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산 위에서 주님의 영광, 산 아래에서 주님의 십자가… [마 17:1-13]
 – 2023년 03월 05일
– 2023년 03월 05일 –
위대한 제자도를 선포하신 주님께서 세 제자를 구별하여 “산”에 오르신다. 그곳에서 제자들은 세 차례의 신비한 현상을 경험한다. 예수님의 변화, 모세와 엘리야의 출현, 하늘의 목소리가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하지만 산을 내려올 때 주님은 세 제자들에게 철저한 함구를 명령하신다. 제자들은 산에서 엘리야를 보았기에 종말의 도래를 확신했지만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 성취하셔야 할 메시아 사역이 아직 남아있다. 이를 위해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신다.
 
공관복음 모두 동일한 순서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신앙고백과 수난 예고, 그리고 변화산 사건을 소개한다. 또,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세례 받으실 때 하늘에서 선포된 신적 계시가 다시 나타나신것처럼 주님의 하나님의 아들되심이 확인되고 강조된다. 무엇보다 수난 예고로 인해 침울하고 의기소침해져 있을 세 제자들에게 주님의 주님되심의 영광스러움을 보여 주시며 마음을 다잡게 하신다. 이 영광스러운 변화는 결국 수난 이후 있을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게 한다.
 
 
 
1.엿새 후에…..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1절)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신 엿새 후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이들 세 제자는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에(막 5:37), 잡히시기 전날 겟세마네에서 기도할 때도(마 26:37),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하며 앉으셔서 통곡하실 때도(막 13:3) 함께 했다.
 
그러고 보니 이들 세 제자들은 참 특별하다. 오늘날 표현으로 “핵심 멤버”인 듯 하다. 또한 “엿새 후에”라는 기간은 고난받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들은 제자들의 마음이 조금 진정될 만한 시간인 듯 하다. 더불어 출 24:15-16에 모세가 산에 올랐을 때 구름이 엿새 동안 가리다가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도 “엿새 후”라는 표현이 나온다. 즉, 변화산에서의 주님을 시내산에서 모세가 만난 하나님의 현현에 대한 사건과 연결 시키려는 의도가 딤긴 것이라고 해석한다. 모세도 시내산에 오를 때 세 사람과(아론, 나답, 아비후) 함께 동행하였다(출 14:1,9절)
 
 
 
2.율법과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신 영광의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2-4절)
산에 오르신 주님께서 변화되신 모습은 주님께서 신적 존재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특히 “해 같이 빛나는 모습”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의 모습과(출 34:29-35) 연결된다. 또 옷이 희게 변한 것은 주님께서 천상의 존재임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주님께서 변형되신 것과 더불어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모세는 율법,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이고 둘 다 그들의 시신을 이 땅에 남기지 않았다. 무덤이 없다. 그들과 대화하시는 모습은 주님께서 율법과 선지자의 모든 가르침과 예언을 성취하시는 분이심을 드러내고, 주검을 남기지 않았기에 주님의 부활을 예시하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이 모든 일은 메시아가 임재한 종말에 이루어질 일이었기에, 주님의 이런 모습은 곧 종말의 도래를 확인하여 주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선생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여기에다가 초막을 셋 지어서, 하나에는 선생님을, 하나에는 모세를, 하나에는 엘리야를 모시도록 하겠습니다.”(새번역_4절) 라고 하였다.
 
베드로의 이러한 모습은 아직도 그가 주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줌과 동시에 칭찬과 책망을 동시에 들었던 단순하고 순수한 베드로의 열정을 격려해 주시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베드로의 언행은 여전히 주님의 십자가 여정의 길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주님께서는 이 산에 머물러 계셔야 할 분이 아니라 산 아래로 내려가 십자가를 지셔야 할 분이심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드러내시며 격려하시지만, 제자들의 이해가 부족하여 변화하신 주님의 모습을 보고서도 여전히 메시아 되신 주님에 대한 이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나도 언제든지 베드로처럼 나의 지식과 이해의 한계 안에 주님의 주님되심을 끼워 맞출 수 있다. 나의 이해의 한계안에 주님을 가둔다면 결국 베드로와 같이 주님에 대한 오해와 주님의 일에 대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3.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5-9절)
구약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결국 구름 가운데서 들려오는 음성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틀림없다. 또 놀라운 것은 구름 속에서 들리는 소리의 내용이 주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의 선언(3:17)과 일치한다. 여기에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말씀이 추가되었는데, 이는 신명기 말씀에 대한 성취이다. “여호와께서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킬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신 18:15)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말은 제자도의 핵심을 보여준다. 진정한 제자도는 주님의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로막지 않는다. 주님의 고난과 죽음의 길을 인정할 뿐 아니라 주님께서 직접 강조하여 가르쳐 주신 “누구든지 내 뒤에서 따라오기 원하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라”(16:24)는 아버지의 명령을 지킨다(17:5).
 
