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세례 요한의 죽음… 주님의 죽음을 바라보게 하다 [마 14:1-12]
 – 2023년 02월 26일
– 2023년 02월 26일 –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를 마치시고 주님의 메시아적인 사역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전에 세례 요한의 죽음을 소개한다. 주님께서 활동하신 갈릴리 지역과 베레아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던 헤롯 아티파스가 어떻게 세례 요한을 죽였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헤롯은 자신이 통치하는 지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주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기적의 소식으로 꽉 채워진 보고를 받으며 자신이 참수한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나서 주님 안에서 권능을 행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두려워 했다.
 
*당시는 선지자와 같이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 부당하게 죽임을 당하면 다시 살아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의식에서 헤롯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자기를 괴롭게 하려고 세례 요한의 권능이 주님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이 이복동생의 아내와 결혼한 것을 지적한 요한을 옥에 가두고 죽임으로 그를 침묵하게 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자신의 죄책감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그의 죄책감이 주님을 주님으로 직면하지 못하게 하였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으로 보아야 할 주님을 자신이 늘 마음의 죄책감으로 짖눌려 있는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니 제대로 볼 수 있었을까?
 
*주님은 진실하게 만나야 한다. 주님을 주님 답게 바라볼 수 있기 위해 나의 마음에 가득한 죄책감에 오염된 마음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 세례 요한은 헤롯의 막강한 권력이 두려워 그가 행한 율법에 반하는 죄를 지적하지 않는 종교지도자들과 달랐다. 그는 주님께서 인정하셨듯 진정한 “선지자”였다. 하나님 앞에서 죄의 문제를 사소하게 지나치지 않는다.
 
세례 요한은 제사장의 가문이었지만 이미 타락한 성전이 아니라 광야에 거하면서 메시아의 오실 길을 예비하였다. 뿐만 아니라 완악한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과 죄악을 거침없이 지적한 그 기개가 헤롯의 정욕에서 발현된 잘못된 결혼을 지나칠리 없다. 왕이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고 가볍게 여기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았다. 물러섬 없이 단호하게 그 죄를 지적했다. 실제로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을 극히 싫어했다. 원수라고 표현했다(막 6:19). 그만큼 세례 요한의 외침은 왕이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소리높여 그 죄를 지적했을 것이다.
 
*세례 요한은 세상 왕의 권력을 두려워 하기 보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였다. 권력의 폭력과 억압에 무릎 꿇기 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뤂 꿇는 사람이었다. 이런 그가 아내를 버리고 이복동생의 아내이자 자신의 조카인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을 보고 가만있을 사람이 아니다. 왕이라도 무거운 책망과 회개 요청을 피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삶이 주님께서 당부하신 “좁은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과연 헤롯이 헤로디아의 딸의 부탁 때문에 세례 요한을 참수 했을까? 그는 왕이었지만 백성을 두려워하여 세례 요한을 죽이지 못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약속한 것을 지키겠다는 맹세 때문에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의 황당한 요청에 의롭고 거룩한 선지자를 죽이고 만다.
 
백성들이 인정하고 따르며 자신도 두려워하는 선지자 세례 요한을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명예문화 때문에 자신의 죄를 지적한 선지자를 죽인 죄를 선택하였다.
 
*그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전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반응하지 않고 딸과 잔치에 참여한 손님들 앞에서의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기 백성의 생명을 꺼리낌없이 참수하는 왕이었다.  이 모습은 이후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들판에 말씀을 들으러 나온 배고픈 백성들에게 배불리 먹여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주님의 모습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헤롯은 요한을 통해 그의 마음에 떨어진 말씀에 반응하여 순종하기 보다 자신의 명예와 체면을 더 중요하게 여김으로 하나님께 심판받을 운명이 되고 말았다.
 
*혹시 나는 어떨까? 하나님의 말씀이 내 폐부를 찌를 때 고통스럽더라도 잘 받아들일까? 나는 내 안에 나의 명예와 고집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도록 살고 있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헤롯과 다를 바 무엇이겠는가?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은 자존심으로 살지 않고 말씀에 반응하는 순종으로 산다. 나의 명예를 세우기 위해 자존심에 집착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게 된다. 자기 명예를 위해 무고한 선지자 요한을 죽인 헤롯과 동일한 마음일 수 밖에 없다.
 
