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죽은 자와 산 자의 사이에 선 아론[민 16:36-50]
 – 2023년 04월 22일
– 2023년 04월 22일 –
하나님의 심판 이후 남은 조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알려준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불에 타져 죽은 250명이 가지고 있던 향로를 처리하는 것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과 반역으로 인해 시작된 염병을 그치게 하려는 아론의 속죄 사역을 보여준다. 반역한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단호한 심판이 나타났음에도 어리석은 백성들은 그로부터 큰 교훈을 얻지 못했다. 백성들의 불순종과 반역은 계속 되었다. 이 일을 통해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특히 중보자의 모습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재앙이 연이어지고 있지만 대제사장의 속죄사역은 유효하였다. 대제사장의 직분에 대한 지속적인 도전이 있었으나 오히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직분이 단단하게 확립되어 간다. 
 
 
 
1.반역자들의 향로(36-40절)
여호와의 불이 나와 향로에 불을 담아 온 고라와 250명의 추종자들을 불로 태웠다. 또 땅이 갈라져서 다담과 아비람과 그 추종자들과 소유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을 불러 그들의 향로를 어떻게 처리할지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엘르아살은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여호와께 분향하다가 죽은 이후 아론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직을 이을 예정이었다.
 
그 엘리아살에게 250명의 지휘관이 가져온 향로의 처리를 명령하신다. 그 향로는 불법적으로 제작되었고 향로에 담긴 불도 제단에서 가져온 것이 아닌 다른 불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향로를 거룩하게 구별하라고 하셨다. 이것들은 헤렘(진멸) 명령으로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들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후대에 영원한 교훈으로 삼기 위한 기념물로 사용하기로 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조치였다.
 
먼저 엘르아살에게 불이 붙어 있는 향로를 취하고 그 불을 다른 곳으로(진영 밖에서) 쏟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향로들을 망치로 쳐서 펼치고 번제단을 감싸도록 명령하신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의 표와 기념물이 되게 하기 위해서 였다. 백성들의 반역의 실패와 심판을 떠올리게 하고 기억하게 하는 장치였다. 무엇을 기억하게 하시려고 하셨을까?
 
그것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이 아닌 사람들은 레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을 위한 중보자로 설 수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아론의 대제사장직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2.백성들의 원망과 하나님의 심판(41-50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라 일당이 땅이 갈라져서 산 채로 매장 당하고 250명의 지휘관들이 여호와의 불에 타 죽는 것을 목격하면서 두려움과 충격에 휩싸였을 것이다. 너무도 두려운 나머지 급히 멀리 도망치려고 까지 했으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음 날 다시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원망하며 대적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이렇게 반응하는 모습은 백성들이 고라와 다단, 아비람의 반역에 어느 정도 수긍하고 동조하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그것은 결코 멋 모르고, 군중심리로 동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라 일당이 받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동정심을 버리지 않고 있었고, 모세를 반역하려던 마음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결국 하루가 지나자 다시 모세와 아론을 대적한다.
 
두 사람으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원망한 것이다. 사실 고라 일당의 반역때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 급히 엎드리며 중보하였기에 그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치려고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이 위급한 상황에서 다시 회막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회막 가운데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이 회중으로부터 떠나면 즉시로 회중을 멸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 하지만 모세와 아론은 그저 엎드릴 뿐이었다.
 
또 다시 반역한 회중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엎드린 모세를 넘어 회중들을 염병으로 치신다. 모세는 적극적으로 아론에게 향로를 취하여 제단 불을 담아 회중을 속죄하는 의식을 행하도록 명령한다.
 
*이 모습은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대제사장의 사역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염병을 보내시자 급속도로 병이 퍼져 나갔다. 아론은 급히 향로에 제단 불을 담아 회중에게 달려갔다. 이미 염병이 진행되고 있었으나 포기하지 않고 백성들을 위해 속죄 의식을 행한다.
 
*아론은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다” 염병이 창궐하여 죽은 자들이 속출하였다. 그는 죽음을 무릎 쓰고 대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죽음의 현장에 섰다. 그가 대제사장으로서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섰을 때 비로소 죽음의 행렬이 그쳤다. 그러나 고라 일당의 반역으로 인해 죽은 수와 합하면 15,000명이 이 일로 죽었다. 출애굽 1세대가 다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는 말씀대로 광야에서 하나님을 향해 반역한 백성의 죽음의 행렬이 이미 시작되어 점점 가속화 되어 간다.
 
*아론이 향로를 들고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선 것의 의미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사역을 통해 선명하게 완성된다.
 
