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이들처럼 믿고 싶습니다![마 8:1-13]
 – 2023년 02월 04일
– 2023년 02월 04일 –
예수님의 권세 있는 가르침(5-7장)에 이어 권세 있는 행동(치유_8-9장)이 나타난다. 세 가지의 치유 기사가 세 번에 걸쳐 9장까지 이어진다. 본문은 나병 환자와 이방인 백부장의 종을 고쳐 주시는 내용이다.
 
 
 
1.손을 내밀어 … 대시며( 2-4절)
수많은 무리들이 주님을 따랐다. 그의 권세있는 가르침에 마음이 열렸다. 그렇게 감동하며 산을 내려오는데 앞서 가시는 주님 앞에 한 나병 환자가 나아왔다. 그리고는 엎드려 절하며 간구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주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의 나병은 즉시로 나았다.
 
그리고 수많은 무리들이 따르는 상황과 맞지 않는 당부를 하신다.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율법의 명령대로 정결례를 행하여 치유됨을 확인받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다. 나병환자가 수많은 무리들이 주님을 따르고 있는 그 현장에 어떻게 나아올 수 있었을까? 율법에 따르면 격리되어 있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나아와서 주님 앞에 엎드렸다. 마태는 이 상황을 나병환자에 초점을 두고 기술하기 보다는 예수님에게 초점을 두고 기술하였다. 어떻게 나아왔는지에 대하여는 생략하고 나병환자를 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집중한다.
 
*예수님은 깨끗하여 지기를 원하는 나병환자의 갈망에 먼저 행동으로 응답해 주셨다. 부정한 존재여서 불가촉해야 하지만, 기꺼이 자기 앞에 나아온 그에게 손을 내밀어 그의 몸에 대었다. 그리고서 치유된 사실을 아무에게 먼저 이야기 하지말고 제사장에게 가서 먼저 몸을 보이라고 했다.
 
*아마도 나병환자는 자신의 나병을 숨기고 주님 앞에 나아왔을 가능성이 크다.당시 율법의 관례를 따라 나병 환자는 “나는 부정하다”를 사람들이 가까이 하여 부정하게 되지 않도록 외쳐야 했다. 그런데 나병환자에게서 이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주님 앞에 나왔을 때 주님께서 그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 주시고 치유해 주신 것이다.
 
*무엇보다 접촉하지 말아야 하는 부정한 존재인 나병환자의 몸에 손을 대셨다. 그리고는 “내가 원하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부정한 이들에게 스스로 허물없이 접촉하셨다. 그들의 간청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행동으로 손을 내밀어 만져 주심으로 병든 육체뿐 아니라 격리되어 삭막하기만 했던 파괴된 관계까지 해결하여 주신다.
 
*주님은 언제, 어느때나 누구에게든지 손을 내밀기를 준비하고 계신다. 즐거이 여기신다. 나에게도 임한 이 구원의 손길로 인해 지독한 죄의 저주와 사망의 굴레에서 자유하게 된 것이다.
 
*또 중요한 것은 나병환자가 치유를 구할 때 “주여 원하시면(하고자 하시면)”이라고 했다. 자신의 소원대로 이루어 주시라고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믿음이 결코 흔하지 않다. 주님께서는 당연하게 그가 병이 낫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님은 “내가 원하노니”라고 즉석에서 반응을 하셨다. 그리고 나병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이는 철저하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특히 나병환자는 “주여 원하시면”이라는 고백을 통해서 자신의 욕구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과 예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어 간구했다. 어쩌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를 가장 먼저 순종하여 고백한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2.이방인 백부장의 믿음(5-13절)
이방인 백부장의 믿음이 태도를 보시고 놀라시는 주님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주님은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개의치 않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빛을 비추어 주신다.
 
주님께서는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남자든 여자든 주인이든지 종이든지 오직 믿음으로 주님의 메시아 사역을 받아들이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다. 아무리 이방인이라도 백부장처럼 믿음을 가진 이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나란히 하나님 나라 천국잔치를 흐르게 하신다. 자신의 종이지만 귀하게 여겨 주님의 통치와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을 고백하는 백부장의 믿음이 놀라울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백부장의 주님에 대한 태도에 대하여 주님께서 “이만한 믿음”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셨다.
 
백부장은 자신의 종의 중풍병을 위해 주님께 나아와 간구했다. 이방인이면서 주님께 나아온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자신의 질병이 아닌 종의 질병을 위해 고쳐 주시기를 간구한다. 더구나 말씀만 하여도 고쳐질 줄을 믿는다. 자신이 종들에게 명령할 때 그들이 순종하였던 것처럼 주님께서도 명령만 하시면 고치실 수 있다고 고백한다.
 
백부장은 왕과 종의 관계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었다. 이를 통해 마태는 “주의 말씀만으로 모든 것들이 회복되고 순종해야 하는 것”을 드러낸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무엇하나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방인, 군인, 그것도 지휘관으로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것도 귀한데 거기에 자신이 아닌 하인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 주님께서도 놀라셨다.
 
주님께서 말씀만 하셔도 하인의 병이 고쳐진 것을 통해 창조주이신 예수님을 드러냈다. 또 이방인었지만 긍휼이 여기는 자가 긍휼이 여김을 받고,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이기도 하다.
 
*가버나움의 백부장의 이야기는 주님께 대한 믿음도 도전을 받고, 그의 일상 가운데 약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도 도전을 받게 하는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실제적인 믿음을 뛰어넘는 놀라운 믿음에 도전을 받는데, 주님이시라면 꼭 가실 필요없이 말씀해 주심 만으로도 충분히 치유된다는 믿음이다. 내가 전제한 여러 조건과 상황대로 이루어져야만 응답이라고 고집하는 옹졸한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큰 도전을 준다.
 
