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수치와 조롱, 고통속에서 완성하신 십자가 사랑….[마 27:27-44]
 – 2023년 04월 06일
– 2023년 04월 06일 –
십자가 처형 과정은 조롱의 연속이었다. 주님은 사형선고를 받은 직후 군병들에게 넘겨진다. 군병들은 대관식 놀이로 십자가를 지기 직전까지 조롱한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십자가 위의 명패, 십자가 아래의 행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의 비아냥, 좌우에 함께 달린 죄수들의 모욕 등이 이어졌다. 주님은 끝까지 조롱 당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 조롱이 조롱으로 끝나지 않는다. 주님의 부활은 이들의 조롱이 진실로 진리였음을 증명하게 될 것이다.
 
 
 
1.조롱 속에서 십자가로(27-31절)
빌라도의 최종 선고 직후 채찍질을 당하시고(26절) 무지한 인간들에게 온갖 조롱과 멸시를 온 몸으로 받으시면서 끝까지 참아내신다. 주님은 붙잡히시기 전 “넘겨주고,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20:19)”을 이미 말씀하셨다. 말씀하신 대로 주님은 넘겨지고 채찍질 당하시고 조롱을 당한 후 십자가에 못박히실 것이다.
 
주님은 로마 군대의 관정에 모인 온 군대 앞에 세워져 군병들의 조롱거리가 되셨다. 그들은 주님께 자색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씌우고 갈대를 손에 쥐어 주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하며 마음껏 조롱하였다.
 
*주님은 이 상황을 충분히 역전 시키실 것이다. 십자가의 고난은 끝이 아니라 부활을 위한 첫 걸음일 뿐이다. 조롱이 두려움이 될 날은 멀지 않았다.
 
 
 
2.십자가 위에 달리신 주님(32-38절)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기력이 다한 주님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게 되었다(32절). 자신의 의도와 관계 없이 주님의 십자가를 강제로 지고 가는 그의 모습에서 마땅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할 시몬 베드로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구레네 사람 시몬이 있었다.
 
 
골고다에 도착한 예수님은 쓸개 탄 포도주를 거부하신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세미한 고통까지도 온전한 정신으로 다 견디셨다.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모두 다 체험하시고 다 받아 내셨다.
 
*고통의 정점을 경험하신 주님께서 나의 고통도 이해하신다. 나의 고통을 공감해 주시는 분이 주님이시다.
 
 
또 마지막 남은 옷 조각까지 다 내어 주시고 두 명의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말씀을 성취하셨다. 모든 행동, 사건, 발언마다 말씀을 성취하신다. 힘과 폭력의 현장에서 사랑과 용서,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참 역사가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진행되었다.
 
 
 
3.조롱을 퍼붓는 십자가 아래의 사람들(39-44절)
십자가 앞을 지나가는 백성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진심일리 없다. 비열한 조롱이다.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종교지도자들이 추악하고 비열하게 능멸한다.
 
주님을 “성전을 건축할 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며 조롱한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자신을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비웃는다. 종교지도자들로부터 함께 십자가에 달린 강도까지 “하나님의 아들이면 하나님이 원하셔서 구원하실 것”이라며 희롱한다.
 
 
놀랍게도 광야에서부터 십자가까지 사탄은 줄곧 예수님께 스스로 자신을 살리는 데 하나님의 아들의 권능을 사용하도록 시험하고 있다. 겉으로는 조롱이지만 실제로는 시험이다. 그러나 주님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대로, 끝까지 순종한다.
 
한편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조롱하는 반응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가 하나님 아들인지 모르고 그 십자가가 죄인의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죄인을 위한 죽음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이다. 그들이 보는대로, 종교지도자들이 들려준대로 그저 진실을 알아볼 의지를 행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조롱했다.
 
또한 십자가 앞을 지나는 백성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입으로는 예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나 이는 진심이 아니라 조롱일 뿐이었다. 특히 종교지도자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아들을 믿어야 했음에도 오히려 참되신 하나님의 아들을 능멸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그들은 몰랐다. 이런 조롱으로 인해 그들이 받을 심판대가 너무 가혹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본문의 키워드는 “조롱”이다. 십자가의 고난은 육체의 고난과 함께 조롱의 고난이었다. 주님은 묵묵하게 이 고난을 견디셨다.
 
-그런데 그들이 왜 이렇게 주님을 십자가에 매달면서 끊임없이 조롱했을까? 근동지역은 예나 지금이나 명예를 생명처럼 여긴다. 무슬림 지역의 문화 속에 여전히 명예살인이라는 문화가 존재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런 문화로 볼 때 주님을 향하여 겉옷과 속옷까지 벗기는 것, 얼굴에 침을 뱉고 뺨을 때린 것, 머리를 흔들며 조롱한 것, 그리고 옷이 벗겨진 나체로 십자가에 매단 것은 주님에게 극도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준 것으로서 이미 정신적인 죽음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인류 역사상 가장 극악한 처형 방법인 십자가에 매달리셨다. 이미 자기 자신이 가장 큰 부끄러움과 수치, 가장 극형의 고통을 받으셨지만, 여기에 사람들의 조롱이 더해 진 것이다.
 
-그리고 이 조롱은 하나님 아버지의 철저한 외면 속에 처절하게 홀로 견디어 내어야 했던 것이었다. 단순히 자존심이 조금 상하는 정도의 조롱이 아니라 비열하기 짝이 없는 조롱이었다. 특히나 대제사장들의 조롱은 그들이 주님께서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의 증거가 차고 넘기는 상황에서 이를 철저히 외면하며 퍼부은 조롱이었기에 그 가증함이 놀랍기만 하다.
 
-주님의 공생애의 마지막이 시작되었다. 이 시간은 공생애의 완성과 인류의 죄를 사하시는 용서를 마무리 짓는 완성의 순간이다.
 
 
*이렇게 비교할 수 없는 수치와 조롱과 고통을 받으시며 완성하신 십자가의 구속의 사랑이 나를 살려주셨다.
 
*조롱은 지나간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세상 속에서 조롱받을 경우가 꽤 있다. 지나갈 조롱에 스스로 자신의 몸과 영혼에 생채기를 낼 필요 없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주님, 조롱속에서 십자가의 사랑을 완성해 주셔서 그 은혜를 누립니다.
*주님, 내가 걷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세상의 조롱 속을 지날 때 주님을 생각하며 인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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