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제자의 삶,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삶[마 10:34-42]
 – 2023년 02월 13일
– 2023년 02월 13일 –
하나님 나라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갈등이 일어난다. 갈등상황에서 단호하하게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는 자들이 참된 제자이다. 그리고 이렇게 순전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를 주님도 영접하실 것이다.
 
 
 
1.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갈등이 일어난다(34-36절)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모두가 환호하며 영접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메시아로서 지상에서 하신 사역은 분열을 가져온다. 평화의 왕으로 오셨지만 거짓 선지자들이 꿈꾸는 평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정 안에서도 하나님 나라 복음을 받아들인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서로 나뉘어 투쟁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이와 같은 말씀은 이미 주님의 임재로 시작된 하나님 나라 복음이 세상과 직면하고 언제나 그렇듯 세상인가? 하나님 나라 인가를 선택하는 결단을 요청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주님께서 평황의 왕이시고, 제자들은 화평케 하는 자이며, 하나님 나라는 평화의 나라이지만 이 평화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해 세상과의 불화를 기꺼이 감수하는 이들에게 주어진다.
 
*이 세상 나라는 쉽게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완강하게 자신들의 주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거절할 것이기에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갈등은 상존한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당연하게 하나님의 통치 안에 들어가지만, 세상은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그 통치를 거절한다. 그렇기에 충돌은 불가피하다.
 
 
 
2.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도(37-39절)
진정한 제자는 세상의 어떤 관계보디 주님과의 관계를 우선한다. 구원의 가치는 어떤 것보다 우선이다. 심지어 가장 친밀한 가족과의 사랑보다 더 긴밀한 사랑을 요청하신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 때문에 세상에서 거절과 핍박에 직면하는 현실이 제자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이다. 하나님 나라 복음과 유일한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 목숨을 보전하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맞지 않다.
 
*가족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다. 하지만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허용치 않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법이다. 지나친 가족 사랑과 자식 사랑, 자기 사랑은 제자의 길을 외면하는 핑계일 수 없다.
 
*주님을 따라가는 절대 헌신과 자기의 소유를 내려놓은 절대 희생의 자세를 요청하실 만큼 제자들이 전하는 하나님 나라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대임이 분명하다. 자신의 삶이 중심되어 자기 소유, 자기 목숨을 지키려고 바둥거리는 이는 주님의 제자로 합당하지 않다.
 
*겉으로는 주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주님이 아시는 속 마음의 중심은 나의 욕심을 채우는 데 급급하지 않는가? 과연 주님을 가장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고 있을까?
 
 
 
3.주님께서 갚아주심(40-42절)
이렇게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복음 전파자들을 대접하는 이들에게 보상을 약속하신다. 당시 사회는 손님에게 “냉수 한 잔”을 대접하는 것이 기본 예절이었다. 이것은 보상을 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약속하시기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제자들에게 행한 그런 작은 선행 하나도 잊지 않고 보상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대리자들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것과 관련하여 사람들에게 대접받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또한 복음의 일꾼들에게 행한 작은 섬김 하나도 잊지 않고 좋은 것으로 갚아주시는 은혜를 신뢰하며 감사해야 한다.
 
*섬김의 덕이 점점 사라지는 듯한 시대에 그럼에도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섬기는 이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그들의 정성을 갚아주신다. 우리 공동체가 우리를 방문하는 선교사와 선교지를 위해 섬기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안에 있음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지 않을까?
 
 
 
나는?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할 제자들을 향한 지침들을 마무리하는 단락이다. 이제 제자들이 가는 어느 곳에서든지 이 복음을 선포할 때 많은 갈등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심지어 가족들 간에 먼저 이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 어떤 것보다 주님과의 관계가 최우선임을 기억해야 한다.
 
