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주님의 장례[마 27:57-66]
 – 2023년 04월 08일
– 2023년 04월 08일 –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주님은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시신을 요구하여 허락을 받는다. 그는 정성스레 세마포로 주님을 감싼 뒤 개인적으로 마련해둔 새 무덤에 안장하고 돌문을 막아 장례를 마무리한다.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파수꾼들을 세워 무덤을 사흘 동안 지키게 한다. 주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서 부활했다고 거짓 선동할 것을 우려했다.
 
 
 
1.장례(57-61절)
오후 3시(제구시) 주님께서 운명하시자 시신을 처리하여 장례를 치루는 과정을 압축하여 서술한다. 마가는 이 날을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막 15:42)로 기록했는데, 이는 세 시간 후면 무교절의 시작을 알리는 안식일이라는 점이다. 이 날 유월절 어린 양을 곁들인 식사를 하게 된다.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이 주님의 죽음의 그림자인 것이다.
 
예루살렘은 지금 유월절 명절 기간이기에 어느 누구도 도심 한복판에 하나님께 저주받은 나무에 시신이 걸려 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로마 제국 내에서는 그 시신들이 새나 들짐승의 먹이가 되어 끝까지 비참한 최후를 맞게 하는것이 일반이었다. 그러나 유대인의 경우는 달랐다. 죽은 시신은 반드시 무덤에 안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기에 요한복음에서는 유대인들이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 시신을 치워달라고 요청했다(요 19:31-37). 이에 군인들은 좌우편 강도들의 다리를 꺽는다. 주님은 이미 죽은 것이 확인되었기에 대신에 창을 옆구리에 찔렀다. 이로써 그의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않았다는 성경이(출 12:46; 민 9:12; 시 3:20) 성취되었다.
 
“저물었을 때” 주님의 시신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골고다에 있던 제자(요한)과 여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 때 아리마대 사람 욧겝이 나선다. 아리마대 요셉을 마가와 누가는 공통적으로 공회원이며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로 소개했다. 이에 반해 요한은 숨겨진 주님의 제자라고 표현 했다. 마태는 그가 부자였고 은밀하게 주님을 따른 제자였음을 드러낸다. 그런데 빌라도에게 당당하게 시신을 요구한 점, 빌라도는 별 반응없이 내어준 점을 들어 그가 공회원이었음이 간접적으로 드러낸 셈이 되었다.
 
아리마대 요셉은 주님의 시신을 정성을 다해 염을 했다. 요한은 이 과정에서 또 다른 공회원 니고데모가 향품을 가지고 동참했음을 밝혔다. 잔인한 채찍질로 만신창이가 된 주님의 몸을 두 사람은 깨끗하게 닦아내고 정성스레 세마포를 감싼다. 그들은 신실한 유대인들이었기에 이 작업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매우 급박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아리마대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30km 떨어져 있다. 그러나 공회원이었기에 예루살렘에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무덤을 준비해 놓았다. 예루살렘에 이런 새 무덤을 준비해 놓을 정도로 그는 부자였다. 이 모든 과정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이 땅에 오실 때에도 비천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주님은 평생 머리 둘곳 없이 지내시다가 무덤조차 남의 무덤을 빌려 묻히셨다. 바울은 이런 주님의 모습을 철저히 자기를 비어 종의 모습으로 낮아지셨다(빌 2:8)고 표현했다.
 
*나를 하나님의 자녀, 거룩한 백성으로 높여 주시려고 친히 가난해 지시고 낮아지셨다.
 
 
 
2.무덤을 지키는 종교지도자들(62-66절)
푹풍처럼 지나간 하루였다. 날이 저물자 안식일(새 날)이 시작되었다. 마태는 “준비일 다음 날”이라고 부연했는데 이는 일년에 한 번 유월절과 무교절을 준비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유월절 식사를 마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다시 빌라도와 회동한다. 그리고 재판, 십자가 처형, 시신 처리까지 이미 세 번을 부탁했지만 이번에는 주님의 무덤 경비도 부탁한다.
 
이유는 “사흘 후에 살아나리라”는 말을 맹종하는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서 이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의 생각 자체가 저열하다. 그리고 빌라도를 설득하기 위해 주님을 “속이던 자”라고 칭하며 제자들고 이렇게 할 수 있다는 회유를 한다. 끝까지 비열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주님의 부활은 사실이 될 것이고 “예수의 시신을 훔쳐갔다”는 헛소문은 자신들이 퍼뜨릴 것이다. 빌라도의 동의를 받고 경비병들과 도착한 이미 굳게 굳게 닫혀 있는 돌문을 인봉한다. 인봉은 “석회를 짓이겨 돌 틈에 발라 무덤과 돌문을 접착한 것이다. 그리고 경비들이 지키게 하였다. 또, 돌문을 지키게 한 날은 안식일이었다. 안식일 규정을 생명처럼 여긴다고 했지만, 이 모든 일을 진행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노력이 오히려 부활의 확실한 증거가 되었다 아무도 핑계댈 수 없는 증거가 된 것이다. 악인들의 악한 행위까지 사용하셔서 선을 확증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와같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악인들의 형통을 부러워 하지 않고 담담히 의와 선의 길을 걷는 삶이어야 하겠다.
 
