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죄인, 소외받고 혐오당하는 이들의 친구되신 구원의 주님 [마 9:1-13]
 – 2023년 02월 07일
– 2023년 02월 07일 –
가다라 지방에서 다시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다. 사람들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데리고 나아왔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를 믿음으로 보시고 죄를 사하여 주신다. 이를 본 서기관들이 주님을 신성모독으로 생각하였고 예수는 자신이 죄 사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신다. 이어 세리 마태를 부르시는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그의 집에 방문하여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신다. 이를 본 바리새인들이 비난한다. 
 
 
 
1.중풍병자를 치유하심(1-8절)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은 “죄 사하는 권세”를 드러내시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마태는 이 장면을 주님의 공생애 사역에서 굉장히 중요한 지점 중의 하나로 보았다.  수많은 무리들이 따랐지만 모두가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적대적인 이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율법학자들(서기관), 바리새인들이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발끈할 만한 말씀으로 중풍병자를 치유하신다.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2절) 이 말에 서기관들이 겉으로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주님께서 신성을 모독하였다고  생각했다. 주님께서는 이들의 속 마음을 아시고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하시고 “죄사함을 받았다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중 어느것이 더 쉽겠는가? 물으시며, 더 하기 쉬운 말인 죄사함을 받았다는 말을 통해 주님께서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고 말씀 하셨다. 그리고 곧이어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가라고 명령하신다(3-7절). 이 모습을 지켜본 무리들이 “두려워 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8절)
 
*마태는 예수님의 권위를 계속 강조하고 있다. 자연을 통제하고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에 이어 이제는 죄 사하시는 권위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권위는 하나님만이 가능한 권위이다. 그래서 주님의 죄사함의 선언은 종교지도자들에게 충격이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선언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선언 이후 중풍병자에게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는 명령에 그가 치유되는 것을 보고 주님께 죄 사하시는 권위가 있음이 증명되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이 증명된 것이다.
 
*서기관들이 신성을 모독하였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은 주님의 죄 사함의 선언이 네 침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 라고 하는 선언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더 하기 쉬운 말로 여겼고 이는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행동일 뿐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인양 허풍을 떠는 행위로 본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주님을  하기 쉬운 말로 신성모독을 일삼는 허풍쟁이로 보았다는 뜻이다. 주님은 이런 마음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셔서 그들의 생각을 “악하다”고 하신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 네 침상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명령도 함께 하시고 중풍병자가 일어나 자신의 침상을 들고 집으로 돌아간 것은 예수님의 죄 사함의 선언이 허풍이나 신성모독이 아니라 진실이고 이는 곧 예수님에게 죄 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증거가 되었기에 그들은 두려워 할 수 밖에 없었다. *예수님은 죄 사함의 권세 뿐 아니라 치유의 능력까지 보여 주셨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었다. 이에 무리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결과를 증명해야 하는 말보다 선언하기 쉬운 말들에 마음을 빼앗기면 낭패를 당한다.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말과 행동에는 주님을 철저히 의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2.세리 마태를 부르심(9-13절)
주님께서 가버나움을 떠나셨다. 그리고 4장에서 네 명의 제자를 부르신 후 다시 제자를 부르시는 방면으로 전환 된다. 주님께서 부르신 제자는 “세리 마태”였다. 이 당시 세리는 부과된 세금을 걷는 사람들로서 동족 유대인들에게 상당한 차별과 무시를 당했다. 세리는 로마에 부역하는 부역자일 뿐 아니라 세금 징수 과정에서 온갖 불법과 부도덕을 일삼았다. 부여된 권한으로 용인된 불법을 저지르고 이것이 특권인양 상당한 부를 축적하는 이들이었다. 그들을 동족인 유대인들은 “죄인”으로 규정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주님께서 그 세리 마태를 부르셨다. 그런데 그 “죄인”으로 낙인 찍힌 세리인 마태를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마태도 앞선 네 명의 제자들처럼 세관의 자리에서 일어나 주님의 제자의 길을 따라 나섰다. 그리고 주님과 제자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식사한다. 이때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주님과 제자들과 함께 하였다(10절).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 중에 이번에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따지듯 물었다. “어찌하여 당신네 선생은 세리와 죄인과 어울려서 음식을 드시오?”(새번역_11절) 주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분명하게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밝히신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새번역_12-13절)
 
*세리와 죄인은 유대 사회에 속해 있었지만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이들이었다. 특히나 세리는 매국노, 배신자의 낙인이 찍혀 있던 이들이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마주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주님은 달랐다. 소외받고 혐오의 대상이었던 이들을 찾아 다니셨다. 이방지역의 귀신 들린 자를 찾아가셨고, 세리였던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기까지 하신다.
 
*예수님의 시선은 높은 자리의 의인이 아닌, 구석진 곳의 소외받는 죄인을 향하셨다. 내가 그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나의 시선은 과연 이디를 향해 있을까?
 
 
 
나는?
-주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시며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그들의 믿음”때문이었다. 즉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다. 중풍병자를 돕기 위해 희생한 그들의 용기에 대한 인정이셨다. 백부장의 믿음이 종의 병을 낫게 했듯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믿음이 그를 살린 것이다. 그러나 오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믿음”이 동기 되었지만 죄 사함과 치유의 은혜는 전적으로 주님의 권세이다. 주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늘 주님의 긍휼을 바라보아야 하리라.
 
-그들의 믿음의 행동이 당사자에게는 새로운 삶을, 이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진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였다.
 
*일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행동도 이와 같은 영향력을 충분히 드러내리라 믿는다. 진리 따라 살아가는 올곧은 믿음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한 것이다.
 
*더온누리공동체가 진리 가운데 행하여 이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의 통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충분히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받으면 좋겠다.
 
 
-또 역시 세리 마태를 부르심으로 우리를 깨우치시는 것,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의 참 뜻을 따라 살아가기를 원한다. 교회 내에서 익숙한 것에 안주하지 않고 교회 공동체에게 주신 본연의 사명, 소외받고, 혐오받는 약자들을 품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의 마음을 따라 실제의 삶 속에서 죄인들을 품기를 주저하지 않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이상적이라고 둘러대어도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니 조금이라도 더 지켜 내려고 노력하며 순종 하기를 원한다. 힘들고 어려운 백성들을 외면하지 않고, 소외 당하고 혐오를 받는 영혼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긍휼히 여기며 주님처럼 함께 교제하는 성숙하고 열린 공동체를 꿈꾼다.
 
-“우리 더 가까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것처럼 소외 당하고 외면 당하는 이웃들에게 더 가까이 나아가는 공동체이어라~~~
 
 
 
*주님, 진리 따라 믿음으로 행하기를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주님, 죄 사하시는 주님의 권세로 은혜 가운데 구원받았습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소외받고 혐오당하는 이웃들의 이웃 되는 공동체 되고 싶습니다. 주님처럼 그들과 함께 따순 밥 한끼 먹기를 주저하지 않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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