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주님의 제자 이기에 [마 10:24-33]
 – 2023년 02월 12일
– 2023년 02월 12일 –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가르치시고 선포하시며 축귀와 치유의 사역을 하는 것에 대하여 대적자들의 비난이 시작 되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주님에게 대적한 그들에게 핍박받는 상황에 접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전파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두려워 하지 말고” 사람들(공회, 회당, 총독, 왕) 앞에서 주를 시인하라고 하신다.
 
 
 
1.예수님의 제자 이기에(24-27절)
먼저 주님께서는 자신이 바알세불(귀신의 왕)이라는 조롱과 비난을 받은 것 처럼 제자들도 이와 같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신다(24-25절). 하지만 이런 고난이 있더라도 뒤로 물러서거나 두려워 하지 말라 하신다. 오히려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을 강조하신다.
 
제자는 선생의 길을 따라가면 된다. 주님의 사역을 비난하고 매도하는 대적들은 그의 제자들도 역시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24절에서 밝히는 것 처럼 제자들이 당하는 고난과 핍박은 주님께서 당하신 것 보다 덜할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제자가 선생보다, 종이 상전보다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대적과 비난은 당연히 덜할 것이다. “주님보다 더 좋은 팔자 기대하지 말라, 주님 때문에 덕을 볼 생각도 하지 마라”는 의미도 함께 있다.
 
25절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한 기대를 담은 말씀이다. 제자는 선생만큼만 하면 된다. 결국 제자는 주님이 걸어오신 길이 환대받은 길이 아니라 오히려 의심과 위협, 핍박이 있었고, 특히 바알세불(귀신의 왕)이라고도 했으니 말 다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로 부름받은 이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하신 것이다.
 
*한편, 제자들은 선생고 주인되신 예수님보다 “더 나은 대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도 있겠다. 제자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목표는 “선생같이” 되는 것인데, 이와같은 시각으로 본다면, 주님께서 받는 비난과 핍박을 제자들도 함께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현상은 이미 갈릴리 사역에서 드러났는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주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의 선포와 가르침, 치유사역에 대하여 “귀신의 왕의 힘을 빌어서” 행한다고까지 하였다. 그들은 주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매우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었고 이제 곧 본격적으로 핍박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제자가 제 스승만큼, 종이 제 주인만큼 되면 충분하다 하물며 그들이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고 불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에게 얼마나 더 심하겠느냐?(새번역_25절)”
 
*그렇기에 주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는 마땅히 이 상황을 인정하고 주님께서 받으실 고난이 함께 임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2.그들을 두려워 하지 말라(26-31절)
그러나 그들이 행할 박해를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주님꼐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와 이를 알리는 복음은 반드시 드러나기 때문이다.  “….덮어 둔 것이라도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새번역_26절)” 하나님 나라 복음은 생동력이 있어 개방성과 확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드러나고, 알려지기” 마련이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제한적이고 은밀하게 이루어졌다(6절). 하지만 때가 이르면(그리스도께서 부활 하신 후) 제자들은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전해질 수록 이에 대한 적대감도 높아질 것이므로 더욱 주님의 말씀위에 굳게 서야 한다.
 
사도행전의 기록은 사도들이 실제로 주님이 허락하신 말씀의 권능에 사로잡혀 주님 때문에 핍박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였다.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공의회에서 물러나왔다.”(새번역_행 5:41)
 
 
*제자는 주님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기뻐하는 자이다. 아무리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드러내지 못하는 믿음은 구원의 주님되신 그 이름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확신과 신뢰는 조금만 있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채워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 확신이다.
 
*확신이 넘치는 제자는 주님께서 경고하신 박해의 상황에 대하여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두려워 하지 않는다.”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강조가 되든지 본문에서 “두려워 하지 말라”가 3회(26, 28, 31절)  등장한다.
 
*두려워 하지 않는 제자는 몸과 영혼을 심판하시는 권세를 지닌 하나님 아버지께서 참 새 한 마리의 하찮은 운명까지 관심을 가지시는 세밀한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더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세상 어떤 일도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의심하면 안 된다. 제자들의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자녀들의 머리카락까지 알고 섭리하시는 분이심을(31절) 신뢰해야 한다.
 
 
*주님의 제자는 박해가 심해지더라도 주님께서 은밀하게 말씀하여 주신 것을 공개적으로 선포해야 할 사명을 받은 자들이다. 주님께서는 갈릴리 사역 동안 무리들에게는 비유로 제자들에게는 해석을 반복하셨다. 즉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제자들에게만 자세히 가르치신 것이다. 이렇게 자세히 들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 이후 “광명한 데서 집(지붕) 위에서(27절)” 외쳐야 한다.
 
