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오병이어_하늘의 잔치가 이 땅에서 [마 14:13-21]
 – 2023년 02월 27일
– 2023년 02월 27일 –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하 소식을 들으시고 광야로 물러가신다.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나신 것처럼(4:12), 지금 다시 물러가신 것은 자신의 운명을 예고하는 선지자 요한의 죽음의 소식을 들으셨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지금은 고난 받으시고 죽으실 때가 아니기에 유대인의 지역을 벗어나 이방인의 땅으로 건너가신 것이다. 그곳에서 물고기 두 마리 보리떡 다섯개가 담긴 소년의 단촐한 도시락이 장정만 5천명이 넘는 무리들을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일어난다. 주님께서 빈 들까지 자신을 따라온 무리를 날 저물 때까지 가르치신 후 그들에게 베푸신 놀라운 기적이었다.
 
 
 
1.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처럼(13절)
세례 요한이 헤롯 안티파스의 무도한 칼에 참수 당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주님은 그의 관할 지역 밖으로(빈 들, 벳세다 근처, 눅 9:10) 나가신다. 지금은 가버나움에서 열심히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며 각종 병자를 고치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아니라 “뱀처럼 지혜롭게”(마 10:16) 행하여야 할 때인 것을 판단했다.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그들을 핍박하게될 세상에 맞서 뱀 같이 지혜롭게 비둘기 같이 순결하게 행동하라는 가르침을 몸소 보여 주신 것이다. 무엇보다 세례 요한을 꺼리낌없이 참수한 헤롯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고 그의 통치 지역 밖으로 빠져 나가신 것은 아직 주님의 구속의 사역을 완성할 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때과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사역을 감당하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마땅히 행할 것을 순종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2.불쌍히 여기시는 주님(13-14절)
수많은 무리들이 주님이 광야로 나가시는 것을 보고 따라 왔다. 놀라운 것은 헤롯의 통치지역을 벗어나 이방인의 지역에 들어가신 주님을 그대로 따라 들어왔다는 점이다.
 
마을과도 한참이나 떨어진 외딴 광야, 빈 들까지 자신을 따라온 무리를 주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셨다. 무엇보다 그들은 배고파 있었고, 헤롯 왕에게서 보이듯 자신들이 신뢰하며 의지할 지도자는 없었다. 또, 고달픈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고통을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그런 불쌍한 이들이 여러 동네에서 몰려 나와서, 걸어서(13절) 주님을 따라온 것이다. 주목할 것은 주님은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물러가셨지만, 무리들은 “걸어서” 주님을 따라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배를 앞질러서 먼저 도착하여 주님을 맞이했다. 주님께서는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 가운데서 앓는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새번역_14절).
 
 
 
3.하늘 잔치를 베푸시다(15-21절)
주님을 따라나선 사람들은 “빈 들”에서 주님의 풍성한 기적을 맛본다. 이 기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모세를 뒤따라 나선 광야(빈 들)에서 만나와 메추라기와 반석의 샘물을 경험한 기적과 같은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삶은, “빈 들”로 나아가는 삶이다. 주님과 함께 한 “빈 들”에서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졌다. 주님과 함께 하는 빈 들과 같은 인생이어서 아직은 배고프고 의지할 자도 없으며, 기대고 비빌 언덕조차도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한편 오병이어의 기적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미리 보여 주고 있는 듯하다. 빈 들에서 마치 잔치집의 주인처럼 무리를 손님대하듯 모이게하고 앉힌 후에 잔치를 배설한 주인이 축사하듯이 잔치를 위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주시매”와 같은 연회를 베풀때 사용되어지는 동사는 오병이어 본문뿐 아니라 칠병이어, 잡히시기 전날 밤 유월절 만찬에서도 등장한다. 수많은 무리들을 위한 하나님 나라 잔치에서 주님꼐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펼쳐질 잔치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주님과 함께 있는 “빈 들”이라면 곧 배불리 먹고 열 두 광주리를 남긴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할 수 있다. 빈 들에서 하나님을 소망할지, 빈 들과 같은 인생을 푸념할지는 믿음의 결정에 달려 있다.
 
