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표현 못하며 [호 2:14-3:5]
 – 2024년 11월 22일
– 2024년 11월 22일 –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파국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음란을 징계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그날에” 여호와의 주도로 이스라엘과 언약 관계가 다시 회복된다.
    
음란한 이스라엘의 징계는 여호와의 최종 목표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완악한 배반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지만, 멸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심판 이후에 있을 새로운 출발을 예비하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배반과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심판을 극복하고 구원의 시대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준다.
    
    
    
1. 광야에서의 관계 회복(14~15절)
여호와를 잊어버린 이스라엘에게 놀랍게도 징벌 대신 회복의 말씀이 주어진다. 새로운 출발의 기본 틀로 출애굽의 구원역사가 소환된다.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바뀐 출발지를 제외하고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이르는 여정이 그대로 반복된다. 징계가 목적을 이루지 못하자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신다. 어떻게든 설득하여 이스라엘을 신혼의 옛 추억을 간직한 광야로 데려가 위로하고 새로이 시작하기로 하신다.
    
그 새출발의 선물로 두 가지 약속이 주어진다. 첫째, “그의 포도원”을 이스라엘에게 주신다. 남자가 약혼녀에게 결혼 선물을 주듯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포도원, 곧 풍요와 기쁨이 넘치는 가나안 땅을 주신다. 둘째,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주신다. 아골 골짜기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처음으로 여호와의 진노를 경험한 곳이다(수 7장).
    
    
    
2. 심판 이후의 구원 시대(16~23절)
16~17절에서 “그날에” 이스라엘의 배반으로 파괴됐던 결혼 관계가 여호와에 의해 다시 회복된다. 구원 시대의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내 바알”이 아니라 “내 남편”이라 부르게 된다. “바알”은 원래 “주인”을 의미하기에 “내 바알”은 남편이 아내의 주인임을 전제하는 표현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아내가 되어 사랑 안에서 서로 연합한다. 다른 한편으로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라는 이스라엘이 제의에서 여호와를 “내 바알”로 불렀음을 시사해 준다. 혼합주의에 빠진 이스라엘은 여호와와 바알을 구별하지 못하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면서도 바알의 이름을 불렀다. 구원 시대의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바로 알고 그분만 섬기게 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 다시는 바알 숭배에 빠지지 않도록 조처를 해주신다. 이스라엘의 입에서 바알들의 이름을 제하신다.
    
18절에서 이스라엘은 바알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위협으로부터도 벗어난다. 사랑스러운 아내를 보호하는 것이 남편의 의무와 책임에 속하는 것처럼 남편 여호와께서 모든 적대적인 세력으로부터 아내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신다. 먼저 이스라엘을 위해 적대적인 동물과 언약을 맺어 안전을 보장해 주신다. 더 나아가 여호와께서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할 수 없게 하신다. 거듭 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었던 이스라엘이 마침내 평화롭게 살게 된다.
    
19~23절은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재결합과 축복에 대한 단락이다. 16절의 경우처럼 결혼의 표상이 사용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 당신의 영원한 아내가 될 것을 약속하신다. 결혼의 갱신은 일시적인 회복이나 단순한 용서 이상이다. “영원히”는 여호와께서 선언하신 결혼의 본질을 규명한다. 여호와께서 결혼 관계를 파괴할 수 있는 모든 부정적 요소를 제거하시기에(17~19절), 재결합은 이스라엘의 음란으로 좌초한 처음과 달리, 영원히 지속된다. 신랑이 신부에게 예물을 주듯 여호와께서 아내 이스라엘에게 의와 사랑으로 가득 찬 결혼 생활을 선물로 약속하신다. 결혼 예물로 주어지는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과 진실함”은 예언자들의 중심 메시지에 속하는 개념들이다.
    
공의(체데크)는 구원과 해방과 공평과 일치를 포함하는 개념이며, 정의(미슈파트)는 법과 삶의 기본 질서를 가리킨다. 은총(헤세드)과 긍휼히 여김(라하밈)은 당신 백성을 향한 여호와의 변함없는 사랑을 표현한다. 여호와의 진실함은 배반한 이스라엘을 향한 그분의 변함없는 마음으로, 이 진실함 덕분에 이스라엘은 그분의 구원 약속에 헌신할 수 있게 된다.
    
