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마 23:13-28]
 – 2023년 03월 23일
– 2023년 03월 23일 –
마 23:13-28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주님께서 오랫동안 만연해 있던 종교지도자들의 위선과 교만을 들춰내셨다. 그런데 이것은 그 시대만의 타락과 부패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궁극적인 심판으로서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파괴로 이어지는 심각한 종말적 현상임을 일깨우신다. 얼마나 심각한지 “화 있을진저”라는 형식을 취하여 선포하신다. 일곱 개의 화는 둘씩 짝을 이루어 세 쌍을 형성하고 마지막 일곱 번째 화에서 절정을 이루는 구조이다. 주님의 공생애 사역에서 가장 거친 말들이 쏟아지는 것도 특징이다.
 
*주님으로 인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이들에게 팔복이 선포되었다면 그 나라를 거절한 이들, 특히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일곱 가지 화가 선포 되었다. 천국문을 가로막고, 배나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하며, 맹세로 기만하고, 형식과 겉만 치중하고 내용과 안은 부패하고, 회칠한 무덤과 같은 종교적 위선과 부패로 가득 찬 그들을 처절하게 화를 선언하신다.
 
 
1.첫  번째 화_천국문을 가로막음(13절)
종교 지도자들의 그릇된 해석과 외식적인 행동이 천국의 열린 문을 닫아 버린다. 이에 들어가려는 자들도 막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선언은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신 것과 같은 권세는 아니다. 주님께서는 천국문 앞에서 자기들도 들어거지 않고, 들어가려는 사람들마저 막는다고 하셨다. 백성들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야 할 랍비, 아버지, 지도자를 자처하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 입구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초청하시는 데, 종교지도자들은 가로막는다. 주님의 사역과 반대로 가는 그들의 걸음에 화가 임할 것이다.
 
 
2.두 번째 화_천국문 앞에서 지옥 자식이 되게 함
첫 번째 화와 이어지는 화이다. 이들이 하나님 나라 밖에서 문을 가로막고 자신들의 유대교를 전하며 드러가는 것을 막는다. 더 나아가 육지와 바다를 다니는 수고를 마다 않고 한 영혼을 얻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유대교에 헌신하게 하여 그들의 악한 사역에 동참하게 하여 더 큰 죄를 범하게 만든다.
 
*이를 주님께서는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표현하셨다. 지도자들의 선교 열정은 좋았으나 왜곡된 말씀과 조급한 성과주의에 함몰되어 갑절이나 더 못된 자식을 만들고 있었다. 완고하고 교만한 종교적 열심이 많은 이들을 파멸로 이끌었다.
 
*오늘날의 이단들이 이와 같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순종하기 보다 자기 열심, 자기 해석에 모든 것을 바친다. 지나친 자기 열심은 결국 자기를 무너뜨린다.
 
 
3.세 번째 화_맹세를 남용하는 악(16-22절)
주님은 이 화를 다루면서 종교지도자들을 “눈 먼 인도자”로 표현하셨다. “맹세”과 관련된 화이다. 주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도무지 어떤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하지만 종교지도자들은 “성전과 성전의 금, 제단과 제단의 예물”로까지 맹세하라고 독려하였다. 왜 그랬을까?
 
이렇게까지 맹세를 독려한 것은 그만큼 성전과 성전의 금, 심지어 제단과 제단의 예물까지라고 동원하는 지독한 탐심을 채우기 위해서 였다. 성전 종교가 더 이상 하나님을 예배하는 종교가 아니라 자기 욕심과 탐욕을 채우는 수단이 되어 버린 타락상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다.
 
*특히 성전의 금이나 제단의 예물과 같은 표현은 오늘날 작정 헌금의 불순한 동기와 맞물려 있다. 자신의 성공과 명예를 위해 하나님께서 일하여 주시면 이러 이러하게 드리겠다는 식의 작정헌금 말이다.
 
*이런 난맥상을 보이는 종교지도자들의 악함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결국 맹세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지는 것임을 일깨운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헛된 맹세를 지킬 능력이 없다. 주님꼐서는 이렇게 하나님 나라를 기만하는 “헛맹세”를 완전히 금하셨다.
 
*그리고 도무지 맹세할 필요 없는 진실한 존재로 제자들을 부르신 것이다.
 
 
4.네 번째 화_내용보다 형식을 더 중요하게_십일조의 역설(23-24절)
종교지도자들의 헌금 생활을 꼬집으신다. 본질보다 비본질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지도자들의 외식을 꼬집으신다.
 
바리새인들은 십일조 규정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 채소밭의 아주 작은 농작물이라도 십일조를 하도록 요구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그들의 열정은 단지 문자적으로만 열심이었다는 것이다. 문자적인 준수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들은 문자 이면 속의 율법의 근본 정신인 정의와 자비와 믿음을 무시하였다.
 