 
*이와같은 초월적인 하나님의 현현은 인간의 두려움과 경외함을 동반한다. 누구라도 똑같다. 그래서 제자들이 두려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눈을 들어 바라보니 주님 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주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초자연적인 놀라운 경험을 산 위에서 하고 “산 아래로” 내려온다. 변화산 산상이 제자들과 주님이 거하여야 하시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높고 높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낮은 이 땅에 내려오신 것처럼 변화산은 우리가 거할 곳이 아니라 이 땅이 우리가 살아내야 할 곳임을 분명하게 알려 주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고난받는 메시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동시에 자신들이 기대하는 메시아 상에만 집착하고 있다. 변화산 위에서의 변화는 제자들에게 여전히 자신들만 기대하는 십자가의 여정을 바라보도록 고착시킬 가능성이 크기에 주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주님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부족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고난과 어려움이 다가올 때 우리는 금새 우리가 가야할 좁은 길을 멈칫 거린다. 하지만 이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달려가야 할 길이다.
 
 
 
4.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는가?(10-13절)
제자들이 주님께 질문했다. “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는가? 주님께서는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게 된다. 그런데 이 땅은 이미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하였고 예언대로 엘리야가 왔지만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세례 요한은 고난을 받을 것이고 인자도 세례 요한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말라기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선지자 엘리야가 먼저 올 것을 예언하였다(말 4:5).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가 올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기대는 성경에 기초한 것이므로 이 자체만으로는 이미 문제가 없다고 하셨다. 주님께서는  엘리야의 도래는 더 이상 미래적 사건이 아니고, 그렇다고 그 엘리야가 환상 가운데 나타난 엘리야도 아닌 이미 역사 가운데 실제 인물로 왔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따라서 엘리야의 회복하는 사역은 말라기가 예언한 반대로 세례 요한이 와서 성취한 것이다. 하지만 서기관들은 그를 거절하여 죽였고, 결국 메시아가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메시아를 거절하고 있는 것을 말씀하셨다(12절). 또한 예수님께서는 엘리야의 도래 목표는 메시아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의 고난과 죽음을 전조하는 것임을 피력한다(12절).
 
 
 
나는?
-오늘 본문은 변화산에서 나타난 두 인물 곧 모세와 엘리야를 통해서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해석적 대화가 이어진다. 5-9절에서 모세는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신명기 말씀을 통해서 이제 예수님은 새 계명을 주신 왕이시니 그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10-13절 말씀을 통해서 엘리야는 세례 요한과 연관하여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며 그의 길을 예비한 것과, 고난 받는 메시아임을 나타난다. 이 두 인물이 결국 율법과 선지자를 상징하고, 결국 모세가 예표한 인물, 여호와의 날이 오기 전에 나타난다는 엘리야, 모두 다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예언된 오리라 한 그 메시아가 맞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중요한 것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대표하는 제자 그룹이 주님을 어떻게 따라가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정표와 같은 말씀이기도 하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 “산 아래에서(일상의 자리에서)” “주의 말씀을 들으며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이 바로 그것이다.
 
-은혜를 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를 따라 증언하고 증거하는 사명의 삶을 사는 것이 제자의 삶이라는 것이다.
 
 
*산 아래에서 주의 말씀을 들으며 살아내는 제자의 삶을 굳게 붙잡고 나아가리라. 이것이 곧 제자들이 지고 걸어야 할 “자기 십자가”가 아니겠는가!
 
 
 
*주님, 영광과 은혜의 자리만 고집하지 않고 순종의 일상을 주의 말씀을 들으며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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