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진리 안에서 환대와 섬기는 삶 [요삼 1:1-8]
 – 2022년 12월 30일
– 2022년 12월 30일 –
장로가(요한사도가) 가이오에게 쓰는 편지로 신약에서 가장 짧다. 가이오에 대한 정보는 성경에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다만 버가모 교회의 감독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요한 사도는 자신을 스스로 “장로(presbuteros_프레스뷔테로스)”라고 밝혔다. 이 단어에서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라는 단어가 생겼다. 내용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분된다. 도입(1-4절), 가이오에 대한 칭찬(5-8절), 디오드레베에 대한 책망과 데메드리오에 대한 칭찬과 추천(9-12절), 마무리(13-15절)이다. 요한삼서도 요한일서, 이서와 마찬가지로 거짓 교사들과 관련된 서신이다.
 
요한 사도는 요한일서를 통해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의 영향력에 대하여 경고하고 순회 전도자들을 보내 예수의 복음을 여러 교회에 전하게 하였다. 이때 순회 전도자들은 요한일서나 요한이서를 가지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공동체에서 “디오드레베” 때문에 요한 사도와 관련된 사람들이 거부당한 것이다. 이에 요한 사도는 가이오에게 디오드레베와 달리 순회 전도자들을 계속 잘 영접 하라고 편지를 쓴 것이 요한삼서이다.
 
 
1.요한 사도의 기쁨(1-4절)
요한 사도의 인사말에서 사랑이 듬뿍 묻어난다. 가이오를 향한 인사말이 예사롭지 않다.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라고 고백한다. 오늘날 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도 아니고 편지를 보내려면 순전히 사람의 수고가 필요한 시대에, “오직 한 사람”에게 편지를 썼다. 이것만으로도 요한 사도가 가이오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찐”인지 증명된다.
 
또, 그의 삶에 대하여 축복하되 “영혼 뿐만 아니라 신앙과 삶의 모든 영역, 육체과 육체의 강건함까지”, 그의 삶이 전체적으로 잘되기를 빈다. 가이오에 대한 그의 마음이 감춰지지 않는다. 이런 사랑이 요한 사도가 예수님께 받은 사랑이었고 예수님을 통해 이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까? 아낌없이 축복하는 그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다함 없는 사랑이 보인다.  *나도 역시 교회를 향해 이렇게 다함 없는 사랑을 행하는 삶 이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요한 사도는 왜 이토록 가이오를 칭찬하고 진심으로 기뻐했을까?
 
먼저 “네가(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하고(3절)”, 가이오가 담당하는 “교회의 성도들이(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4절)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6절에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고”, 8절에서도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가이오와 그의 교회가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다는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 것이다.
 
*요한 사도의 기쁨은 곧 나의 기쁨이기도 하다. 성도들이 진리 안에서 진리를 따라 살아가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모습이 주는 기쁨만큼 큰 기쁨은 없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합당하게 행하는 삶은 진리를 분별하고 진리 안에서 행하며,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들을 돕고 협력한다. 
 
*나의 마음의 만족함이 기쁨이 아니라 진리가 이 땅에서 생동하여 하나님나라 백성 답게 살아내도록 하는 것을 볼 때 기쁨이 넘친다! 나도 더온누리교회가 말씀 안에서 행하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기쁘다!!
 
 
 
2.가이오의 삶_환대와 섬김의 사람(5-8절)
요한 사도는 가이오가 형제들과 나그네 된 자들을 신실하게 잘 섬기는 것에 대하여 크게 기뻐하며 칭찬한다. 그는 나그네들(순회 전도자들)을 환대하고 섬겼다. 이러한 사실들은 그에게 환대를 받았던 이들을 통해 교회 앞에 알려졌다(6절). 이처럼 가이오는 진리 안에서 행하였을 뿐 아니라 형제들의 필요와 나그네된 자들을 위해 환대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요한은 가이오를 칭찬하면서 “형제들과 나그네”를 환대하고 섬기는 것을 함께 언급했다.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 주는 것은 공동체 지체나 외부의 손님이나 다를 바가 없어야 한다. 가이오는 환대하는데 대상을 구분하지 않았다. 내 식구만 챙지기도, 나그네만 환대하지도 않는다. 공동체의 형제들이나 나그네된 이들을 똑같이 섬긴다. 그의 환대와 섬김은 “찐” 이었다. 가이오의 집은 어느 누구에게나 언제나 활짝 열려 있었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회가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누구라도 들와야 할 교회당이어야 하나, 많은 교회들은  문을 꼭꼭 잠근다…. 문만 그럴까? 마음의 문은 어떨까?
 
*가이오의 환대와 섬김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이오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한 자들(순회 전도자들)을 위해 신실하게 환대하고 섬겼다(7절). 요한 사도는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고 이러한 환대와 섬김이 곧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8절).
 
 
 
나는?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는 형제와 순회 전도자들에게 인색하지 않다. 그들을 영접하고 지원하여 함께 일하는 자이다. 누군가를 환대하고 섬기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는 일이다. 나의 삶도 환대와 섬김에 반응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말씀은 교회 공동체 안의 말씀 사역자나 선교사들을 향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여야 할지를 제시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선교지와 선교사님들, 이웃의 형편들을 바라보며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이 있다. 그것은 보고 받는 자리에서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현장을 가보지 않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의 상황을 살피지도 않으며 그저 회의실에서 이 모든 과정을 마무리한다. 특히 우리는 선교사들에 대하여교회 공동체 대신 선교지에 나간 이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으로 이를 돕고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다. 가이오의 환대하고 섬기는 마음이 우리에게 늘 넘쳐야 한다.
 
 
-가이오는 또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였다. 그의 행동들은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동들과 진실함으로 무장 되어있었다. 요한 사도는 가이오의 행위를 “진리 안에서 행한다”며 “심히 기뻐한다.” 이것을 듣는 것 만으로도 더 기쁜 일이 없었다.
 
-요한의 가이오에 대한 태도가 인상적이다. 그에게 진리 안에서의 행하는 모습보다 흐뭇한 것은 없었다. 너무도 기쁜 요한의 마음은 그를 진심으로 축복하는 모습에서 확인된다. 그래서 우리에게 너무도 유명한 기도문이 탄생했다. “사랑하는 이여, 나는 그대의 영혼이 평안함과 같이, 그대에게 모든 일이 잘 되고, 그대가 건강하기를 빕니다.”(새번역_2절)
 
-한국교회에서는 너무도 다르게 해석하고 기복적인 적용을 하는 구절이 되었지만, 이 구절은 요한이 가이오를 위해 기쁨으로 기도해 주는 기도문일 뿐이다. 그만큼 가이오는 요한에게 사랑스러웠고 기쁜 존재였다.
 
-목회를 하면서 이와같은 관계를 맺는 것을 간절히 사모한다. 형식적이고 제도적인 관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기뻐할 수 있는 관계가 고프다!. 나도 어느 누군가에게는 이런 존재로, 나에게 이와 같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 행복한 목양의 열매가 아닐까!
 
-또, 이렇게 기도해 주는 성도들이 되도록 많아 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하나님나라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분명한 증거일테니 말이다.
 
 
 
*주님, 가이오의 진리 안의 삶이 도전됩니다. 저도 진리 안에서 살겠습니다.
*주님, 환대와 섬김을 구분없이 베푼 가이오를 본받고 싶습니다.
*주님, 저의 기도중에 가이오를 향한 요한의 기도를 동일하게 해주고 싶은 성도들이 많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도 그러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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