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서는 구약 선지서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되었다. 구두로만 이루어지던 예언의 시대는 아모스에 이르러 기록의 시대로 전환된다. 엘리야와 엘리사와 같은 위대한 선지자들이 존재했지만, 나라의 멸망이라는 절체절명의 비극 앞에 더 이상 구두로만 예언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선지자들은 이 위기 상황을 후세에 알려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글로 남기기 시작한다. 이 글을 통해 당대뿐 아니라 후대도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의 기회로 삼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모스는 베들레헴에서 남쪽으로 16km 떨어진 드고아 지방의 목자였다. 남 유다 출신의 목자였으므로 그의 신분은 북이스라엘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반면 남 왕국 출신이었기에 외부자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북이스라엘을 살피고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었다. 그의 직업은 목자이자 뽕나무를 재배했다. 하지만 단지 평범한 목자이기보다는 당시의 세계 정세를 읽을 수 있을 만큼 상당한 지식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데, 이는 평범한 목자를 가리키는 “로에” 대신에 “노케드와 보케르”로 그가 소개되었다는 점이다. 아모스라는 이름의 의미는 “짐, 화물”이다. 아모스는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이 가장 번성하던 시기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 호세아와 마찬가지로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다. 본문은 열방의 여러 민족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는 신탁으로 구성된다. 그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반드시 심판받게 된다는 내용이 여러 민족을 향해 반복된다.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때이다. 그는 예후 왕조에 속한 왕이었다. 그의 통치 시기는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인 면에서 매우 풍요로웠다. 하지만 신앙적으로는 오히려 깊이 타락한 시대였다. 왕하 14:23~29에는 여로보암 2세 시기의 영토가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바다까지 회복할 것이라는 요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은총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왕국은 신앙적으로 더 가파르게 타락하여 여로보암 2세 통치 시기에 호세아, 아모스, 요나 등과 같은 여러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경제적 번영의 이면에 가난한 자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 지도층의 부정부패, 거짓된 제사 등 하나님 나라로서의 사회, 정치, 종교의 모든 영역에서 정상적이지 못했다. 특히 아모스의 선포에는 지진과 같은 현상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실제로 그가 말씀을 선포하고 2년 후에 지진이 일어났다. 이렇게 지진을 경험한 이스라엘은 함께 선포된 더 심각한 재앙이 임하기 전에 하나님께 돌아왔어야 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실현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 찬란한 시대였지만, 속으로 곪은 이스라엘 사회는 더 큰 위기가 도래하기 전에 경고의 말씀에 귀와 마음을 열어 듣고 변화했어야 했다.
본문은 1~2절의 서문으로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아람(다메섹), 블레셋(가사), 두로, 에돔, 암몬, 모압 족속을 차례로 심판하시는 장면을 기술한다. 3절 이후로는 “~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불을 보내리라”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 일종의 반복되는 사이클이 형성되어 있다. 아모스의 신탁은 독특하게도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이방 민족들에게 먼저 향하는데, 이는 그들이 최소한의 국제관계의 법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민족일지라도 창조 질서에 맞는 인간적인 삶은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 지리적으로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북동(아람), 남서(블레셋(가사), 북서(두로), 남동(에돔), 동(에돔), 남동(암몬), 남쪽(모압)에 있는 나라들 순서로 이루어진다. 혈통적으로는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국가에서 먼 과거에 혈연관계가 있었던 나라들, 형제 국가인 유다 순으로 언급한다. 이는 지리적으로나 혈통적으로 이스라엘에 점점 가까워지는 양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절정은 이후 이어지는 이스라엘을 향한 신탁이다.
1. 표제 및 역사적 배경과 심판 예고(1~2절)
경제적으로는 가장 부유했으나, 사회적으로는 가장 타락했던 시대,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의 신탁을 전달한다. 그는 드고아 출신의 목자로서 북 왕국에서 활동한다. 한편 그의 사역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지진 전 이년”이라는 표현은 그의 활동 기간이 짧았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곧 지지에 닥쳐서 땅이 흔들리고 집이 무너지며 물이 솟구칠 것인데(8:8; 9:5), 이스라엘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허울 좋은 성공에 도취하여 선포되는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2년 후 실제로 큰 지진이 일어났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예언대로 지진이 일어났으니 현재 주어지는 예언도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알려준다.
2절은 아모스서의 주제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려고 “사자가 먹이를 움켜쥐고 포효하는 것처럼, 부르짖으시면서 이 땅에 임한다.” 심판하시는 여호와시다. ‘시온에서, 예루살렘에서 부르짖으시는 여호와’는 ‘북 왕국을 남 왕국의 관점에서 심판하신다’라는 함의를 가진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제사 의식을 버리고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와 우상을 섬기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하신 심판을 선언하고 있다. 말라서는 안 되는 목자의 초장이 마르게 되는 현상, 마를 수 없는 갈멜산의 꼭대기가 마르게 되는 현상이 바로 엄중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한다.
