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텅 빈 삶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은혜로… [룻기 2:1-13]
 – 2022년 05월 03일
– 2022년 05월 03일 –

나오미와 함께 온 룻에 대한 소문은 이미 퍼질대로 퍼졌다. 역시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말이 틀림없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서의 삶을 적응해 나간다. 룻의 성실함과 시어머니를 섬기는 예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나님께서는 보아스의 입술을 통해 그런 룻의 삶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격려해 주신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용감하게 베들레헴으로 왔지만, 룻을 기다리는 것은 하루 하루 살아내야 할 치열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모압에서 온 이방 여인, 그것도 남편이 없는 과부에다가, 함께 한 가족도 남편을 잃은 과부인 늙은 나오미 뿐이었다. 나오미와 룻의 삶은 처량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룻은 유약한 여인이 아니었다. 그저 신세 한탄하며 주저 앉아 있는 여인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나선다.

보리 추수가 한창인 밭에서 추수하다 떨어진 이삭들을 줍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레 19:9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규정이다.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라고 하셨다.

추수할 때 밭의 사방 모퉁이 부분의 곡식들은 거두지 말고 남겨 두라는 것이다. 또, 추수하다 떨어진 이삭은 줍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도 하셨다. 덧붙여 포도원의 열매도 남겨 두라고 하셨는데 이유가 분명하다.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들 즉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을 위해서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방 여인인 룻도 추수하는 밭에 나가서 이삭을 주어 시어머니 나오미를 섬겼다.



1.우연히도(3절)
“그리하여 룻은 밭으로 나가서, 곡식 거두는 일꾼들을 따라다니며 이삭을 주웠다. 그가 간 곳은 우연히도, 엘리멜렉과 집안간인 보아스의 밭이었다(새번역_3절).”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 쪽으로 친족이었다. 베들레헴에서는 “유력한(재력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 이름은 “빠름”, “쾌속”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나오미가 이삭을 주으러 나간 추수밭은 “우연히도” 친족 보아스의 밭이었다.

“우연히도(미크레)”라는 말은 “갑작스럽게,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어난 일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룻이 보아스가 친족임을 알고 의도적으로 찾아 간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이삭을 줍기 위해 나간 밭이 보아스의 밭이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우연”은 없다. 철저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 기가 막힌 우연 처럼 보이는 것일 수록 기가 막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이다. 룻과 보아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2.(그 때) 마침 보아스가(4절)
보리 추수가 시작되고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우연히도” 이삭을 줍고 있을 때, 보아스가 추수 현장을 방문한다. 그리고 자신의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젊은 여인을 보게 된다. 그녀가 모압 지방에서 나오미와 함께 돌아온 룻이라는 여인인 것을 알게 된 보아스는 이 밭 저 밭을 헤매지 말고 자신의 밭에서 추수가 끝날 때까지 이삭을 주으라고 하고(8절), 낯선 땅에서 젊은 여인 홀로 나와 일하고 있으니 그녀의 신변도 안전하게 보호해 주었다. 한 낮의 갈증도 언제든지 해갈 하도록 일꾼들의 물을 함께 마실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9절).

*이 모든 호의를 받게 된 룻은 매우 당황하여 “한낱 이방여인에 불과한 자신에게 어찌하여 은혜를 베풀고 돌보아 주시는지” 몸둘 바를 몰라 여쭙는다(10절). 보아스는 “남편을 잃은 뒤에 댁이 시어머니에게 어떻게 하였는지를, 자세히 들어서 다 알고 있소. 댁은 친정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고, 태어난 땅을 떠나서, 엊그제까지만 해도 알지 못하던 다른 백성에게로 오지 않았소? 댁이 한 일은 주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오. 이제 댁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보호를 받으러 왔으니, 그분께서 댁에게 넉넉히 갚아 주실 것이오(새번역_11-12절).”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호의를 받을 때가 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살아온 삶의 시간들이 이로 인해 위로를 받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룻이 그랬지 싶다. 모압 땅에서의 안정적인 삶이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흔들렸다. 굳은 결심으로 나오미와 베들레헴으로 함께 왔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늙은 과부와 젊은 과부의 고된 삶 뿐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는 노쇠한 몸 뿐 아니라 마음이 더욱 상심하여 “마라”라고 부르라 하며 “텅 비어 버린” 자신들의 삶을 괴로워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룻은 이 “현실”을 마주하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아주 충실하게 빈곤한 삶을 꿋꿋하게 감당한다. 시모와 자신의 생계를 위해 모압에서는 하지 않았을 이삭 줍는 것부터 아침부터 늦게 까지 열심히 일을 한다. 오죽하면 추수하는 일꾼을 감독하는 사람의 눈에 띌 정도였다(7절). 룻은 매우 절박하게, 그리고 마주한 현실을 충실하게 받아들이며 베들레헴에서의 삶을 적응하고 있었다.

*밭의 주인에 따라 이삭 줍기의 형편이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유력한 사람, 친족인 보아스의 밭으로 걸음을 인도하셨다. 보아스는 추수하는 이들에게 인격적으로 대하는 매우 선량한 사람이었다(4절). 룻이 열심히 이삭을 줍고 있던 그 추수밭에 “마침” 보아스가 둘러보러 오게 되고, 그의 눈에 룻이 띈 것이다. 베들레헴이 큰 도시가 아니라 서로 서로 잘 아는 형편이었겠지만, 늘 이삭을 주으러 오는 이들이 아닌 ‘젊은 여인’이 있는 것을 보아스가 금새 알아챈다.

