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결국 사랑이 이긴다![요이 1:7-13]
 – 2022년 12월 29일
– 2022년 12월 29일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거짓 교사들은(미혹하는 자는) 이를 부인한다. 요한 사도는 그들이 “적그리스도”라고 단언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완전한 인간으로 오신 사실을 부인한다. 당시 교회들은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여 말씀을 듣는 관습이 있었다. 거짓 교사들은 이를 악용해 거짓 가르침을 퍼뜨렸다. 이런 모습은 요한이 세운 교회들 뿐 아니라 갈라디아 교회의 경우처럼 바울이 세운 교회들에게도 있었다. 요한은 그들에 대하여 철저히 분별하여 아예 들이지도 말라고 강력하게 대처한다. 교회는 거짓 교사들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했을까?
 
 
 
1. 스스로 삼가라(7-8절)
미혹하는 자가 많이 나왔다. 이들은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현대판 가짜뉴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퍼뜨리는 자들인 것이다. 성경은 이와같은 “거짓말”에 대하여 심각하게 경고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출 20:16).
 
얼마나 중요한지 십계명에 포함 시키셨다. 사소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사소하게 여기지 않으셨다. 우리 속담에도 “말 한 마디가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게도 하지만, 철천지 원수가 되게 하기도 한다고 했다.
 
진실에 기반하지 않는 가짜뉴스는 교회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죄가 될 수도 있다. 공동체의 기초를 뒤흔드는 행위라는 것이다. 요한 사도 당시의 교회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으로 오신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유혹하는 자들이며 그리스도의 원수입니다”(새번역_7절).
 
거짓 교사들의 복음에 대한 가짜 뉴스는 신앙의 본질을 왜곡시킨다. 요한 사도는 이런 자들에 대하여 “속이는 자, 그리스도의 적대자”(새번역_7절) 라고 단언한다.
 
이런 자들에게 대하여 무엇보다 “스스로 삼가하라”고 까지 충고한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수고하여 맺은 열매를 잃지 말고, 충분히 포상을 받을 수 있도록”(새번역_8절) 하기 위해서이다.
 
*무엇이든 분별과 절제가 중요하다.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진리안에 거해야 하고, 진리를 호도하는 가짜뉴스를 접할 때는 “적극적으로(스스로) 삼가하여” 접하지 않으면 된다.
 
*성령께서 복음의 가짜뉴스는 깨닫게 하는 지각을 이미 주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면 절제하며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사단은 지나친 호기심을 발목 잡아 가짜뉴스에 현혹되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철학이 일반화 되어 있던 시대, 하나님나라 복음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영역이었다. 철학과 복음이 충돌할 때 복음을 스스로 지키려는 마음이 곧 믿음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과학적 사고가 우선인 시대, 복음은 여전히 과학과 학문들, 이성과 논리에 충돌한다. 하지만 복음을 스스로 지키기 위한 결정은 자신에게 달려 있다. 복음 안에 거하는 결정에는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이 분명히 있다.
 
 
 
2.앞서지 마라. 복음안에 거하라(9절)
요한은 그들의 가짜뉴스에 “지나치게 나가서(새번역), 혹은 지나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않는 이에 대하여도 경고한다.  가짜뉴스에 스스로 마음을 내어 주는 이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지 아니한 사람이다. 반면 그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는 아버지와 아들을 다 모시고 있는 사람이다.
 
요한 사도가 이미 전하고 가르친 것을 굳게 붙잡고 그 안에 머물러 있는 이는 거짓 교사들의 가짜 뉴스를 접하더라도 성급히 반응하지 않는다. 진리 안에 거하고 있는데, 어찌 가짜에 마음이 뺴앗기겠는가? 진리에 확신이 없다면 모를까….
 
*예수님의 복음보다 앞서면 안된다. 주님을 따라 가는 것은 결코 주님을 앞질러 가는 것이 아니다. 주님을 앞질러 가는 것은 자기만의 열정과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는 하나님과 동행의 보폭과 속도를 맞춘다. 나란히 함께 걷기를 누린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선을 지키는 것이 시작이다.
 
