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좁은 문… 좁은 길…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마 7:13-20]
 – 2023년 02월 02일
– 2023년 02월 02일 –
산상수훈의 결론 부분이다. 주님께서는 좁은 길과 넓은 길, 좋은 나무와 못된 나무의 비유를 통해 하늘 백성다운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신다. 더 나은 의가 과연 어떤 삶인지 도전하신다. 주님의 제자들이 살아내야 할 참된 제자도를 위한 명령과 경고이다. 명령에 해당하는 좁은 길과 넓은 길의 비유는 당시 로마나 유대교 내에서 올바른 선택을 촉구하는 보편적인 비유이다. 거짓 선지자들을 주의하라는 경고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16, 20절)는 선언을 통해 강조하셨다.
 
 
 
1.좁은 문, 좁은 길(13-14절)
“더 나은 의”라는 주제를 따라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새 시대, 새 나라 백성의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가르치셨다. 구약의 율법들과 비교한 좀 더 나은 의가 아닌 전혀 다른 의를 설명하셨다. 오직 예수님으로 인해 하늘 백성이 된 이들이 살아낼 수 있는 의로운 삶이다. 이와 같은 삶의 성격과 특징을 선명하게 말씀해 주신다. 주님은 당시 친숙하였던 “두 종류의 길”이야기에 빗대어 “좁은 문, 좁은 길, 넓은 문, 넓은 길”이라는 이중 대조를 통해 간결하고 단호하게 하늘 백성의 삶을 명령하신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문, 좁은 길은 세 가지의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문자 그대로 좁다는 것이다. 이는 들어가기도 들어가서 걷기도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고난과 핍박이 있는 문과 길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협착하다(14절)”는 의미는 “압박하다, 억압하다, 괴롭히다”라는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좁은 문과 좁은 길은 고난의 문, 고난의 길임을 알고 들어가는 문이며, 길이다. 문에 들어가 보니(어쩌다 들어가서) 고난의 길이었다가 아니다. 하늘 백성이 들어갈 좁은 문과 좁은 길은 주님께서 여시고 만들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그 문”과 “그 길”이 되실 것이다.  반대로 넓은 문과 넓은 길은 주님과는 무관한 길이다. 거기에는 복음을 위한 고난이 없다. 넓어서 안전하고 자신의 욕망대로 만족하며 걷는 길이 될 수 있다.
 
둘째, 좁은 문과 좁은 길이 생명을 보장한다. 그 길 끝에 완전한 생명을 만날 것이다. 물론 들어가서 걷는 모든 과정이 핍박과 고난이 있지만, 주님께서 약속하신 생명을 누리며 걸을 것이다. 어떤 고난과 핍박이 생명을 앗아 갈 수 없다. 그 문이 생명의 문이기에 들어서서 그 길을 걷는 과정 내내 생명이 보장된다. 하지만 반대로 넓은 문, 넓은 길은 멸망으로 안내한다. 그 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생명을 맛볼 수 없다. 예수가 없는 그 길에서 맛보는 만족함과 쾌락은 자신의 생명을 지불하며 낭비되고 소멸되어 갈 뿐이다.
 
셋째, 좁은 문과 좁은 길은 사람들이 찾기 꺼려한다. 세상의 가치와 정서에 반하는 문과 길이기에 찾는 사람이 현저히 적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모두에게 선포되고, 하늘 백성의 삶의 가치가 모두에게 선포 되었지만 이를 믿고 그 길을 걷도록 허락된 이는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주님께서 들려주신 산상수훈의 내용은 좁은 문, 좁은 길의 여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 소수만이 이 문과 이 길에 반응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넓은 문 넓은 길은 세상 사람들이 선호하고 원하는 문과 길이어서 언제나 북새통을 이룬다.
 
참된 제자는 주저함 없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 당당하게 좁은 길을 걷는다. 그곳에 주님이 계시고,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을 듯 하나 결국 두 가지 길밖에 없다. 여러 선택지는 없다. 이 길 아니면 그 길을 선택해야 한다. 중간은 없다. 넓은 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남김 없이 가지고 들어가도 될 만큼 넓다. 그러나 좁은 문은 너무도 비좁아서 자신의 욕심, 고집, 죄, 친구, 가족,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버리지 못하면 들어갈 수 없다.
 
