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거룩하신 하나님의 세심한 헤아려 주심…[레 1:1-17]
 – 2022년 03월 01일
– 2022년 03월 01일 –
레위기의 히브리어 명칭은 “봐이크라(그가 부르셨다)”이다. 출애굽기의 마지막이 완성된 성막에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내려와 임재하신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 때에 구름이 회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모세는, 회막에 구름이 머물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으므로, 거기에 들어갈 수 없었다(새번역_출 40:34-35).” 시내산 정상에서 하나님과 독대 하였던 모세조차도 성막에 임재 하신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들어갈 수 없었다. 레위기는 성막에 임재 하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면서” 시작된다(1절). 모세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서야 비로소 성막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시내산 꼭대기가 아니라 이스라엘 진의 가운데 있는 성막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성막으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우선적으로 “성막(회막)”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셨다. 그것은 “제사”였다.

레위기가 흔히 제사장들을 위한 말씀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어떻게 나와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말씀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거룩한 삶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거룩한 삶을 도전하는 죄의 문제를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방법으로 해결하고 거룩한 동행을 이어가라는 의미도 될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거룩해야 한다. 거룩하지 못하도록 제어하는 죄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거룩한 동행을 위해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1장은 흔히 알려진 5대 제사(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중에서 “번제”에 대한 가르침이다. 번제는 모든 제사의 기본이자 가장 흔하게 드린 제사였다. “번제(올라)”의 의미는 “올라 간다(to go up)”는 뜻을 지닌 동사 “알라”에서 유래했다. 재미있게도 우리말 “올라간다”와 발음이 같다. 제단 위의 모든 제물을 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로 “제물이 타면서 연기가 되어 하나님께 올라간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영성 성경은 “the burnt offering(불태우는 제사, 화제)”로 주로 번역하여 사용한다.

*또, 번제, 소제, 화목제는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1:9, 13, 17, 2:2, 9, 16, 3:5, 16)”는 문구를 공통적으로 사용한다. 특징적인 것은 이들 세 가지 제사는 왜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특별한 이유가 언급되지 않는다.

*번제를 드릴 때 사용 되는 제물은 소, 양과 염소(히_쫀(2절) : 작은 가축을 포괄하는 단어 한글에는 이를 표현할 단어가 없어서 단지, 양으로 번역했다) , 비둘기 이다. 이렇게 드려지는 제물의 종류가 다양한 것은 제사의 목적(특정 죄목에 대한 특정 제물)에 따라 각각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번제를 드리는 봉헌자의 경제적 형편에 따른 종류이다. 부한 자들이나 가난한 자들이나 하나님과 거룩한 동행을 하게 하기 위해 반드시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가 눈에 들어 온다. 인간 사회에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빈부격차에 따른 소외감을 아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 이시다.


1.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 지니(4절)
레위기는 제사법과 제사장, 그리고 성막이 “거룩한 백성의 삶”을 이루는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임을 드러낸다. 이렇게 드리는 번제는 제사장이 모든 과정을 독점하지 않는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들이 하나님에 의해 임명된 이들이었음 에도 제사를 드리러 올라온 당사자가 제사에 직접 참여하게 하였다. 제사자는 제물을 직접 잡고(5절),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뜬다(6절). 이 모든 과정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함으로 시작된다. 제사를 드리는 당사자와 제물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제물을 “기쁘게 받으신다(4절)”

*제사를 드리는 당사자가 제물에 안수 하므로서 동일시 되어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고 이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이다.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창 4:4)”는 창세기의 표현과 맞닿아 있다. 하나님은 제물을 받으실 때 제사를 드리는 당사자와 제물을 동일하게 받으신다.

*번제의 일차 목적은 감사로 드리는 헌신과 봉헌이다. 정성스럽게 바치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신다(3, 4절). “기쁘게 받으시도록(3절), 받으심이 되어(4절)” “속죄가 될 것이라(4절)”고 하셨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제물도 중요하고 제사장도 중요했지만, 제사를 드리는 이의 순전한 수고(잡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는 것)과 헌신(소, 가축(양과 염소), 비둘기)이 꼭 필요하다.

