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성전을 청소하시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마 21:12-22]
 – 2023년 03월 15일
– 2023년 03월 15일 –
예루살렘 입성 후 주님께서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성전이었다. 그곳에서 더럽혀져 있는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고 병든 자들을 고쳐주신다. 그리고 입성 때 외쳐졌던 “호산나” 고백이 어린아이들의 입술을 통해 다시 울러 퍼진다. 이에 종교지도자들은 분노한다. 그들의 분노를 뒤로하고 성 밖으로 나가셨다가 다음 날 다시 들어오시면서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자 말라 죽는다. 이를 이상하게 바라보며 이유를 묻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믿음을 교훈하신다.
 
 
 
1.성전 사역(12-17절)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시자 마자 세 가지 상징적인 행동을 하신다. “입성, 성전청결, 무화과나무 저주”가 그것이다. 성전청결은 오랫동안 부패하고 마비된 성전유대교의 종말을 고하는 사건이다. 무화과 나무가 마른 것도 이것을 뒷받침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성전으로 새로운 나라를 가져오신 다윗의 자손 메시아이다. 이스라엘은 열매 맺기를 실패했지만, 이제부터 예수 공동체인 제자들을 통해 생명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성전청결 사건은 사복음서 모두 다룬다. 그런데 비중은 조금씩 다르다. 마태와 누가는 짧게 두 구절로 전달하고 마가는 주님께서 오후에 성전에 잠깐 방문하셨다가 다음 날 다시 성전에 들어가신 것으로 기록한다. 성전 뜰에서 유월절 제물을 파는 장사치들, 성전 화폐 환전상들이 좌판을 깔았다. 이런 성전 뜰은 시장을 방불케 했다. 그리고 제물을 사고팔고 환전하는 일에는 언제나 불법이 개입하기 마련이었다. 마가는 주님께서 이런 매매상들과 환전상들을 내쫓은 것을 기록했다. 요한은 이것에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소와 짐승들을 내쫓으셨다고 기록한다(요 2:15).
 
주님의 이러한 행동에는 매우 중요한 상징성이 담겨있다. 지금껏 메시아 사역을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게 진행하였는데 대단히 과감하게 드러내고 행동하신 점이 특이하다. 주님의 적극적인 행동은 대단히 충격적이고 혁명적이지만, 이런 행동으로 오랫동안 거대한 상권이 형성된 성전 뜰의 매매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상인들은 철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행동을 하신 것은 역시 “예언의 성취”를 위해서이다. 주님께서는 이사야(56:7)와 예레미야(7:11)의 예언을 인용하여 자신이 갖는 행동의 의미를 밝히신다. 이는 타락할 대로 타락한 성전 유대교의 종말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행위셨다. 제사 제도와 전통은 철저하게 지켰지만 하나님을 향한 참 신앙과 경건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성전의 기능은 이미 상실되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자리가 아니다. 성전은 강도의 소굴이 되었고 종교지도자들의 탐욕과 권력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가장 거룩해야 할 자리가 가장 타락해 버린 것이다. 주님께서는 타락한 성전 종교의 종말을 고하고 자신의 몸으로 성전을 대체하실 것이다.
 
 
그런데 마태는 성전을 청결케 하신 주님께서 곧바로 맹인과 저는 자들을 치유해 주신 사건을 이어서 기록했다. 이 사건은 공관 복음에서 유일하게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치유 사건이기도 하다.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이 치유가 가져온 파장은 만만치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입성하실 때 어른들이 외쳤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외침을 어린아이들이 그대로 따라 외친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매우 당황하였다. 철부지 힘없는 어린아이들에게 화를 냈다(15절). 주님께서는 시편 8:2을 인용하시면서 그들을 책망하신다(16절). 종교지도자들이라면 당연하게 알고 있어야 할 말씀을 인용하며 그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고 책망하신 것이다.  그들의 명예와 자존심에 직접적인 상처를 입히신다. 작심 하신듯 종교 지도자들과 충돌하신 것이다. 주님과 그들과의 긴장감이 팽창해져 간다.
 
*주님께서는 강도의 소굴을 향해 채찍을 드셨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할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전락시켜 버린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심판이셨다. 부패하기만 한 성전의 임박한 종말을 예고하시는 상징적인 행동이셨다. 단지 성전청결이 아니라 성전을 척결하세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이신다. 성전의 유효기간은 끝났다. 이제 새로운 성전 되시는 주님께서 새롭게 세워질 것이다. 주님께로부터 세워진 교회위에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가 임재하실 것이다.
 
 
*성전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맹인, 저는 자들이 치유 받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생동하여 회복이 일어나는 곳이어야 한다. 어린아이들이 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하고, 찬양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어야 한다. 이와 같은 곳에서 종교지도자들의 탐욕을 채우는 부조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고 사람의 욕심만 가득 찬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전에서 제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절차를 이용하는 제사장들의 타락과 헛된 권위주의가 강해질 수록 겉모양은 화려해지고 마땅히 있어야 할 영적 생동함은 사라진다.
 