재결합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음란으로 파괴된 자연 질서가 다시 회복된다. 심판을 상징하던 ‘이스르엘’은 이름의 본래 의미대로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시는 곳”이 된다. “여호와-하늘-비-땅-결실”의 순환적 연결은 자연과 생산이 여호와의 주권과 통제 아래 있음을 보여준다. 광야에서 첫사랑을 회복하고 다시 가나안으로 들어간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응답할 때, 그분께서는 응답하는(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 자연의 선순환, 곧 축복으로 응답하신다.
    
다시 여호와의 아내가 됨으로써 이스라엘의 운명이 완전히 역전된다(23절). 땅에서 쫓겨났던 자들이 여호와에 의해 다시 땅에 심긴다.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로루하마)가 긍휼히 여김을 받고 내 백성이 아닌 자(로암미)가 내 백성(암미)이 된다. 이스라엘은 다시 여호와의 백성이 되고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신다. 언약 관계가 회복되어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내 하나님”하고 부르게 된다(16절).
    
    
    
3. 여호와의 새로운 명령(3:1~5)
1~3절은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남자 친구의 사랑에 혹하여 간음을 범한 여자를 찾아가서 다시 사랑하라고 명령하시고 후반절에서는 그 명령의 의미를 해석해 주신다. 중심 단어는 “사랑하다”이다. 여자는 애인을 사랑하고 호세아는 음녀가 된 여자를 사랑한다. 이스라엘은 건포도 과자를 사랑하고,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 이스라엘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애정과 관심은 변함이 없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간음을 법적으로 처리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용서하신다. 호세아는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고 여자를 집으로 데려오지만, 함께 생활하지는 않는다. 여자는 성적 금욕을 통해 음란의 환부를 제거해 내야 한다. 호세아는 많은 날 동안 절제된 애정과 인내를 갖고 여자가 음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4절은 여자의 자숙 기간을 신학적으로 해석한다. 음란한 여자가 음란을 극복할 때까지 금욕해야 하는 것처럼 우상숭배에 물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은 왕권과 제의를 모두 빼앗기고 많은 날 동안 징계의 기간을 보내야 한다. 격리 중에 여자가 호세아의 집에서 돌봄을 받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징계도 여호와의 사랑 안에서 진행된다.
    
5절에서는 왕정과 종교를 빼앗기는 혹독한 징계가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기회로 작용함을 보여준다. 가나안의 풍요 제의에 탐닉했던 이스라엘이 마침내 여호와께 돌아온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왕이나 지도자나 제사나 주상이나 에봇이나 드라빔을 찾지 않고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는다. “그들의 왕 다윗”은 이새의 아들 다윗과 같은 이상적인 통치자를 가리킨다. 구원 시대의 이스라엘은 정치적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여호와께 속한 의로운 왕의 통치를 받는다.
    
    
    
나는?
-하나님은 외도한 이스라엘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새롭고 풍성한 관계를 누리자고 하신다. 이 뜻을 호세아와 아내의 재결합을 통해 보여준다.
    
-외도한 이스라엘을 광야로 데려가 “징벌 대신 회복”을 약속하신다(14~15절). 신혼의 때를(출애굽) 추억하며 배역한 그들을 타이르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신다. 기쁨의 포도원을 선물로 주고 죄로 얼룩진 골짜기도 소망의 문이 되게 하리라고 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한결같은데 내게는 한때의 추억이 되어버렸기에 그분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건 아닌가? 주님께서 책망과 징계로 사랑하는 우리를 일깨우실 때 마음 다해 돌아서야 하겠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죄악을 벌하여 광야와 마른 땅같이 만드셨으나(3절), 이제 그곳을 새로운 관계의 출발지로 삼으신다. 약속의 땅을 빼앗던 주께서 신붓값으로 포도원을 주시고 고생의 장소 아골 골짜기를 신방으로 쓰신다. 어렸을 때,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처럼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남편이 되고 이스라엘은 아내가 되어 사랑 안에서 다시 연합할 것이다(16~20절). 그리고 회복된 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그 어떤 유혹과 위협도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다. 다시 받아주시는 그날에, 이스라엘은 자신의 허물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큰 사랑으로 맞아주신 하나님의 진심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을 다시 받아주시는 날에는 더는 바알과 여호와를 혼합하여 섬기는 혼합주의는 허용되지 않는다.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찾아온다. 여호와께서는 신붓값으로 공의, 정의, 은총, 긍휼, 진실을 준비하신다. 우리에게는 다만 여호와 자신을 아는 것만 요구하신다.
    
