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일곱 번째 화_ 착각이 쌓여 완고함이 되고….[마 23:29-39]
 – 2023년 03월 24일
– 2023년 03월 24일 –
일곱 번째 화를 선포하신다. 선지자들의 무덤을 세우고 장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선지자들보다 더 큰 자를 죽일 것이고 그 결과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메시아를 거부한 패역한 예루살렘이 유기될 것을 선언하신다.
 
 
 
1.일곱 번째 화_자신들은 다르다고 착각한 죄(29-36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꾸미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면서 자기들이라면 선지자 죽이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선지자보다 더 큰 자이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죽이고, 장차 예수님의 제자들을 죽이는 일에 동참할 것이기에(34절) 선지자들을 죽인 그들의 조상들과 다를 바 없다.
 
자신들을 선지자들의 후손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심판을 자초하는 조상들의 죄에서는 떠나지 않는다. 선지자들의 무덤을 꾸민다고 선지자의 후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의인들의 비석을 꾸민들 의인이 될 수는 없다. 선지자적인 삶과 의인의 삶은 비석을 꾸며서 되는 것이 아니라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삶을 살아내므로 세워져 간다.
 
선지자들의 무덤과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는 것은 자신들이 이들의 가르침을 따르고 존경하는 사람들임을 백성들에게 드러내어 존영을 받고자 함이었다. 즉, 선지자와 의인들과 자신들이 동류이고 그들의 계승자라는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선지자들과 의인들을 죽인 조상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신들은 그들처럼 실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러한 고백은 결국 선지자들과 의인들을 죽인 조상들의 후손인 것을 인정하는 꼴인 것을 지적하신다. 조상들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을 그러한 죄에서 멀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지적하신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세례 요한을 거부하고 죽였다. 지금은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어떤 분인지도 알아보지 못하며 거부한다. 이런 모습은 조상들의 해우이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까지(역사이래 모든 순교자들을 지칭함) 의인들이 흘니 피가 다 이세대에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겨룩ㄱ 24장은 이러한 주님의 예언이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에 대해 예루살렘의 멸망, 성전 파괴가 이 세대에, 이 세대 안에서 일어나게 될 것을 선포 하신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은 철저하게 착각했다. 자신들의 죄악이 얼마나 뼛속까지 깊게, 그리고 오래도록 이어져 왔는지, 그러나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깨닫지 못한다. 주님의 말씀은 자신들과 상관 없다고 착각한 것이다.
 
*이들의 모습에서 나도 충분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착각하고 오해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말씀을 읽을 때 눈으로 읽는 것이 마음으로 그대로 인지되지 않는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으로 읽히고 들린다. 이와같은 과정이 겹겹히 쌓이면 “착각은 진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말씀을 깨닫고, 말씀대로 살아내도록 도와주시기 위해서 말이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의 깨닫게 하심이 더 깊어져서 나만의 착각이 쌓이지 않게 하실 것을 믿는다. 착각으로 겹겹히 쌓아올릴 수 있는 나만의 진리를 깨뜨려 주실 것을 믿는다.
 
 
 
2.심판 선언(37-39절)
주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선지자들과 주님께서 파송한 이들을 돌로 치는 이들이라고 정의하신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이들을 돌이키게 하기 위해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자녀들을 모으려고 했지만 이스라엘은 끝까지 거절하였음을 상기 시키신다. 이에 예루살렘은 황폐해지고 버려져서 더 이상 하나님의 집이 아닌 “너희 집”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심판 당하여 주님께서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24장부터 시작될 예루살렘 심판의 결정적인 이유를 밝히신 것이다. 그리고 일곱 화에 따른 결과를 선포하신 것이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꼐서 파송한 의인들을 돌로 치는 자들이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통치와 왕 되심을 거절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거역이 한 주번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이 자행되었고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셨음을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하셨다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주님께서 처음부터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려고 오신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선지자들과 의인들을 보내어 기회를 주셨고, 이번에는 친히 직접 오셔서 하나님을 따나 흩어진 자녀들을 다시 하나님의 나라로 초청하려고 오신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은 끝내 거절했다.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과 의인들을 죽인 것 처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거절하고 죽이려는 것에 대한 심판이라는 점이다.
 
