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참 안식을 누리도록 길을 여신 예수님[마 12:1-8]
 – 2023년 02월 17일
– 2023년 02월 17일 –
예수와 제자들이 안식일에 길을 걷던 중 제자들이 밭의 밀 이삭을 잘라서 먹었다. 이를 본 바리새인들이 안식일법을 어겼다며 주님께 따져 물었다. 이에 주님께서는 구약 성경에서 두 가지 사례를 들어 그들을 정죄하신다. 이를 통해 자신을 성전 보다 더 큰 “참된 안식을 주는 자”로 계시하신다. 덧붙여 호세아의 말씀을 인용하여 안식일의 주인임을 선언하셨다.
 
직전 본문이 참된 쉼은 주님의 하나님 나라 초청에 반응하여 주님의 멍에를 함께 메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을 밝혔다. 유대의 미쉬나는 안식일 법을 39개의 세부 조항으로 규정하면서 모든 일을 금지하기 보다 성전 안의 제사장의 활동이 안식일법보다 우선한 것도 있었다. 그렇다면 성전보다 더 큰 이인 예수 안에서의 제자들의 활동을 안식일 법이 정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 주님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진정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1.참된 안식일이란?(1-5절)
직전 본문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참된 쉼을 주기 위함”임을 분명히 밝혔다. 성경에서 “쉼”은 주님께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의 분명한 특징이다. 본문의 안식일과 관련되어 쉼의 주제가 이어진다.
 
어느 안식일에 주님과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다가 시장했는지 밀 이삭을 잘라 허기진 배를 채웠다(1절).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바리새인들은 곧바로 제자들이 안식일 법을 위반했음을 지적하였다. 유대인의 안식일 명령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은 4계명이다. 하지만 본문은 예수님 시대 ”안식일에 하지 못 할 일“ 이라는 당시 유대의 미쉬나 전통에 따른 것이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라면 모두가 잘 아는 구약의 이야기를 꺼내신다. “읽지 아니하였느냐?”라는 반문은 그만큼 익숙하고 유명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사무엘상 21장에 등장하는 “놉 성소의 다윗”이야기이다. 주님께서는 왜 굳이 이 야기를 꺼내셨을까?
 
사울의 살해 위협을 피해 유대 광야로 도망친 다윗이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이 “놉”이었다. 매우 긴박하게 도망쳤기 때문에 도피생활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고 허기에 지쳐 있었다. 당시 놉 성소의 제사장은 아히멜렉이었다. 다윗은 그에게 떡 다섯 덩이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아히멜렉에게는 일반 떡은 없었고 성소 제단에 진열 되어 있다가 교체된 떡뿐이었다. 아히멜렉은 이 떡을 먹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율법은 오직 제사장들만 이 떡을 먹을 수 있도록 했었다(레 24:5-9). 결국 다윗은 율법을 어긴 것이다. 하지만 훗날 이것 때문에 다윗을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외적 허용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허용은 또,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에게도 허락 되었다. 안식일에 제사장의 성전 직무가 안식일법보다 더 우선되었다.
 
주님께서 이렇게 놉 성소의 다윗과 안식일에도 직무를 감당하는 제사장들의 예를꺼내신 이유가 무엇일까?
 
 
 
2.주님 안에서의 누리는 안식(6-8절)
놉 성소의 다윗과 안식일에 성전 직무를 행하는 제사장의 공통점은 “그들이 성전 안에서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누렸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과 비교하여 예수 안에서 제자들이 누리고 있는 참된 안식과 안식일 법으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하고 싶으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쉼과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대로 제자들이 안식을 누리도록 하셨다. 제자들은 이미 하나님 나라 안에서 주님의 안식에 들어와 있으니 그 안에서 제자들이 행하는 것은 안식일 법에 저촉된다고 해도 다윗과 성전 안의 제사장들처럼 죄가 되지 않는다.
 
*안식을 제공해야 할 성전은 이미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하였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는 사라진 채 종교지도자들의 폭력과 강요의 현장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안식일 법을 철저하게 지켰어도 참 안식을 경험하며 누릴 수 없었다.
 
*성소는 본래 하나님의 임재와 자비의 장소였다. 이스라엘은 율법이 정한 대로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맛보았다. 안식일법의 목적도 짐이 아니라 안식이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를 저버리고 형식에만 치우치게 되면서 참 안식을 상실하게 되었다.
 
*주님께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는 안식의 회복과 완성을 바라본다. 그것은 주님 안에서 쉼과 평안을 누리는 것이다. 이전에 삶을 옭아메었던 율법과 악습의 굴레 아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던 우리는 주님의 쉼과 평안의 초청으로 참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
 
 
 
나는?
-단기팀과 함께 했던 여정을 하루 먼저 마무리하였다. 행복한 안식의 여정이었다. 3년만에 탑승한 비행기도 잘 뜨고 내렸다.무엇보다 함께 동행한 33명의 팀원들과 감당해낸 사역들이 뿌듯하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안에 거하기에 가능한 즐거움이리라.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밝히시는 주님은 형식과 외연에 치우쳐 정작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식화되고 경직되어 버릴 수 있는 어리석은 인생을 안타까워 하신다.
 
-우리 공동체는 어떨까? 주님과의 내밀한 관계를 사모하고 그 안에서 참된 안식을 소망할까? 아니면 경직된 형식과 전통의 악습이 당연한 진리인양 안주하며 불편하고 어색한 안식을 일주일마다 반복하고 있지는 않을까?
 
-애초에 안식을 우리라고 정해주신 것이지만 여기에 안식일법을 만들어 오히려 안식하지 못하는 실수를 지금 교회들마다 반복하고 있지는 않는가? 굳이 스스로를 얽매이게 할 필요없음에도 기어이(?) 그리 만드는 인간의 속성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은 우리에게 짐이 아니라 안식, 쉼, 평안이라고 성경은 곳곳에서 확인해 준다. 그렇기에 안식, 쉼, 평안의 말씀을 굴레, 속박, 불편함의 말씀들로 스스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말씀을 전하는 자로 부름을 받은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다. 바리새인과 같은 정죄와 판단의 도구가 되는 말씀이 아니라 주님안에서 제자들이 누렸던 안식일에 밀 이삭을 취해 먹는 자유함과 평안이 나의 간증, 나의 은혜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 마지막 일정을 농촌빈민을 위해 의료와 미용 오린이 사역으로 마무리짓는 팀원들에게 너무 너무 고맙다. 한편으로 사역의 와중에 주님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절실하게 누렸으면 좋겠다.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우리 팀을 찾아오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쉼과 평안으로 초청하기 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 각자가 이 안식과 쉼을 누렸으면 좋겠다…
 
*밤새 비행기에서 깊은 안식을 취했다. 지난 4일의 캄보디아 여정 속에서 주님과 행복한 동행을 누렸다. 앞으로 더온누리교회 목회여정에서도 짖눌리지 않고 얽매이지 않으며 주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힘 주시는 은혜 안에서 담담히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걸어가리라….
 
 
 
 
*주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을 사람이 만든 안식일법 때문에 정작 안힉을 누리지 못하는 괴로움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 주십시오.
*주님, 오늘 단기팀의 마지막 여정이 주님이 주시는 안식과 평안, 은혜로 가득 채워 주시고 이를 누리도록 인도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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