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유월절 만찬, 흩어짐과 재회의 예고 [마 26:17-36]
 – 2023년 04월 01일
– 2023년 04월 01일 –
유월절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나누며 그들 중 하나가 자신을 팔것을 말씀 하신다. 제자들은 서로 자신은 아니라고 하고 유다도 역시 그렇게 말한다. 그런 못난 제자들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언약을 맺어주신다. 유유월절 만찬을 마치고 가신 감람산에서 주님꼐서는 제자들 모두가 자신을 버릴 것이라고 예언 하셨다. 역시 제자들은 하나같이 강하게 부정한다.
 
유월절 준비(17-19절), 유다의 배신 예고(20-25절), 유월절 만찬(26-30절),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을 예고하심(31-35절)이 숨가쁘게 흘러간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시간이 이제 곧 임박한다.
 
 
 
1.마지막 유월절 준비(17-19절)
주님께서 제자들과의 마지막 밤을 유월절 만찬으로 함께 보내신다. 주님에게는 이 모든 시간들이 철저히 홀로 감당하는 시간이었다. 매 순간이 고통스러웠겠지만, 이 모든 순간들을 지나고 난 후 제자들과 다시 만날 영광스러운 갈릴리에서의 시간을 바라보며 꿋꿋하게 견디고 계셨다.
 
유월절 절기 기간 동안 예루살렘은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순례객들이 절기를 지키기 위한 장소를 요청할 때 조건 없이 내어 주어야 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시에 왔으니 당연하게 누려야 할 권리라고 여겼다. 이와 같은 관습하에 주님께서도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라고 성안에 들어가서 아무에게 가서 말하라고 하신 것이다.
 
 
 
2.유다의 배신을 예고 하시다(20-25절)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준비된 방으로 안내 되었다. 그곳에서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나누시다가 갑자기 입을 여시고 제자들 중 하나가 자신을 죽음에 넘겨줄 것을 말씀 하셨다. 자신은 하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죽음의 길을 가겠지만 그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제자가 받을 형벌을 마음 아파 하셨다. 차리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을 뻔 했다고 말씀하셨다.
 
유월절 만찬에서 굳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배반할 제자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훗날 베드로가 고백한 것처럼 주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를 원하시며 오래참으시는 분이심을(벧후 3:9) 드러내신 것이다. 배신할 제자를 바라보시며 끝까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마음을 잊지 않기를 결심해 본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충격에 휩싸인다. 모두들 “저는 아니지요?”묻는다. 어쩌면 이런 물음 속에 주님을 향한 자신들의 믿음을 신뢰하고 있지 못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제자들이 저마다 “주님”으로 부르며 자신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으려는 고백들을 할 때, 가룟 유다는 유일하게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는 주님을 여러 선생 중의 한명으로만 여긴 것이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기 삶의 주인 혹은 그리스도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가룟 유다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마태는 그가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아니었음을 애둘러 폭로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아니지요?’라는 가룟 유다의 물음에 주님께서는 “네가 말하였도다”라고 하셨다. 다른 제자들의 질문에는 특별한 대답을 하지 않으셨지만 유다를 향한 주님의 대답은 그 자신은 알아 들었을 것이다. 그는 주님을 배반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3.성찬을 제정하시다(26-30절)
주님께서는 유월절 만찬을 행하시다가 빵을 자신의 몸으로 포도주를 자신의 피로 비유하며 거룩한 언약 예식을 진행 하신다. 특히 유월절 만찬을 진행 하면서 식탁 앞에 차려진 음식들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유대의 전통이다. 그 모든 설명들은 출애굽을 기념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것들이었다.
 
이와같이 주님께서는 빵을 자신의 몸으로 포도주를 자신의 피로 설명하며 자신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원의 의미를 가르치신다.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유월절 예식을 제정하신 것이다. 교회 공동체는 주님의 몸과 피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마지막 때까지 되새겨야 한다.
 
주님께서는 유대인의 시간대로 “오늘 낮” 15일이 되면 유월절 어린 양이 되어 그의 몸이 찢기고 그의 피는 전부 쏟아질 것이다. 출애굽 당시 문설주에 발라진 어린 양의 피에 죽음이 유월하였던 것처럼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주님의 피는 죽음을 넘는 죄사함과 구원을 베푸는 언약의 피가 될 것이다.
 
어린 양을 잡는 날에 주님은 최후의 만찬을 제자들과 나누셨다. 자신의 죽음 이후 이 빵과 잔의 의식을 통해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고 기념하여 기억하라고 명령하셨다. 자신의 죽음은 언약의 약속을 이루는 일이며 이 성찬에 참여하게 된 모든 이들은 예수의 피의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가야 하는 운명 공동체이다.
 
 
*성찬은 예수님의 죽음이 제자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보여 주시려고 빵과 잔을 통해 말씀하신 것이다. 구약의 백성들이 유월절 음식을 먹으면서 출애굽의 구원을 기억하고 감사했듯이 제자들은 빵과 포도주를 마시는 성만찬을 통해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 죽음이 가져다준 새 생명을 누리게 된 것이다.
 
