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은 5장에서 시작된 이스라엘을 향한 애가가 계속되는 본문이다. 이스라엘이 경험할 심판을 애가의 형태로 서술한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타락한 삶을 조롱하면서 표현하며(1~7절),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 이스라엘이 열방의 참략을 받아 처참한 패배를 당하게 될 것을 묘사한다(8~14). 신앙을 올바로 지키는 지도자가 없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이 멸망을 경험하게 됨을 간과하면 안 된다.
1. 지도자들의 죄악상(1~7절)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모습을 서술한다. 1절은 “시온에서 교만한 자”, “사마리아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라고 묘사하며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지도자들을 향한 선포임을 전제한다. 이렇게 이스라엘 전체를 언급하는 이유는 9:11~12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들은 교만했다. 1절에서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라고 표현하며 2절에서는 이런 지도자들에게 갈레와 하맛(이스라엘의 북쪽)과 가드(이스라엘의 남쪽 블레셋 지역)로 가보라고 교훈한다. 이 표현은 지도자들에게 이스라엘 밖의 모든 영토를 다녀보고 그 나라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지 확인해보라는 의미다. 즉, 이스라엘은 그런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표현이다.
그 이유가 3~6절에 자세하게 설명된다. 3절은 “악한 날을 멀리한다”는 표현을 통해 지도자들의 안일한 모습을 드러내준다. 재앙의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포악한 자리를 가깝게 한다.” 4절은 상아 상에서 누워 있으면서 살진 짐승을 잡아 잔치를 벌이는 풍요로운 삶을, 5절은 비파와 악기로 노래하며 삶을 즐기는 모습을, 6절은 포두주를 마시고 기름을 바르는 등의 안락한 생활을 묘사한다. “다윗처럼”이라는 표현은 풍자다. 다윗처럼 비파와 악기로 노래하는 것을 흉내낸다는 것인데, 실상 다윗의 신앙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윗의 번성한 모습만 따르려고만 했지, 그의 신앙적인 삶과 지도력은 본받지 않는 지도자들을 비난하는 풍자다.
4~6절 상반절까지 지도자들의 모습이 풍요로워 보일수록 6절 하반절에서는 정작 그들이 해야 할 의무에 소홀한 것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요셉”이라는 표현은 북이스라엘을 가리키고,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의 환난을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도 북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애굽의 총리로 애굽과 주변 나라 및 야곱의 가족들을 흉년에서 보호하고 이끌었던 요셉과 비교하여 되려 고난과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는 잘못된 지도자들임을 풍자한다.
7절은 이런 지도자들이 잔치를 벌이는 자의 자리에서 포로로 잡혀가는 자로 전락하게 될 것을 예고한다. 지도자들은 가장 먼저 사로잡혀 가서 자신들의 행동의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요셉은 자신의 후손들이 가나안에 등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의 역사를 일궈놓는 지도자였으나 아모스 시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백성들이 가나안에서 사로잡혀 포로로 끌려가도록 만드는 지도자들이었다.
2. 이스라엘에게 임할 심판의 모습(8~14절)
본 단락은 이스라엘이 경험하게 될 심판의 처절함을 묘사한다. 8절에서 먼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서술한다. 하나님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시고 북왕국의 궁궐들을 미워하셔서 모든 성읍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원수에게 넘기겠다고 하셨다. “넘기다(사가르)”로 번역된 단어는 “닫다”라는 의미도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을 “닫아버리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그 결과가 9~11절이다.
9절은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해도 다 죽을 것이라고 묘사하며 이스라엘의 심판이 매우 극심하여 살아남는 자가 없을 것임을 암시한다. 이어지는 10절은 이런 진멸의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한다. 죽은 사람을 불사르려고 할 때 시신이 더 있느냐고 물으면 없다고 하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말하지 말고 잠잠하라”라고 말한다. 이는 여호와의 심판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여호와 하나님이 심판의 하나님으로 백성들의 뇌리에 기억되어 있다는 의미다. 백성들의 두려움은 심판주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면 또 다른 심판이 내려오게 될까봐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11절은 여호와께서 큰 집과 작은 집을 산산조각 내셨다고 언급하면서 지도자들의 큰 집뿐 아니라 가난한 백성들의 집까지 모두 하나님의 중한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12~13절은 멸망의 참상을 표현 한 후에 다시 멸망의 이유를 설명한다. 이스라엘은 정의를 쓸개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쓸개(로쉬)로 번역된 단어는 “쓰고 유독한 것, 독”이라는 의미다. 즉 이스라엘은 정의를 독약으로 바꾸고,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어서 정의와 공의 대신 먹으면 죽을 독약과 먹지 못할 쓴 쑥을 백성들에게 먹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에게 주금과 같은 심판이 임하게 되었다. 또 13절은 이스라엘이 허무한 것을 기뻐하면서 이 모든 일들을 자신의 힘으로 이루었다고 자랑하는 모습을 조롱하듯 서술한다. “뿔들이 취하였다”는 것은 큰 업적을 이루어냈다는 의미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허무한 것을 좇았지만, 자신들이 위대한 지도자들인 것으로 착각했다.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임에도 하나님을 버린 채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하려 했다. 결국 그 지도력은 이스라엘을 멸망으로 이끌었다. 14절은 이러한 멸망의 마지막을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의 지역에서 이스라엘이 학대받게 되는 장면으로 묘사한다. 이 구절은 열왕기하 14:25~28에서 온 것으로 여로보암 2세가 얻게 된 땅들이 다시금 이방의 수중에 넘어가게 될 것을 표현하는 구절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말았고, 멸망의 길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풍요와 번영에 젖어 사치와 향락을 일삼으며 힘없는 자들을 착취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심판을 선고하셨다. 이스라엘의 광란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멈출 수 밖에 없다.
