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 나라를 더 깊이 더 넓게 보고 듣고 싶습니다 [마 13:1-17]
 – 2023년 02월 22일
– 2023년 02월 22일 –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다섯 개의 가르침 중에서 세 번째이다.  주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주님은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선포하기 위해 배에 오르셨다. 주님께서 바닷가로 나가자 제자들과 무리가 뒤따르고 바닷가에 큰 무리가 몰려 들었다. 주님께서는 “비유(파라볼레)”로 말씀 하신다. 무엇보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 중 첫 번째 비유이다.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가르치시고 여러 능력을 행하셨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바닷가에 몰려든 큰 무리에게 비유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들려주신다.
 
비유는 13장에서만 10회나 사용되었다. 흔히 ‘평범한 일들에서 이끌어낸 유추나 비교로 깊은 문제들에 대한 진리를 전하는 방법’으로 정의한다. 모두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활용하여 전하고 싶은 메세지를 설득적으로 각인 시키는 일종의 그림 언어이다. 하지만 표현 자체는 일상 언어여서 이해하기 쉽지만 그 언어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석이 필요하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이야기는 누구든 이해할 수 있지만 주님의 의도는 제자들도 알지 못해서 해석이 필요했다. 그래서 주님은 이 이야기를 “비밀”(11절)이라고 하셨다. 제자들에게는 이 비밀을 해석해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비유”는 큰 무리(2절)와 제자들(10절), 그들(10절)과 너희(11절)를 분리하기 위한 방법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듣기만 하고 그 나라를 위해 세상 나라를 포기하지 못할 이들에게는 단지 이야기로만 듣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 이 땅에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에 가치를 두고 삶을 의탁한 이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특성과 요청되는 자세나 특권”을 더욱 더 자세하게 가르쳐 주신다.
 
 
 
1.귀 있는 자는 들으라(1-9절)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해 주신다. 13장 이후부터는 모든 가르침을 비유로 주실 것이다(34절). 씨 뿌리는 농부가 씨를 뿌리러 나간다. 그런데 씨의 일부가 네 종류의 밭에 뿌려졌다.
 
가장 먼저 길가에 떨어진다. 밭의 경계를 이루는 공간이나 씨를 뿌리러 지나 다니는 곳이다. 사람의 발길이 잦은 곳이기에 딱딱하게 굳은 길이 된다. 이 위에 씨가 떨어지면 고른 흙이 없어 씨는 그대로 노출되고 결국 새의 모이가 되고 만다.
 
두 번째 밭은 흙이 얕은 자갈밭이다. 자갈밭이라도 자갈 틈에 흙이 존재한다면 거기에 떨어진 씨는 얼마간 살 수 있다. 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씨의 발아와 성장은 흙의 깊이에 의존한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쬔다. 흙이 얕아 열을 충분히 차단하지 못하고 심지어 자갈이 달궈져 열기를 뿜어낸다. 씨는 생존할 수 없다.
 
세 번째 밭은 가시밭이다. 엉거퀴같은 식물은 가혹한 조건에서도 생명력이 남다르다. 그 사이에 씨가 떨어졌다. 처음에는 반짝 잘 자라겠지만, 곧 가시풀이 기운을 막아 더는 자랄 수 없다.
 
끝으로 좋은 땅에 떨어진다. 농부는 자신이 일궈놓은 좋은 땅에 대부분의 씨를 뿌렸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의 이야기는 네 밭이 동등한 무게와 비중으로 소개된다. 이 땅에서는 오롯이 생명력을 발휘하여 마음껏 발아한다.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이룬다.
 
이와같이 비유의 초점은 네 밭과 씨의 운명에 있다. 누구나 이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비유를 마치자 마자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9절). 마가와 누가는 “들을 귀 있는 자”(막 4:9; 눅 8:8)로 기록했다. “들을 귀”는 음성적인 들음이 아니라 의미적인 들음이다.  그런데 제자들도 무리와 마찬가지로 의미적인 들음을 하지 못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무리와 제자들이 어떻게 듣고 있는지에 상관 없이 하나님 나라 이야기를 뿌리고 계신다.
 
 
 
2.왜 비유로 말씀하셨을까?(10-17절)
제자들이 주님께 나아와 직접적으로 묻는다. “어찌하여 그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십니까?”(새번역_10절) 이에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제자들에게는 허락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11절).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은 제자들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라는 뜻이다. 무리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씨가 모든 밭에 뿌려지듯 하나님 나라 복음은 모두에게 들려진다. 하지만 그 신비를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은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온 이들 뿐이다. 반대로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이들, 즉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씨마저 상실되는 불행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가진 사람은 더 받아서 차고 남을 것이며,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새번역_12절)”의 의미이다.
 
주님께서는 이것을 이사야 6:9의 말씀을 인용하여 분명하게 가르치신다. 이사야의 예언은 하나님을 향해 아둔해진 이스라엘의 상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는 심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는 선언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마음이 무디어지고 귀가 먹고 눈이 감기어 있기 때문이다(15절). 그런데 이런 상태의 이스라엘에게 주님은 비유로 말씀하심으로 더욱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귀로 듣지 못하게 하고 돌아서지 못하게 하여 주님께서 그들을 고쳐 주지 않으려는 것(15절)이라고 말씀하신다.
 