*성찬식에 참여하는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은 늘 이 의미를 되새기며 구원받은 기쁨과 나의 구원을 위해 대신 희생하셔야 했던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동참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 이후 부활하셔서 먼저 갈릴리로 가셔서 식사를 준비하셨다. 좌절과 실패가 아닌 회복과 소망, 감사와 감격의 기쁨의 식사 자리였다. 성찬은 고난, 죽음, 부활을 감사하고 재림을 소망하며 오늘을 구원받은 하나님 나라 제자로 살아내도록 촉구한다.
 
 
 
4.제자들이 부인할 것을 예고하시다(31-35절)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찬을 통해 자기 피로 언약을 세워 주셨다. 제자들의 연약함을 주님의 은혜의 희생으로 감당하셨다.
 
제자들의 연약함을 아시기에 그들에게 닥칠 위기와 소망을 함께 말씀해주셨다. 주님을 부인하겠지만, 갈릴리에 먼저 가서 기다리시겠다고 약속해 주신다.
 
제자들은 주님의 수난과 죽으심 앞에 흩어지는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미리 흩어짐을 말씀하시고 갈릴리에서의 만남을 기약하시는 것은 이러한 시련의 때를 잘 견디어 내고 다시 믿음을 가지고 돌아오라는 사랑의 배려이셨다.
 
베드로는 주님을 “모두 버릴지라도, 결코, 죽을지언정”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그는 주님께서 예고하신대로 세 번이나 부인할 것이다. 완전하게 부인한다는 의미다. 베드로는 이런 자신의 모습은 상상하지도 못하고 절대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한 것이다. 그런데 이 장담이 무색하도록 주님께서 예고하신대로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절대 부인해버렸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는 이런 자신감마저 주님의 십자가에 함꼐 못박고 겸손히 주님을 의지하는 자이다. 지나친 자만심으로 다른 이들을 상처주면서까지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믿음의 삶을 살아가며 위기의 때, 고난의 때 잠시 신앙이 흩어질 수 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이런 연약함을 너무도 잘 아신다. 시련의 때이든 회복의 때이든 모두 아시고 언제나 함께 해 주신다. 삶의 위기를 만나 흔들리고 잠시 흩어지는 고난의 시기를 지나더라도 결코 먼저 포기하지 않으시고 회복의 때와 소망의 때를 바라보게 하시며 짙은 어둠과 혼란의 시기를 함께 동행해 주신다. 결국 갈릴리에서(주님의 재림의 때에) 다시 만나게 될 것을 소망삼게 하신다. 그리고 먼저 갈릴리에 가셔서 기다리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주님은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신 후 갈릴리에 나타나셨다. 고기잡고 돌아오는 제자들의 배고픔을 생각하시고 친히 아침식사를 준비하시고 기다리셨다. 그리고 그 날 아침 다른 어떤 아침식사보다 감격스러운 식사를 펼쳐 주셨다.
 
*이처럼 주님 다시 오실 그 때 하늘 잔치를 준비하시고 기다릴 것을 우리에게도 약속해 주셨다. 믿음으로 붙잡고 인내함으로 그 날을 바라보며 잠시 흩어지더라도 그 날(갈릴리의 약속)을 기억하며 견디어보자….
 
 
 
나는?
-말씀을 묵상하며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성만찬의 의미를 좀 더 생각해봐야 했다. 그저 형식적인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의 수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과 승천, 다시오시는 재림의 이야기가 기념되고 기억되는 의미있는 시간들이어야 함을 말이다.
 
-그저 종교적이고 경건한 순서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백, 누군가의 고백, 모두의 고백이 공동채 안에서 나누어지는 성찬이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 오늘날의 성찬 형식으로는 감히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스럽지만, 그럼에도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 감당하셨던 일을 기억하고 기념하면서 자기 신앙고백으로 나누어져야 하는 성찬식이어야 함을 깨닫는다.
 
 
-제자들의 흩어짐과 베드로의 완전한 부인을 보며 나도 역시 상황과 여건이 이렇게 만들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제자들이 강렬하게 부인하고 베드로는 절대적으로 부정했지만, 막상 그 때가 닥치고 상황이 펼쳐지니 베드로는 사람들과 어린 소녀를 피하면서 주님을 세 번에 걸쳐 부인했다. 이런 모습이 나의 모습이고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니 더욱 겸손하게 주님의 이름을 붙잡고 의지하며 “끝까지 신뢰하기를” 포기하기 말아야 한다. 나의 감정과 상황, 나를 향한 세상의 환경에 따라 아침과 저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성령께서 붙잡아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더 솔직한 믿음의 삶일 것이다.
 
-이와 같은 믿음의 자세는 지나친 자만심으로 다른 이들에게 부담과 상처를 주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 연약함을 정죄하고 판단하지 않으시는 주님이시기에 연약하여 잠시 흩어지는 것까지도 이해하시고 갈릴리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미리 알려 주심으로 흩어져 방황하는 제자들이 돌아올 곳을 예비해 주신 것이다.
 
-주님의 사랑은 재림의 약속을 통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잠시 흔들리고 잠시 흩어지고 잠시 부인하여도 재림을 먼저 약속하시고 하늘 잔치 준비하시며 기다리시는 주님이시기에 감격스럽다.
 
 
 
*주님, 잠시 흩어져도 반드시 갈릴리에서(재림의 때에) 먼저 기다리시는 주님을 만날 것을 믿습니다.
*주님, 그렇기에 잠시 부인하고 흩어져도 내 안의 성령께서 내가 믿음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우시고 이끌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저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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