-관계의 회복으로 인해 이제 “세 자녀”의 이름도 바뀔 것이다. 이스라엘의 암울한 운명도 평화로운 미래도 바뀔 것이다(21~23절). 죽음의 땅이 생명의 땅이 되고, 긍휼이 없던 자가 은총을 입고 백성 아니던 자에게 ‘너는 내 백성이라’라고 불러 주실 것이다. 지금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하나님 한 분에 대한 절대 신앙을 굳게 붙잡는다면 폐허의 시간이 풍요의 시간으로 죽음의 공간이 생명의 공간으로 변할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능하다.
    
-호세아에게 음녀가 된 아내를 다시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3:1~5). 아내(이스라엘)의 배반에 심판으로 대응하지 않고 용서로 응답하시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호세아와 그 아내가 보낸 ‘숙려기간’처럼, 이스라엘도 ‘혹독한 시련’을 거친 후에야 정결해져서 돌아올 것이다. 값싼 용서와 사랑은 죄의 굴레를 더 무겁게 씌울 뿐이다. 죄의 위력을 아는 자만이 은총의 위대함도 깨닫게 될 것이다.
    
-제의적 간음으로 돌아간 아내를 다시 사랑하여 맏아들이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다시 데려온 아내와 가진 숙려기간은 이스라엘이 눈에 보이는 왕도 없고, 지도자도, 제사도 없는 암흑기를 거친 후에야 정결해져서 돌아올 것을 보여준다. 고난으로 나의 죄와 부족한 모습이 드러나면 자숙과 성찰의 기간을 자처하고, 가장 먼저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시켜야 할 것이다.
    
*심판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고 멸망의 길로만 치닫던 이스라엘은 결국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가 회복을 약속하시고 하나님과 진정한 일치를 이루게 하신다. 수많은 잘못과 죄에도 불구하고 다시 위로하고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는 호세아가 부정한 아내 고멜을 다시 찾아가서 몸값을 주고 사서 도로 찾아오는 것처럼 하나님이 죄에 빠진 이스라엘을 철저하게 사랑으로 구속하실 것을 보여주신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신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주님 안에 거하도록 이끄셨다.
 
*하나님은 법적인 처벌보다, 감정적인 응징보다 사랑과 긍휼로 기회를 주기 원하셨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질서를 지키기 위한 법과 원칙이 오히려 인간성을 마르게한다. 폭력의 도구가 되어 버렸다. 법칙은 괴물이 되어 있고 법 정신은 사라진듯한 자괴감이 드는 세상이 아닌가. 사랑과 긍휼이 사라진 세상에 아무리 반듯한 법이라도 그것은 괴물이 될 뿐이다. 하나님의 공의에 사랑이 없었다면 죄 가운데 있는 인생은 누구도 구원의 기회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거칠고 메마른 광야 같은 곳에 거하게 된 그곳으로 찾아오신다(14절). 그리고 말도 안되는 부부관계를 예로 들어 사랑의 관계, 친밀한 관계,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되길 원하신다(16절).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 먼저 찾아오시고, 값을 지불하여 데려오신다. 그 사랑을 보여 주시기 위해 호세아를 통해 음행한 탕녀 고멜을 데려와서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다(3장 1~2절). 이런 희생을 자처하시는 신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표현 못하며….
    
    
    
*주님, 하나님 그 크신 사랑은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표현 다 못한다는 고백이 오늘 나의 찬송이 됩니다. 주님의 깊고 깊은 사랑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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