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두 제자 vs 두 소경, 각각 주님을 바라보는 마음…[마 20:17-34]
 – 2023년 03월 13일
– 2023년 03월 13일 –
주님께서 세 번째로 수난 예고(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셨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런 스승 앞에서 서로 자리다툼을 벌인다. 주님의 긍휼을 바라보며 나온 두 소경의 모습이 이들의 행동과 비교되면서 주님을 따르는 참 제자의 태도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1.세 번째 수난 예고(17-19절)
제자들에게 따로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고 하신다. 이번에는 더욱 자세하게 재판 절차와 자신이 당할 일을 말씀하시고 처음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을 밝히신다.
 
이는 주님께서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순종하시는 모습을 보이시는 것이다.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한 주님의 의지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님을 사랑하신 다는 것과 또 부활의 약속이 있었기에 가능한 순종이었다.
 
*그렇기에 제자들도 주님의 이와 같은 모습을 따라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려고 의지를 다졌어야 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 끝까지 순종 하시려는 주님을 따라 우리도 끝까지 순종하는 것에 의지를 다해야 한다.
 
 
 
2.수난 예고를 듣고서도(20-28절)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고 꾸중하신 것을 보고도, 또 세 번째 수난 예고를 들었음에도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어머니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왕권을 차지하면 가장 높은 자리 두 자리를 달라고 구한다(20-22절).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의 참 의미, 그 메시아의 의미를 잘 몰랐기에 세상 나라에서나 얻을 구 있는 것을 주님께 구한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처럼 혹시 나는 자녀들을 위해 주님께 구할 때 주님의 길과 상관없이 내가 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구하고 있지는 않는가?
 
*내 자신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이 임하기를 기도하면서 내심 나의 영광과 나라를 구하지는 않을까? 야고보와 요한, 그의 어머니의 모습은 어쩌면 나의 모습일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길을 기록된 말씀으로 보고 하실 때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는 것은 거절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고집하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신앙을 고수하고 있지는 않을까?
 
 
주님께서는 이들이 주님의 수난의 잔을 같이 마실 수 있냐고 물으셨다. 이에 야고보와 요한이 기꺼이 마실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우리는 잘 안다. 훗날 주님께서 자신들의 기대와 다른 메시아의 모습으로 드러나시자 도망치고 만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22-24절).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헌신은 입술에서만 맴돌다가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임을 잊으면 안 된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이 힘과 권력으로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과 다르다.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이다(24-27절). 제자들은 어처구니가 없이 로마의 가혹한 통치에 시달리고 있으면서 그들과 똑같은 통치권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힘이 아닌 자기 부인의 사랑으로 역사하는 나라이다. 섬김으로 채우는 나라이다.
 
 
주님께서 분명하게 선언하신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28절)
 
뒤늦게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가 주님께 청탁한 사실을 안 제자들은 분개했다. 모두 같은 마음이라는 의미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올라가시는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이 지독히도 외롭게 보인다. *나는 주님의 길을 어떻게 따르고 있을까? 참… 생각이 많아지는 아침이다.
 
 
 
3.긍휼을 구하는 두 소경(29-34절)
여리고에서 일어난 일이다. 큰 무리가 주님을 따르는 와중에 세상이 철저하게 외면한 두 소경의 절규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헛된 꿈을 꾸는 제자들이나 큰 무리에게는 거추장스럽기 그지 없는 장애물로 보였겠지만 주님은 두 소경의 외침을 들으시고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로 여기셔서 가던 길을 멈추시고 그들을 불러 주신다. *주님은 이처럼 가난하고 애통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이들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여리고는 스스로 재건할 수 없는 멸망과 저주의 상징이 깃든 도시이다(수 6:26). 두 소경도 주님의 도움이 없으면 여리고처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재건할 수 없는 이들이었다. 하나님의 저주받은 자 인것처럼 사람들에게 낙인 찍혀 무시 당하며 사는 인생 이었다.
 
*그런데 이 두 소경은 주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아”로 고백하며 주님께 자비와 긍휼을 소리쳐 구했다. 19장에서 모든 율법의 조항들을 다 지켰다고 자부했던 부자 청년이 떠오른다. 부자 청년은 주님을 “선한 선생”으로 고백 했을 뿐이었다. *하나님 나라에서 누가 진정으로 소경되었고 나중 된 자 같을까?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사력을 다해 소리치는 두 소경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주님께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것을 꾸짖는 제자들처럼 자신들의 구원의 소리를 잠재우는 무리의 꾸짖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큰 소리로 부르짖어 간구하는 그 모습을 상상해 보라!! *나는 이처럼 주님을 간절하게 찾으며 부르짖고 있을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시는 주님의 물음에 두 소경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가장 높은 두 자리를 구하여 세속적인 영광을 요청한 제자들과 달리 그저,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33절)”고 대답했다. 두 소경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긍휼이고 메시아를 통해 약속된 치유의 역사의 당사자가 되는 것이었다.
 
*어쩌면 마태는 가장 높은 자리를 구한 두 제자와 그들의 어머니의 모습과 곧이어 메시아로서의 증거였던 단지 눈을 뜨기를 원한 두 소경의 모습을 비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정말 눈 뜨기를 구해야 할 자는 제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두 소경은 고침을 받은 즉시 “곧” 주님을 따랐다(34절). 어느새 멸시받던 소경에서 열 두 제자들을 제친 참 제자의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꼴찌가 첫째가 되는 순간이다.
 
*또 분명하게 깨우치는 것은 자기 운명에 대한 처절한 절망 없이는 하나님 나라의 합당한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시는 “자기 부인”만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제자된 삶의 출발점이자 기반이다.
 
 
 
나는?
-본문에는 두 종류의 소원이 언급된다. 세 번째 수난 예고를 들었음에도 자신들이 예루살렘에서 높은 자리에 앉게 해달라는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의 소원과 두 소경의 간절한 “눈 뜨기를 원하는” 소원이다.
 
-어쩌면 이리도 다를까? 예수님과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 제자들은 먼저 선수를 빼앗긴 것에 분노하였. 이는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가 당당히 높은 자리를 요청하는 마음과 별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자들은 주님을 자신들의 출세와 성공의 디딤들로 여기고 있었고 이를 위해 지금까지의 모든 고생을 감수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이다.
 
-그런데 두 소경은 다르다. 이들은 주님을 향해 구하는 소원이 입신양명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살고 싶은 것”이었다. 제대로 눈 뜨고 제대로 바라보면 살고 싶은 간절함이었다.
 
-그들은 소경이었지만 주님을 메시아로 바라보았고, 제자들은 자신의 스승을 자신들을 입신양명 하게 해줄 존재로만 보았다는 것이다.
 
*나는 과연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목사로서 20여년의 삶을 살고 있는데 과연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두 소경이 바라보았던 “생명을 주실 유일하신 메시아, 나의 그리스도”로 바라보고 있을까?
 
*새삼스레 두 소경의 태도가 도전이 되는 아침이다.
 
 
 
*주님, 입신양명의 디딤돌로 내딛는 주님이 아니라, 나를 살려주실 생명의 주님으로 믿고 따르겠습니다. 바라보겠습니다.
*주님, 자기 부인의 삶이 너무도 어렵겠지만, 목사로 부름받은 삶, 후회하지 않도록 섬기며 사랑해 보겠습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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