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 전투에 이어 아이 성 전투가 이어진다. 그런데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고 점령할 때 아간이 노략물의 사취를 금지한 헤렘 법을 어긴다. 여호수아는 그것을 모른 채 아이 성 공격을 감행하지만, 이 일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가볍게 공략할 수 있는 아이 성을 함락하지 못하고 도리어 참패를 당한다.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항변하자 하나님께서는 범죄 사실을 알려주시고 제비 뽑아 범죄자 아간을 드러내신다.
1. 실패한 아이 성 정복(1~5절)
1절은 놀랍게도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간의 범죄에 공범임을 진술한다. 이는 구약의 공동 책임 사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신학적 진술이다. 온 이스라엘을 곤경에 빠뜨린 당사자는 아간이다. 그의 상세한 족보가 이어지면서 아간과 그의 집안 내력이 함께 소개된다. 4대가 등장하는 아간의 족보는 선택적인 신학적 족보로 축약되어 있다. 아간은 유다 지파였고 그의 조상은 다윗으로 이어지는 베레스가 아닌 세라이다. 아간은 당시로서는 명망가에 속한 집안이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하지만 저자는 혈통에 대한 부정적인 암시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간은 ‘온전히 바쳐진 제물’에 손을 댔다. 이 물건들은 “헤렘”인데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쳐진 것”을 뜻한다. 아간은 헤렘 물건에 손을 대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이 죄는 특별히 “마알”로 지칭되는데 이 단어는 특히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위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보통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서약을 당사자인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행위다. 이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전체에 분노를 뿜어내셨다.
1~3절은 아이 성 공략에 실패한 두 가지 원인을 서론적으로 꺼낸다. 먼저 헤렘 명령을 무시한 아간의 범죄(1절)였고 두 번째는 아이 성을 하찮게 본 이스라엘의 교만이다(2~3절). 요단강 근처 저지대의 여리고를 정복한 이스라엘은 가나안 내륙의 고지대 초입에 자리한 아이 성을 공략하기 위해 밀정들을 보낸다. 아이 성의 정탐꾼 숫자는 명시되지 않고 정탐 과정도 생략된 채 결과만 보고되는데, 이는 아이 성 정탐부터가 매우 느슨하고 허술했음을 암시한다. 이스라엘의 오만함이 엿보인다. 정탐을 마친 정탐꾼들은 여호수아에게 지나치게 낙관적인 보고를 한다(3절). 그들은 소수의 병력으로도 아이 성 공략이 충분하다고 말하면서 불과 이삼천 명을 제안한다. “그들은 소수이니”라는 말에서 정탐 활동의 허술함이 드러난다. 나중에 죽임 당한 아이 성 주민과 벧엘 연합군이 남녀 만 이천 명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8:25).
여호수아는 정탐꾼들의 제안대로 군사 삼천 명을 선발하여 아이로 올라가 전투를 벌이지만 쉽게 패주하여 36명의 군사를 잃는다(4절). 아이 성의 군사들은 스바림(채석장)까지 쫓아가 내리막길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쳐부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 전투로 인해 자중지란에 빠진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느슨한 정신력으로 전쟁에 임하였는지를 잘 암시한다. 예상치 못한 패배 소식은 금새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녹아내리게 했다. ‘마음이 녹아내렸다(마사스_분해되다)’는 수 2:9에서 여호와의 이스라엘에 대한 소문을 들은 여리고 주민들과 가나안 땅 거주민들의 상태를 표현하면 사용된 단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가 완전히 꺾인 것이다. 반면 아이 성과 가나안의 사기는 충천해진다.
흥미로운 부분은 정탐꾼의 태도다. 출애굽과 가나안 전쟁에서 지금까지 세 번의 정탐꾼 활동이 이루어졌다. 민수기의 가데스 바네아에서 파견된 열두 명의 정탐꾼은 불신의 보고를 가져와 백성을 낙담하게 하였다. 반면 여리고를 정탐한 정탐꾼들은 믿음의 보고로 백성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그런데 아이 성을 정탐한 밀정들은 교만한 보고로 백성을 방심케 했다. 정탐 행위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정탐의 동기와 태도, 정탐 후의 평가가 중요함을 알 수 있다.
