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이 세대 속에서 하늘 가족으로 살아가기 [마 12:38-50]
 – 2023년 02월 21일
– 2023년 02월 21일 –
주님께 적대적인 종교지도자들이 표적을 구한다. 주님은 요나의 표적 외에 보일 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사역을 요나에 비유하신다. 요나의 선포에 이방 도시 니느웨가 돌이켜 심판을 면한다. 하지만 이 세대는 요나보다 더 큰 예수를 거절한다. 솔로몬과 남방여왕의 예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를 거절한 이 세대가 심각한 운명을 맞이할 것을 악한 일곱 귀신의 비유가 잘 설명해 준다.
 
 
 
1.요나의 표적(38-42절)
서기관과 바리새인 몇 사람이 주님께 찾아와 표적을 구한다. 주님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할 것을 더 요구한 것이다. 지금껏 보여 주신 것 만으로도 충분할 테지만 이들의 목적은 주님을 좀 더 자극하여 자신들이 공격할 빌미를 찾고자 한 것이었다. 악하고 악한 심산이다. 이러한 행동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사탄이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됨을 스스로 증명해 보라고 했던 것을 연상하게 한다. 그때 주님은 응하지 않으셨다. 지금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요청에 응하지 않으신다. 이들에게 표적을 보여준들 메시아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요나의 표적”밖에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신다(39절). 주님은 지체하지 않고 이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신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은 유대인이라면 모두 아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주님은 여기에 “인자도” 그렇게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덧붙이신다.
 
주님께서는 장차 자신이 메시아 사역의 완성으로 경험할 마지막 사역을 말씀하고 계신다.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자신이 땅 속에 사흘 밤낮을 있게 될 것은 “죽음”의 권세 아래 놓인 것을 가리킨다. 주님께서 요나를 소환하신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계시하기 위함이다. 스스로도 “요나보다 더 큰 이”로 선명하게 밝히신다.  
 
요나가 놀라운 기적을 통해 니느웨로 들어와 하나님의 명령대로 심판을 선포하였다. 그랬더니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여 심판을 면한다. 주님께서는 심판날에 니느웨 백성들이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라고 하셨다. 요나의 선포를 듣고 회개한 이방인 백성들이 심판 때에 주님의 선포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정죄한다는 것이다. 요나보다 주님이 더 큰 이유는 주님께서는 종말을 가져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솔로몬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한 이방 여왕이 심판 때에 솔로몬보다 더 큰 이를 거부한 “이 세대”를 정죄할 것이라고 선언 하신다.
 
 
*”이 세대”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이다. 탐욕과 고집에 사로잡혀 무슨 말을 해도 안듣기로 작정한 세대이다. 이와 같은 세대에게 주님께서 보여 주실 표적은 요나의 표적, 즉 십자가와 부활 뿐이다. 이방사람들인 니느웨 사람들도 요나의 전도로 회개하였고, 이방 여인인 남방 여왕도 솔로몬의 지혜에 감동하였는데, 그들이 가리킨 메시아가 실체가 되어 이 땅에 왔음에도 회개하지 않는 이들에게 만은 것은 더 큰 심판 뿐이다.
 
*불신앙은 안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 믿기로 한 것이다. 안 믿어지는 것은 안 믿기로 작정한 마음 때문이다. 이런 자들에게는 주님께서 아무리 많은 기적을 베푸셔도 믿지 않는다.
 
 
 
2.더 악한 일곱 귀신(43-45절)
주님께서 더 악한 일곱 귀신 이야기를 통해 바알세불 논쟁과 안식일 논쟁에 대한 결론을 말씀하신다. 주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 주님의 사역과 종교지도자들의 반응을 잘 드러내신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간 후 떠돌다가 다시 그 사람에게로 다시 들어오려고 한다. 귀신은 사람을 거처로 삼아 그 속에 거하기 때문이다. 핵심은 이 사람의 상태이다. 자금보다 나중이 훨씬 더 악해졌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귀신에서 일곱 귀신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은 그 심각성을 더해준다.
 