2. 이방을 향한 신탁(3~12절)
1:3~2:3은 유다를 포함하여 일곱 개의 이방 신탁이 주어진다. 그 목적은 선민사상으로 가득 찬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함이다. 전체적인 신탁 구성은 각 민족의 죄목이 다른 것을 제외하면 하나님의 권위에 대항한 죄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들의 죄는 심판을 받을 만큼 많고 결정적이었다. 이방 민족들에게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나 우상숭배에 관해서는 추궁하지 않으신다. 다만 창조 세계를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우주적인 질서를 위반한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책임을 묻는다. 특별히 전쟁 중에 벌어진 비인간적인 행태에 대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이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함부로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이들에게 심판이 주어지는데, 하나님께서 불을 보내어 궁궐들을 삼키게 하신다. 아람, 블레셋, 모압, 암몬 신탁에는 불 외에 다른 심판이 덧붙여지고, 두로, 에돔, 유다 신탁은 두 가지 이상의 죄목을 통해 범죄 사실에 강조점을 둔다. 특히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라는 결언은 신탁의 확실성을 보증한다.
3~5절은 첫 번째 열방으로 다메섹(아람 왕국)이 언급된다. “불을 보내리니”라는 표현은 1:1~2:3을 통해 계속해서 반복되는 문구다. 불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신의 임재를 의미하는 현상의 특징으로 지진, 불 구름, 우박, 번개 등의 현상을 둘 수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불이 임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신현이 나타나면 의인은 구원하시고 죄인은 심판하시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본문에서 불이 임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각 이방 민족에게 임하게 된다는 뜻으로, 이방 민족들의 멸망을 시사한다. 다메섹의 죄는 길르앗을 압박한 것이다. 길르앗은 므낫세 지파의 땅으로 요단 동편에 있다. 하나님은 다메섹에게 빗장을 꺾고 주민들을 끊고 규 잡은 자를 끊고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고 선포하신다.
동일한 심판 사이클의 반복을 통해 하나님께서 열방들에 회개의 기회를 주지 않고 오직 심판만 선고하고 계신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벌을 돌이키지 않겠다”라는 표현은 “그 나라를 용서하지 않겠다”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심판이 매우 확실하고 심판을 벗어날 방도는 제시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죄악을 범한 죄인들 혹은 그들의 공동체에 반드시 심판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의 모습을 우리는 매우 뚜렷하게 목격하게 된다.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무게가 심히 무겁다.
6~8절은 두 번째 열방인 가사(블레셋)에 대한 심판 선언이다. 8절에 블레셋의 다른 여러 도시들(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이 언급되어 있으므로 블레셋 전체에 대한 심판 예언임을 알 수 있다. 블레셋의 죄악은 그들이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넘긴 것이다. 이 사건이 어떤 역사적 상황을 가리키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사람들을 에돔에 팔아버렸다는 사실은 블레셋의 비인격적이고, 비윤리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하나님은 비인격적인고, 비윤리적인 죄를 간과하지 않으신다.
9~10절은 세 번째 두로에 대한 심판이다. 두로의 잘못은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않았고” 사로잡은 자들을 에돔에 넘긴 것이다. 형제의 계약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다.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고, 또 다른 어떤 민족과의 관계를 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블레셋의 “에돔에 넘긴 죄”가 두로에도 반복되면서 “형제의 계약을 어긴 점”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사람들 사이에서 언약을 어기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미워하신다.
11~12절은 네 번째 에돔에 대한 심판이다. 에돔은 블레셋과 두로로부터 사람을 넘겨받아 노예로 부렸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에돔의 죄는 “칼로 형제를 쫓아가고 긍휼을 버렸다”라는 점이다. 에돔 역시 “형제를 향한 긍휼을 잃어버렸다”라는 지적이 있는 것을 보면 사람 혹은 민족들 사이의 언약을 깨뜨린 것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다.
13~15절은 다섯 번째 암몬에 대한 심판이다. 암몬의 죄악은 아람, 블레셋, 두로, 에돔보다 훨씬 비윤리적이다. 그들은 길르앗의 임신한 여자의 배를 갈랐기 때문이다. 따라서 암몬은 더 엄중한 심판이 기다린다. 14절에서 “폭풍, 회오리바람” 등의 새로운 단어가 강조되어 표현된다. 전쟁의 날은 불로 임할 뿐 아니라 폭풍으로 심하게 됨을 말한다. 이전 민족들은 포로로 잡혀간다는 표현만 있었지만, 암몬의 경우 왕이 사로잡혀 갈 것이라는 구체적인 언급까지 등장한다. 이런 점에서 이방 민족들에게 대한 심판 선언이 이어질수록 점점 더 강화되어 가는 형태를 보인다.
