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고라가 주도하고, 백성들이 동조한 반란 사건[민 16:1-15]
 – 2023년 04월 20일
– 2023년 04월 20일 –
모세의 지도력에 대한 강력한 도전은 광야 생활 가운데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12장에서는 미리암과 아론의 도전, 14장은 새로운 지휘관을 세워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백성들의 반역 사건, 모세의 말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서 처절하게 패배한 호르마 사건도 따져 보면 모세의 지도력에 대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16-17장은 이와같이 도전받아 무너진 모세의 지도력을 다시 세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이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에 대하여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본문의 반란 사건은 매우 자세하게 다룬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이 사건은 반복적으로 교훈과 경계의 목적으로 소개가 되어진다.
 
레위인 고라와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서로 마음을 모으고 지휘관 250명과 함께 모세와 아론에게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의 명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데, 모세와 아론의 권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그것도 스스로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다(3절). 이에 대한 모세의 반응이 전개된다.
 
 
 
1.왜?(1-3절)
이 반란을 주도한 이들을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그리고 온은 왜 반란을 도모했을까? 레위 자손 고라가 주도하고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가담하고 회중의 지도자들이 합류하므로서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다. 주동자 고라는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요, 이스할의 아들이다. 다단과 아비람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이고, 온은 벨렛의 아들이다.
 
고라는 모세와 아론과는 사촌 간이다. 레위의 세 아들 게르손, 고핫, 므라리 중에서 고핫의 네 아들 아므람과 이스할, 헤브론과 웃시엘 중에서 모세와 아론은 아므람의 아들들이고, 고라는 이스할의 아들이다. 문제는 고핫 자손의 후계는 막내 웃시엘의 계보로 이어져 엘리사반이 받았다. 이스할의 후손들은 레위지파 내에서 어느 정도 대접 받지 못하는 위치였을 가능성이 크다. 고라의 입장에서는 아므람의 두 아들인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아론이 대제사장의 직분을 맡고 있는 것에 비해 자신이 맡고 있는 것이 초라하다고 여긴듯하다. 다단과 아비람, 온도 이스라엘 지파의 장자인 루우벤 지파의 권위를 되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고핫 자손과 르우벤 지파는 모두 성막의 남쪽에 진을 치고 있었기에 이와같이 소통을 긴밀하게 하여 당을 만들 수 있었다. 여기에 회중의 지도자 250명이 합류했다.
 
본문 1절을 직역하면 “고라가 다단과 아비람, 온 등을 붙들었다”이다. 이는 고라가 이 반란을 주도하였음을 나타낸다. 그들이 내세운 반란의 이유는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이다. “당신들은 분에 넘치는 일을 하고 있소. 온 회중 각자가 다 거룩하고, 그들 가운데 주님께서 계시는데, 어찌하여 당신들은 주님의 회중 위에 군림하려 하오?”(새번역_3절)
 
정리하면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이 분수에 넘친다. 또한 모든 회중이 거룩하고 하나님은 모두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론과 그 아들 엘리아살이 독점한(?) 제사장직을 다른 레위인과 공유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를 지나치게 수직적인 구조로 이해했고 이 때문에 스스로 높아지려고 욕심을 드러낸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무시한 평등을 개혁적이라고 여기면 곤란하다. 고라 일당의 진심은 자신들도 그 권력을 취하고 싶었을 뿐이다.
 
 
 
