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복음을 거절하고 방해하는 세상속에서[마 13:18-30]
 – 2023년 02월 23일
– 2023년 02월 23일 –
주님께서 비유의 목적을 소개하신 후 곧바로 해석하여 주신다. 뿌려진  씨는 천국 말씀이며, 각 밭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의 태도와 그에 따른 차이를 나타낸다. 처음 세 밭은 묘사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결국 씨의 운명은 모두 결실 없이 소멸된다. 반면 좋은 땅은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본다. 이렇게 해석을 해 주신 후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이어가신다. 해석은 다음 단락으로 이어진다.
 
 
 
1.씨 뿌리는 비유를 풀어 주시다(19-23절)
주님은 비유를 말씀하시는 분이시며, 또 비밀을 계시하시는 분이시다. 주님의 해석이 아니고서는 깨달을 수 없는 것이 비유의 특징이다.  “들으라!”는 주님의 명령형은 이스라엘이 쉐마 명령을 통해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을 듣는 존재이듯이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이 된 제자들은 비밀의 말씀을 들을 특권이 주어졌다. *말씀은 들을 특권이 있는 자에게 들려진다.
 
 
*길 가에 떨어진 씨앗(19절)
첫 번째 밭은 해석부터 말씀해 주신다.  주님께서는 “씨”가 곧 “천국 말씀”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소개하셨다(19절). 천국 말씀을 들었지만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 상태를 :길 가”로 표현하셨다. 길 가에 뿌려진 씨는 새들에게 먹힌다(4절). 새들에게 먹힌 씨의 운명을 악한 자가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았다고 해석하신다. 여기에서 씨가 뿌려진 “길 가”라는 밭을 “마음”으로 연결하셨다. 천국 말씀이 마음에 뿌려졌다. 그런데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악한 자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빼앗아 가버린다. 깨닫지 못한 원인을 15절에서는 “완악함” 때문으로 말씀하셨다.
 
*돌 밭(20-21절)
돌 밭은 처음 말씀을 받을 때는 기쁨으로 받고 마음속으로 환영하지만 환난과 박해를 당하자 견디지 못하고 넘어지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한 씨와 같다. 뿌리의 상태가 식물의 성장을 결정한다. 약한 뿌리로는 제대로 된 성장을 맛볼 수 없다. 말씀에 즉시 반응하였다는 것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는 것이지만, 마음 속에 충분하게 믿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서 외적인 도전에 직면하므로 결국 말씀의 능력을 맛 본지 못한 채 넘어진다. 돌 밭과 같은 마음은 말씀의 씨앗이 뿌려져도 뿌리가 안정적으로 내릴 조건이 되지 못한다. 환난이나 박해의 원인이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이 뿌려진 자에게 환난과 핍박은 불가피한 것이다. 이를 직면하여 견딜 믿음의 뿌리를 돌밭에서는 내릴 수 없다.
 
*가시떨기(22절) 
이 사람도 말씀을 들었지만, 가시가 씨의 기운을 막듯이(7절),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말씀이 자라는 것을 방해한다.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염려와 유혹 앞에서 말씀이 이끄는 길을 걷지 못한다. 돌 밭과 가시떨기는 “핍박과 유혹”이라는 주님의 뒤를 따르는 제자도의 특징을 연결 시킨다. 천국 메시지에 반응하는데 실패하는 전형이다.
 
*좋은 땅(23절)
좋은 땅에 뿌려진 씨의 의미는 제자도의 모범을 제대로 살아내는 것을 말한다. 그는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 단지 감각적인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삶에 영향력을 끼치는 말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각에서 좋은 땅의 결실을 전도의 열매라고 해석하지만, 이는 말씀을 듣고 깨닫고 삶이 변화되는 것을 가리킨다. 삶의 “성숙”함, 하나님 백성 다움에 이르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길 가, 돌 밭, 가시떨기 밭의 공통점은 모두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했다는 점이다. 성장과 결실이 실패한 원인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 깨달음의 능력은 사람이 스스로 확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깨달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특정인들에게 허락된 은혜의 산물이다. 밭이 스스로 이것을 구비할 수 없다. 좋은 밭이란 열매를 맺을 조건이 되어 있는 땅이라는 의미지만, 어떤 땅도 이 조건을 스스로 구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예수님을 통해 하늘의 비밀이 깨닫도록 허락된 자들에게는 곧 말씀이 풍성한 결실을 맺을 좋은 밭이 된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비밀을 깨닫는 자는 악한 자의 강탈과 억압, 환난과 핍박, 염려와 유혹이 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천국의 비밀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말씀이 뿌려졌고 튼튼하게 뿌리를 내렸기에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은 따논 당상이다.
 