*그렇다면 당연히 주님의 하난미 나라 사역을 바알세불의 힘, 하나님을 신성모독하는 것이라고 단정한 종교지도자들의 박해는 뻔한 것이었다. 하지만 진정 두려워 해야 할 것은 몸을 죽이려는 이들이 아니라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할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28절).
 
*제자들은 그 하나님이 보잘 것 없는 참새의 운명도 세밀하게 결정하시고, 제자들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아시는 세밀하고 신실한 하나님이심을 신뢰해야 한다. 참새보다 귀한 제자들을 반드시 박해 속에서도 영혼을 끝까지 지키실 것임을 믿어야 한다. 이 믿음이 박해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게 한다.
 
*이와 같이 모든 일을 세밀하게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은 제자들이 자신들에게 일어날 모든 박해에 직면할 때 “절대적인 위로”가 될 것이다. 참새보다 귀한 존재로 사랑하시는 제자들이기에…
 
 
 
 
3.주님을 시인하라(32-33절)
사람 앞에서 주님에 대한 시인은 결국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제자의 길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시인하다”는 단순한 동의로 취급하기 보다는 주님께서 가신 길과 가르치심과 사명을 온전히 따르고 듣고 순종하는가를 의미한다.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하는 투명성이 곧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 진실성과 결부될 것이다.
 
 
*특히 이 말씀은 현재 주님에 대한 태도가 마지막 심판 때 제자들의 운명을 결정 짓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직면하는 현재의 상황을 무엇일까? 주님께서는 이미 17-20절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치유의 권능을 행할 때 공회와 회당과 총독과 왕 앞에 끌려가 서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종교재판의 자리에 서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과정은 늘 사람들의 판단에 직면할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든 예외가 없다. 기존의 문화와 관습, 전통에 충돌하는 하나님 나라 복음은 기득권과 권력자들에게 큰 도전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그들 앞에서 주님의 이름을 시인하는 태도가 곧 심판때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한 판단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기계적으로, 문자적으로” 적용하면 곤란하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 했지만 돌이켜서 주님의 인정을 다시 받았다. 이런 경우가 매우 많다. 그렇다면 본문은 일시적인 넘어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이고 결정적인 배교행위를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주님의 자비와 사랑은 실수하며 연약하여 잠시 외면하는 것까지 정죄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재빨리 돌이킬 수 있도록 늘 성령 하나님의 은혜를 불어 넣어 주신다.
 
 
 
나는?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세밀하게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다시 깨닫는다. 박해에 직면한 제자들에게 주님은 애닮는 마음으로 그들이 직면할 세상을 정확하게 알려 주시면서 그렇게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양”과 같은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보살피신 다는 사실을 강조하신다.
 
-박해가 없는 것이 하나님의 보살핌의 증거가 아니다. 모진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증거가 바로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보살피고 있다는 증거이다.
 
-무엇보다 주님께서 불러 세운 제자들은 이후 사도행전에서 사도로 세워지기까지 주님을 따르는 자답게 주님께서 맡겨주신 복음을 증거하도록 먼저 본을 보이신 자신을 따르라고 강조하신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은 스승이 세상으로부터 받는 모든 박해도 같이 받는 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병을 치유하고 기적을 일으키는 것 때문에 사람들이 따르는 영광만 보면 안 된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이 받는 고난과 박해를 통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깨우쳐 주시는 것이다. 박해에 직면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그런 상황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증언할 수 중요한 기회라는 사실을 일깨우시는 것이다. 교회는 박해에 대하여 두려워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박해의 시간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명하게 들러낼 수 있는 분명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교회는 코로나 기간을 관통하며 직면한 거절과 거부, 혐오의 시선들을 마냥 안타까워 할 필요 없다. 오히려 더욱 성격적인 교회로 돌이키는 중요한 기회로 삼아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명하게 드러내도록 환골탈퇴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환골탈퇴는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기꺼이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본받는 것을 회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예수님처럼, 더욱 예수님처럼”이어야 한다.
 
 
 
*주님, 제자이기에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고 주님의 이름을 시인하며 살겠습니다.
*주님, 더욱 예수님처럼 살아보겠습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증거하다가 직면하게 될 여러 거절과 박해들을 기꺼이 인정하겠습니다. 감당하며 인내할 힘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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