*예수님의 복음을 굳게 붙잡고 복음을 앞서게 하는 모든 유혹에 마음을 빼앗겨 복음보다 앞서 나서면 안 된다.
 
 
3.악을 멀리하라(10-11절)
요한 사도는 거짓 교사들을 악하다고 단언한다. 심지어 인사하는 것도 악함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거짓 교사들을 집에 받아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권한다.
 
악은 함께 있기만 해도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요한은 멀리 하라고 말한다. 당시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은 유대인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차지했다.
 
요한 사도는 거짓된 가짜 뉴스에 물들지 않으려면 나그네를 대접하는 좋은 가치라도 맞이하려는 이가 거짓교사임이 분별되면 인사조차 하지 말라고 강권한다.
 
*거짓의 힘이 이리도 강력한 것이다. 함께 있기만 해도 물든다. 그러므로 아예 “멀리하라”고 하고, 인사조차 하지 말라 한다.
 
*악힘을 알면서도 사랑과 동정의 마음에 이끌려 감싸려는 마음은 곤란한 삶이 펼쳐질 것을 예상케 한다. 사람은 생각보다 더 약하고 악하다. 예수님의 복음에 등을 돌린 이들에게 등을 돌리는 것은 과감할 수 록 좋다. 
 
 
 
4.교제가 힘이다(12-13절)
요한 사도는 짧은 글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교회를 향한 뚝뚝 떨어지는 사랑의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종이와 먹으로 쓰지 않고 직접 가서 얼굴을 보며 교제하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사랑할수록 만나고 싶은 것이 정상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만남을 회피한다면 그것은 가식이다. 요한은 직접 마주하면서 교제하고 편지를 쓰며 느끼는 사랑의 마음을 직접 표현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진리와 사랑의 공동체로 굳게 세우고 싶었다. 이것이 요한의 마음이고 예수님의 마음이며, 나의 마음이기도 하다.
 
*나는 지극히 내성적인 성품을 타고 났다. 많이 노력하지만 조용히 홀로 있는 것을 더 좋아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난 후엔 외향적인 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피곤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하면 이런 성품도 뛰어 넘을 수 있다. 사랑하기에 진리안에 거하는 공동체를 돌보는 것은 피곤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기쁜 일이며, 활기찬 일이다.
 
*요한 사도의 마음이 짐작이 간다. 밖으로는 환난이 휩쓸고 지나갔고 여전히 끝나지 않는 박해의 물결을 마주하고 있었고, 안으로는 거짓 교사들의 미혹하는 가르침이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편지보다는 직접 가서 손을 잡고 눈을 마주하며 위로하고 격려하며 용기를 부어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의 마음이 오늘 나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더 만나고 싶고 더 이야기 하고 싶으며 더 진리를 소통하고 싶어서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픈 마음이 넘쳐난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주신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거짓교사들은 다르다., 그저 말과  혀로만 판단하고 정죄하며 구분짓는다.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큰 이런 마음은 성도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지 못한다. 오히려 따뜻한 사랑의 하나님의 품에서 스스로 시험들어 떠나도록 부추긴다.
 
*오늘날에도 별반 다름 없다.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려주고, 참으며,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거짓 교사들은 그저 정의, 공의, 진리라는 명분만 들먹이며 마음을 찢는다. 공동체에서 스스로 상처받게 만든다.
 
*이와 같은 유혹 속에서 진리 가운데 든든히 설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홀로가 아닌 함께”라는 가치이다. 사랑은 함께한다. 사랑은 마주하며 눈을 맞추고 마음을 소통한다. 더온누리교회 목장, 전도회, 구성된 소그룹들마다 이와 같은 사랑의 교제가 끊이질 않아 진리 가운데 든든히 서 있는 공동체였으면 좋겠다.
 
*주님 안에서의 사랑의 교제는 모두에게 “기쁨”을 선물한다.
 
 
 
*주님,  요한 사도의 구구절절 사랑하는 마음이 나의 마음이고 싶습니다.
*주님, 결국 사랑임을 확신합니다.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힘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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