*아벨과 그 제물을 받으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있다면 “나와 제물”을 받으시도록 순전한 감사와 헌신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번제였다.

*바울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새번역_롬 12:1-2).” 라고 권면하였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산 제물”인 우리다.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예배도 이 정신이 회복되어야 한다. 일부 예배위원들의 의해 진행되는 것을 관람하는 예배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모든 순서마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수고”하며 드려야 한다. 드리는 헌금을 “즐겁게 최선을 다해” 드려야 할 것이다.



2.소와 양(염소)과 비둘기 새끼(3, 10, 14절)
시내산에서 레위기를 받는 백성들은 모두가 비슷 비슷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불과 일년 전까지 애굽의 똑같은 노예들 이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한 이후는 다르다. 분명히 빈부격차가 생길 것이다.

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랄 때 가축들(소, 돼지, 염소 등)의 시세는 늘 암컷이 어느 정도 더 비쌌다. 새끼를 낳고 젓을 생산하는 측면에서 암컷 가축은 그 중요성이 더 컸음을 기억한다. 상대적으로 수컷은 그 중요도가 낮았다. 물론 중요도가 낮았을 뿐이지 소 같은 경우는 쉽게 드릴 수 있는 경제적인 가치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부담되었다. 그럼에도 주로 드리는 번제의 제물로 수컷을 정하여 주신 하나님의 배려가 눈에 띈다. 어디 이 뿐인가?

소나 양과 같은 가축들을 드릴 만한 형편이 되지 못하는 이들도 분명 생겨날 것이다. 살다보면 넉넉할 때도 있지만, 분명 빈곤해 질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헤아리심이 놀랍지 않은가? 상시로 드리는 제물로 “산비둘기나 집비둘기의 새끼”를 바치라고 하셨다. 왜 일까? 먼저 다 성장한 새를 잡는 것은 버겁다. 새 잡으러 다니다 지칠 판이다. 하지만 새끼는 다르다. 둥지를 발견하면 그저 꺼내 오기만 하면 된다. 가난한 자들일 수록 종교적인 제물을 준비하는 시간과 제사를 드리는 시간 만큼 가족들을 위해 먹을 것을 더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배려이다. 적어도 그렇게 묵상이 된다.

소나 양은 안수하고 잡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는 시간이 상당히 소요될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비둘기 새끼로 번제를 드릴 때는 제사장이 제단으로 가져다가 잡아 불로 사르면 되었다(15-17절). 소나 양으로 드리는 번제에 비하면 매우 짧은 시간에 드릴 수 있는 제물이었다. 자신이 가난하여 비둘기 새끼를 드리는 시간 조차 민망할 수 있는 낮은 자존감 마저 배려하시는 것 아닌가!

*또, 하나님의 헤아려 주심이 놀랍고 놀랍다. 가난한 자의 제사도 하나님은 반드시 받으신다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에 빈부격차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제물은 각각 이어도 하나님의 속죄의 은혜, 하나님의 받아주심의 기쁨은 동일하다.

*빈부격차가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의 장애물이 되지 않게 하셨다!



나는?
-번제를 살펴보면서, 무엇보다 “배려하시고 헤아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깨달아 진다. “하나님의 소유된 존재,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각각의 수고와 헌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한 사람이라도 소외되지 않도록 각각의 제물을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감사하다.

-우리 교회 공동체가 이 하나님의 마음을 닮으려 발버둥 치면 좋겠다. 내가 주님께서 맡겨주신 목양의 정신을 이와 같은 하나님의 헤아리시는 마음을 중심에 두고 목양 하기를 결심해 본다.

-가난한 자의 형편을 헤아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오늘날 교회들이 더욱 선명하게 회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주님, 저를 헤아려 주셔서 삶의 모든 부분에서 배려해주신 것처럼 저도 헤아리고 베려하겠습니다.
*주님,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제사를 드리는데, 수고와 헌신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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