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사랑하라”가 아닌 “사랑하자”의 삶으로![요이 1:1-6]
 – 2022년 12월 28일
– 2022년 12월 28일 –
요한 사도가 복음으로 세운 교회들을 거짓 교사들이 와서 복음을 흐려 놓았다. 요한 일서에 의하면 구성원 중 일부가 교회를 떠난 상황도 있다. 그들의 가르침의 핵심은 예수가 구약에서 약속한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대항하는 요한 사도는 더욱 이미 전한 복음에 천착할 것을 요청한다. 진리 안에서 사랑을 행하고 사랑을 행함으로 진리 안에 깊어지는 교회를 바라보며 기뻐한다. 이와같은 기쁨이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이 처음 주신 계명을 따라 행하기를 권한다.
 
 
 
1.진리와 사랑, 사랑과 진리(1-3절)
요한 사도가 믿음의 자매와 그 자녀들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와 함께 할 그 진리로 인해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 자비, 평화가 진리와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하기를 빈다.
 
교회는 진리와 사랑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바로 서지 못한다. 왜 그럴까? 하나님과 예수님의 속성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구약은 하나님을 나타낼 때 “인자와 진리(헤세드 우 에메트)”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하나님께서는 인자와 진리의 완전한 균형 속에서 세상을 섭리 하신다. 요한사도는 예수님을 “은혜와 진리(카리스 카이 알레데이아)”가 충만하신 분이라고 했다(요 1:14). 이와 같은 표현 만으로도 하나님과 예수님은 한 몸이심이 증거된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진리와 사랑”(3절)로 기록했다. 그리고 요한이서는 사랑보다는 진리를 먼저 언급한다. 왜 그럴까? 이는 편지를 받는 교회가 하나님의 진리 안에 거하는 것이 얼마나 시급하고 절박한 일 인지를 암시해 주는 것이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예수님 스스로가 자신이 진리임을 밝히셨다(요 14:1).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진 존재들이다. 흔히 진리의 터 위에 세워졌다 라고 표현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되신 것을 일컬어서 진리라고 이해하면 된다. 당시 거짓 교사들이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한 심각한 우려에서 요한 사도는 진리 안에서. 진리를 따라 행하는 것의 중요성을 먼저 강조 하고 있는 것이다.
 
*진리는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딱딱하지 않다. 오히려 따뜻하다. 사랑과 함께 있으니 더욱 그렇다.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사랑하는 삶을 산다.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향한 따뜻한 사랑없는 진리는 없다. 진리 가운데 거한다면 공동체를 사랑하지 않을 없다. 진리가 사랑이고 사랑이 진리이다.
 
 
2.계명을 따라 사는 것은 사랑하며 사는 것(4-6절)
요한 사도가 크게 기뻐한 것은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보았기” 때문이었다(4절). “그대의 자녀 가운데 우리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계명대로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매우 기뻐했습니다.”(새번역_4절)
 
구원받은 이들이 지켜야 할 절대적인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계명은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대로,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새번역_6절)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곧 “계명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
 
요한 사도가 이처럼 사랑과 계명을 헷갈리게 말하는 것은 “사랑과 계명”을 구분하지 않고 사랑이 계명이고 계명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결국 진리 안에서(예수 안에서) 사랑하며 사는 것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온갖 계명(율법)들을 다 지킨들 사랑하지 않으면 헛된것이다.
 
*사랑은 공동체나 개인이나 신앙생황의 건강지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은 진리와 계명따라 사는 삶인지를 분별하도록 해준다. 그래서인지 요한 사도는 간절하게 권면한다. “자매여, 지금 내가 그대에게 간청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서로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새 계명을 써 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계명을 써 보내는 것입니다.”(새번역_5절)
 
*요한은 “사랑하라!”고 명령하지 않고 “사랑하자!”라고 말한다. 왜 그랬을까? 이토록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면 명령해야 옳지 않을까? 요한 사도 자신은 명령자의 위치가 아님을 분명히 알았다는 것이다.
 
 
*아! 이 부분에서 큰 도전이 된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분명하게 도전한다. 나는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수님 안에 거하고 있기에 유일하신 구원자이자 목자이신 주님께서만 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명령하시고 우리는 함께 그 길을 걸어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나도 그래야지.. 명령하는 목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 동행자가 되어야지….
 
*사랑하라는 명령문이 아니다. 내가 먼저 진리의 성령께 도우심을 받아 사랑 안에 거하기를 힘쓰고 혹시 권해야 할 상황에 직면할 때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라고 권면 해야 하는 것이다.
 
 
 
*주님, 주님 안에서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주님, 사랑 안에서 진리를 행하며 살겠습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