 
*이 비유는 “그러므로 좋은 땅이 되자”는 식의 윤리적인 교훈이 아니다. 마태는 이미 주님을 통해 말씀의 풍성한 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시대가 이미 도래하였다고 강조한다.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거절하지 말고 제대로 반응할 것을 촉구하는 종말론적인 관점이 뜨렷하다.
 
*말씀의 풍성한 열매를 경험하는 삶은 산상수훈의 제자도와 연결되어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이다. 마태의 관점은 이미 제자들은 천국 비밀을 들어서 깨달았고 그 천국을 현재하며 살아가는 구별된 공동체이다.
 
 
 
2.알곡과 가라지 비유(24-30절)
주님께서는 “천국은 ~~과 같으니”라는 직유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진행하신다. 구체적인 해석은 이후에 덧붙이시겠지만, 비유 자체를 이해하는데는 어려움이 없다. 한 농부가 자신의 땅에 좋은 씨를 뿌린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때 그 주인의 원수가 농사를 망치게 할 요량으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간다. 치명적인 손해를 입히기 위한 악한 행위가 한 밤중에 은밀하게 펼쳐진다. 뿌려진 가라지가 당장 눈에 띄지는 않지만 서서히 자라면서 강력한 생명력을 발휘하여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싹이 나고 곡식이 맺혀갈 무렵, 종들이 주인의 땅에서 가라지를 발견하고 그 출처를 주인에게 묻는다. 주인은 원수의 소행임을 간파한다.  종들이 가라지를 뽑겠다고 했지만, 주인은 행여 알곡도 상할 것을 우려하여 허락치 않는다. 이미 알곡과 가라지의 뿌리가 얼기 설기 얽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다 보면 자연스러운 잡초의 발생을 막을 수 없다. 또 드문 드문 가라지가 자리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얼마든지 중간에 뽑아 낼 수 있다. 문제는 원수가 의도적으로 가라지를 왕창 덧뿌려 놓았다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주인의 결정은 현명했다. 추수때까지 가라지를 솎아내는 것을 기다렸다. 주인은 추수 때 추수꾼들로 하여금 가라지를 먼저 거두어 단으로 묶고 불에 태우게 하였다. 그 다음 알곡은 곳간에 들일 것이다.
 
가라지의 운명이 추수 때까지 유예된 것은 순전히 알곡 때문이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가져오신 하나님 나라는 이런 긴장과 갈등의 요소가 있다. 가라지와 알곡이 공생하는 불안정한 시간이 잠시 허락된다. 여러가지 변수가 있을 테지만, 주인은 추수 때까지 가라지를 거두지 않고 기다린다.
 
 
 
나는?
-씨는 결국 그 씨가 떨어진 마음밭이 어떤 종류인지를 드러낸다. 복음의 말씀은 결국 그 사람의 본질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복음의 말씀이 좋은 심령을 만나면 영원한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
 
-길 가, 돌 밭,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다양한 이유들을 제시하신다. 길 가에 떨어진 씨처럼 아예 그 마음에 닿기 전에 즉시 거부하는 완악한 자들이 있다. 돌 밭에 떨어진 씨처럼 처음에는 기쁨으로 받지만 박해를 이기지 못해 뿌리를 내리지 못한 자들도 있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처럼 유혹을 이기지 못해 열매를 못 맺는 이들도 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혹하고 핍박하는 제 3의 세력들도 있다는 것이다.
 