2.모세의 반응(4-15절)
모세는 이들의 거센 반역의 질문을 듣고 먼저 하나님께 “엎드린다(4절)” 하나님께 엎드렸다는 구체적인 기록은 아니지만, 고라 일당의 기세와 질문 앞에 즉흥적이나 혹은 감정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되짚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찰나’ 일수도 있다. 이토록 모세는 철저허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바라본 지도자였다. 비난의 말을 들었을 때 즉시 인간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이 지도자로서 모세의 대단한 점이다. 감정적이고 즉흥적이지 않는 대처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모세는 먼저 고라와 그를 따르는 무리를 향해 대답한다. 그들에게 이튿날 하나님 앞으로 향로를 가져 오도록 한다(5-7절). 향을 드리는 일은 제사장이 하는 일이다. 향로는 제단에서 재를 치울 때, 타는 숯불을 옮길 때 사용하는 평평하게 펼쳐진 냄비 같은 도구이다. 제사장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분향이 엄격하게 제한 되어 있었기에 만일 고라와 그 무리가 향을 가지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고라와 그 무리들의 섬김을 인정하신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모세는 레위 자손들에게(고라에게 말했다고 표현하나) 말한다. 그들이 얼마나 특별한 임무를 맡은 존재인지 상기 시켜 준다. 레위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아가서 성막의 일로 수종을 들 뿐 아니라 성막을 관리하는 책임과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백성들과 성막 사이에서 성막과 백성을 보호하는 이들이다. 이처럼 영광스러운 특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감사와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제사장 지위를 욕심낸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리고 다단과 아비람을 소환한다. 그러나 그들은 소환을 거부한다. 고라는 제사장 직분으로 인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다단과 아비람은 르우벤 지파였기에 전혀 다른 이유로 이 반란에 동참했음이 드러난다. 모세의 소환을 거부함으로 그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모세가 인도해 온 출애굽과 광야 생활 전체를 부정하기까지 한다(12-14절). 모세의 지도력을 거부하다 하나님의 구원하여 주심까지 부정하게 되어버린다. 그들은 애굽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한다(13절). 그 애굽에서 자기들을 불러내어 메마른 광야로 인도했다는 것이다.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모세가 크게 분노했다(15절). 모세는 다단과 아비람이 바치는 제물을 열납하지 마시도록 간구한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씻고 회복될 길이 없어짐을 뜻한다. 무서운 저주를 선언한 것이다.
 
 
 
나는?
-모세는 반란 앞에서 엎드린다. 자기 말로 권위를 지키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과 말로 말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이 모습을 늘 본 받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을 하기 위해 먼저 엎드리는 삶이 되어야 하겠다. 더욱 더….
 
-또 담대하게 제안했다. 하나님께 물어보아 누가 인정받는지 알아보자고 제안한다.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제안인가? 인간적인 불만을 들고 찾아온 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듣기 위해 그 앞에 서보자고 말하는 담대함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순전함을 주님께서 이끄시는 나의 목회의 길에서도 메마르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반면에 반역하는 무리들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나아와 물어보자는 모세의 제안을 다단과 아비람은 거절한다. 그것은 모세의 술수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입술에서 고백한 것처럼 애굽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여기고 모세가(하나님이) 이 메마른 곳으로 끌고 왔다는 삐뚤어진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찾아 볼 수가 없다. 하나님을 속이는 하나님으로 전락시켜 버린 그들에게 하나님의 권위는 이미 무너져 있었다.
 
-놀랍게도 이 일은 안식일에 나무를 했던 사람이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한 뒤의 일이다. 가데스바네아에서 호르마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한 댓가로 수많은 백성들이 죽은 이후였다. 보았어도 기억하지 못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마 13:14; 막 4:12; 사 6:9)” 어리석음이 그들의 마음에 꽉 차있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과 상관 없이 살며 하나님의 진영 안에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들 안의 탐욕과 미움 때문이었다. 그 마음이 지도자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부정하게 만들어 버렸다. 내 안에 이와 같은 탐욕과 미움의 늪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반역하는 무리들의 아우성에 먼저 하나님께 엎드렸던 모세는 이들의 완악한 모습에 분노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탄원한다. 그들이 죄 씻음을 받을 수 있는 제사의 제물을 받아주시지 말아 달라고 간구 하기에 이른다…. 아…. 그의 분노가 얼마나 컸을까….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과 온은 모세가 행사하고 있는 지도력을 스스로 왕이 된 것으로 정의하였다(13절). 이것은 모세 대신에 새 지휘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던 가데스바네아에서부터 그들의 마음에 품고 있었던 마음일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의 장자 지파로서 지위를 회복하려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자신들이 이스라엘을 향한 지도력을 쟁취하고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탐욕인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모세의 지도력을 왜곡하고 폄훼하여 손상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모세의 말을 거부하고 듣지 않는다.
 
*고라가 주동한 이 반역 사건을 훗날 유다는 “화 있을진저…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유 1:11)” 라고 평가하였다. 그것은 “패역(사람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도리에 어긋나고 순리를 거스름)”이었다.
 
 
 
*주님, 이미 맡겨주신 특별한 사명에 감사하지 않고 자기 눈에 보기에 더 좋은 것을 탐하는 유혹에서 지켜 주십시오.
*주님, 결국 탐욕이 저주를 가져오는 것을 봅니다. 자족하는 마음을 잃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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