*이것은 하나님 보다 사람에게 더 잘 보일려고 했기에 외적인 것과 인간적인 열정에 길들여진 것이다.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열정이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을 얼마나 공허하게 하는지 모른다. 공허해 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은 인정 욕구에 순응하게 된다.
 
*주님께서는 외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문자적 준수를 통해 경험하게 되는 외향적인 것의 의식을 뛰어넘는 내적인 정신을 이루어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외적인 형식이나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내용보다 중요한 것이 되면 안 된다. 우리는 형식이나 제도에 시간과 물질을 쏟아내는 신경을 쓰는 만큼이나 속사람이 변하고 공동체 안에서 정의와 자비, 믿음이 잘 자라는 확인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와 같은 가치를 “십일조”라는 형식에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라는 가치를 부여해 주셨다. 하지만 종교지도자들은 이와 같은 삶을 실패했다. 그들은 ‘십일조’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들이 정의와 긍휼과 믿음을 실천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는 이 가치를 녹여 내는데 실패했다.
 
*종교지도자들이 강조하고 백성에게 강요한 것은 정의와 긍휼과 자비라는 내용이 아니라 철저한 십일조라는 형식이었다. 그들에게 가치보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었다.
 
*형식과 제도가 발전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용과 가치가 더욱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합당하여 가도록 추구하고 또 추구해야 하리라.
 
 
5.다섯 번째 화_겉은 깨끗하나 속은 부패함(25-26절)
다섯 번쨰 화는 종교 지도자들의 “표리부동”함을 다룬다. 정결규례를 문자적으로 잘 지켰으나 정작 그 규례의 궁극적인 의도인 ‘마음의 정결’에는 소홀했다. 잔과 대접을 깨끗이 하는 그들의 마음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했다.
 
*사람은 겉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속는다. 겉으로 보이는 잔과 대접은 늘 꺠끗히 하려고 하는데, 그들의 마음에는 탐욕과 방탕만이 가득해 져 있다.
 
*당시 유대가 그랬다. 주님께서 바라보신 성전의 실상은 그랬다. 화려한 돌들로 치장한 성전과 화려한 형식으로 세워진 유대의 전통은 겉은 깨끗하나 안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했다. *이렇게 이중적이고 기만적인 성전은 무너진다.
 
 
 
여섯 번째_회칠한 무덤(27-28절)
회칠한 무덤과 같은 것은 역시 겉과 안이 다른 것에 대한 화이다. 겉에는 회를 칠한 무덤과 그 안에 있는 부패한 시신의 대조인 것이다. 당시에 무덤에 회칠을 하는 이유는 무덤을 화려하게 또는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곳이 무덤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고 경고하여 부정을 멀리 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회칠한 무덤과 그 속의 썩은 시체…. 온갖 더러운 것들이 분명하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얼마든지 감출 수 있다.
 
 
 
나는?
-말씀을 알아갈 수록 나의 무지함과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말씀을 맡은 자의 사명은 내 자신뿐 아니라 공동체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 책임이 막중하다. 혹 나의 해석과 가르침, 적용들이 천국문을 닫고 잘못된 길로 행하게 하지는 않을까? 행여 나의 왜곡된 가르침이 이어져서 맹신되고 이를 여과없이 전수하여 하나님 나라를 신실하게 살아내려는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지는 않을까? 혹여 내가 성실하게 믿음의 길을 걸으려는 성도들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고 조심스럽게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을 읽고 생각하고 연구하여 내게 맡겨주신 강단에 서려 한다. 늘 서는 강단이지만, 설 때마다 어색하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서야겠다.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공동체로 들어온 이들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것도 막중한 책임이다. 내게 맡겨진 양무리를 잘 먹이고(가르치고)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살피며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감당해야 하리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을 맡았으니 더욱 철저하게 공부하고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 하겠다. 날마다 말씀 앞에 정직하게 반응하기를 추구하고 깊이 연구하며 묵상한대로 살아내야 하겠다.
 
 
*어느 집사님께서 나에게 영광스럽게 “호”를 지어 주셨다. “내섬(가마솥 내, 넉넉할 섬)”이다. ‘크고 풍성한 가마솥’이라는 뜻이다. 집사님은 목자가 양들에게 말씀을 꼴을 풍성하게 준비하기 위해 이처럼 크고 넉넉한 말씀의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지어 주셨다. 생각하면 할 수록 너무도 소중한 의미가 담딘 “호”이다.
 
*”내섬”같은 목사가 되어야 겠다. 그래서 풍성한 말씀의 꼴을 넉넉하게 준비하여 때마다 컵밥이 아니라 따순 가마솥 밥을 지어 내야지… 그러려고 나를 말씀 사역자로 부르셨음을 믿는다.
 
 
 
*주님, 화 받을 삶이 아니라 축복받는 삶을 살도록 하겠습니다.
*주님, 크고 넉넉한 가마솥에 말씀의 밥을 잘 지어 먹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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