 
 
나는?
-향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선 반역자들을 불에 타 죽게 하신 하나님은 그 향로가 거룩하니 두드려 펴서 번제단에 씌우라고 명령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아론의 자손이 아닌 다른 사람이 분향 하면 고라와 같이 된다는 것을 교육하기 위한 자료로 삼기 위해서 였다.
 
-이처럼 향로까지도 기념물을 삼아 가르치시는 하나님은 날마다 말씀으로 우리를 경계하고 가르치시며 권면하신다. 이미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물로 삼아 오늘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전하게 순종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그 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라 일당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 두려움으로 밤을 지샜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튿날 날이 밝자 진멸의 심판 선언 앞에서 자신들을 위해 끊임없이 중보하며 기도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다. 여호와의 단에서 나온 불에 250명의 반역 지휘관들이 타져 죽고, 다른 반역의 일당은 땅이 집어 삼키는 것을 목격한 다음 날, 다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함으로 하나님을 반역한 것이다.
 
-분노하신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염병으로 치신다. 모세는 아론에게 향로에 제단 불을 담아 자신들을 원망하던 이들에게 사랑의 향로를 들고 뛰어나간다.
 
*자신에게 돌을 던지려고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향로에 제단 불을 담아 뛰어 나가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사이에 서서 중보의 역할을 담당하는 모습은 아론보다 더 탁월한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바라보게 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마 5:44)”고 가르치신 주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신뢰하며 따라갈 수 있을까?
 
 
*250명의 반역한 지휘관들이 들고 온 향로… 엘르아살은 그들의 손에 쥐여져 있는 향로들을 모으기 위해 불에 탄 주검이 된 그들의 손에 녹아져 있는 물병들을 수거하고 망치로 쳐서 평평히 펴 나갔다. 그리고 번제단을 싸게 하심으로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을 대적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억하게 하여 기념물로 삼았다.
 
*번제단을 덧싼 향로판들을 바라보면서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아론의 후손들에게만 계승 된다는 분명한 교훈을 삼게 하셨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심판의 염병을 보냈을 때 고라 일당의 심판 뒤에 곧바로 자신들에게 원망한 그들을 위해 기꺼이 기도한다. 인간적인 항변도 전혀 없었다. 맞대응 하지도 않았다. 그저 엎드릴 뿐이다. 그래서일까? 하나님께서 모세를 대신하여 진노하셨다. 당장 다 죽이겠다고 하셨다. 심각함을 깨달은 모세가 아론에게 즉시로 죽은 자와 산 자의 사이에 서게하여 염병이 그쳤으나 이미 14,700명이 죽은 이후였다. 얼마나 급격하게 염병이 휩쓸었을지 짐작이 간다. 1차 인구조사의 통계인 603,500명(장정만)의 2.4%이다(고대는 여자와 아이는 계수에 넣지 않는 것이 관습 이었으니 14,700명은 남자만의 숫자일 가능성이 크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코로나로 인한 사망률이 현재 0.11%이니 얼마나 하나님의 진노가 컸는지 짐작이 간다.
 
*모세는 백성들이 원망할 때 이 백성이 죽어도 좋겠다. 죽을 만 하다고 하지도 않았다. 더 죽어야 정신 차리지, 마땅히 죽을 짓을 했노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고 내달렸다. 이것이 목자의 마음이고 지도자의 마음이다.
 
*아론이 죽음과 생의 사이에 서자 염병이 그쳤다. 교회는 죄와 사망, 의와 생명의 사이에 서서 죽어가는 세상에 생명의 생기가 소통되도록 해야 한다. 시대가 변하여도 교회가 서 있어야 할 곳은 교회 안이 아니라 죄와 사망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생명의 복음을(향로를) 들고 외쳐야 한다.
 
*모세아 아론을 바라보면서 좋은 지도자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본다. 먼저 “엎드리는 자”이다. 하나님 앞에는 물론 백성 앞에서도 엎드리는 모세의 모습을 잊으면 안되겠다. 얼마나 속상할까… 그러나 그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대신 화를 내실 정도였다. 모세의 온유함은 흉내내기 어려운 수준이 틀림없다. 무엇보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기꺼이 서는 자”가 지도자이다. 하나님의 심판일지라도 백성들의 죽음 앞에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고 중보하는 모습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님, 사람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합니다. 그 결정에 늘 순종하겠습니다.
*주님, 백성들에게 원망을 들으면서도 그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 먼저 중보하는 마음이 귀합니다. 나에게도 이런 목양 리더십이 잘 발휘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 모세를 통해 보게 해주신 지도력을 저에게 적용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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