-헤롯은 주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세례 요한을 생각했다. 무고한 선지자를 죽인 죄책감이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은 것이다. 그의 마음에 트라우마로 남았다. 메시아되신 예수님의 사역을 보고받아도 세례 요한을 생각할 정도로 그가 결정한 세례 요한의 참수는 부당하고 부당했다.
 
-세례 요한은 헤롯에게 그의 잘못을 한 두번 말한 것이 아니었다. 새번역은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새번역_4절) 다고 했다. 회개하고 돌이킬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전했다는 의미이다. 오죽하면 백성들 앞에서 더 이상 이 말을 하지 못하도록 “붙잡아다가 묶어서 감옥에 가두었다”(새번역_3절).
 
-세례 요한의 선지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충성이 대단하다. 성실하다.
 
-반면 헤롯은 왕으로서 가벼워도 너무 가볍다. 그가 요한을 옥에 가둔 것과 자신의 생일에 공주로서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고(당시 명예를 중요시 하는 문화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그것이 즐거워 “맹세”(7절_새번역, 개역 개정은 약속으로 번역)까지한 경솔한 왕이었다. 이 왕으로서의 가벼움이 헤로디아가 원수처럼 여기는 요한을 죽일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 헤롯은 살로메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달라는 요청에 근심했지만 이미 한 맹세와 그와 함께 앉은 사람들 앞에서의 명예 때문에 어처구니 없는 참수 명령을 내리고 말았다.
 
 
*헤롯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관 없는 삶을 살았다. 말씀(율법)의 어떤 가르침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모두가 율법을 어긴 결혼임을 알고 있어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탐욕과 정욕이 원하는대로 행하였다. 자신의 생일에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선지자를 참수하여 쟁반에 담아 조롱거리를 만들어 버렸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주님의 기적의 소문을 듣고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일들을 들으며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으로 여긴 것이다. 이조차도 두려워 하는 기색은 전혀 없는 듯 하다. 그저 호기심이 발동한 것 뿐이다. 마치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나서 역사하는 것 같은데… 직접 보고 판단하고 싶은데… 이런 투이다.
 
*철저히 완악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왕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리 통치하는 왕이지만 그의 안에 하나님은 없다.
 
 
*반면 세례 요한은 세상 권력이 어처구니 없게 자신을 옥에 가두고 갑지가 참수 당하게 되어도 그저 받아들인다. 그는 주님의 길을 앞서 걸어간 선행자이자, 메시아의 길을 예비한 자이기에 메시아의 죽음조차 자신의 죽음으로 예비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였다. 죽임 당하는 것 까지도…
 
*유대인들에게 육신을 훼손당하며 죽는 죽음은 끔찍한 저주와도 같았다.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삶을 충성하며 살아온 자신이 목베임을 당하는 순간을 마태는 기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주의 길을 예비하는 길의 사명을 붙잡았을 것이다.
 
 
*헤롯이 밉고, 요한이 안타깝다. 헤롯이 전횡을 휘두르도록 침묵하시는 하나님의 처사도 괴롭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이런 분노, 아쉬움, 괴로움에도 완성되어 간다. 결국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는 완성된다.
 
*안타까운 죽음이 주님의 메시아되심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사역으로 이끈다. 주님은 이제 자신의 메시아 되심을 주저없이 드러내실 것이다. 그럴수록 주님을 죽이려는 이들의 광기도 더 짙어질 것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도 이와 같다. 예기치 못한 고난과 박해가 믿음으로 사는 길을 덮쳐 올 것이다. 세상 권력의 힘이 믿음으로 살아가려는 의지를 꺽으려 할 것이다. 세상의 문화가 구별될 수 밖에 없는 하나님 나라 문화를 덮으려 할 것이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하겠다. 주님이 주시는 하늘 소망 붙잡고 견디며 나아가리라!
 
 
 
 
*주님, 세례 요한은 죽음까지도 주님의 죽으심을 내다보게 하는 죽음을 감당했습니다. 이와같이 나의 삶도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게 하는 삶을 꿋꿋하게 감당하겠습니다.
*주님, 부당한 권력의 힘이 나를 짖눌러도 믿음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