애당초 귀신이 어떻게 나갔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다만 그 사람의 상태가 깨끗히 청소되고 수리가 되었다는 기록은 주님께서 행하신 하나님나라 사역의 결과임을 짐작하게 한다. 문제는 주님께 귀신으로부터 자유함을 받은 이후이다. 대개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빈 공간에 더 악한 일곱 귀신이 들어오게 된 것은 “합당한 회개와 제자도의 부재”를 꼽는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므로 일어나는 적절한 반응에 실패하였기 때문에 더 악한 일곱귀신이 다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요나로 인한 니느웨의 반응, 솔로몬으로 인한 남방여왕의 반응과 같은 이 세대의 반응이 일어나지 않음을 꼬집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 나라 복음이 선포되고 이에 반응하는데 실패 하였을 때 나중에 얼마나 더 심각한 폐해가 일어나게 될지를 암시한다.
 
*불신앙은 불신앙 그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귀신을 쫓아주어도 그가 더욱 주님을 영접하고 새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지 않으면 더 많은 귀신들이 들어와 그를 자신의 수하로 둘 것이다. 주님께서 숱한 기적을 보여 주셨지만, 변화되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일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자들이야 말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종들이 될 것이다.
 
 
 
3.주님의 가족(46-50절)
일단 아버지 요셉이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미 사망했을 것이다. 주님의 갈릴리 방문 소식을 누군가 가족들에게 말해 주었을 것이고, 주님의 가족들은 어떤 내용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주님께 무언가를 말하려고 오신 듯 하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갑자기 제자들을 향해 손을 내밀어 “보아라! 나의 어머니와 나의 형제들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 안으로 들어온 제자들이 한 가족이 되었다는 말씀이다. 더 나아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새번역_50절)”
 
주님의 의도는 분명하다. 예수를 거절하는 것은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는 것이다. 예수를 받아들이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신 주님과 한 운명으로 묶여 있는 자를 뜻한다.
 
*하나님 나라 가족은 믿음의 사람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안에서 자신들만이 가족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주님은 가족과 민족의 경계를 뛰어 넘어 “믿음 안에서”형성되는 새로운 가족관계를 제시하신다.
 
*하나님의 가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 하는 자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 하는지 여부가 곧 가족 관계를 판가름하게 된다.
 
 
 
나는?
-요나의 표적은 주님의 십자가의 표적을 바라보게 한다. 요나나 솔로몬보다 더 크신 주님을 그들은 끝까지 순종하지 않는다. 메시아이신 주님이 이 땅에 오셨어도 깨닫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세대”가 그런 세대가 되었다고 말씀도 하신다. 무수한 메시아로서의 증거를 보였음에도 끝까지 믿지 않는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심판뿐 이다.
 
-주님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어 귀신들이 쫓겨 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갈 곳이 마땅치 않아 다시 돌아온다. 이 때 주님을 더욱 더 사모하고 붙잡지 않는다면 이전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이 들어오고야 만다…. 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인해 합당한 회개와 주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도의 부재이다. 주님께 대한 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주님을 거절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일곱 귀신의 거처가 될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분명한 그 증거들을 보면서도 회개의 결단을 하지 않는 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속으로는 자신들의 힘과 권력을 의지하는 두 주인을 섬기며 외식하는 자들이다. 이와 같은 이들은 이전보다 더 철저하게 귀신에 얽매이는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하늘 가족은 믿음으로 구성된 가족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주님의 형제, 자매, 부모이다. 아버지의 뜻을 보여주며 나아가는 사람이다. 주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공동체가 하늘 가족으로 자리매김 되도록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에 마음을 모으는 공동체로 만들어 주실것을 소망한다.
 
 
 
*주님, 악하고 음란한 이 세대 속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결심합니다.
*주님, 나에게 허락해 주신 더온누리교회 공동체가 하늘 가족 되도록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내기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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