-제자는 주님때서 보낸 이들이기에 제자들을 맞이하는 이들의 태도는 곧 주님에 대한 태도가 된다. 늘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전통적인 가치와 신앙에 있던 가족들과 충돌이 불가피하다. 주님께서 하신 “세상에 하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다”는 말씀은 일부러 화평을 깨고 가족들과 불화하라는 것이 아니라 참된 화평을 위해서는 결정적인 순간이나 부분에서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하나님 나라 가치관을 갖는 믿음의 여정은 전통적인 관습과 인습에 익숙한 이들(가족)과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말씀을 극단적으로 활용하는 이단들이나, 이 말씀을 오해하여 가족들을 원수처럼 대하여 도를 넘는 언행을 일삼는 것은 큰 패착이다.
 
-하나님 나라라는 진리를 전할 때 모든 이들이 수용하고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어떻게 전하는가는 상황과 때를 따라 지혜롭게 행할 일이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주님의 당부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같은 말을 전하여도 누가 전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분명한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가족간에 신앙이 다름으로 인해 이러나는 불화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난미의 긍휼을 망각하면 안 된다. 싸우는 방식을 무력이나 폭력으로 해서도 안 된다. 철저히 자기 부인과 희생의 자세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또, 주님보다 부모와 자녀 그리고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주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고 주님을 위해 자기 목숨을 잃는 자가 오히려 생명을 얻는 다는 말씀이 주는 오해를 점검해야 한다.
 
-교회를 다닌다고 부모와 자녀에 대한 부양과 책임의 의무를 내팽개치는 것에 대한 합리화의 구절이 결코 아니다. 진정한 하나님 나라 백성은 가족에 대한 책임을 결코 회피하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고르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부모에게 효를 다하고 자녀를 향한 애정어진 책임을 다하라고 강하게 말씀하셨다(막 7:9-13절) 희생없는 사랑을 가족들에게 말로만 남발하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답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부득이하게 제자의 길로 나서는 여정에서는 가족과 주님 사이에서 충성의 우선순위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이때는 충성과 의무의 우선순위가 주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모든 가치과 체계에 중심이 주님이어야 가능한 결단이고, 이 결단을 내리기 위해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과 말씀의 지식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성령님의 도우심은 절대적이다. 순전하게 자의로 이 길을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자기 십자가는 주님 때문에 당하는 모든 수치와 고난과 핍박, 심지어 생명까지 내어 놓을 수 있는 것을 포함하는 모든 것을 표현하는 말이다. 제자의 길을 한 마디로 표현 하라면 바로 “자기 십자가, 자기 부인”이다.
 
-제자의 길은 자기 만족, 자기 위안, 자기 평안을 위하여 나서는 길이 아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철저하게 “자기 부인”의 길이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주시고 다신 사신 것처럼 나도 기존의 질서에서 누리고 있던 모든 것을 가족과 심지어 생명까지 내려 놓아야 새롭게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사는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 주님을 따르는가? “자기”라는 우상을 섬기는가? 제자는 늘 이 질문 앞에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 제자를 ‘작은 자’라고 표현 하셨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모든 이들을 포함한다. 이들에 대한 반응 하나 하나에 그에 따른 상이 분명하게 있다는 것을 약속하신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하여 아주 작은 반응이라도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밝히 보여 준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다며 부지런히 전하고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렇게 전할 때 보이는 작은 반응 하나에도 반응하시는 하나님이심도 잊어서는 안 된다.
 
-주님을 영접한다는 표현을 그저 손님대접한다. 환영한다 라는 의미로 오해하면 안 된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니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삶을 의미한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에게 대한 반응과 자세는 주님을 향한 반응과 자세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말씀에 대한 반응이 주님께 대한 반응과 같은 이치다.
 
*나는 말씀을 들을 때 어떤 반응과 자세를 취하는가? 그 반응과 자세가 주님을 향한 반응과 자세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의 삶이 “살아있음”을 체득하게 한다.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지금의 죽음이 있어야 영원의 삶을 산다. “죽어야 산다!”
 
 
 
*주님, 결국 제자의 삶은 지금 죽어야 하는 삶임을 더 깨닫습니다. 이전의 가치와 관습의 자아와 삶이 죽어야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가치와 삶으로 살아낼 줄 믿습니다. 오늘도 옛 자아를 주님 앞에 내려 놓습니다.
*주님,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말씀에 대한 지금 나의 반응이 주님을 위해 사는 것과 주님께 반응하는 것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의 반응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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