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양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을…[마 10:1-15]
 – 2023년 02월 10일
– 2023년 02월 10일 –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모든 권능을 주신다. 하늘 아버지께서 이런 권능을 주신 것은 단지 사람들의 눈에 놀라운 권능을 보여 주라는 것이 아니라 상하고 찢긴 백성들을 돌보게 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부름받은 열두 제자는 출신 배경이나 타고난 기질, 성품 등이 다 달랐지만 곤궁에 빠진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는 모두가 한 몸으로 부름을 받았다.
 
목자없는 양같은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고 추수할 일꾼을 부르시는 주님께서 이제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세밀한 지침들을 명하신다.
 
 
 
1.임명과 권능을 주시며 파송(1-4절)
당시 스승을 선택하는 문화 속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직접 선택하셨다. 부족하기 그지없는 12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 전파의 사역을 맡기신다. 이를 위해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그들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온갖 질병과 온갖 허약함을 고치게 하셨다(새번역_1절). 그 중에는 훗 날 주님을 팔아 넘길 자도 있었다.
 
*왜 그러셨을까? 주님이 자신을 팔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을 텐데 이렇게 하신 이유가 뭘까? 몰라서 맡기신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증거하다가 이 복음으로 인해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미리 차단하지 않으신 것이다. 열심당원이었던 다른 제자가(시몬) 주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게 되었던 것 처럼 말이다.
 
*복음은 이렇게 모든 인생에게 변화의 기회를 준다. 이전과 다른 삶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사망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옮겨주시는 놀라운 은혜의 기회이다.
 
*주님께서 제자로 부른 이들 중에 열심당원있고,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아시면서도 불러 주신 것은 이처럼 주님의 부르심이 전적으로 은혜와 사랑인 것을 증명해 준다. 조건이나 자질, 출신이나 배경으로 부르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부르심의 은혜로 나에게 맡겨주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가장 먼저 내가 이 복음으로 합당하고 살고 있는지 늘 살펴보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복음 전파 사역을 맡기시되 제자들의 부족함을 너무도 잘 아셨기에 먼저 복음 전파사역에 필요한 권능을 주시고 보내신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받은 만큼만 사역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우선 내가 알고 보고 만난 주님을 증거하는 이가 제자이다.
 
또,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 하는데, 주님께서 주신 능력을 따라 행하는 이가 제자이다. 주신 능력보다 더 하는 것은 욕심이고, 그것은 악한 것이다. 주신 능력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는 다면 주님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없는 것이며, 게으른 것이다.
 
 
*자칫 주님께서 늘 경고하시게 될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악하고 게으른 종은 주님을 대적하는 사람들,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을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제자로 부름받아 온전히 맡겨주신 사역을 감당하지 않는 것도 “악하고 게으른 종”인 것이다.
 
*착하고 충성된 종은 받은 만큼 아낌없이 최선을 다하는 이이다. 훗날 달란트비유를 통해 가르쳐주신 것처럼 주님께서는 얼마나 남겼는가에 대하여 심판하지 않으시고 얼마나 충성했는가를 보신다. 결과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과정과 태도를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많이 받고 적게 받음이 불평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주신대로 감사하고 그저 성실하게 감당하면 된다. *주님의 제자의 삶으로 불러 주신 것만으로 감사한 것이고, 맡겨주신 대로 만족하며 성실하게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
 
*한편 주님께서는 아직 제자들에게 가르침에 대하여는 명령하지 않으신다. 이제 막 부르셔서 사명을 맡긴 제자들은 여전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믿음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귀신을 제어하고 병자를 고치는 권능을 주셨고(1절),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라고(7절) 하셨지만,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은 부활 이후에야 명령하신다(마 28:20).
 
*이와 관련하여 마태는 주님께 부름받아 따라 배우는 과정에서는 “제자”로 표현하셨고(1절), 사역을 위해 파송을 받은 후 때는 “사도”로 기록하였다(2절) “제자는 주님을 따르는 자, 배우는 자”를 의미하고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를 의미한다.
 