2. 아이 성 패배 후 여호수아의 탄원(6~9절)
패배의 소식을 들은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도탄에 빠졌다. 옷을 찢고 법궤 앞에서 땅에 엎드리며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며 전형적인 애도와 슬픔을 표현한다. “법궤 앞에서(여호와 앞에서)” 그들은 온종일 날이 저물도록 탄식하며 부르짖었다.
여호와를 향한 여호수아와 장로들의 항변은 광야에서 조상들이 반복적으로 쏟아냈던 불평과 완전하게 일치한다. 그때마다 그들은 ‘애굽 땅에서의 생활이 더 좋았다’라는 말을 덧붙이곤 했다(출 14:10~12; 민 14:1~3). 이 단락에서도 ‘우리가 요단 저쪽에서 사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라고 동일하게 따지면서 울부짖는다. 나아가 그들은 역시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압력을 행사하면서 흥정을 시도한다. ‘우리가 적들에게 망해 이 소문이 세상에 퍼진다면, 당신의 명성에 스스로 먹칠하는 셈이 아닙니까?’ 결국 모든 것은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요단 동편을 떠나 요단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 탓이라고 핑계하며 원망한 것이다. 그들은 출애굽 1세대의 조상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3. 하나님의 대처(10~15절)
하나님은 이들의 부르짖음에 반응하신다. 그리고 왜 무기력하게 아이 성에서 패배하게 되었는지 알려주시며 질책하신다. 헤렘 법을 어기고 헤렘의 물건을 도둑질했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그들이 패한 이유였다(12절). 한편 아간은 해이해진 백성의 정신적, 영적 상태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단락에서도 하나님은 분명하게 이스라엘을 공범자 취급을 하시며 이스라엘이 공동 책임을 지고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명령하신다. 덧붙여 하나님께서는 만일 헤렘 물건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더는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경고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범인 색출을 위한 구체적 방법과 절차를 알려주신다. 모든 백성은 스스로 성결케 하고 다음 날을 준비해야 한다. 이튿날 성결케 된 백성 중에서 하나님이 차례대로 “취하실 것이다(직역하면 여호와께서 취하실 지파를 의미한다).” 이것이 결정되는 방식을 본문이 말해주지 않지만 “제비뽑기”일 가능성이 크다. 대제사장의 흉패 속에 보관했던 우림과 둠밈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제비가 뽑히는 순서는 큰 단위의 집단부터 작은 단위로 내려가는 방식이다.
제비를 통해 특정 지파가 뽑히고, 그 지파 안에서 다시 제비를 통해 특정 가문이 뽑히고, 그 가문 내에서 다시 제비뽑기로 범인이 뽑힌다. 가문의 남자들이 가까이 온 가운데, 최후의 제비뽑기를 통해 범인이 드러난다(14~15절). 그는 화형을 당할 것이고,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이 함께 불사름을 당할 것이다(15절).
나는?
-내부의 적이 늘 있는 법이다. 여리고를 무너뜨린 기세대로라면 아이 정복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런데 패배한다. 밖의 대적이 강해서가 아니라 안에 있는 대적 때문이다. 그것은 “불순종”이라는 대적이다. 아간은 진멸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다. 진멸해야 할 것 대신에 그가 진멸 당할 것이다. 대적과 싸우기 전에 나의 두려움과 나의 욕심과 먼저 싸워야 할 이유다. 내가 하나님께 굴복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 준비가 부족하여 패배한 것이 아니다. 여리고 성 때처럼 정탐꾼을 보내 전력 분석도 마쳤다. 더구나 이번에는 정탐꾼이 들키지도 않았다. 그런데 자신들의 상태는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전쟁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아간의 범죄 사실을 알게 되자 수긍하고 만다. 실패와 고난이 닥치면 나의 바깥을 보기 전에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살펴보라. 상황을 핑계치 말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라.
