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참된 정결이란? [마 15:1-20]
 – 2023년 03월 01일
– 2023년 03월 01일 –
본문은 주님의 갈릴리 지역의 이스라엘 땅에서의 마지막 사건을 다룬다. 다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책잡기가 등장한다. 이번에는 “정결과 부정”의 문제이다. 주님과 거친 논쟁을 벌이지만, 유대교가 가진 분명한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는 하나님의 계명보다 “장로들의 전통”을 더 우위에 두어 무력화하는 엄청난 죄를 범하고 있는 자신들의 맹인된 실상을 깨닫지 못하는 처사였다. 철두철미한 의례와 형식의 외적 정결이 결코 내면의 정결함을 이끌어 낼 수 없다. 마음의 정결함은 오직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는 주님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1.전통을 어기다니!(1-2절)
주님께서 게네사렛 땅에서 치유 사역을 하고 있을 때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나아왔다. 유대교 심장부 예루살렘의 대표단 성격을 띤 이들은 주님과 선명한 대결구도를 형성한다. 표면적으로는 “정결례”를 범하는 제자들의 문제를 가지고 접근한다. 참 궁색한 트집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소한 트집이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의 계명”간의 충돌로 비약된다.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것은 바리새인들의 오랜 전통에 따른 가르침을 위반하는 문제였다.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행하였던 정결을 위한 손 씻음을 일반 가정까지 확장하여 대중적 전통 양식으로 고착시킨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유대인들에게 손을 씻는 행위는 정결을 인식한 당연한 습관이었다.
 
“당신의 제자들”이라는 발언 속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제자들을 향한 비난은 결국 주님을 향한 비난임을 감출 수 없다. 그들에게 가장 익숙하고 당연한 전통이었던 정결례를 지키지 않는 것을 부각 시키려는 치사한 질문이었다. 이를 통해 주님의 하나님 나라 사역을 통채로 비난하려는 음흉한 전략이었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지키지 않는 전통에 어긋나는 집단으로 비치게 하려는 것이다.
 
 
 
2.누가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범하는가?(3-11절)
주님께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음흉한 저의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의도를 간파하신 주님은 오히려 그들의 사상적 기반인 “장로들의 전통” 전체를 뒤흔드신다.
 
바리새인들에게 “장로들의 전통”은 매우 남다르게 헌신하며 지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명”에 대하여는 어땠을까?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보다 장로들의 전통을 더 우선시하여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제자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고 있었지만, 주님의 눈에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있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계명”은 무엇일까?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율법 전체일 수 있다. 다만 주님께서는 다섯 번째 계명을 예로 드신다. 바리새인들이 철저히 지키는 손 씻는 정결예식이 보편적이듯 부모 공경도 철저하게 지켜야 할 보편적 계명임에도 이를 소홀히 하는 그들의 위선을 지적하신다.
 
유대인들에게 장로들의 전통은 부모공경으로 발생하는 물질적, 심리적 부담을 덜어 주어 결국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되는 명분으로 점차 발전하였다. 이를 지적하신 것이 바로 “고르반”이라는 장로들의 전통이다. 마가는 히브리어 “코르반”을 헬라어로 음역하여 고르반으로 그 뜻을 풀어 소개했지만, 마태는 음역을 사용하지 않고 유대인들이 다 알고 있는 헬라어 “도론(드림)”을 그대로 사용했다.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는 이 말은 “성전에 예물로 바쳤다(또는 바칠 것이다)”는 장로들의 전통이 성전에 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부모 부양의 책임을 대신할 수 있게 허용했다. 자식으로부터 공경을 받는 것은 부모의 권리이다. 하지만 고르반은 부모에게서 그 권리를 빼앗고 자식의 손에는 명분을 쥐어줬다. 결국 유대교는 이 전통으로 성전에 막대한 재물을 쌓았지만,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은 철저하게 무효화 되었다.
 
신앙의 이름으로 전통을 강요 했으나 그 전통이 신앙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 감은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런 종교지도자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부르셨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셔서 그들의 본심을 들춰 내셨다. “이 백성이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무효화 하면서 그 전통에 헌신하는 것을 참 신앙이라고 가르친 종교적 위선을 직접적으로 고발하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계명을 헛되게 만든 모든 장로들의 전통은 헛된 것이라는 선언과 다를 바 없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상당한 분노를 유발한 지적이셨다.
 
 
주님께서는 아랑곳 하지 않고 시선을 무리들을 향하여 돌리시며 정결과 부정의 주제를 다루신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이니라”(11절) 짧은 경구로 하신 말씀이지만 누가 듣더라도 장로들의 전통중에서 정결례를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손을 씻지 않으면 그 사람을 부정하게 하므로 손을 씻지 않은 채 떡을 먹으면 더러운 떡이 몸으로 들어가 그 몸을 부정하게 한다는 것이다. 즉,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가르치신 것이다.
 
