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살아있는 동안에… [전 9:1-10]
 – 2022년 12월 13일
– 2022년 12월 13일 –
삶은 다양하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삶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양한 모습을 각각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1-2절). 하지만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모두 죽는다(3절). 그럼에도 살아있다는 것은 희망을 품게 한다(4절). 자신이 죽을 줄 알면서도 희망을 품는다. 죽은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끼어들 것이 없다. 그는 반응하지 않는다(5-6절).
 
그러므로 살아있기에 즐거이 음식을 먹고, 기쁜 마음으로 포도주를 마시라(7절). 옷은 언제나 깨끗하게 입고, 머리에는 기름을 발라라(8절). 헤벨이 가득한 해 아래의 세상 속에서 애쓰고 수고한 몫으로 주신 것을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누리라(9절). 살아있는 동안에 “힘을 다하여” 어떤 일이든지 하라.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다(10절).  지혜자나 우매자나 모두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모두에게 공평한 이 전제 때문에 지혜자는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음의 가치”에 집중하여 “잘 누리고 즐기는 것”이 곧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는 것임을 말한다.
 
 
 
1.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1절)
지혜자는 세상의 이치를 깨달으며 정리한 것은 “지혜자나 우매자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점이다. 새번역은 “하나님께서 조종하신다”고 번역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이나 지혜자가 하는 일들을 조종하신다. 구체적으로는 그들의 사랑과 미움까지 조종 하신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모든 일들을 예측하지 못한 채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손이 의인이든 지혜자이든 그의 살아가는 길을 조정하신다는 말을 오해하면 인격없는 인생, 조종 당하는 인생인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지혜자는 분명하게 “사랑과 미움”까지도 하나님의 영역에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들의 앞날을 알지 못하는 분명한 증거인것을 제시한다. 의인이든 지혜자이든 그들이 행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것인지, 미움을 받을 것인지도 알지 못하고 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 지금 내가 행하는 선의가 미움으로 돌아오고 악인의 속임수가 세상의 환호로 화답하기도 하는 부조리함속에 살고 있지만, 미래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신뢰하기에 하늘 백성답게 살아가기는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된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시 생각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왜 슬퍼하는가?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 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훗날 소중하게 여겨지리라”
 
푸시킨이 노래한 ‘마음은 미래를 바라는 것’이 하늘 백성에게 있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다. 한 없이 우울한 현재를 이길 힘은 지나간 것을 훗날 소중하게 여겨지도록 미래로 인도하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2.모두에게 공평한 죽음(2-3절)
지혜자가 말하는 코헬렛에서 말하는 세 가지의 불가지론이 있다. 첫쨰, 인간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패턴을 알 수 없음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인간의 행위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떻게 보일지 모른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선악의 판단 기준이 어떠할지 인간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죽음 이후 사후 세계가 어떠할지 모른다. 몰론 예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신 후인 현대의 우리에게는 선명한 사후세계에 대한 약속이 있다. 주님께서 직접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을 마련하신다고 하셨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는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완성 된다는 분명한 약속도 있다. 하지만 코헬렛이 이 말을 하고 있는 고대 시대에는 이 약속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혜자는 분명한 입장을 내놓지 않는다.
 
그만큼 고대 시대의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한 시각은 인간의 기대와 바램만 무성할 뿐이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지혜자가 바라보는 죽음은 모든 것을 끝장내고(2절) 인내하며 지켜낸 도덕작 가치를 결국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기에 의미없는 것으로 만드는 “악”이었다. 그러므로 죽음 앞에서 선하고 의로운 삶에 대한 맹세를 지키는 것은 무의미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악함으로 살다가 죽는 지도 모른다고(3절) 한탄한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해 아래에서의 시각에서는 당연한 판단이다. 하지만 해 아래에서 하늘 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이는 다르다. 특히 오늘날 확실한 구원의 약속을 따라 이 땅을 살아내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더욱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선하고 의롭게 살아내야 한다.
 
*모두가 죽음 앞에서는 예외가 없기에 해 아래 백성들은 죽음이 삶의 모든 의미를 헤벨로 만드는 것 알기에 “마음에 사악과 광증을 품고 살다가 결국에는 죽고 만다.”(새번역_3절하) 하지만 하늘 백성은 분명한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죽음 이후의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이끄실 인도하심 중에 있는 인생임을 알기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3.그렇기에 현재의 은혜를 누리라(4-10절)
지혜자가 바라보는 죽음 이후의 세계는 “의인과 악인, 지혜자와 우매자가 함께 가는 곳이다.(2절) 누구도 아무것도 모르는 곳, 아무 기억도 없는 곳이다.(5절) 사랑과 미움과 질투도 없고 할 일도,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없다.(6절) 지혜자는 죽음 이후의 공간을 모든 선악의 체계가 사라진 곳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선악의 체계가 무너진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절제 시키려는” 목적이 있다. 쉽게 말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지혜로움이라는 것이다. 죽음과 관련하여 확실한 것은 모든 인간은 다 죽는다는 것일 뿐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한계 때문에 지혜자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곳”에 집중하는 삶이 아니라 살아내고 있는 “지금 이곳”의 삶에 충실한 것이 곧 지혜로운 삶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또 다시 반복하여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로 여기고(7절)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몫”으로 인식하는 것이 곧 지혜라는 것이다.
 
 
 
나는?
-지혜자가 “모든 것을 살펴보고” 발견한 중요한 사실은 바로 인간의 한계이다. 전도서에서 줄곧 강조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에 미래의 일들을 사람이 알 수 없다”, “죽음 이후의 공간에 대한 인식이 해 아래에서의 선악의 체계가 무의미한 곳임”을 깨닫기에 현재에서 사람들이 인식하는 선악의 기준들과 이에 따른 선한 삶과 악한 삶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판단하실 지 알 수 없다. 주음 이후에 거할 곳에 대한 무지도 포함된다.
 
-지혜자는 이와같은 불가지론에 근거하여 오늘,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즐기는 것이 지혜로운 삶임을 강조한다. 살아있는 시간은 죽음이 유보된 소중한 시간이다. 해 아래에서 모든 인간은 결국 모두 죽음으로 “헛된 평생의 모든 날”을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시간들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은혜이다!”
 
-모든 인간은 죽음에 이르기 전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과 공간에 살아간다.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각자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며 이 때 누릴 “먹는 것, 마시는 것, 수고의 보람”을 주셨고 이 수고의 보람으로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몫”을 주셨는데, 바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사는 것이다.
 
 
*모든 인생은 공평하게 죽음이라는 분명한 한계에 속해 있다. 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몫이 분명히 있다.  지혜로운 삶은 그 몫에 감사하고 누리며 사는 사람이다.
 
*기쁘게 즐거워 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결국 홀로가 아닌 “함께”라는 관계에서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복은 홀로 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함께 누리라고 보내 주신 부부, 가족, 공동체와 함께 누리는 것이다.
 
*이렇게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삶은 세상에서의 수고가 헤벨로 끝나는 변수도 있지만, 손에 닿는 대로 무엇이든지 열심히 사는 삶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손이 공급하여 주시는 것이 내 손에서 헛되게 사라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주님, 제게 주신 삶의 몫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살겠습니다.
**주님,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하며 죽음 너머의 소망을 붙잡고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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