 내어 다시 믿음으로 살아보겠습니다.
*주님, 아무도 위로자가 되어 주지 않았지만, 주님은 기꺼이 나의 위로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시기와 경쟁을 내려놓고 주님처럼 위로자로 친구로 이 땅 위에 서겠습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