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부정함에서 정결함으로 살아가는 법[민 19:11-22]
 – 2023년 04월 28일
– 2023년 04월 28일 –
생명의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서 부정한 것이 바로 죽음이다. 그러므로 부득이한 경우라도 죽은 사체에 접촉하거나 가까이하게 되면 아주 심각한 부정에 노출되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은 죽음으로 인한 부정하게됨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했다. 본문은 사체를 접촉하게 되어 부정하게 된 사람들의 정결 절차를 자세하게 소개한다. 1-10절의 절차를 통해 만든 정결수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구체적인 예을 보여준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사체에 접촉한 모든 사람은 심각한 부정에 노출된다. 그래서 7일 동안 부정하게 된다. 7일 동안의 부정함은 악성 피부병, 여성의 아이 출산, 유출병 등도 이에 해당된다. 제 3일째와 제 7일째 정결수를 사용하여 두 번이나 정결 의식을 행하도록 했다. 그만큼 사체를 접촉한 부정함을 얼마나 심각하게 여겼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사람이 장막 안에서 죽었을 때 그 안에 있었거나, 장례를 치르러 그 안으로 들어간 사람, 들판에서 시신이나 죽은 사람의 뼈나 무덤에 몸이 닿은 사람이 해당 된다. 심지어 죽은 사람이 있던 장막안에 뚜껑을 덮지 않는 그릇도 부정해진다(11, 14-16절).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죽음과 철저하게 구별되기 원하신다. 하지만 세상은 죽음이 일상에 만연해져 있다. 죽음을 접촉한 이와 물건의 7일 동안의 부정함의 무게는 그만큼 하나님의 백성들은 생명 자체이신 하나님안에 있기에 죽음의 영향력과 철저하게 구별되야 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신으로 인해 부정해진 사람들이 다시 정결하게 되려면 정결한 사람이 붉은 암송아지를 태운 재와 흐르는 물을 섞어 만든 잿물(정결수)를 우슬초에 찍어 뿌려주어야 했다. 부정해진 그릇도 마찬가지이다(12, 17-19절). 1-10절에서는 제사장이 붉은 암송아지를 태운 재를 만들어 정결하게 하는 물의 재료를 만드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본문은 “정결한 자”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제사장이 정결수를 만들고 뿌리는 과정에서 그 모든 과정에 참여할 경우 그도 또한 부정해 지기 때문에 제사장이 아닌 제의적으로 정결한 사람이 이 일을 감당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순서는 먼저 장막과 그 장막에 있는 모든 기구에 뿌려 정결케 한다. 그 다음 어떤 형태로든 시체에 접촉한 자들에 우슬초에 찍은 정결수를 뿌려서 정결케 한다. 이것을 7일 동안 셋째 날과 일곱째 날, 두 번 행하여야 한다.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그 일을 행하고 나서 저녁이 되면 정결케 된다. 이후 다시 옷을 빨고 몸을 씻음으로 모든 절차는 마무리된다.
 
 
부정한 사람이 정결수를 뿌리지 않으면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신다(20절). 13절의 말씀을 다시 반복한다. 대상은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이다. 어느 누구도 예외는 없다. 또 정결수를 뿌리기 위해 선택된 사람도 이 정결 예식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부정하게 된다는 점이다. 또한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하게 되어 이를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다(21-22절). 이 율례는 “영구한(언제까지나_새번역 21절)” 율례 라고 단언하셨다.
 
 
하지만 영구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 규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으로 인해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죽음으로 말미암는 부정은 이스라엘의 일상 속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정결수가 그들을 부정에서 정결로 옮길 수 있게 하지만, 완전하지도 영구하지도 않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 죽음과 부활을 통해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주님의 피가 우리를 완전하고 영구히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을 믿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히 13:12).
 
 
 
나는?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부정해진 형제를 위해 누군가는 그 옆으로 가야 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이 매우 고무적이다. 부정한 사람을 멀리하기보다 부정에 노출되더라도 그의 곁에서 정결하게 되는 길을 알려 주어야 한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구원이 필요한 세상 속에서 부정한 자에게 부정함이 오염되어도 정결수를 뿌린 이처럼,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세상 속에서 뿌려야 한다.
 
-부정함은 전염성이 있어서 부정하게 되지 않기를 조심해야 하지만, 누군가를 부정함에서 정결하게 해 주기 위해 기꺼이 부정함이 전염 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때로 주저되는 자리, 상황, 여건이라도 감수하며 나아가야 할 것을 시사해 준다.
 
-공동체 안에 부정함에 대하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무딘 마음이 공동체를 죄에 오염되게 방치하는 꼴이 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부정함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이 문제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으로 주저하지 않고 정결함으로 나아가는 담대함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동체가 부정함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다.
 
-나를 부정하게 하는 세상의 오염들을 예민하게 분별하여 기회가 닿는 대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돕는 사람인가?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인가? 나의 삶이 허락해 주시면 늘 돕는 삶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손해가 나고, 꺼리는 상황이 되어도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은혜의 회복이 필요한 부정함을 씻어내야 할 순간이나 사람을 직면할 때 기꺼이 돕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
 
*부정하게 되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말씀을 붙잡는 의지가 필요하다. 정하신 말씀대로 순종하며 부정함과 싸워야 한다.
 
*구약성경은 부정을 엄하게 다루었다.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철저히 나누어 아무 짐승이나 식량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부정하다고 규정된 여성의 생리, 혈우병, 나병, 성병에 걸린 당사자는 스스로 공동체에서 격리하도록 제도화했다. 접촉한 자도 부정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부정한 사람이 감당해야 할 정결 의식도 엄하게 규정하였다.
 
*모든 부정의 결정판은 죽음이다. 주님께서는 죽은 자와 접촉하시며 그들을 죽음에서 살리셨다. 특히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손을 직접 잡고 “달리다굼”을 선언하셨다(막 5:41-42). 열 두해를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다. 그러나 나무라기는 커녕 축복해 주셨다(막 5:27). 구약의 율법이라면 주님도 7일 동안 격리하시고 정결례를 행하셔야 한다. 하지만 행하지 않으셨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셔야 한다.
 
*하지만 주님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부정하다 여기는 이들을 품으시고 찾아가셨다. 구약의 정결법은 정한 것이 부정한 것에 접촉되면 부정해지는 원리를 가르쳤다면, 주님은 이를 부정한 것이 정한 것과 접촉하면 거룩해 지는 원리를 보여주셨다. 주님께서는 이 원리를 제자들에게, 그리고 교회에 위임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함으로 살아내어 부정한 곳에 정결함이 회복되도록 영향력을 끼치며 사는 이들이다.
 
*죽어서 천국갈 생각만 하지말고 그 천국을 지금 이곳 내 삶의 영역에서 누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겠는가!  주님을 따르는 삶이란 세상속에서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삶이지 않겠는가!
 
*나를 거룩하게 해주신 주님의 이름은 세상을 충분히 거룩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음을 믿음으로 살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주님, 부정함을 각오하고 돕겠습니다. 더욱 거룩하게 살아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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