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미련한 다섯 여인들과 슬기로운 다섯 여인들[마 25:1-13]
 – 2023년 03월 28일
– 2023년 03월 28일 –
혼인식에 신랑을 맞는 열 처녀의 이야기이다. 혼인을 위해 오는 신랑을 맞이하여 혼례 장소로 인도하는 역할을 통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태도에 대하여 말씀 하신다. 신랑은 밤중에 오지만 정확하게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 열 처녀는 무작정 기다려야 하지만 준비는 철저하게 해야 한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준비는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는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신랑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미련한 다섯이 기름이 떨어져 사러 갔을 때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간다. 뒤늦게 기름을 준비하여 달려온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 문 밖에서 외쳐 보지만 잔치 입장은 거절된다.
 
이 비유의 핵심도 앞의 비유와 동일하다. 재림(파루시아)의 때는 아무도 모르지만 반드시 올 것이고 따라서 제자들은 깨어 철저하게 준비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요청하셨다. 마태는 주님의 임함이 정확히 언제일지 “그 때”는 하나님만 아시지만, 그 날은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에 깨어 준비해야 한다는 주님의 긴박한 가르침을 들려 주었다. 본문 속 열 처녀 이야기를 통해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
 
 
 
1.미련함과 슬기로움의 차이(1-5절)
열 명의 처녀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등을 들고 나갔다. 주님께서는 이들중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롭다고 말씀하신다. 그 기준은 기름을 그릇에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간 이들이라고 하셨다. 미련함과 슬기로움의 차이는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느냐 하지 않았느냐의 차이였다. 결혼식에서 열 처녀의 역할은 밤중에 신랑을 맞는 것이었다. 신랑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은 모두 한결같았지만 신랑이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는 것을 대비한 여인은 다섯 명 뿐이었다. 나머지 다섯 여인들은 신랑이 밤중에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아예 배제 한 것이다. 마치 신랑이 언제 올지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 것이다.
 
*아무리 주님의 재림을 간절하게 소망 하더라도 언제 오실지 알고 있다는 듯한 교만한 태도나, 이에 따른 준비함의 소홀함이 드러나는 나태함이 있어서는 곤란하다.  손에 들린 등불 하나면 충분하다고 여길 정도로 자신들이 예상한 시간에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무모한 믿음이라니… 자신들의 기대와 예측을 맹신하며 이를 믿음이라고 포장하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과 다를 바 무엇인가?
 
*그런데 슬기로운 다섯 여인은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다. 신랑을 기다리다 잠이 들었을 정도로 상당한 시간이 흘렀어도 신랑이 왔을 때 맞이하여 잔치 자리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아마도 남은 밤을 밝히기에 충분한 양이었을 것이다. 신랑이 밤중에 올 것은 확신했다. 그러나 언제 올지는 몰랐다. 그래도 등을 필요로 하는 밤에 올 것을 확신했기에 충분한 양의 기름을 준비했다. 신랑이 어느 때 와도 무방하다.
 
 
*주님의 재림은 그 누구도 생각지 않은 때 이를 것이다. 누군가가 주님께서 오실 때를 예상할 수 있다면 그는 그 때에 맞춰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림의 때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유일한 대비책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재림의 때만 예상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재림 하신 주님께서 심판대 앞에 선 자들에게 어떤 평가를 하실지도 예상할 수 없다.
 
 
 
2.재림은 각자 책임 져야 할 영역(6-13절)
신랑의 도착이 지체되자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여인들의 등불이 꺼져 간다. 미련한 여인들이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지혜로운 여인들에게 기름을 좀 나누어 줄 것을 요청하나 냉정하게 거절당한다. 신랑을 잔치 자리까지 인도할 때 기름이 부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혼인잔치가 준비된 곳까지 거리가 상당했던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지척이었다면 기름을 나누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기름을 파는 자들에게 가서 구하라고 권면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신랑이 온다는 예비 소식과 신랑이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겠지만, 별 수 없이 미련한 다섯 여인들은 기름을 구하러 달려 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련한 처녀들도 신랑을 맞으러 나갔고 등불도 준비했다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 주님의 제자라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그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을 사는 것을 상징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름은 무엇을 상징할까?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기에 정확하게 알 수 없겠지만, 지금까지 주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인 것이 분명하다. 종교와 신앙의 형식과 틀을 갖추고 신앙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정작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한 무지, 무관심한 것을 가리킬 수 있다. 또, 혹시 그 뜻을 알고 있더라도 그에 따라 살아가는 데 소홀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칭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어리석은 다섯 처녀에 대한 주님의 선언은 충격적이다. 잔치집의 문을 열어 주지 않으면서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12절) 라고 선언하셨다. 이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일방적인 관계와 자기 확신에 빠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주님의 외침이셨다.
 
 
 
3.준비된 자가 누리는 평안
신랑이 지체되자 열 명의 여인들이 모두 잠이 들었다. 신랑을 기다리다 모두 잠이 들었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늘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며 기름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역설적으로 언제나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깨어있으라는 말은 늘 긴장하며 종교적 활동에만 집중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아니다. 깨어 있다는 말은 이런 뜻이 아니다.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어느 때에 재림하시더라도 무엇을 하든지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종교적인 활동에 치우치는 것은 오히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어리석은 여인들과 같다. 결국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 삶”을 평가 받을 터인데 일상에서 이를 순종하며 산 흔적이 없다면 그때서야 기름을 준비하러 달려간 여인들과 다를 바 무엇이겠는가!
 
 
 
나는?
-재림을 준비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 책임을 져야 할 일임을 보여준다. 공동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공동체의 명성이나 가족 구성원의 믿음, 이전의 신앙 경력 등이 재림하신 주님을 영접하는데 도움을 줄 수 없다.
 
-교회에 오가며 소속을 두고 목장이나 전도회에 등록되어 연대감을 가지고 있어도 주님 앞에 결국 홀로 서야 하는 준비를 성실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구원은 결국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 지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삶은 그의 오심을 준비하는 것 소홀히 하지 않는다.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신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분하다.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뜻을 따라 성실하고 충실하게 하루 하루 살아내면 된다.
 
 
-등불을 든 열 명의 여인이 신랑의 도착을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고 말았다. 상황에 따라 잠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열 명에게 똑같은 잠은 아니었다. 신랑이 언제 오든 깨어 맞이 할 수 있는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여인들에게는 평안한 잠이겠지만, 자신들이 예축한 만큼만 준비하고 깜빡 잠든 여인들에게는 깨어나는 시간이 곧 근심과 후회의 잠이 될 것이다. 대책없는 잠이 들어 버린 것이 된다.
 
-깨어 있으라는 명령은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깨어서 감시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언제 오시더라도 얼마든지 맞이 할 수 있는 준비를 해놓으라는 의미이다. 늘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평안한 삶이 될 수 있겠지만, 준비 없이 일상을 보내는 이들에게는 재림의 때가 곧 절망의 때가 되어버리고 만다.
 
 
 
*주님, 깨어 있음은 곧 일상에서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내는 것임을 재차 깨닫습니다.
*주님, 언제 오실지에 관심을 갖기 보다, 어떻게 준비하며 살 것인지에 더 마음을 쏟으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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