-승리의 요건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실 때 여리고 백성들의 ‘마음이 녹아 정신을 잃었고(2:11)’ 이스라엘은 크게 승리하였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작은 성 ‘아이’에 패하였고,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되었다. 그들은 작은 성, 적은 수의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힘을 신뢰하였고 하나님의 뜻도 구하지 않았다. 여리고의 완전한 승리에 도취하여 아간의 범죄도, 하나님의 부재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 없이도 상대할 수 있을 만큼 세상은 약하지 않다.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위해 여호수아는 탄식하며 기도한다. 큰 슬픔과 충격으로 옷을 찢고 티끌을 뒤집어쓴 채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크신 이름을 위해 일하시도록 간구한다. 이스라엘은 상대를 정탐하여 그들의 전력도 분석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상태는 파악하지 못한다. 여호수아는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하나님께 억울하다는 식으로 호소했으나 하나님은 도리어 그들 안의 죄악을 지적하신다.
-고난과 실패가 다가오거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공동체를 돌아보아야 한다. 가정을 돌아보아야 한다. 핑곗거리를 찾기보다, 남의 탓을 하거나, 상황을 탓하지 말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전투, 하나님의 군대는 약해서 패배하지 않는다. 악해서 패배할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단순한 순종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게 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안에서 죄악이 단호하게 제거될 때, 이스라엘이 겪는 수치가 떠날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되돌릴 때 그들 몫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죄악이 머무는 동안 축복의 근원인 하나님께서 그곳에 머무르실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아간으로 인해 진노하시며 징계하신다. 여리고를 진멸하신 것은 그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행위였다. 하나님은 이 심판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여 온전히 바친 물건을 도둑질하고 숨긴 아간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 선한 싸움의 군사로 부름을 받은 우리도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욕심을 따르지 않기 위해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살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죄는 간과치 않고 징계하시지만, 회복의 길을 열어두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여호수아를 통해 그들 중에 있는 ‘온전히 바친 물건’과 그 물건을 소유한 자를 제함으로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고 명령하신다(13~15절). 이 경고의 말씀 이면에는 순종을 통한 회복의 길이 암시된다. 종기를 도려내는 아픔을 감당해야만 치유에 이를 수 있듯이 이스라엘은 스스로 거룩게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앨 안의 죄를 제거하지 않으면 원수들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리라고(13절) 말씀하신다. 지난 한달여동안 계속되는 우리 나라의 혼란을 향한 말씀이 분명하다. 나라를 뒤흔든 분명한 죄악을 제거하지 않으면 언제든 이런 혼란은 반복될 것이다. 부디 주님께서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세워지도록 위임된 지도자들의 분별력과, 수사관들의 담대함과 공정함, 재판관들의 헌법에 충실한 분명한 판결로 이 땅에서 악이 제거되기를 간구한다. 주님이 이 나라와 민족에게 분명하게 경고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해결방법에 담긴 사랑을 깨닫는다. 범죄자를 구별해 내는 과정을 굳이 거치시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죄가 숨을 곳이 없다는 경고를, 죄를 범한 아간에게는 돌이키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그야말로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는 해결 방법이다.
-나와 우리 공동체가 이 말씀앞에 분명히 서기를 원한다.
*주님, 아이 성에서 약해서 진 것이 아니라 악해서 진 것을 봅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전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십니다. 그것은 “불순종”이었습니다. 주님, 온전한 순종의 삶을 알겠습니다.
*주님, 주님의 명령에 나 하나쯤은 괜찮겠다는 교만한 특권의식이 공동체에 큰 어려움을 줄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늘 주님의 말씀에 가장 충실하게 순종하겠습니다.
*주님, 이 나라와 민족이 마땅히 제거해야 할 죄에 미련을 갖지 않게 하옵소서. 구차하게 법 위에 군림하려는 이들의 사악한 시도를 막아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