*그리고 사환에게서 룻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주저하지 않고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여기서 떠나지 말며, 일하는 여자들의 뒤를 바짝 따라 다니면서 이삭을 주으라고 한다. 남자 일꾼들에게는 룻을 건들지 말라고 단딘히 일러 주었고 언제든지 목 마르거든 길어다 둔 물을 마시라고 “은혜”를 베풀었다(8-9절).



3.여호와께서 보답하시기를 원하며…(12절)
룻은 보아스의 “지나친 선대”에 매우 당황 했다. 자기 고향 모압에서도, 그리고 짧은 시간이지만 베들레헴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은혜”였다. 룻이 보아스에게 엎드려 고백하는 말에서 이를 잘 드러내 준다. “저는 한낱 이방 여자일 뿐인데, 어찌하여 저같은 것을 이렇게까지 잘 보살피시고 생각하여 주십니까?(새번역_10절 하)”

이때 보아스가 룻의 마음에 큰 위로가 되는 말을 한다. 마치 하나님께서 룻에게 들려 주시는 음성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 “남편을 잃은 뒤에 댁이 시어머니에게 어떻게 하였는지를, 자세히 들어서 다 알고 있소. 댁은 친정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고, 태어난 땅을 떠나서, 엊그제까지만 해도 알지 못하던 다른 백성에게로 오지 않았소? 댁이 한 일은 주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오. 이제 댁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보호를 받으러 왔으니, 그분께서 댁에게 넉넉히 갚아 주실 것이오(새번역_11-12절).”

나오미에게 한 일을 주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날개 밑으로 보호를 받으러 온 그대에게 “넉넉히 갚아 주실 것”이라고 했다.



나는?
-룻은 낯선 베들레헴 땅에서 “텅 비어버린 시모 나오미”를 위해 이방 여인을 하대하며 건들수도 있는 위험한 공간으로 가서 이삭을 줍는 일부터 시작했다. 나오미에게 한 말을 성실하게 지키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집안에서 불안해 하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채워 주실 것이다는 막연한 기대감만을 의지한 채 행동하지 않고 나태하고 게으른 것을 “믿음”으로 포장해서는 안 될 것을 룻을 통해 보게 된다. 룻은 젊은 이방여인에게 위험할 수도 있는 이삭줍기를 아침부터 와서 성실하게 주으며 보아스의 눈에 띈 그 시간까지 꿋꿋하게 지켰다.

-무엇보다 룻이 이삭을 주으러 나가면서 나오미에게 한 말이 인상 깊다! “…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 (2절)” 신명기나 레위기의 법이 의무조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밭 주인에 따라 어려울 수도 있었다. 그리고 3절은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이라고 기록하는데, 그날 처음 이삭을 주으러 간 것이 아니라 룻이 며칠 동안 일을 다니다가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음을 함축하여 기록한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여 주실 것에 대한 믿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룻은 며칠 동안 이리 저리 이삭을 주으면서 “현실”을 더욱 더 뼈져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보아스가 은혜를 베풀 때 “한낱 이방 여인일 뿐인데 어찌하여 저 같은 것을 이렇게까지 잘 보살피시고 생각하여 주십니까?(10절)”라고 반문한 것이다.


*은혜는 현실의 고통과 절망이 선명할 수록 자신에게 베풀어진 호의와 배려의 선함들이 “은혜”임을 더욱 더 선명하게 깨닫게 된다. 고난이 선명할 수록 은혜도 선명하게 보인다.

*은혜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우연히”로 해석하면 안 된다. 룻의 나오미를 위한 성실한 섬김, 현실의 삶을 감당하기 위한 노력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만남들, 그리고 보아스의 밭, 보아스의 선대가 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우연을 필연으로 이루셔서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루어지는 통로인 것이다.

*룻이 나오미를 위하여 선한 마음과 성실한 삶으로 텅빈 마음을 채워 준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룻과 나오미의 텅빈 그릇을 채워 주시기 위해 그녀의 발걸음을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보아스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모압 여인 룻을 “내 딸아”라고 부르며 공동체로 인정해 주었고, 현실의 한계 속에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은 힘을 다하여 도와 주었다. 보아스의 배려와 선함이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로 쓰임을 받은 것이다. 나의 삶도 이렇게 이웃에 대하여 선함과 배려가 몸에 배여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함을 알아 볼 수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룻의 이야기를 알고 있던 보아스는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들어온 여인을 하나님의 마음처럼 품어 주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아스를 통해 배운다.

*보아스는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를 통해 룻과 나오미의 “텅 빈” 삶과 마음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고 싶다.



**주님,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보아스처럼 살고 싶습니다.
**주님, 룻의 성실함을 봅니다. 믿음을 가장하여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성실하게 하겠습니다.
**주님, 보아스의 성품이 좋습니다. 저에게도 인애와 긍휼, 넉넉함의 품을 만들어 주십시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