충격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주님은 제자들의 눈은 지금 보고 있으니 복이 있고, 귀는 듣고 있으니 복이 있다고(16절) 하셨다. 그리고 확실하게 선포하신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보고 싶고 듣고 싶어 했던 것을 제자들은 지금 보고 듣고 있다고 말씀하신다(17절). 즉 구약의 선지자와 의인들은 오실 메시아를 선포하며 그를 보고 싶고 그의 음성을 듣고 싶어 했지만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니 복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의 이런 보여주심과 들려주심은 제자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무리들에게도 동일하게 보여 주시고 들려 주셨다. 다만 그들은 보는 눈, 들을 귀가 없었다. 완악하여 주님의 메시아되심을 보고서도 외면하고, 주님의 메시아되심을 들려주어도 듣지 않았다. 그들은 곧 심판을 받는다. 말라서 생명이 다하고, 새의 모이로 먹힌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께서 하는 모든 일을 보고 듣고 깨닫는 것이 그들에게 허락되었다. 이것 자체가 얼마나 큰 은혜이고 특권인지 모른다. 주님은 이것 자체가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토록 사모하였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메시아가 가져올 새 시대가 되어야 보고 들을 수 있는 복을 “멀리서 보고 환영”(히 11:13)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자들은 주님께서 가져온 하나님 나라 안에서 비밀을 듣고 깨닫는 은혜를 누리고 있다.
 
*눈과 귀를 닫는 심판과 눈과 귀를 여는 구원을 주님께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 안에서 경험한다.
 
 
 
나는?
-하나님 나라를 환영하는 이들보다 반대하고 거절하는 이들이 더 많음을 비유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세 밭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한 밭만 열매를 내었다. 많은 씨가 뿌려졌으나 허비된 것이다. 씨가 문제가 아니라 밭이 문제이다. 주님께서 밭에 상관없이 성실하게 씨를 뿌린 농부처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으나 받는 이들은 극히 적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다.
 
*주님의 가르침은 대상을 가리지 않으신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씨 뿌리는 자(하나님)가 뿌릴 때 구별하여 뿌리지 않고 모든 밭에 골고루 뿌렸다. 당시의 농사법이 파종을 먼저하고 이후에 밭을 가는 형태 였음을 감안하면 왜 씨가 좋은 땅 만이 아닌 여러 형태의 밭에 뿌려졌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씨 뿌리는 자는 골고루 씨를 뿌렸다. 다만 좋은 땅과 나머지 세 개의 밭에 뿌려진 씨가 자라고 열매를 맺는 것의 차이는 이어지는 해석에서 풀어 설명해 주신다. 그리고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일지의 여부를 물으시는 것이다.
 
-누구에게든 하나님 나라의 문은 열려 있고 복음의 소식은 전해졌지만 어린아이처럼 겸허하게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받을 때만 깨달을 수 있고 누릴 수 있다.
 
*뻔히 자랄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서는 골고루 씨를 뿌려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다. 차별없는 자비로우심이다. 좋은 땅이든 아니든 부지런히 씨가 뿌려진다. 문제는 씨가 아니라 밭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바닷가로 몰려든 큰 무리들에게 이 말씀을 들려 주신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으니 결국 이 말씀을 듣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복이 있는 것이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처럼 결실을 풍성하게 맺는 것이다. “믿음으로 들음”의 문제인 것이다.
 
 
-비유는 이해하도록 주신 말씀이기도 하지만 듣고 깨달아 즉시 순종하여 행동하도록 주신 말씀이기도 하다.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은 이들이 분명하게 결정하도록 하신다. 비유가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분명하게 드러낼 수록 이에 반응하여 이전보다 더 강력하게 반대하든지, 아니면 하나님 나라를 기쁨으로 받아들여 자기를 부인하고 순종하며 따라나서 든지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지고 귀가 먹고  눈이 감기어 있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귀로 듣지 못하게 하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게 하고 돌아서지 못하게 하여, 내가  그들을 고쳐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새번역_13, 15절) 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모두에게 전해진다. 단지 지식으로 받고 공부하는 것에 그치면 하나님 나라와 멀어진다. 전해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보고 들은 대로 삶을 살아내는 순종이 하나님 나라 안에 살게 한다. 더 밝히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된다.
 
*늘 설교자로 설 때마다 두렵다. 내가 먼저 주님의 말씀이 보여야 하고 들려야 하는데… 라는 갈급함이 언제나 있다. 주님께서 주신 말씀이 보이고 들리는 은혜와 특권을 감사하며 더욱 더 깊은 주님의 말씀의 세계를 보고 듣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리하여 부족하기만한 말씀 선포를 통해서라도 이 놀라운 하나님 나라 비밀을 보여주고 싶고 들려 주고 싶다. 주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이런 기회를 늘 주셨으면 좋겠다.
 
 
 
*주님, 말씀의 깊이와 넓이를 더 깊이, 그리고 더 넓게 보고 듣고 싶습니다.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