 
 
2.파송지 :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5-6절)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가서 사역해야 할 분명한 대상을 지정해 주신다. 그것도 이방인, 사마리아인은 배제하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특정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이것은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들을 향한 선교를 금지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로 부름받아 파송 받는 그 지점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출애굽 당시 분명히 밝혔지만, 열방의 축복의 통로로 부름받아 그들을 통해 이방인이 복을 얻게 하시겠다고 분명히 말씀 하셨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제대로 이 사명대로 살지 못했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배신하기 일쑤였던 이스라엘이지만, 마치 자신을 팔 자임을 알면서도 가룟 유다를 제자로 불러 복음 안에서 돌이킬 기회를 주신 것처럼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 것이다.
 
*이 주님께서 한탄하신 것처럼 목자없는 양처럼 되어 버린 이스라엘에게 가장 먼저, 기회를 주어 참 목자되신 예수님께로 돌이키게 하여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도록 다시금 기회를 주신 것이다.
 
*이와 같은 주님의 말씀은 지금 나에게도 가장 가까이에서 복음에 소외된 이웃들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가장 먼저 전해야 할 가까운 이들을 보게하시고 깨닫게 하심으로 제자들에게 맡기셨던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는 말씀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깨닫게 한다.
 
*나에게 가장 먼저 전해야 할 “잃어버린 양”은 누구일까?
 
 
 
3.전파해야 할 것, 감당해야 할 사역, 사역의 태도와 자세(7-15절)
제자들이 전파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전파하신 주제 그대로이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7절) 소식을 전하며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선언해야 한다.
 
 
동시에 하나님 나라를 말로만 전하지 않고 주님께서 행하신 것처럼, 하나님 나라가 임한 증거로 “앓는 사람을 고쳐 주며, 죽은 사람을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어라.(새번역_8절 상)”고 하신다.
 
 
이와 같이 행할 때 보수를 받지 말라 하신다. 이는 제자들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이고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권능은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그 주권이 주님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자신이 행하는 것인양 사례를 받는 것은 주님의 주권과 권능을 자신의 것인양 치부하고 자랑하는 것이 된다. 대가를 계산하는 그 순간, 제자의 사명이 아니라 인간적인 일이 되어 버리고 만다. “….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새번역_8절 하)”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삶은 주님께서 이미 2천년전에 값비싼 대가를 치루고 주신 선물이다. 그러니 이 명령은 어느 누구보다 나에게 가장 무겁게 순종해야 할 말씀으로 다가온다. 사역을 하는 동안 이 땅에서 대가를 받으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물질에 사로잡혀 종노릇하여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제자들은 파송하신 주님께서 전적으로 책임지실 것을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주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굳건한 신뢰는 분명한 사역의 태도를 통해 드러난다. “전대에 금화도 은화도 동전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아라. 여행용 자루도, 속옷 두 벌도, 신도, 지팡이도, 지니지 말아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얻는 것은 마땅하다. 아무 고을이나 아무 마을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서, 그 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 있어라.”(새번역_9-11절)
 
*제자들이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염려하게 되는 그 순간 제자의 관심은 주님의 일이 아닌 나의 생존을 위한 계산에 함몰된다. 이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주님께서 말씀 하셨듯, 공중의 새와 들의 들꽃들도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믿는 이가 제자이다.
 
*주님께서 주신 것에 만족하며 나를 일꾼으로 부르신 주님께서 지키시고 먹이시고 채워주실 것을 믿는다. 이 믿음이 어느 마을에 들어서서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 그 집에서 계속 머물라고 하신다. 그 집이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곳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주님께서 가장 적절한 때와 방법과 분량을 예비하셨음을 믿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받아들임과 배척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어느 집에 들어가든 평안을 빌라(12-13절)고 하셨다. 하지만 거절하는 집과 동네에 대하여는 더 구걸하거나 머물지 말고 떠나라고 하셨다(14-15절). 받기에 합당하지도 않고 알고도 거절하는 사람이나 동네는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결정에 대하여 반드시 댓가를 치루게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 복음에 대한 거절은 주님의 왕 되심, 구원자 되심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받았던 심판을 능가하는 철저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경고하셨다.
 
 
 
 
나는?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는 말씀이 깊이 와 닿는다.
 