-또 좋은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는 씨는 다른 밭에 떨어져 소멸된 씨들을 잊을 만큼 풍성하게 맺힌다.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는 실패하는 듯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승리하고 드러난다.
 
-아무리 많은 하나님 나라 복음의 말씀을 전하여도 변화하지 않는 사람들, 열매 없는 것 같은 좌절감이 들어도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이 말씀을 전하시는 곳에서도 언제나 말씀에 순종하는 자보다 불순종하는 자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순종하는 몇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적같이 추수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은 늘 전파해야 한다.
 
-씨 뿌리는 비유는 나의 마음밭이 어떤 밭인가를 점검하는 것이 아니다. 천국 복음을 선포하다가 무수히 좌절하게 될 제자들을 격려하는 것이다. 복음에 대한 거절과 조소와 비난은 당연한 것이다. 복음 전파로 인해 고난과 박해를 받는 것도 그렇다. 제자들의 수모와 실망, 허탈감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농부이신 하나님께서 좋은 밭만 골라 씨를 뿌리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면 된다. 밭의 상태만 보고 전하거나 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전혀 맞지 않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말씀이 허비되는 듯 보이겠지만 기억해야 한다.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 명이 있었고, 가장 부정하고 음란한 도시 고린도에도 하나님의 백성은 있었다. 이와같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반응하고 응답하여 열매맺는 백성을 예비하여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들어가시고, 가장 나중에 나오신다.
 
 
-하나님께서는 알곡과 얽혀 있는 가라지를 추수의 때(종말의 때)까지 가만히 두실 것이다.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는 지금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어리석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심판의 날에는 가라지는 불에 던져진다. 알곡은 곳간에 들인다.
 
-하나님께서는 곡식 하나라도 잃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자기 백성의 안전을 세밀하게 살피시며 하나님 나라까지 모으시기까지 깊은 관심을 기울이신다. 그 은혜로 오늘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
 
 
-종들은 가라지를 솎아 내는 것이 더 많은 수확을 거두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인에게 가라지를 뽑겠다고 말을 한 것이다. 종들은 알곡 한 두 줄기 상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주님의 제자라고 자부한다면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목적을 위해 나아갈 때 어떤 사역이나 행사보다 중요한 것은 한 영혼임을 깨닫는다.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도리이다.
 
-종들은 가라지를 뽑으려는데 초점을 두지만, 주인은 알곡을 지키려는데 초점을 둔다. 한창 자라고 있는 알곡과 가라지가 한데 뒤엉킨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를 통해 깨닫게 하시는 것은 종들이 가라지를 뽑으려는 것은 덧뿌려진 가라지가 잘못된 가르침이나 공동체 안의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는 이들, 원수에 미혹된 이들이라고 해석할 때, 그것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 종들의 우선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종은 잘못된 것을 비우고 제거하는 것보다 “더 좋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채우는 것이 먼저다. 알곡은 주위의 가라지와 같은 잘못된 것의 유혹을 받을 수 있겠지만, 주님의 사랑과 말씀을 계속 채워가서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날선 정죄와 판단보다 주님의 사랑을 내 안에 채워서 결국 사랑이 악을 이기도록 해야 한다. 사랑이 지속적으로 들어와야 사랑을 지속적으로 행할 수 있다.
 
 
-추수의 때까지 기다리는 주인의 마음처럼 종말의 때까지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보다 앞선 조급함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시려고 악인을 아직 벌하시지 않으시는(가라지를 아직 뽑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믿음을 포기하면 안 된다.
 
-가리지를 충분히 제거할 능력이 되지만 추수때까지 가만 두시기로 결정하셨다면 그런 가라지조차 하나님의 주권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시려는 것이다.
 
-알곡과 가라지가 공존하는 세상이다.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이 살아가야 한다. 주님께서 세상을 즉시 심판하고 정죄하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추수의 때에는 분명한 구분이 이루어지고 가라지는 단으로 묶여 불구덩이에 던져 질 것이다.
 
 
 
*주님,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주님, 하나의 알곡이라도 보호 하시려고 추수때까지 가라지를 그냥 두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본받겠습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