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산 자의 하나님[마 22:23-33]
 – 2023년 03월 20일
– 2023년 03월 20일 –
세금 질문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을 받은 바리새인과 헤롯당이 물러가고 사두개인들이 찾아온다. 이들은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님께 부활에 관하여 묻는다. 유대교에서는 부활이 분파를 가를 정도로 민감한 문제였다. 매우 난감한 질문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던진 질문 자체의 오류를 지적하시고 더 나아가 성경에 대한 그들의 무지를 드러내신다. 동시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선명하게 계시해 주신다.
 
‘부활’문제는 그 자체로심각한 주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부활을 반대하는 사두개인들은 비주류였고, 주류인 종교지도자들은 부활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이 주님의 입장을 듣기 위해 고안한 이 질문은 주님의 권위에 치명타를 안길 수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세금문제로는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부활의 문제에서는 사두개인들의 무지를 들춰내신다.
 
 
 
1.사두개인들의 질문 : 부활(23-28절)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 정경으로 인정했다. 그런데 모세오경에는 부활에 관한 교리를 확증할 만한 가르침이 없다고 하여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하여 대를 이어야 하는 수혼법이 부활의 교리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일곱 형제의 아내였던 여자가 일곱 형제가 모두 부활한 후에는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할지 설명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매우 논리적인 의문제기 이지만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고 성경도 모르는 주장이라는 책망을 하셨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성경을 안다고 자처하는 이들이었다.
 
마태는 사두개인들의 특징을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라고 기술했다. 사두개인들은 성전 사역을 책임지는 제사장 가문이 중심축을 이루는 종교지도자 그룹이다. 다른 분파들과는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부활 문제로는 바리새파와 정반대 입장으로 갈등을 빚는다. 이들이 주님께 나와 부활에 대하여 질문을 한다는 것은 이미 바리새인들과 소통하여 주님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부활의 문제는 유대인들에게 신학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문제였다.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 관심이 갈수밖에 없다. 사두개인들이 수혼 제도를 예로 언급했는데, 이 제도는 죽은 자의 이름을 보호하고 조상의 땅과 유산 상속이 단절되지 않으며 여성이 과부로 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에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오늘에도 하나님과 성경을 안다고 하면서도 부활의 능력은 믿지 않고 부활의 소망도 없이 십자가의 길을 거부하는 이들이 많다. 부활은 십자가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또한 아무리 부활을 믿는다고 해도 그 부활의 길인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면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이다. 나는 부활을 믿고 살고 있을까?
 
 
 
2.주님의 대답 :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29-33절)
주님은 일단 질문 자체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신다. 먼저 그들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여 오해 있다고 언급하신다. 모세오경만이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부활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능력으로 빼곡하게 차있는 모세오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부활의 때”는 장가도 시집도 필요없는 상태가 되는데, 마치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땅의 논리와 방식이 그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방식이 새롭게 시작되는 것이다.
 
사두개인의 부활에 대한 인식은 현실의 불완전함과 왜곡에 근거하기에 오해를 낳을 수 밖에 없다. 주님의 가르침은 유한한 땅의 언어로 영원을 표현하기에 하늘의 지혜가 당연히 필요할 수 밖에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얼마지나지 않아 생생하게 주님 자신이 직접 보여 주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너희에게 말씀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고(31절) 물어보신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세오경에서부터 부활을 말씀해 주셨다. 사두개인들이라면 당연히 그 말씀을 읽었을 것임을 지적하신 것이다.
 
그 말씀은 출 3장 6절이다. 호렙산에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으로 계시하셨다. 이 계시에 담긴 중요한 사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각자가 살아낸 역사 속에서 그들 각자가 하나님을 “현재의 하나님”으로 경험한 것이다. 족장들은 과거에 계셨던 하나님이 아니라 “지금 여기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을 경험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 점을 강조하신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32절). 죽은 자의 하나님은 죽음에 갇혀 버린 하나님이다. 하지만 산 자의 하나님은 죽음도 가둘 수 없는 하나님이시다. 부활은 바로 이 살아계신 산 자의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려내시는 것이다.
 
주님께서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오해하고 있다는 말씀은 “죽은 자를 살려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지칭하는 것이다. 사두개인들이 오해한 하나님의 능력은 유한한 육체는 죽음에 갇혀 소멸될 것이나 영혼은 죽음이 가두지 못할 부활을 통해 새롭고 영원한 몸을 덧입게 하시는 것이다.
 
 
 
나는?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다. 그런데 부활에 대하여 질문을 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믿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논리적 이해력의 범주 안에서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되는 것을 받아들인 것 뿐이었다. 그들은 진리를 그대로 믿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논리에 납득이 되는 것을 믿었다. 즉,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은 사람들이다.
 
-더 나아가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을 고수하기 위해 믿지도 않는 신학적인 문제를 꺼내들었다. 자신들이 해석되지 않으면 그 어떤 지식도 인정할 수 없다는 못된 교만이 넘치는 이들이기도 했다.
 
-사두개인들과 같은 모습은 지식화 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들이다. 자신의 이해와 논리가 진리인가의 여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 버린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논리로 이해 될 수 없는 영역이다. 하나님께서 그 무한하고 영원하신 가치를 인간의 언어에 제한시켜 보여 주셨기에 인간의 이해기준으로 하나님의 의도를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이 이 황당한 논리를 믿는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이들이다. 자신들의 논리의 전제가 이미 왜곡되어 있고 흐트러져 있음을 바라보지 못한 것이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소생의 개념으로 이해한 것이다. 지금 현재의 세상이 재현되거나 그대로 이어지는 세상에 불과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명백하게 잘못된 이해였다.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난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들은 시집가고 장가 가서 이루어진 가족관게가 이어지지 않는 부활 세상에 대하여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세상을 상상하고 있었고 자신들이 상상한 세상을 주님께서 만들것이라고 확신해 버린 것이다. 이런 이들이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나는 어떨까? 나는 제대로 알고 있을까? 아니 성실하게 믿고 있을까? 성경에 대하여 알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신뢰하고 있을까? 사두개인들처럼 입술로만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지는 않을까? 신비한 말씀의 깊은 세계를 겸손하게 구하고 찾는 매일 묵상의 여정을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신 것처럼, 오늘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는데 이를 실감하며 믿고 있을까? 과거와 미래의 하나님이 아니라 오늘 현재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말씀 하셨고, 그의 능력으로 부활의 약속을 하셨으니 능히 이루실 것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다.
 
*오늘날은 지식과 이해가 필요한 시대이지만 동시에 믿음이 필요한 시대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해의 전제가 철저하게 실리적이고 경험적이며 논리적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진리에 관해서는 실리나, 경험보다, 이론적 근거나, 논리정연함 보다 “믿음, 신뢰”가 훨씬 더 중요하다.
 
*기록된 말씀을 잘 알고, 그것을 믿음으로 의지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여전히 함께 하여 주시는 분명한 증거가 나타날 것이다.
 
*오늘도 이 믿음으로 살아보련다.
 
 
 
*주님, 사두개인의 논리정연한 말보다, 투박하겠지만 믿음으로 우직하게 살겠습니다.
*주님, 산 자의 하나님이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니이어서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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