*목회와 교회 공동체의 존재 목적은 무엇일까? 증인이 되라 하셨고(행 1:8), 선한 일을 열심히 하라고 했으니(딛 2:14) 단지, 전도 열심히 하고 구제를 아낌없이 행하는 교회가 되라는 말일까? 그렇지 않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사라믕로 세우는 것, 예배당에서 거룩한 성도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거룩한 성도로 살아내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성도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교회가 아닐까?
 
 
 
 
2.무화과나무를 향한 저주(18-22절)
이스라엘의 심판을 선포하던 선지자들처럼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여 마르게 하심으로써, 제의만 번창한 성전 제도의 철저한 심판을 상징적인 행동으로 보여 주신다. *갈수록 화려함을 추구하는 외형과 예배에 주님의 마음이 깃들어져 있는지 돌아보고 돌아보아야 한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예수와 제자들이 다시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온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무화과나무 사건은 제자들을 위한 사건이었다.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찾지 못하자 대뜸 그 나무를 저주하신다. 그러자 곧바로 나무가 말라비틀어진다. 한편 마가는 이 사건을 시차를 두고 기술하는데, 주님께서 밤에 베다니로 가실 때 저주하고 다음 날 아침에 제자들이 마른 것을 확인하였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말라 죽게 한 것은 매우 중요한 상징성을 갖는다. 맡캐는 전날 성전 청결 사건을 통해 성전의 기능이(만민이 기도하는 집) 완전히 마비된 유대교의 실상을 고발하였다. 그리고 그 사건과 이 이야기를 하나의 사건으로 묶는다. 무화과나무는 포도나무와 함께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이다. 나무의 풍성한 열매는 이스라엘의 번영과 축복을 상징하는데, 이것은 오직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만 가능하다.
 
*무화과나무는 열매가 먼저 나오고 잎이 나오기 때문에 잎이 무성하다는 것은 당연히 열매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주님께서는 무화과나무를 보았을 때 잎이 무성하여 다가가신 것이다.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겉만 화려하고 생명력은 없는 타락한 성전 유대교의 실상을 대변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열매를 요구하였으나 내놓을 수 있는 열매는 하나도 없었다. 유대교는 철저하게 실패한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를 보면서 놀라는 제자들이 주님께 물었다. “무화가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20절)” 이 물음에 대해 무화과나무를 즉시 마르게 하신 주님의 능력을 믿는다면, 제자들도 주님이 행하신 것 보다 더한 일을 제자들이 할 수 있다고 하신다. 이를 위해 “믿음이 있어야 하고 의심하지 말아야”할 것도 당부하신다(21절). 여기에 제자들에게 기도할 때 믿음으로 구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신다(22절). 주님께서 갑자기 “믿음”을 강조하신다. 문맥의 흐름을 따르면 앞으로 제자들은 유대교가 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성전 유대교가 완전히 무너지고 새롭게 세워질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말이다.
 
*예수님을 성전으로 삼은 믿음의 공동체는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고 그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감람산까지 옮길 수 있을 만큼, 지금껏 성전중심의 쇠락한 유대교가 보여주지 못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역사를 발현시킬 것이다.
 
 
 
나는?
-성전청결과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은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 그것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탐욕의 성전이 되어버린 성전을 척결하실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겉만 화려하고 열매 없는 성전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한다.
 
-이미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을 향해 채찍을 드심으로 더는 건물 성전에 임재하지 않으실 것을 암시하신다. 그 성전이 상징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함으로 그 효력이 다했다. 이제는 새 성전 되신 예수님을 통해 세워진 주님의 몸된 교회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것이다.
 
-성전을 척결하시고 맹인들과 저는 이들을 치유해주신 사건 또한 중요한 상징성을 갖는다. 다윗은 맹인들과 절름발이들을 성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삼하 5:8).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성전안에서 영접하시고 고쳐주셨다. 그것을 본 종교지도자들은 분개했으나 어린아이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찬양했다. 마치 성전의 주인이 종교지도자들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된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유대교의 성전에서 사라져 버린 연약하고 소외도니 자들을 환대하고 회복시키며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찬양의 하모니가 주님 앞에서 드높이 울려 퍼졌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 이와같은 회복과 치유, 환대와 섬김, 기쁨과 찬양이 울려 퍼지고 오직 주님의 이름으로 차고 넘쳐지는 역사가 끊이지 않기를 간절히 사모한다.
 
 
*또 주님으로 인해 새롭게 세워질 교회 공동체는 장사하고 율법으로 정죄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기도하고 구원하며 치유하는 만민의 집이 되어야 한다. 새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리는 믿음의 기도가 성전에서의 형식적이고 율법적인 기도문을 대체할 것이다.
 
*성전을 향한 멸망 선언을 잎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으로 재현하셨다. 유대인의 성전에서는 복잡하고 많은 의식들이 넘쳐나지만, 정작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기도조차 드려지지 않는 완전히 퇴색한 장소가 되고 말았다.
 
*주님께서는 열매없고 잎만 무성한 성전다움을 잃어버린 교회 공동체를 인정하지 않으신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라는 새 성전안에서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통해 늘 하나님 나라 공동체 안에 거하겠습니다.
*주님, 열매 없고 화려하기만한 외양을 추구하지 않고 실한 열매가 맺혀지기를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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