*주님께서 선언하신 심판은 두 가지였다.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될 것”과(38절) 동시에 “이제부터 이스라엘은 주님을 보지 못하리라”는(39절) 것이다. 24장으로 이어지는 문맥으로 보면 주님꼐서 다시 오실 때까지 즉 재림의 때까지가 아니라 AD70년 성전이 파괴될 때까지라고 보는것이 더 타당하다. 왜냐하면 주님의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께로 돌아온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심판은 무수한 기회를 받았음에도 돌이키지 않는 이들에게 주어진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 오래 참으시는 사랑에 응답하지 않는 이들이다. 수많은 기회를 먼저 열어 주시는 하나님의 끝이 없는 사랑에도 끝내 거절하는 완고한 이들에게 심판은 예정되어 있다.
 
*지금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어 은혜로 택하시고 부르셔서 그 품에 품어주시고 보해 주시는 기회를 거절하고 스스로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어리석음에 빠져 살 수 있음 깨달아야 한다. 겉으로 하나님의 자녀와 백성이라고 스스로 착각하여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선지자들과 의인들을 죽인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처럼 말이다.
 
 
*착각이 쌓여 완고함이 되고 완고함이 심판을 불러왔다. 오늘 나에게도 이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착각을 깨뜨리시는 성령님의 은혜안에 늘 거하기를 소망한다.
 
 
나는?
-선데이 크리스천이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을 마치 선데이(일요일)에 교회 착실하게 다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이런 착각을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에 놀랄 뿐이다.
 
-경중은 다르지만 자신들은 조상들과 다르다며 착각하는 종교지도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이다.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말씀에 대해 초보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배우거나 훈련을 받는 것에도 미온적이다. 목장모임을 통해 삶의 교훈을 실제적으로 받고 믿음의 끈끈한 공동체안에 거하는 것에도 미온적이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믿음은 여전하다고 착각한다. 혼자서도 충분히 잘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상태에서 만족하고 적당하게 거리를 두며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교회에 들여 놓은 어정쩡한 이들을 위해 지금도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신다. 그들을 통해 암탉이 새끼들을 날개 아래 품음 같이 그 한량없는 사랑과 은혜를 계속해서 흘려보내 주신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바라보는 것에만 만족하며 그 사랑과 은혜 안에 들어오기를 거절하는 것이 이 시대의 완고함이다. 그저 관전하는 것이 만족하며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깊숙히 들어오는 것을 거부한다.
 
 
*더온누리교회는 이제 3년된 교회이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각자를 사랑하시는 것을 보이시고 누리게 하시기 위해 이 공동체로 불러 모아 주셨다.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관전과 관람하는 것에 만족하는 관람석에 앉아있는 성도들을 바라보며 안타깝다.
 
*더 깊은 은혜를 누리고 끝없는 사랑을 누리는 현장에 참여하는 것을 여전히 계산하고 주저한다. 목장모임에, 사역의 현장에, 양육받음과 훈련 현장이라는 영적인 은혜의 필드에 들어서는 것을 주저한다.
 
 
*선데이 크리스천에서 에브리데이 크리스천으로… 관중석에서 현장으로… 오늘부터 한 걸음을 내딛어 보면 어떨까? 내 자신도 더 깊은 은혜의 현장으로 들어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기를 결심해 본다.
 
*착각한 진리가 아니라 보여주신대로, 들려주신 대로, 읽는 그대로 나의 마음에 순전히 자리잡는 진리 안에 거하고 싶다.
 
 
 
 
*주님, 착각하지 않도록 늘 깨우쳐 주십시오.
*주님, 착각이 쌓여 완고한 고집이 되고, 고집이 심판을 불러옴을 봅니다.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는 기회를 늘 붙잡겠습니다.
*주님, 관중석도 좋을 수 있지만 이왕이면 현장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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