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더 나은 의… 지독한 이기심을 버려야 순종할 수 있는…[마 5:21-32]
 – 2023년 01월 28일
– 2023년 01월 28일 –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요구하신다. 그들보다 더 나은 의를 ‘살인, 간음, 이혼’에 대한 율법의 가르침을 예로 들어 속뜻을 설명하신다. 이런 계명들에 담긴 인간의 속내들을 드러내어 제자들의 삶이 이보다 더 온전하여야 함을 당부하신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반복되는 “너희가 들었으나(21, 27, 31, 33, 38, 43절)”라는 말을 통해 당시 율법 선생들의 가르침이 얼마나 문자적인 의미에 국한되어 있는지를 깨닫게 하신다.
 
동시에 기록된 문자의 문자적인 의미뿐 아니라 문자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마음을 분별해야함을 촉구하신다. 각종 율법과 명령들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문자적으로 “나는 그것을 모두 지켰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의도)를 다 아신다. 그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교정해 주신 것이다.
 
 
 
1.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하여(21-26절)
형제의 인격을 모욕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하신다. 실제로 살인하지 않더라도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서로 존중하라는 하나님의 마음에 반하는 모든 것은 본질상 살인과 같은 것이다.
 
“형제에게 노한다”는 것에 담긴 의미는 “그 노함이 생명을 해치는”의미가 있음을 일깨우신다. 또 “라카(골이 빈 사람 이라는 욕)”라고 하는자는 공회에 잡혀가고 “미련한 놈(꽉 막힌 놈)”이라고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리라(22절)고 하셨다. 이를 통해 일상에서 무의미하게 습관적으로, 혹은 의도와 진심을 가지고 내뱉는 언어 습관을 경고하신 것이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형제에 대한 분노와 미움, 경멸과 모욕까지 금하는 계명이다. 이런 언어적 폭력은 실제적 폭력 행위못지 않게 심각하다. 살인이 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인격적인 모욕이 담긴 언사도 마찬가지이다.
 
 
*형제를 욕하고 비난하며 화를 내는 것은 살인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강조하신다. 왜냐하면 형제를 비난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제사를 드리기 전에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급히 형제와 화목한 후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다.
 
*예배보다 형제와 화목하게 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다. 형제를 미워하면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이는 화목함, 화해가 제사보다 우선이며 화해하고 화목할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의미이다. 서로 화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끝까지 애쓰라는 명령이다. 주님께서는 일상에서 심각한 원수됨에서부터 사소한 거리낌까지 평화롭게 해결하기를 바라신다.
 
화해의 중요성을 위해 또 한 가지 예를 드신다. 고발한 사람과 함께 길에 있을 때 “급히(얼른)” 화해 하라고 말씀 하신다. 감옥에 들어가는 것 보다 낫다.
 
 
 
2.간음과 이혼의 계명에 대하여(27-32절)
간음을 드러난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비교하여 “더 나은 의”를 추구해야 할 제자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었으면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라 “고 말씀하신다.  행위와 버금가게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것이다.
 
살인이 증오에서 시작되듯, 간음은 음욕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을 자신의 음욕을 해소하여 줄 존재로 여긴다면 이미 간음하였다고 하신 것이다. 오늘날 문화속에 깊이 자리잡은 선정적인 문화에도 경각심을 주는 주님의 가르침이다. 하늘 백성임에도 세상의 선정적인 문화와 구별이 없이 음욕을 품는다면, 오히려 더 위험하지 않을까? 겉으로는 종교적인 선의로 포장하고 내면에는 선정적인 시각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진실치 못함은 심각한 위선이다.
 
 
*주님의 가르침은 성을 상품화하는데 익숙한 세대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더 나은 의로움으로 살아가야 할 하늘 백성에게  중요한 기준을 깨닫게 한다. 드러나지 않지만 마음으로 미워하면 이미 살인한 것이고, 실제 간음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가르침은 하늘 백성의 마음을 100% 정결하게 만들라는 주문이 아니다. 육신을 가진 인간은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가르침의 일차적인 목적은 인간이 얼마나 죄인 인가를 통감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눈이 실족케 한다고 실제로 빼버리고, 손이 우리를 실족하게 한다고 잘라버리라는 가르침도, 그만큼 우리의 눈을 빼고, 손을 잘라낼 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좌와 싸울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또 아내를 버리면서 이혼 증서를 써주면 충분하다고 가르치는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어긋나는 것임을 가르치신다. 정당한 사유 없이 사유를 만들어 이혼하는 것과 이혼증서만 써주면 이혼도 합법적이라는 당시의 사회적인 통념에도 제동을 거신다.
 
주님은 이런 모든 행위 속에 자리잡고 있는 자기중심적인 완악함을 겨냥하신 것이다. 가장 친밀한 관계인 부부 관계에서도 초월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지독한 이기심을 건드신다.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말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얼마나 충성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율법의 조항 조차도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취하는 수단으로 전락시켜 버린 인간의 완악함을 고발한다. 
 
 
 
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보다 더 나은 의는 마음에서부터 판가름된다. 지독한 자기사랑, 이기심에 이끌려 말씀을 빙자한 행동을 합당하게 할 것이냐? 사회 통념에 맞지 않지만, 율법의 가르침 속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철저하게 순종할 것이냐의 선택의 문제다.
 
-지독한 이기심, 자기 사랑, 자기 교만에서 오는 분냄, 욕설, 인격비하 등의 모습을 직면하라고 하신다. 이런 행동은 악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도 이와 같은 행동을 쉽게 저지른다. 그러면서 “나는 적어도 이것만은 지키고 있으니까…”라며 스스로 면죄부를 준다. 이는 알량하고 독단적이며 교만하기 그지없는 말씀에 대한 태도 때문이다.
 
-한편 언어와 행동이 거룩해야 함을 깨닫는다. 하늘 제자의 삶이 세상과 다른 것은 결국 언행에서 판가름난다. 구별된 언행이 구별된 삶의 열매의 진실성과 연결된다. 나는 얼마나 구별된 언행으로 살고 있을까? 매우 고민되는 지점이다.
 
-또 이 세대의 언행이 왜 이리 극단적이고 폭력적이며 날카로운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하늘 제자조차 왜 이렇게 구별됨이 없는지… 한숨이 나온다. 상상도 하지 못한 언행을 접할 때의 당혹스러움이 공동체에 대한 마음을 닫게한다. 우리 더 가까이 가는 첫걸음은 결국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오는 구별된 언행부터 시작이다. 마음과 말과 행동이 진실함으로 맞춰져 갈 때 거룩한 영향력은 발휘되기 시작할 것이다.
 
-더온누리공동체의 하늘 제자들의 삶이 이것에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께 더 가까이, 공동체에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소망하게 되는 아침이다.
 
 
 
*주님, 지독한 이기심이 결국 사고를 불러 옵니다. 이기심을 내려 놓는 것이 관건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주님, 기록된 말씀을 해석하는 “말을 들었으나… 나는…”라고 말씀해 주시는 주님의 가르침을 늘 바라봅니다. 깨닫게 해 주십시오!
*주님, 구별된 마음과 말과 행동을 구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순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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