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함께여야 행복하다 [전 4:7-16]
 – 2022년 12월 05일
– 2022년 12월 05일 –
또 다시 … 헛 것을 보았도다…. 코헬렛의 한탄이 사무친다. 철저하게 홀로된이가 쉬지도 않고 일만 하며 살다가 “어찌하여 나는 즐기지도 못하고 사는가? 도대체 나는 누구 때문에 이 수고를 하는가?”라고 한숨 진다. 그러니 헤벨 아닌가!(8절)
 
지혜자는 “함께”의 가치를 강조한다. 9-12절까지 혼자보다 ‘함께하는 삶의 가치를 강조한다. 홀로 길을 가는 것보다 둘이 함께 가는 것의 유익은 “넘어질 때 일으켜줄 사람”이다. *이 얼마나 단순한 명제인가? 둘이 누우면 따뜻하고(11절), 둘이 힘을 합치면 적에게 맞설 수 있다.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12절).
 
나이가 많아도 직언을 듣지 않는 왕은 어리석다. 차라리 가난하여도 슬기로운 젊은이가 더 낫다(13절). 그는 아무리 가난하고 옥살이를 했을지라도 임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14절). 세상 모든 생명들이 와으이 후계자로 따를지라도(15절), 한 왕이 다스리는 백성이 아무리 많았어도 그가 퇴진하면 누구도 그 업적을 말하지 않으니 왕으로서의 통치가 헤벨일 뿐이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
 
 
 
1.홀로가 아닌 함께여야 할 존재(7-12절)
친구, 가족도 없이 홀로 생활하는 한 사람을 본다. 그의 유일한 낙은 재산을 모으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도 “나는 누구를 위해 이토록 수고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허무함을 깨닫는다(7-8절).  코헬렛은 이 땅에서의 삶의 가치가 부요함인가? 관계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부요함의 가치에 함몰되어 관계의 중요성을 놓친다.
 
함께 하는 이 없는 부요함은 결국 ‘헤벨’일 뿐이다. 함께 ‘먹고 마시고 보람을 느끼는’ 가족, 친구가 없다면 그 삶은 이내 공허함만 가득해 질 뿐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악의 뿌리가 되는 것은 곧 철저히 이기적인 삶의 태도에서 나오는 함께 하지 않는 사고와 삶의 방식이 불러오는 반작용일 수 있다.
 
이 말씀을 바울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코헬렛의 시대나, 바울의 시대나, 오늘날이나 이런 모습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반복된다. 이런 모습이 인생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일까? 코헬렛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한다. 하늘 백성의 행복은 함께 할 때 더 풍성해 지는 것을 여러 예를 들어 설명해 준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9절)  함께 일할 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고, 넘어지는 이를 그를 붙들어 일으켜 세울 수 있으며(10절), 함께 누우면 따뜻하고(11절), 함께 싸우면 세겹줄이 쉽게 끊어지지 않듯 맞설 수 있기 때문이다(12절).
 
*어찌 인관관계에서만일까?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여야 살 수 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살려하는 인생들은 결국 헤벨일 뿐이다. 하나님과 함께 인생이라는 길을 걸으면 헤벨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행복을 누리도록 동행함을 받는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홀로 사는 삶이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하는 삶이다.
 
*함께여서 불편한 경우도 있지만, 함께이기 때문에 누리는 유익이 훨씬 크다. 세상은 점점 개인중심의 사고와 삶의 방식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하나님, 남자와 여자, 가족, 사람과 자연만물이 함께 살도록 창조하셨다.
 
*나만 잘되면, 내 부서만, 내 교회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악한 생각과 문화는 철저히 분별해야 한다. 이 세상은 한 사람의 승자를 동경하게 하여 대다수의 관계를 무너뜨린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한 사람의 영웅을 치켜세우는 곳이 아니라 “가족”처럼 함께 어울리는 곳이다. 이곳에 경쟁, 승리와 패배의 가치는 통하지 않아야 한다.
 
 
 
2.곧 잊혀질 명성의 헤벨(13-16절)
지혜가 권세보다 낫다(13절). 가난과 왕(14절), 젊은이와 늙은이(15-16절)을 대조한다. 이는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젊거나 늙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지혜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이 대조는 다윗과 사울왕을 빗댄 듯하다. 14절은 다윗이 평범한 베들레헴의 이새의 아들로 태어나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고 이후 사울왕으로부터 쫓겨 다니는 과정을 거쳐 왕이 된 이야기가 모티브인 듯하다. 또한 15-16절은 애굽의 총리를 지낸 요셉의 이야기이다. 바로 다음으로 2인자가 되어 애굽을 치리했지만 “후에 오는 자들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게” 된 것은 결국 후에 오는 왕들이 “관용과 수용”의 지혜가 없기에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고집센 왕이나, 인기가 많은 왕이나 영원히 왕 노릇할 수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충고를 싫어하는 늙은 왕과 대중의 인기를 얻은 지혜로운 왕이 맞을 운명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지혜로운 늙은 왕이었을 지라도 그 다음 왕위에 오른 젊은 왕에 의해 잊혀지고, 온갖 지지를 한 몸에 받았던 왕이라도 후대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기대와 실망이 반복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기대와 사랑은 늘 변함이 없으시다. 인간이 그 사랑에 반응하지 못할 뿐 예수님의 사랑과 관심은 신실하시다.
 
*왕의 지혜와 명성, 영광도 오래가지 못한다. 다 헤벨이다. 오늘날 지도자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인간 지도자들에게는 늘 실망하지만, 우리의 영원하신 왕이신 예수님은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끝까지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다.
 
 
 
*주님, 홀로 된 자의 수고와 헤벨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공동체를 주시고 그 안에 거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주님과 함께여야 영원한 행복이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주님, 명성과 영광이 쉬이 잊혀지기에, 지금 허락하신 일상의 행복에 가치를 두고 늘 겸손하고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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