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대제사장 가야바의 관정에서…[마 26:57-75]
 – 2023년 04월 03일
– 2023년 04월 03일 –
 
제자들은 모두 도망쳤다. 홀로 붙잡힌 주님은 대제사장의 공관으로 끌려갔다. 베드로가 멀찍이서 뒤를 쫓을뿐이다. 대제사장들과 종교권력자들은 각본에 따라 재판을 진행하여 일차로 사형을 언도한다. 이에 따라 폭력과 수치를 가한다. 동시에 공관 뜰에 있던 베드로는 종들에게 그들만의 심문을 당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께서 예고하신 대로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주님을 부인한다. 재판정이나 뜰에서나, 주님에게나 베드로에게나 기막힐 일이 벌어진 것이다.
 
 
 
1.가야바의 관정에 서신 예수님(57-68절)
겟세마네에서 붙잡히신 주님은 당시 대제사장 가야바의 관저응로 끌려 가셨다. 이른 저녁부터 흉계를 꾸민 주인공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3-5절). 가룟 유다의 배신은 그들에게 호재였고, 별로 힘들이지 않고 예수님을 대제사장의 관정에 세울 수 있었다. 이날 밤 벌어진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주님을 멀찍이 뒤따라와서 관정이 보이는 뜰 안까지 들어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58절)” 지켜본 베드로의 목격에서 나왔을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은 주님을 자신들의 관정으로 끌어들인 후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즉, 무작정 체포한 후 재판에 필요한 죄목을 찾은 것이다. 사형을 정해 놓고 증거를 찾는 격이었다. 무수한 증언들이 나왔으나 사형에 걸맞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59-60절). 일방적으로 사형이 구형 ㅗ딜 것이지만 이에 걸맞는 증거과 증인이 필요하기에 종교지도자들은 필사적이다. 예수님을 칠 “거짓 증거”를 찾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거짓으로 조작할 뿐이다.
 
미쉬나(랍비들의 구전 율법 규정집)는 사형 재판을 밤에 열지 못하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대제사장과 일부 공회원들은 정식 공회를 열기 전에 주님을 사형에 처할 죄목을 찾을 목적으로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비공식적인 공회를 열어 밤새 심문한 것이다. 이런 편법을 쓰더라도 사형에 해당하는 죄목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결국 그들이 작정한대로 사형에 해당하는 신성모독죄를 뒤집어 씌우고 주님을 때리고 조롱하며 인격적으로 모욕하기에 이른다.
 
 
온갖 거짓 증언들이 난무하나 주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신다(61-63절). 이는 이사야 53:7을 성취하시기 위함이다. 죽음을 피하지 않으시는 적극적인 순종의 모습이다. 모든 굴욕과 고문 앞에서도 굴하지 않으시고 잠잠히 죽음의 길을 가시는 주님의 모습을 잊으면 안된다.
 
또한 심문하는 제사장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왕권을 지니신 전능하신 주님으로 다시 오실 것을 말씀 하신다(63-64절). 종교지도자들, 이 세상의 권세자들이 주님을 심문하고 판결을 내리는 것 같지만 장차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진정한 재판관 되신 주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세상이 말하는 것에 위축되지 말고 온 천하에 주님의 왕권이 드러내실 때를 바라보며 믿음에 굳게 서야 한다.
 
 
 
2.가야바의 관정 뜰에서의 베드로(69-74절)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한(35절) 베드로는 주님의 예고 대로(34절)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다. 예수님을 미워하는 세상 속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각오와 결심만으로 되지 않는다. “깨어 함께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을 견디지 못한다.
 
베드로는 끌려 가시는 주님을 멀찍이 따라가다가(58절) 그 일이 어떻게 되어가나 궁금한 사람들 사이에 함께 앉아 있었다. 그러다 세 번 부인 하고 만다. 멀찍이 구경만 하면 반드시 시험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어정쩡하게 주님을 따라가면 어정쩡하게 시험을 당한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는 단순한 부인에서(70절) 맹세하며 부인하는 것까지 발전한다(74절).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고 저주하고 맹세하여 부인하는 지경에까지 빠진다(74절). 한 번의 단순한 부인이 점점 깊이 빠져 들어가 파국에 이른 것이다. 점점 죄에 죄를 더하기 전에 아직 늦지 않았다. 더 빠져 들면 안 된다.
 
 
주님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던 베드로가 마침내 닭 울음소리를 듣는다. 그 순간 번뜩 뇌를 스쳐가는 주님의 말씀… 베드로가 심히 괴로워하며 통곡한다. 자신의 연약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 자신을 알면서도 사랑해 주신 주님이 생각나서 통곡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닭 울음 소리가 들리며 동시에 뇌를 스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 그 순간 그는 그 말씀에 반응했다. 말씀이 생각났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회개한 것이 그가 비록 실패했지만 즉각적인 회복으로 이끌어 주신 것이다. 가룟 유다와 다른 길을 갈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회개의 눈물이었다.
 
연약함을 깨닫게 하실 때 정직하고 진실하게 반응하는 것이 회복으로 가는 올바른 걸음이다. 인정하고 정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회복과 자유함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나는?
-주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 내가 실패하지 않도록 미리 말씀으로 일러두신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이 다 주를 버릴지라도 자기는 결코 주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결국 베드로는 그렇게 되었다. 이것은 주님의 예언이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정확하게 성취된 것을 보여 주지만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제자가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시며 미리 준비시켜 주신 말씀이기도 하다.
 
-주님은 말씀으로 베드로를 무장시키셨다. 그 말씀이 눈물의 회개로 이끌었다. 주님꼐서는 연약함을 아시고 시험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오늘도 계속해서 말씀으로 무장시켜 주신다.
 
-말씀으로 무장시켜 주신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온전하게 순종하며 오늘 하루를 살아내기를 다시 결심해 본다.
 
 
*또 주님과의 신앙거리가 곧 지금 현재의 신앙상태임을 깨닫는다. 주님과 멀찍이 떨어져 있던 베드로는 결국 단순하게 부인하는 것으로 출발하여 저주하고 맹세 하기까지 부인하기에 이른다. 멀리 떨어질 수록 신앙상태는 한번의 도발에서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릴 수 있다.
 
 
*누구보다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해야 할 산헤드린 공회의 불법과 탈법을 보면서 이 사회의 지도층이 보인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임을 거부할 수 없는 말씀의 성취를 보았음에도 증인을 매수하고 증언을 조작한다. 인간의 사악함이 어느 정도까지 악으로 치달을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혹시 내가 잘못된 신념과 전통 위에 서서 고착된 마음과 시각 때문에 말씀과 신앙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 앞에 겸손히 나아가 말씀을 비추어 내 자신을 바라 보아야 할 것이다.
 
 
 
*주님, 온갖 모함과 조작에도 침묵하며 십자가로 나아가시는 주님의 사랑 때문에 제가 구원받았습니다.
*주님,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하고 닭 울음소리에 문득 스친 말씀에 회개의 눈물이 터져 살아난 것처럼, 말씀이 문득 스칠 때 진심과 진실함으로 반응하겠습니다. 말씀으로 나를 살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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