2:1~3절은 여섯 번째로 모압에 대한 심판이다. 모압의 죄는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재를 만든 것이다. “재를 만들었다”라는 것은 실제로 에돔 왕을 죽이고 그 뼈를 불살랐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죽어 있는 왕의 무덤을 파헤쳐서 뼈를 불태워 에돔 왕의 명예를 욕보였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모압은 에돔을 매우 수치스럽게 했다. 이는 당시 세계관으로 암몬 족속이 임신한 여인의 배를 가른 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비윤리적이고 모독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또, 암몬은 개인에게 악행을 했다면, 모압은 다른 나라 자체에 악행을 저지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방 민족들에게 대한 심판 선언은 먼저 언급된 나라보다 뒤로 갈수록 더 윤리적인 죄들인 경우가 도드라진다. 죄악의 정도도 심해진다. 이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 수위도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을 충분히 예상케 된다. 열방은 반드시 심판받아야 하며, 그 심판은 하나님 앞에서 저지른 범죄 행위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나는?
-아모스는 이스라엘 주변국에 대한 심판 선고로 아모스 서를 시작한다. 하나님은 신의와 평화를 깨뜨린 주변국들의 죄악을 지적하시며 심판을 통해 공의를 세우신다.
-이례적인 방법으로 심판을 선고하신다. 남 유다 출시의 목자이자 뽕나무를 키우던 농부 아모스를 불러 북이스라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신다. 풍요의 시대를 구가하는 그들에게 황폐한 미래를 예고한다(1~2절).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던 그들에게 매우 불편하고 불쾌한 메시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낯설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그들의 죄악은 심각했다. 말씀 외의 것에서 듣지 않을 이유를 찾기보다 말씀 자체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 악한 세대가 꼭 들어야 할 말씀을 나는 전하고 있는가? 우리 교회는 외치고 있는가?
-북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번성한 시대를 향해 심판을 선포하신다. 분노한 사자가 먹이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듯 여호와께서 바알 숭배의 본거지 갈멜 초장을 황폐화하겠다고 하신다. 국가적 번영을 축복으로 착각하고 부정과 불의를 일삼는 자기만족의 종교를 향해 하나님의 포효가 발한다.
-먼저 유다와 이스라엘의 주변국에 대해 멸망을 선포하신다. 북동쪽으로는 다메섹, 남서쪽은 가사, 북서쪽으로 두로, 남쪽으로 에돔, 동쪽으로는 암몬, 남동쪽으로는 모압에 이르기까지 각 나라의 죄악을 조목조목 언급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의 정의에 예외는 없다. 하나님은 번번이 용서만 하시는 분도, 내키는 대로 벌하시는 분도 아니다. 죄악이 임계점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셔서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으신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에 무감각하지 않은가?
-이스라엘 주변국들은 힘없는 나라를 침략하고 탈취하는가 하면, 전쟁 포로들을 매매의 대상으로 삼았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잔인하게 생명을 앗아가는가 하면 죽은 사람의 무덤까지 파헤쳐 뼈를 불사르는 악행을 저지른다. 마땅히 지켜야 할 전쟁 규범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나님은 지금도 타인을 억압하고 인권을 침해하며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을 무력으로 침공하여 무고한 희생자들을 만들어내는 나라를 절대로 좌시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은 아니시다. 다메섹의 잔혹성과 비인간성, 사로잡은 모든 사람(전쟁포로)을 에돔에 팔아넘긴 가사(블레셋)의 반인륜적 악행, 주변 나라들과 맺은 계약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두로의 오만함, 형제 나라 이스라엘을 향해 난폭하게 굴고 끝없이 분노를 품은 에돔, 자기 영토를 넓히려고 길르앗을 침공하여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른 암몬의 무자비함에 대해서 에누리 없는 심판으로 반응하신다.
*아모스서는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포효이다. 여호와께서 사자가 되어 예루살렘으로부터 북 왕국의 중심부를 겨냥하여 성난 목소리로 부르짖으신다. 대적을 향한 분노가 아닌 하나님 없이 우상과 열강을 더 숭배하고 의지하는 자기 백성을 향한 분노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자기 동족을 향해 온갖 부정과 불의를 일삼는 것에 분노하신다. 분노한 사자가 먹이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찢으실 것이라는 경고였다. 하지만 위안이 되는 것은 이것이 최종 선고가 아닌 자기 백성을 돌아오게 하시려는 부르짖음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에게는 경고도 되지만 위로도 될 수 있다. 그들이 진정으로 의지해야 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대상은 저 열방과 그들의 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도록 주신 기회이다.
*주님, 원수를 무너뜨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매 순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