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 나라 제자가 누리는 복_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 [마 5:1-12]
 – 2023년 01월 26일
– 2023년 01월 26일 –
본격적인 예수님의 사역을 소개한다. 마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산상설교는 그 중에서 가장 긴 첫 번째 가르침이다. 주제는 “하나님 나라(하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들의 존재 방식, 목적, 의무, 경계 등을 가르치셨다. 본문은 예수이 가져온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백성들이 누릴 복을 소개한다. 마태는 지금까지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신 메시아로 선언하였다.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걸맞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규정하는 질서를 선포하신다. 팔복은 그 선포의 첫 머리, 서론이다.
 
 
 
1.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1절)
4:23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가르침, 복음 전파, 치유”로 소개하였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관련하여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산상설교”이다. 설교의 주 대상은 제자들이었지만, 7:28에서 무리들이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는 기록에 따르면 무리도 설교를 들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대표한 제자들이 다 구성이 되었고 그들을 향해 본격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시기 시작하셨다는 의미가 된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 바라보면 산상설교는 하나님 나라 제자들의 생활방식이다. 즉 제자도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은 어떤 삶이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은 제자들의 삶과 다를 바 없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제자의 삶을 이 땅에서 살아내는 것이 곧 준미의 제자의 삶의 도리이다. 제자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보여야 하고, 예수님이 보여야 한다.
 
 
 
2.팔복(3-12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가르치신 첫 번째 주제는 예상을 벗어난 “복”이다. 예수님께서 가져온 하나님 나라 안으로 부름을 받은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를 “복됨”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 안에 들어와서 왕이신 예수님의 통치 아래 거하며, 그의 은혜를 누리는 백성의 상태를 가리킨다.
 
*하나님 나라는 “복의 나라”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소개하면서 “복 있는 자”하고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것 자체가 “복”이다. 그 복을 받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으니 구원받은 백성들은 모두가 “복 있는” 것이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3절) 하나님의 통치와 은혜만 의지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팔복중에서 첫 번째부터 네 번째 복은 내적 상태에 대한 복이다. 예수님을 따랐던 무리들의 대부분은 지독히도 가난한 삶을 살았다. 그들에게 복은 물질적인 부요함이었을 것이다. 로마와 유대교의 오랜 착취와 억압에 그들의 마음이 피폐해져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선언한 복은 로마와 유대교의 기득권들처럼 힘을 의지하는 복이 아니다.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에 가난하더라도 하나님으로만, 하나님 때문에 부요하다는 의미다.
 
 
*애통하는 자는(4절) 이사야 61:1의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라는 표현과 동일한 단어이다. 이사야가 종말에 하나니의 위로를 가져올 자가 바로 메시아라고 선언하는데, 예수님꼐서 바로 그 메시아이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가져온 하나님 나라는 완성까지 세상 나라와 긴장 관계일 수 밖에 없다. 세상은 여전히 상실과 고통으로 눈물이 가득한 곳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도 그 세상 속에서 애통해 한다. 그런데 세상과 다른 것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 안에서 애통함을 치유하는 참된 위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외면하시지 않는다. 위로하신다.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위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애통하는 자는 복 되다.
 
 
*온유한 자가(5절) 복이 있다. 온유함을 도덕적으로 성품이 겸손하고 부드러운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편 37:11을 인용하였는데 칠십인역은 “온유한”을 “가난한”으로도 번역하였다. 즉 첫 번째 복과 유사하다. 온유한 자는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타인에게 폭력와 억압을 행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함으로 하나님께서 보응하실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사람이다. 온전한 보응이 현재에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여도 미래에 확정된 것이기에 현재적으로 복을 누릴 수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6절) 복이 있다. “의”는 율법을 지키는 의로움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제자는 하나님의 뜻이 삶의 목적인데, 이것을 “의”로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의(하나님의 뜻)에 목마르고 배고픈 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어 가는 것을 볼 때 영적 배부름을 경험한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7절) 복이 있다. 자비로운 자이다. 다섯 번째 복부터 여덟번째 복은 구체적인 행동을 동반한다. 공통적인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기반한 행동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자비)을 경험한 이가 자비로운 성품을 담아 낼 수 있다. 하나님 나라 제자들은 착취와 억압, 폭력의 세상에서 자비의 사람으로 사는 사람이다. 제자들이 먼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자비를 경험한 제자는 자비를 베풀 수 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8절)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한 상태인 것을 가리킨다. 죄로 얼룩진 마음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마음에 품어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나뉘지 않은 한 마음임을 의미한다. 한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이리라. 깨끗한 거울일 수록 선명하게 보이는 듯, 마음이 깨끗할 수록 하나님은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다.
 
 
*화평케 하는 자의 복은(9절) 예수님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케 만드셨다. 하나님의 아들만이 감당할 수 있기에 일상에서 화평케 하는 제자는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과 화목한 자라야 세상과 화목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심으로(5:43-48) 화목의 대상에 제한이 없음을 분명히 하셨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의(10절) 복은 역시 하나님 나라를 복으로 얻을 것이다. 세상은 늘 하나님을 대적한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은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다. 오히려 핍박하고 죽인다. 예수님은 여덟번째 복에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암시해 놓으셨다.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른 제자들은 세상으로 부터 박해를 받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제자들은 세상을 향해 자비를 베풀고 화평케 하겠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핍박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복인 것은 이미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았기 때문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나,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제자들의 현실적인 가난과 곤란은 예수님 안에서 복의 조건으로 새롭게 의미가 부여 되었다. 11-12절은 여덟 번째의 복이 확장된 것이다. 핍박이 3인칭에서 2인칭으로, 육체적인 것 뿐 아니라 언어적인 핍박도 더해졌다. 아마도 언어적인 핍박이 가장 인반적이었을 것이다. 근거없는 비방과 모함, 저주를 쏟아내는 언어를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핍박의 이유도 분명하다. “나로 말미암아(11절)”, 즉 예수로 말미암아 이다.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 나라 제자는 늘 비난과 저주와 핍박의 대상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도리어 이런 상황에서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고 하신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이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무엇을 추구하고 목적하는지 분명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핍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지자”를 예로 드셨다. 선지자들은 직접 실현된 하나님 나라를 누리지 못했고, 단지 약속만을 받고 핍박을 견딘 이들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 나라 제자된 이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있으니 당연히 견딜만 한 것 아니겠나!
 
 
 
나는?
-예수님의 첫 번째 설교이다.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통치 철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선언하셨다. 그런데 매우 역설적이다. 전대미문의 가르침이다.
 
-물리적인 복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과 관계에서 오는 본질적인 복을 선언하셨다.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복을 넘어서는 본질적인 복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은 본질의 복이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복과 연결되지 않으면 복이 아니라 화가 된다.
 
-또한 하나님 나라를 소유 했기 때문에 누리는 복임을 분명히 하셨다. 예수님께서 요청하시는 모든 것은 이미 하나님 나라를 소유했기 때문에 요구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제자는 이미 예수님 안에 거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하고 예수님이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을 미워하고 싫어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다.
 
 
 
*주님,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았기 때문에 요청받는 제자의 삶을 꿋꿋히 살아가겠습니다.
*주님, 하나님 나라 제자가 되었기에 감당해야 할 세상이 주는 핍박이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예수님처럼 감당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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