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더 나은 의의 삶으로 [마 5:33-48]
 – 2023년 01월 29일
– 2023년 01월 29일 –
하나님 나라 백성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의 의보다 “더 나은 의”로 사는 이들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더 나은 의”는 무엇일까?
 
 
1.맹세보다 진실한 삶(33-37절)
하나님 나라 백성은 맹세가 필요하지 않다. 그만큼 진실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진실한 삶이 신뢰의 바탕이 되는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 세상은 자신들의 신뢰를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하지만 하늘 백성, 주님의 제자들은 “예”와 “아니오”만으로도 충분한 진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는 말로 삶의 진실함을 인정받으려 하지 않아야 한다.
 
*주님께서 요청하신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수준이 당시 가장 유대인답다고 여김을 받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보다 더 높은 수준을 갖고 있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수준은 물질적인 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 품격이 남다름으로 표현 될 수 있다.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수준이 차원이 다르다. 상식적인 수준도 분명히 다른 존재들이다. 오늘날 교회의 능력이 상실된 가장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세상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 때문이다. 
 
*한편 맹세는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오판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이 안되면, 다른 능력있는 존재의 이름을 빌려서라도 자신의 능력인양 포장하는 기막힌 능력이 탁월하다. 주님의 예리한 가르침을 놓치면 안된다.
 
*맹세는 인간의 능력을 과신하도록 부추기는 사탄의 허세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름으로도 쉽게 맹세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키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존경심이나 두려움을 일말이라도 갖고 있다면 쉽사리 할 수 없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도록 부추기는 것이 맹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하나님 나라의 방식 _ 보복이 아닌 용서와 무저항(38-42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법은 손해는 몇십배로 되돌려 줘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에 자신도 무너뜨리는 복수심이 아닌 범죄에 해당하는 징벌만을 허용하여 과도한 복수를 금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율법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러한 율법에 근거한 정당한(?) 보복도 포기하라고 말씀하신다. 더 나아가 자신에게 해를 입힌 자를 사랑하라고까지 하신다. 나의 것을 빼앗으려는 자들에게 더 내어주고, 부당한 요구 앞에 자발적으로 헌신하라고 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은 참으로 독특하다. 그저 중간만 가라, 당한 만큼만 되갚아라, 해를 끼치는 자를 미워하지만 말아라와 같은 가르침이 아니라 오히려 더 포기하고, 더 사랑하고, 더 내어주고, 더 헌신하라고 하신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그런데 이와 같은 모습을 이미 보여주신 분이 계신다. 바로 하나님이시다.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실 때 죄로 인해 원수 되었던 인간의 용서를 위해 보내셨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현장에서 모멸차게 조롱하였던 그들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내어주셨다.
 
*공의로움으로 철저하게 되갚고 응징하고 싶을 때 십자가의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라는 뜻일게다. 하나님의 지독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가늠해 보라는 뜻일게다. 십자가의 사랑과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 일말이라도 깨달아 지면 입술 꼭 깨물고 억지로라도 용서와 무저항, 사랑의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3.하나님 아버지처럼, 예수님처럼 사랑하라(43-48절)
원수인 인간을 사랑하셔서 생명을 내어 주시기 위해 자기 아들을 보내신 그 사랑이 원수를 사랑하는 사랑이 아니고 무엇일까! 십자가 위에서 벌거벗긴채로 모든 수치와 수난을 한 몸으로 감당하고 있을 때, 주님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절박하게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고고백하셨다.
 
주님께서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의 명령을 “원수조차 사랑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 앞에 마음속으로 이웃 누구까지 사랑할까? 라고 복잡하게 셈하는 인간에게 주님은 선명하게 명령하신다. “원수조차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여라!”
 
*원수는 사랑할 필요가 없는 존재이다. 아니 사랑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규정한 원수인 그를 하나님은 사랑하신다. 그의 이웃되어 주시기를 주저하지 않으신다. 나에게 배풀어 주신 은혜를 동일하게 베푸셨다.
 
*나도 마찬가지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원수처럼 여겨질 수도 있는 나를 하나님이 사랑하여 주셨다. 하나님 앞에서 죄와 벗하며 하나님의 원수로 살아온 나를 조건, 자격 등을 묻지 않으시고 사랑하여 주시며 구원하여 주셨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회피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오히려 찾아오시는 사랑이셨다. 나는 사랑하야 하는 것을 알지만, 그 사랑을 하기 싫어서 차일 피일 미루었지만, 주님은  정한 때가 되어 지체하지 않고 다가오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온전하게 우리에게 행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구속을 온전하게 이루신 것 처럼, 하나님 나라 백성된 성도들에게도 하나님 아버지처럼, 예수님처럼 온전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여 주셔서 샘영을 내어 주신 것처럼, 그 마음을 닮아 모든 것을 사랑 안에서 행하고 사랑으로 감싸고 행할 것을 요청하신다.
 
 
 
주님, 맹세하는 삶이 아니라 진실한 삶을 살겠습니다.
주님, 용서와 무저항 힘들지만 순종해 보겠습니다.
주님, 공동체 안에서부터 사랑해 보겠습니다. 부부에서 가족, 가족에서 공동체로 사랑을 순종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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