 
 
나는?
-아리마대 요셉은 주님의 제자임을 드러내지 않았던 공회원이었다. 그러나 주님의 죽음 이후 담대하게 정체를 드러내(그도 예수의 제자) 주님의 장례를 진행했다. 다른 모든 제자들이 두려움으로 은둔하고 있을 때 아리마대 요셉은 가장 필요할 때 용기를 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재물(새 무덤)을 기꺼이 주님께 드렸다.
 
-말로 장담하던 제자들과 달리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행동으로 주님을 따랐다. 모든 종교지도자들에게 낙인 찍힐 것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신분과 재물을 온전히 주님의 장례를 위해 내어 드렸다. 자신들이 주님에 대하여 어떤 마음인지 감춰 왔던 것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사회적인 지위와 영향력을 주님의 장례를 위해 사용한다.
 
-종교지도자들이 주님의 부활이 조작될 수 있어서 무덤을 지키게 하였으나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아리마대 요셉이 직접 염을 하고 장례를 치루었으니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분명한 증인이 되었을 것이다.
 
 
-한편, 제자들은 부인하고 도망갔지만, 여인들은 끝까지 골고다 언덕과 장사지낸 무덤 앞을 지켰다. 이런 오롯이 주님을 따른 여인들에게 부활의 첫 증인되게 하는 영광을 허락하셨다. 복음서에서 이 부분에서만 언급되었지만 늘 묵묵하게 주님과 동행하며 섬겼던 여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셨을 것이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성실하게 희생과 섬김으로 주님의 공생애를 도왔던 여인들을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증인되게 하신 것이다.
 
 
-오늘 본문은 주님의 죽으심에 대한 세 종류의 반응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자신이 주님을 따르는 제자임을 감추고 있다가 마침내 드러낸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들, 주님의 고난당하심과 죽으심, 그리고 무덤의 현장까지 끝까지 지켜본 두 명의 마리아,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흘만에 살아나리라는 말 때문에 끝까지 열심을 내어 그 말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려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다.
 
-두 마리아를 제외하고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동일한 지위와 위치에 있어서 기득권을 함께 누린 이들이었다.
 
-특히 요셉과 니고데모는 가진 것을 잃지 않고 준미의 제자로 살아가려고 했기 때문에 그 시간들을 보내며 그들의 마음은 매우 비참하고 불편했을 것이다. 그런데 끝까지 진리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의 죽음을 바라보며 자신들이 가진 것을 잃어도 좋다는 결단을 하면서 자신들의 신앙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는다. 이런 부자, 공회원, 종교지도자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오늘 말씀은 주님을 따르는 삶은 “언젠가는 세상 앞에서 나의 신앙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하는 때”에 대해 깨닫게 하신다. 특히 가진 것이 많고 누리는 것이 특별하며 끼치는 영향력이 큰 삶일 수록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결단은 결코 단순하고 쉬운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요셉과 니고데모는 주님의 장례를 치룸으로 결국 분명하고 선명하게 주님의 제자임을 드러냈다.
 
 
*한편 두 마리아의 지순한 모습은 내가 어떻게 주님의길을 뒤따라 가야 할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저 주님께서 자신들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을 누리고 감사하여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며 따른 것이다. 제자들조차 다 도망친 그 날밤부터 장례를 치루는 하룻동안에 이 여인들은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도망치거나 감추지 않고 끝까지 울음을 삭이면서 주님이 장사된 무덤까지 확인하고 또 급하게 치른 장례기에 안식일이 지나 다시 정성스레 무덤에 들어가 주님의 몸을 정비하려다 부활의 첫 증인이 되었다.
 
*그녀들의 삶은 그저 주님을 사랑했기에 그 자리를 지켰을 뿐이다. 그저 사랑했기에 무덤을 찾을 뿐이었다. 나의 믿음도 그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굳게 지키며 주님을 따르면 되는 것이다. 억지가 아니라 그저 좋아서 따르면 그만이다. 사랑하면, 좋아하면 위험을 감수하고 두려워 하지 않게 된다.
 
 
 
 
*주님, 감추었다가 드러낸 신앙이 주님의 장례를 감당하게 했습니다.
*주님, 그저 사랑하여 주님의 마지막을 끝까지 지킨 두 여인의 모습으로 저도 주님을 늘 사랑하며 따르겠습니다.
*주님, 혹시 끝까지 악을 행하는 비열한 지도자들을 답습하지 않도록 늘 깨우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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