*나의 삶이 주님을 믿는데도 왜 아직도 빈 들 같은 날들이냐며 불평하거나, 떠나온 애굽을(세상을) 그리워하며 후회하고 있지는 않는가? 주님의 약속의 말씀들을 믿음으로 붙잡고 배불리 먹고도 열 두 바구니가 남는 완전한 하나님의 은혜의 기적을 갈망하면 어떨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을 넘게 배불리 먹는 기적은 제자들의 참여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지극히 작은 소년의 도시락이었지만, 주님의 사역에 그것을 내어 놓았을 때 큰 능력이 나타났고,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으이 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말씀에 순종하며 내가 가진 작은 것을 내려 놓을 수 있을까? 또 그렇게 내려놓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기꺼이 내어 드릴 수 있을까?
 
*주님을 따르는 제자공동체에게 무리를 책임질만한 능력은 없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 왕으로 오신 주님의 능력, 자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셔서 생명의 빵이 되어 주신 주님의 사랑을 제자들이 의지하여 순종하기를 원하신 것이다.
 
 
 
나는?
-주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참담한 죽음을 전해 듣고 “아무말씀 없이” 배를 타고 떠나신다. 이전에 요한이 옥에 갇힌 채 제자들을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이이까?(11:3)’라고 묻는 질문에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11:11)’고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아무말씀도 없으시다.
 
-불의한 헤롯의 손에 죽은 죽음에 대하여 헤롯에게 한 마디 말이라도 하실만한데 침묵하신다. 묵묵히 배를 타고 건너편 빈 들로 나가신다. 이 침묵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도 요한처럼 죽임 당할 것을 직감하셨을 것이다. 점점 자신에 대한 반대가 극명해 지고 이에 따른 결과를 알고 계셨음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요한의 죽음 소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빈 들로 향하시는 주님에게로 큰 무리가 몰려 들었다.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기는 커녕 주님에게서 놀라운 기적을 맛보고 싶어하는 무리, 자신의 질병과 아픔을 고침 받으려는 사람들, 세찬 세상의 파도에 실달리면서 하늘의 위로를 소망하는 이들… 이유는 제각각 이었지만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않고 그저 자신들의 필요를 찾아 빈 들까지 나아온 것이다.
 
-주님께서는 따로 홀로 싶으셨을 것이고 요한에 대한 통분의 마음을 다스릴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무리가 이런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기는 만무하다. 그들은 따로 홀로 있고 싶은 주님의 심정보다 자신들의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런 무리들을 물리치시 않으시고 불쌍히 여겨 고쳐 주신다. 여기에 더하여 제자들에게 뜬금없이 무리의 식사를 챙겨줄 것을 명하셨다. 제자들도 넉넉치 않은 공동체 살림을 했을텐데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 마음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오병이어의 기적은 주님의 긍휼의 풍성하심(14절), 큰 무리(세상)을 향한 교회의 책임(16절), 그리고 도무지 믿기지 않는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의 보잘 것 없는 한 소년의 도시락이 장정만 5,000명이 넘는 이들이 배불리 먹고도 12광주리가 남는 창조의 역사를 일으키셨다.
 
*이 놀라운 기적을 실제로 체험한 제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수많은 무리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자신들조차도 믿기지 않는 놀라운 일을 목격하는 그 심정이 어땠을까?
 
*특히 헐벗고 굶주리는 일상에서 “배부르게” 먹어본 적이 언제였을지 가물 가물한 그 백성들의 마음에 주님은 어떻게 보였을까?
 
*그리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제자들이 오병이어 사건을 실제로 경험한 그때 가난하기 이를 데 없는 중에서도 불쌍한 무리들에게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요청하신 주님의 뜻을 따라 무리중에 있는 소년의 도시락을 건넸다. 이 가난한 제자공동체는 가진 것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누었다. 오늘날 교회는 어떨까? 지금은 그 당시에 비할 수 없이 부자가 된 교회들이 과연 희망을 나누어주고 있을까? 주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어 상식과 보편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소통시키고 있을까?
 
*더온누리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빈 들에서 오직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끊임없이 생명의 양식을 배불리 먹고도 남음이 있도록 나누어 주는 교회이기를 꿈꿔본다.
 
*반드시 베풀어 주시는 구원을 받아 누리도록 구원의 양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풍성하게, 남음이 있도록 전하는 교회 되어야지…
 
 
 
*주님, 생명의 양식을 전달하는 은혜를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공급하시는 이 은혜가 차고 넘치도록,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늘 전하고 나누어 주겠습니다. 섬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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