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한계… 분명한 한계… [전 9:11-18]
 – 2022년 12월 14일
– 2022년 12월 14일 –
규범대로 살면 불행을 피하고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지만 그렇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또 불행이 닥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불행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인간은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한다. 또, 규범에 어긋나는 일도 일어나기 마련이며 이것도 헤벨이기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일 뿐이다.
 
 
 
1.때의 한계(11-12절)
본문에서 지혜자는 “현실을 직시하라”고 가르친다. 이 현실은 반드시 규범대로 살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현실이다. 누구보다 빠른 발을 가지고 있어도 경주에서 질 수 있다. 용사라도 전쟁에서 패배할 수 있으며 지혜와 명철이 남달라도 가난할 수 있다(11절). 불행한 때와 재난의 때는 누구에게나 닥치지만 문제는 그 때가 언제 닥칠지는 알지 못한다. 물고기와 새가 잔인한 그물에 걸리는 것처럼 갑자기 덮친다. 갑자기 일어난다(12절). 
 
*빠른 경주자들, 용사들, 지혜자들, 명철자들, 지식인들의 한계를 설명한다. 인과율의 원리에 따르면 이들은 각각의 분야에서 성공해야 한다. 하지만 꼭 그렇게 성공하고 형통하게 되지 않는다.
 
*그 이유를 “…. 누구든 때가 되어 불행이 덮쳐오면 당하고 말기(공동번역_11절 하)”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때를 12절에서는 “사람은, 그런 때가 언제 자기에게 닥칠지 알지 못한다. 물고기가 잔인한 그물에 걸리고, 새가 덫에 걸리는 것처럼, 사람들도 갑자기 덮치는 악한 때를 피하지 못한다.”(새번역_12절) 이라고 했다.
 
*즉,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때”의 한계 때문인 것이다. 지혜자의 시대에는 지혜와 의가 부요로, 무지와 악함은 가난함과 동의어로 여겨지던 때였다. 예수님 시대에도 “부자”와 관련된 비유들이나 부자 청년과의 대화에서 지혜자가 비판하는 지혜관와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음을 참고해야 한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으로 부자는 당연히 아브라함과 함께 여야 하고 거지 나사로는 음부의 맨 아래에 떨어지는 것이 보편적인 생각들이었다.
 
 
*지혜와 의로움이 있다고 해서 불행한 때와 재난이 비켜가지 않는다. 이런 때와 시기는 누구에게나 불현듯 닥쳐올 수 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때와 시기이인 것은 확실하지만, “해 아래에서”일어나는 이와 같은 현상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며 더 가속화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사회는 부정과 부조리, 불의에 의해 빠른 경주자나 용사가 자기 기량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경기의 규칙, 전쟁의 규칙들을 스스로 깨뜨리는 악한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비열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것이 “해 아래에서” 사는 인간의 본질적인 삶의 모습이다.
 
*이것을 잘 설명해 주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한 성읍을 살린 “큰 지혜”의 이야기”이다.
 
 
 
2.지혜의 한계(13-18절)
지혜자는 한 지혜로운 사람이 겪은 일을 통해 지혜의 중요성을 드러내지만, 사람들은 지혜보다 형편과 평판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지혜가 거절 당하기도 하고 잊혀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떤 지혜자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 한 성읍을 구했지만, 그가 가난하였기에 위기를 벗어나게 해준 지혜는 쉽게 잊혀질 수 있었다. 심지어 멸시를 당했다. 그 지혜의 말을 아예 들어주지 않았다.
 
*지혜로움으로 성읍을 위기에서 건져 내었지만, 정작 그 지혜로움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성읍을 구한 지혜였지만 정작 자신들은 그 지혜를 받아들이거나 알리지 않았다. 이와 같은 부조리를 바라본 지혜자가 한탄하며 권면한다. “어리석은 통치자의 고함치는 명령보다는, 차라리 지혜로운 사람의 조용한 말을 듣는 것이 더 낫다.”(새번역_17절).
 
*지금 우리가 새겨 들어야 할 외침이다.
 
 
*가난한 자라는 편견 때문에 그의 지혜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고대의 지혜=부함의 인식에 대한 성찰이다. 지혜롭게 산다는 것이 곧 부유한 삶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해 아래의 사람들은 이와 같은 선입견에 사로잡혀 자신들의 삶의 위기를 극복하게 하는 가난한 지혜자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닐까? 세상은 지혜로운 이들의 도움을 분명히 받고 있지만, 힘있고, 부유한 기득권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이익을 취할 줄만 알았지,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우가 꽤 있다. 더구나 이런 일들은 대개 상식을 벗어난 부조리함과 함께 일어난다.
 
 
한편, 지혜자는 “지혜가 전쟁무기보다 더 낫지만, 죄인 하나가 많은 선한 것을 망칠 수 있다.”(새번역_18절) 라고 말하며 한탄 한다. 지혜를 칭송하는데 어떤 말도 아깝지 않고 그 효용성에도 어떤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지혜자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권력이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당하는 것이 세상이다.
 
그럼에도 지혜는 여전히 유효하며 영향력을 끼친다. 시기와 때가 맞지 않아서 빛을 발휘하지 못했을 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지혜는 어리석은 통치자의 고함치는 명령보다 지혜자의 조용한 말이 더 나은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허망하게 이렇게 지혜로움으로 이루어 놓은 성취들이 단 한 사람의 악한 지도자로 인해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오랫동안 다져온 나라의 기틀들이 그릇된 지도자 한 사람으로 인해 수십 년을 후퇴하기도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지도자 한 사람이 수십년간 지탱해온 공동체를 하루 아침에 산산조각 낼 수 있다. 매우 곤혹스럽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현상들을 통해 지혜의 한계를 분명하게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나는?
-나는 성읍을 살리는 가난한 지혜자와 같이 되리라.
 
-나는 모처럼 잘 되던 일을 수포로 돌리게 하는 악한(교만한) 우매자가 되지 않으리라.
 
-나는 호령하는 어리석은 이보다 조용히 속삭이는 지혜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리라.
 
-나는 여리고 성을 정복할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서 홀로 하나님의 명령을 외면하여 불순종한 아간으로 인해 승리의 기쁨이 슬픔의 애통으로 변한 것을 잊지 않겠다. 지금까지 잘 세워져 온 교회를 나의 불순종으로 인해 무너지지 않기를 늘 경계해야 하겠다. 늘 순종해야 하리라.
 
-때와 시기를 정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나아가리라. 성공은 나의 바른 삶으로 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적절한 때와 시기가 만나야 꽃피울 수 있음을 알고 더욱 겸손하게 살아내야 하리라.
 
-인간이 결정할 수 없는 때와 시기…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한 지혜로 다져진 삶의 기반들을 허무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무지하고 악한 고집불통의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것에 “헤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삶의 기반들이 얼마나 기막힌 하나님의 은혜인가!!!!
 
 
 
*주님, 참 지혜의 근원이신 주님의 새미한 소리에 더욱 집중하겠습니다. 요란한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주님, 무너뜨리는 한 사람이 아니라 함께 지켜내는 공동체를 추구하겠습니다. 성읍을(교회를) 살리는 가난한 지혜자가 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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