*외적인 정결보다 중요한 것이 내적인 정결이다. 정결하게 먹는 것만 강조하였던 종교지도자들이 사실 마음은 더 완악했다. 하나님께서 정결법을 주신 이유는 깨끗한 음식을 먹게 하려는 위생상의 규례가 아니었다. 이방인과 구별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내게 하시기 위한 구별이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은 손은 깨끗하게 씻었지만 마음은 탐욕과 위선으로 더렵혀 있었다. 겉과 속이 달랐다.
 
 
 
3.격노하는 바리새인들 더욱 단호하신 주님(12-20절)
주님이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분개했다(12절). 하지만 아랑곳 하지 않는 주님의 말씀이 이어진다.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자기가 심지 않으신 식물은 모두 뽑아 버리실 것이다.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 먼 사람이면서 눈 먼 사람을 인도하는 길잡이들이다. 눈 먼 사람이 눈 먼 사람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새번역_13-14절)
 
*혹시 나의 삶에서도 “나는 하나님께서 심으신 나무이다!(사 60:21; 61:3)”라고 말하면서 마음으로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있지는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날마다 주시는 말씀으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돌아보고 회복해야 한다.
 
베드로가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15절). 주님은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을 안타까워 하시며 설명해 주신다. 주님은 겉으로 드러난 외식이 아니라 내적인 정결을 더 중하게 보신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외적으로 정결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용납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인간의 더러움이 외적인 문제가 아니라 내적인 것이라고 지적하신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우면 단지 육체에 영향을 주지만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 더러우면 그것은 사람을 더럽히는 죄의 문제가 된다.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렘 17:9) 것이 마음이라고 했다. 이런 마음이 정결함을 입으려면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을 의지하며 사는 것 밖에 없다.
 
 
*요즘 나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무엇일까? 마음의 생각이 입술의 열매로 드러난다는 것을 늘 기억하며 내 마음에 순결한 하나님의 말씀과 마음, 뜻을 더욱 채워야 하리라….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그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음에서 악한 생각들이 나온다. 곧 살인과 간음과 음행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다.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 그러나 손을 씻지 않고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새번역_18-20절)
 
 
 
나는?
-하나님이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위선의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왔다. 아….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잣대는 “하나님 앞에서 손을 씻는 율법(출 30:17-21; 레 15:11)”이 아니라 그들이 추가한 전통인 식사 전에 손을 씨는 것이었다. 계명을 더 잘 지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구실일 뿐이었다.
 
-고르반이 대표적이다. “하나님께 드린 재산은 사람을 위해 사용할 수 없다”는 전통을 지킨다는 구실로 부모를 부양하지 않아도 된다고 인정해 주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 신 5:16)”는 하나님의 계명을 자신들이 만든 전통을 지키기 위해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을 다하여 지켜야 할 계명은 소홀히 하고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기 위한 전통에만 열심이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한 전통이 우리에게는 없을까? 지식을 채우는 성경공부에는 열심이지만, 정작 배운대로 순종하라는 단순한 명령에는 게으르지 않는가?
 
 
-주님께서는 씻지 않은 손에 닿은 음식이 부정해 지고 그 부정한 음식이 몸에 들어오면 사람을 부정하게 한다는 전통의 가르침이 참으로 유치한 발상임을 드러내신다.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것은 입 밖으로 나오는 더러운 말과 불의한 행동이기에 이것들이 나오는 마음이 문제임을 강조하셨다.
 
*하나님 앞에서 형식에 치우진 정결함의 허무함이 단번에 드러나고 정결하지 못한 마음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주님의 가르침을 듣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걸림”이 되었다. 새번역은 “분개”하였다고 번역하였다. 나는 주님의 가르침을 읽고 들을 때 나의 연약함이 드러나 분개하는 삶이 아니라 말씀앞에 연약함을 내려놓고 주님의 긍휼하심을 간구하며 회복되기를 사모하는 삶이기를 소망한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 맹인은 누구일까? 하나님이신 주님 앞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빙자한 장로들의 전통을 고집하는 이가 맹인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한계와 무지, 무능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이는 영적인 맹인이다.
 
*자신의 지식으로 끝까지 사람들의 선생되기를 고집하며 정작 하나님으 ㅣ말씀 앞에 겸손하지 않는 교만한 지식인은 모두 맹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심으신 적이 없는 것들이다. 포기하지 않는 자신의 교만한 마음과 지식, 전통은 멸망으로 떨어지게 하는 지름길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르치는지, 전통을 가르치는지 잘 분별하여야 하겠다. 나 자신도 말씀을 가르치는 것에 생명을 걸어야 하겠고, 기독교적 전통과 문화가 말씀의 권위보다 위에 있지 않도록 분별해야 하겠다.
 
*내가 가르치는 길이 사람의 영광을 덧입는 영광의 길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이어야 함을 늘 잊지 않겠다.
 
 
 
*주님, 하나님의 말씀보다 전통이 위에 있지 않게 하겠습니다.
*주님, 맹인되어 맹인을 인도하지 않도록 늘 주님가신 길을 바라보는 분별함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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