*나는 주님을 어떤 존재로 믿고 있을까? 나의 믿음은 과연 주님께서 놀랍게 여길만한 신뢰와 순종, 이 세상을 향한 긍휼이 있을까? 함께 동역하는 동역자들과 관계된 성도들에게 과연 이처럼 믿음으로 행할 수 있을까? 백부장의 모습에 한없이 작아지는 아침이다.
 
 
 
나는?
-치유 기적이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언급된 사람은 나병환자이다. 수많은 무리들은 주님께서 가르치는 말씀과 행하시는 기적을 듣고 보기 위해 따랐다. 그런데 나병환자는 그 무리들에 속할 수 없는 존재였다. 당시 세상으 ㅣ기준으로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없다고 여기는 부정하고 부정한 존재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모두가 그를 향해 정죄하고 판단하여 부정한 존재로 멀리하는 시대에 주님께서는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시며 하나님 나라 백성되도록 치유해 주셨다.
 
-나도 주님의 이와같은 긍휼의 은혜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나병환자처럼 죄로 인해 부정하기 그지없는 존재였던 나를 깨끗케 하여 주셨다. 비할 수 없는 긍휼을 먼저 받았으니 이 긍휼을 기다리는 지금 이 땅에서 배척된 이웃들에게 주님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 “손을 내밀어” 그들의 손을 붙잡아 주는 하늘 백성이 이어야 겠다. 주님께서 어느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심을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시는 것을 통해 분명히 알려 주셨는데, 우리도 이 땅의 구원받을 영혼들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겠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을 백부장을 통해 확인 시켜 주신다. 이스라엘에 이방인 백부장과 같은 믿음을 가진 이를 보지 못하였다는 충격적인 말씀 이후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과 서에서 와서,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시민들(상속자들, 그 아들들)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서, 거기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새번역_11-12절) 라고 충격적인 선언까지 하신다.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는 것은 협착하고 찾는 이가 적을 것이라고 말씀 했지만, 동서로부터 많은 이들이 이 길을 통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세워질 것을 선포하신 것이다. 알량한 선민의식에 취해 믿음조차 화석화 되어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과 달리 혈통은 달라도 주님을 향한 믿음이 생동하는 이방인들은 기꺼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신 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배척되고 있는 이들을 만나주시고 치유하시는 주님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나병으로 인해 비난과 조롱, 멸시와 수치로 격리되어 있던 그가 가난하고 애통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용기를 내어 주님께 나아왔다. 그의 믿음에는 아무리 부정하게 도니 질병이 있더라도 주님은 조롱하고 멸시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그래서 담대하게 나아왔다.
 
*이 세상, 혹은 교회가 오랜 세월 만들어 놓은 인습과 관습, 전통의 잣대로 이에 걸맞지 않는 소수들을 조롱하고 멸시하며 억압하고 핍박하여 구분짓는 그 어떤 장애와 장벽도 주님앞에 믿음으로 나아오는 것에 문제가 없음을 알게 하신다. 이것을 믿고 어떤 상황과 상태 속에서도 주님께 나아오는 구체적인 의지와 행동, 이것이 곧 믿음이다.
 
*그래서 나병환자처럼 어느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는 부정한 나의 모습을, 나를 스스로 부끄럽게 만들고 좌절하게 만드는 삶의 원인을 주님께 내려 놓을 때, 주님은 차별하지 않으시고 “손을 내밀어 대시며” 치유하여 주신다. 이 믿음 굳게 붙잡아야지….
 
 
*백부장은 주님을 왕으로 인정하고 있다. 심지어 불치병까지 충분히 다스릴 수 있으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창조주 하나님으로까지 믿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만 하시옵소서”라고 고백할 수 없다.
 
*백부장의 믿음이 부럽다. 그 순수하게 주님의 주님되심을 받아들인 그가 부럽다. 솔직히 그렇게 고백하여 주님의 칭찬뿐 아니라 실제로 놀라운 치유의 경험을 한 그가 부럽다.
 
*성도님들이 기도제목 카들르 제출하여 주신 것을 하루에 한번 쭈욱 읽으며 기도할 때 누구에도 말하기 어려운 나병환자와 같은 애통함이 구구절절 마음에 들어와 박힌다. 말할 수 없는 간절함들이 한자 한자에 담겨 있음을 본다.
 
*그런데 백부장의 모습에서 담대함을 얻는다. 그렇다! 주님의 이름의 권세는 시공간과 환경을 뛰어넘는다! 내 자신이 스스로 규정한 은혜가 임하려면 이렇게 해야지, 이 정도의 여건들이 조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구차하기까지 한 조건들은 필요없다. 오직 주님의 말씀(명령)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큰 위로와 믿음이 생긴다. 이제부터 백부장처럼 담대하게 더욱 더 믿음으로 구하련다. 기도제목마다 담겨있는 말할 수 없는 간절함들이 내가 어느 곳에 있든지, 그 곳에서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반드시 역사될 것을 믿음으로 구하련다.
 
*어제까지 기도제목 한장 한장이 태산처럼 내 마음을 무겁게 짖눌렀는데, 오늘 아침 백부장의 믿음에 놀라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 부끄럽고, 한편으로 기쁘다. 이제 기도제목 한장 한장을 믿음과 기대와 평안함으로 주님께 맡겨드리리라!
 
*주님 이들처럼 믿고 싶습니다…..
 
 
 
*주님, 세상이 규정한 장애와 장벽을 뛰어 넘어 주님을 신뢰하며 달려온 나변환자의 믿음을 본받겠습니다.
*주님, 백부장의 믿음이 나의 믿음 되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저도 이렇게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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