-시온(남 유다의 수도)과 사마리아(북 이스라엘의 수도)는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교류가 활발했다. 지도자들은 이곳에서 긴밀한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그 기반 위에 자만과 허영과 영적 안일에 취해 있었다. 또 주변국들보다 자국의 번영이 자기 힘의 결과인 양 우월주의에 빠져 있었다(1~2절, 13절).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스스로 높일수록 더 낮은 곳으로 자신을 밀어넣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높은 자리와 명성, 권력에 연연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는 교만함이 패망을 불러왔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날이 오면 자신이 으뜸이라고 자만하던 자들의 나라는 한곳도 빠짐없이 다 점령당하여 학대를 받게 하싪 것이다. 자만과 강포의 상징인 궁궐을 미워하고 야곱의 영광(번성함과 강성함)을 싫어하실 것이다. 또 재앙을 불러올까 두려워 감히 “여호와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조심할 만큼 혹독한 재앙을 만나게 하실 것이다.
-자기만을 위한 부와 권력은 그들만을 위한 “흉한 날”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권력자들과 재력가들은 선지자가 전하는 “흉한 날”을 비웃으며 안일과 나태에 빠져 점점 강포한 자리에 앉았다. 그들의 호화로운 일상은, 값비싼 상아 침상에 몸을 맡기고 고급 음식으로 배를 채우며 날마다 노래를 흥얼대고 제의에 사용되는 대접으로 술을 마셨다. 그러고도 고통받는 자들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책임도 느끼지 않는다(3~6절, 12절).
-내 삶의 질 만큼이나 내 이웃과 형제의 삶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지금 내가 더 많이 누리고 있다면 특권이 아니라 책임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권력과 재력에 취하여 자만과 허영, 영적 안일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자기 힘으로 갈레나 하맛과 가드보다 더 강한 나라를 만들었다고 우쭐해했다. 스스로를 으뜸 국민으로 치켜세웠다. 그만큼 자만했기에 “흉한 날”을 선포하는 선지자의 말은 거절한 채 더욱 “포악”을 일삼은 것이다. 하지만 자만이 패망의 선봉임을 모르고 있었다.
-불의와 향락에 앞장섰던 지도자들을 “앞세워” 심판하신다. 힘없는 자들의 희생으로 지어진 저택에서 호의호식하던 자들의 노래를 죽은 자의 침묵으로 바꾸어 놓으실 것이다. 그들이 무시하던 하나님의 이름이 “심판의 날”에는 이베 담기 힘들 정도로 두려운 이름이 될 것이다. 가장 영광스러운 곳이 가장 수치스러운 곳이 될 것이다. 무섭게 몰아치는 혹독한 재앙의 심판을 누구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7~11절).
-한 사회에 누적된 불의와 조악이 국가적 재난을 초래한다는 사실 앞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타인의 희생을 등에 업고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세력을 결코 간과하지 않으실 것이다.
-소수의 권력자들이 사치하고 방탕하며 백성들에게는 공의와 정의라는 달콤한 음식 대신에 쓸개와 쓴 쑥을 주었다. 향락에 취해 안일하고 나태했다. 백성들은 고기 먹는 것조차 드물었던 시기에 맘에 드는 양과 솔르 골라 잡아 먹는 호사를 누렸다. 애굽의 바로와 같은 지도자들 때문에 하나님의 땅, ㄷ가나안이 애굽으로 바뀌고 말았다.
*사마리아는 자만의 도시였다. 자신이 으뜸이라는 지도자들로 인해 한 곳도 빠짐없이 다 점령당하여 학대를 받게 하실 것이다. 인생을 멋지게 누릴 권리만 주장하다가 이웃의 아픔이나 억울함을 이해하는데 무감각하지 않는가? 이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탄식과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도자들의 죄는 개인의 멸망이 아니라 국가적 멸망을 초래한다는 것을 각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편안함을 위해 국민의 불편함을 당연하게 여기는 무뢰한들이 아니기를 바란다. 국민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는 무정한 자들이 지도자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광스럽게 여기는 것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미움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원하신다. 경제적인 부요, 사회적인 지위를 자랑스러워 하는 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과 사회를 돌보아야 한다.
*말들도 가야 할 길을 알고, 소들도 갈아야 할 밭을 안다(12절).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자행했다. 통탄스럽게도 오늘날 일부 지도자들에게 이런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는것은 어찜인가? 백성을 위해 세워진 지도자들이 오히려 법과 정의의 이름으로 백성을 억울하게 하고 독과 슬픔에 빠져들게 했다. 지금 우리의 상황과 너무도 일치하지 않는가! 불행한 성경 속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가 되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돌이켜야 하겠다. 지도자들의 생각을 깨우쳐 주시기를 간절히 구할 따름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삶을 살아내며 외치고 행동해야 할 때 누구보다 앞에 서서 공의와 정의가 생동하도록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 지금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님, 헛된 영광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지도자들을 벌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더 큰 재앙이 나라와 민족에게 임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주님,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의 음성과 약자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써서 정의과 공의가 쓸개와 쓴 쑥이 아니라 달콤한 사회가 되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