-한국교회는 이미 세계 선교를 주도하고 있다. 지금 한류가 모든 영역에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지만, 선교 영역에서는 한참 전부터 한류중의 한류였다. 그런데 곰곰히 곱씹어 보면 점점 더 절망스러워 지는 것이 있다.
 
-세계선교를 주도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안타깝게도 다음세대 복음화율이 이미 선교지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져 버렸다. 4%이하라는 충격적인 결과도 있다. 교회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친 교회가 이미 상당하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에게, 그리고 하나님 나라 복음 전파를 맡긴 이들에게 던지는 준엄한 주님의 경고가 아닌가! 무엇보다 이 땅의 정의가 싱실 된지 오래이고, 평화를 기대했지만 도리어 대립만 격화되며 증오와 차별, 혐오를 부추기는 확증편향의 진원지가 오히려 교회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반응은 요원하기만 하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교회가 오히려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듯 하다. 종교 권력에 취해 겉만 번지르한 건물만 세우고, 제자들의 사역태도와 상반된 사리사욕만 채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고, 주님께서 은혜로 거저 주셨던 것을 사유화하여 탐욕스런 권력자들이 되어 버렸다.
 
-이들의 눈에는 이 땅에서 고통당하고 희망없이 자라는 다음세대와 고난중에 처한 백성들, 나그네가 보이지 않는다. 주님께서 명령하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는 것이 오늘날 이들에게 가는 것이 아니겠나! 동시에 세계 선교 명령(마 28:19)도 함께 감당해야 한다. 이 둘은 하나이다.
 
 
*준비가 덜 된 제자들을 세우시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이는 실전과 함께 고강도의 훈련을 진행하셨음을 의미한다. 모든 부분에서 능숙한 제자가 아니라 어리숙하나 오직 하나님 나라 복음에 열정이 가득한 것에 더 의미를 두신 것이다. 또한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연습해보고 경험하여 주님의 쪽집게 지도를 통해 “사도”로 세워 주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주님께서 진행하신 고강도 훈련은 분명한 사역대상, 사역자세를 가르쳐 주시며 시작되었다. 잃어버린 양에게로, 돈이 없어도 괜찮고, 평안을 선포하면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신다.
 
*제자들의 삶에는 많은 물질이 아니라 일용할 양식이면 충분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삶은 곧 평안을 전하는 사역임을 분명히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저 만나는 이에게 주님의 평안을 빌어주면 되는 것이다. 설사 영접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과 싸우거나 서운해 할 필요 없다.
 
*주님께서 예비해 주신 사람, 집을 만날 것이고 그곳에서 주님께 받은 권능으로 주님께서 하신 것 처럼 담대하게 행하면 되는 것이다. 제자는 이렇게 단순하게 순종하면 된다.
 
 
*사역도 결국 연습, 실전이 중요하다. 홀로 골방에서 하는 연습은 의미없다. 복음을 들어야 할 현장에서 좌충우돌 하며 겪어봐야 한다. 영접받음의 기쁨과 배척받음의 곤란함을 경험하며 영적 근육, 마음의 근육을 단단하게 벌크업을 해야 한다.
 
*나의 삶도 이와 같았다. 완전하게 구비되고 훈련되어서 사역의 길에 들어선 것이 아니었다. 누가 보더라도 전혀 준비가 안되었지만 어느 순간 말씀을 전하는 자리에 서 있었고, 그렇게 무수한 영접과 배척을 통과하며 여기까지 왔다. 여전히 수용과 배척은 수시로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야 하고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책임져 주심에 대한 신뢰는 처음 이 길로 들어선 그때보다 단단해져 있다. 훈련과 실전을 겸하여 하면 이렇게 다져진다.
 
 
*구원받은 삶은 결국 훈련과 실전이 늘 병행된다. 잘 배워서 직면하면 더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현장에서 실전으로 훈련하신다. 그래서 인생이 참 다이나믹하다!
 
*오늘도 실전 속에 걸어가실 주님의 도우심이 기다린다. 담대하게 나아가자.
 
 
 
 
*주님,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열방을 향해 하나님 나라 복음들고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삶이 실전인데 여전히 복음을 잘 훈련받아야 합니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복음대로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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