*인생은 누구나 어려운 길 을 가는 것을 주저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편한 길, 쉬운 길을 찾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어려운 길, 남이 가지 않는 길, 험한 길을 우직하게 뚜벅 뚜벅 걷는 이들이 있다. 물론 극히 소수다. 나만을 위한 길이 아닌 모두를 위한 길…순간을 위한 길이 아닌 영원을 위한 길… 더 나은 가치, 더 높은 질서를 위한 길을 말이다.
 
*이 길을 주님께서 먼저 가셨고, 제자들이 뒤따랐다. 지금도 이 험하고 고단한 길을 묵묵히 걷는 이들이 있다. 주님께서 이 어려운 길을 함께 걷자고 부르신다. 이 길이 좁고 협착하여 어려운 길임에 분명하지만, 주님이 함께 동행하는 길이다. 그리고 믿음의 동지들이 함께 걷는다. 이 만족감과 즐거움을 남이 알 수 없다.
 
*이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불려 주셔서 감사하다. 여기 저기 이 길을 걷는 동지들을 보며 위로를 얻게 하셔서 감사하다.
 
 
 
2.열매로 그들을 알리라(15-20절)
주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경고하신다. 산상수훈의 결론 부분에서 세 가지의 경고가 등장하는데 첫 번째 경고이다.  문맥의 흐름으로 보자면 거짓 선지자들이 좁은 문, 좁은 길을 가는 하늘 백성의 삶에 도발할 존재들일 것이다. 결국 하늘 백성들을 속여 좁은 문과 좁은 길을 들어가고 걷는 길을 포기하게 하는 목적일 것이다.
 
주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를 “못된 나무”로 비유하시면서 “너희는 그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야 한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따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새번역_16절) 라고 하셨다.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 백성을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로 빗댄 경우가 많았고, 거짓 선지자들은 “가시나무와 엉겅퀴”로 빗댔었다.
 
거짓 선지자들은 겉으로 보기에 같은 좁은 길을 걷는 것 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제자도를 따르지 않고 도리어 이 길을 걷는 것을 방해하여 하늘 공동체를 와해 시키려는 것이다. 이들은 진리와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아니기에 쉽게 속을 수 있다. 진리에 정통하고 하늘 백성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영향력도 있다. 하지만 이들을 조심해야 한다. 이들이 인도하는 길은 결국 넓은 길이다. 멸망으로 이끈다. 이들의 삶에는 참 진리가 없기 때문에 진리가 맺는 삶의 열매가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의 삶의 열매를 보고 그들의 정체를 분별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들의 현란한 말은 분별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들의 삶의 열매를 보면 분별할 수 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도의 핵심인 주님께 순종과 헌신이라는 “자기 부인”이 없고, 오직 탐욕과 교만을 먹고 자란 “자기 의”만 가득할 뿐이다. 
 
*자기 부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빛의 열매를 삶 속에서 맺힌다. 하지만 자기 의에 가득한 거짓 선지자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나무는 당연히 주님과 함께 좁은 길을 걷는 길을 가리키고, 못된 나무는 그들을 방해하는 거짓 선지자들이다. 중요한 것은 애초에 어떤 나무인가에 따라 열매가 결정된다는 점이다. 좋은 나무의 좋은 열매와 못된 나무의 아름답지 못한 열매는 아예 다른 열매이다. 동일한 나무에서 좋은 열매 아름답지 못한 열매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팔복이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한 조건을 말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 안에서 제자들에게 허락된 복을 말하는 것과 연결하여 이해한다면 예수 안에 있는 제자들이 못된 나무일리 없고 나쁜 열매를 맺힐 수 없다. *즉 성숙함과 미성숙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나무, 다른 열매임을 확실하게 구별하시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에게 십자가의 삶은 거북스러운 것이다. 십자가의 삶이 없는 만큼 십자가의 고백만 거창하고 화려할 것이다. 마치 매우 좋은 나무처럼 비춰질 수 있다. 사람은 속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
 
*좋은 나무인지 못된 나무인지 맺히는 열매를 보면 안다.
 
 
 
*주님, 좁은 길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걷는 믿음의 동지들을 만나서 든든합니다.
*주님, 좋은 나무로 세워 주셨으니 선한 열매 맺겠습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