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나오미(기쁨)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희망을 보았다…. [룻기 2:14-23]
 – 2022년 05월 04일
– 2022년 05월 04일 –

은혜는 계속 된다. 보아스를 통해 나오미와 룻은 보리추수 기간을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야말로 은혜였다. 룻기의 저자는 나오미와 룻이 살았던 시대는 “사사시대”였음을 이미 밝혔다(1:1). 당시 이스라엘은 신앙은 껍데기만 남은 채, 도덕적으로 문란하고, 사회적으로 불안정 했다. 누구도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았다. 이런 사회에서 약자중의 약자인 나오미와 룻은 어떤 보호 장치도 없었다. 이런 막막한 상황에서 보리 추수의 시기에 보아스를 통해 선대를 받은 것이다. 룻은 이 상황에서 애꿎은 자신들의 상황을 한탄하거나 좌절만 하고 있지 않았다. 능동적으로 직면 하였다. 당시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자들의 몫인 ‘이삭줍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런 자세를 포기하지 않는 자들에게 나타난다.



1.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라(14절)
보아스의 선대는 그래서 더 감동이다. 사회적 약자를 결코 경시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 시대는 사사시대였다. 베들레헴에서 유력한 사람이었던 보아스는 그 힘을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고 선대 하며 선용 했다. 보아스의 선한 삶은 “찐” 이었다. 그의 호의는 룻을 모압출신 이방여인으로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식탁 공동체”로 초청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형식적인 긍휼, 선대가 아니라 진심으로 약자들을 소외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내 딸아(8절)” 이라고 부른 것에서 이스라엘 공동체로 받아들인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 주었다.

*가난한 이를 돕기만 할 뿐, 가난한 자와 함께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데, 보아스는 이것을 가뿐히 뛰어 넘는다. 보아스의 식탁에서는 가난, 성별, 민족의 차이는 없었다. 똑같은 인간으로 대우 받는다. 이삭을 줍는 가난한 여인이 곡식을 베는 자와 함께 앉아 먹도록 하다니… 보아스의 선대가 놀랍기 그지 없다.



2.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15-16절)
배부르게 먹은 후 다시 이삭을 줍기 위해 일어난 룻을 위해 보아스는 ‘젊은 일꾼들’에게 “저 여인이 이삭을 주울 때에는 곡식단 사이에서도 줍도록 하게. 자네들은 저 여인을 괴롭히지 말게. 그를 나무라지 말고, 오히려 단에서 조금씩 이삭을 뽑아 흘려서, 그 여인이 줍도록 해주게.(새반역_15 하-16절)” 라고 명령했다. 이것은 보아스만의 선대에서 머물지 않고 일꾼들을 동참하게 한 것이다. 룻이 젊은 일꾼들 “가까이”에서, 소녀들과 “함께” 곡식 단 사이에서(15절) 줍게 하고, 일부러 흘려 버린 이삭을 줍게 하도록 하여 일꾼들로 하여금 이방 여인을 선대 하는데 동참하게 한다. 또, 룻을 향하여 꾸짖거나 책망하지 말라고 까지 당부한다.

*억눌린 마음, 눈치 보며 이삭을 줍는 것이 아니라 추수의 풍성한 기쁨을 함께 누리도록 마음에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다. 일꾼들에게 주인의 마음을 따라 가난한 자와 거류민, 이방 나그네를 위해 밭의 사방 모퉁이를 남겨 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적극적으로 순종 하도록 했다. 음…. 이런 보아스와 같은 이가 어디 있을까?



3.마라가 다시 나오미로…(20절, 17-23절)
룻은 형식적인 환대가 아닌 진심으로 환대해 준 보아스의 은혜로 “저녁때까지 이삭을 주웠는데, 보리가 한 에바(14-24kg)가 되었다. 구 바벨론의 마리 문서에 따르면 성인 남성의 하루 평균 양식은 0.54kg이다. 이에 따르면 약 20여일 분의 식량을 얻은 것이다. 이것을 보고 나오미가 놀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오미는 평범하지 않은 양을 줍고 온 룻에게 “오늘 어디서 이삭을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이처럼 생각하여 준 사람에게, 하나님이 복을 베푸시기를 바란다.(새번역_19절)”고 축복했다. 그런데 은혜를 베푼 이가 보아스라고 룻이 말하자 놀라운 고백을 곁들인다. “그는 틀림없이 주님께 복받을 사람이다. 그 사람은, 먼저 세상을 뜬 우리 식구들에게도 자비를 베풀더니, 살아 있는 우리에게도 한결같이 자비를 베푸는구나.(새번역_20절 상)”라고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운 사이다. 그는 집안간으로서 우리를 맡아야 할 사람이다.(새번역_20절 하)”고 했다.

*보아스의 선대하는 삶은 예전에도 그랬고 “한결같이” 지금도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이 되는 인물이다. 상황과 여건에 따라 선대와 홀대를 오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한결같이” 선대의 삶을 사는 모습이 도전 되어야 한다. 그의 한결같은 선대는 보리 추수가 끝날 때까지 자신의 밭에서 이삭을 주워도 된다고 배려하고 젊은 남자 일꾼들의 뒤를 따라가며, 젊은 여자들과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젊은 이방 과부 여인을 향해 혹시나 해코지 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한 것이다. 보아스의 배려는 현실적인 육신의 문제에 국한 되지 않고 룻의 마음가짐과 영혼의 상태까지도 진단하며 돕는다. 이것이 “그리스도인 다운 삶” 이다.

*나오미가 보아스의 선대로 인해 룻이 거두어 온 풍성한 이삭더미를 보고 “마라(쓴)”의 마음에 다시 희락, 기쁨(나오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탄과 한숨, 좌절과 공허로 가득 차 있던 마음을 밀어내고 다시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데 진정한 희망의 이유는 단지 이삭을 많이 거두어 온 것이 아니었다. 보아스를 통해 “기업 무를 자”에 대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따라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온 룻에게 “거할 곳”, “기댈 사람”을 만나게 할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희망이 기쁨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으로 인해 나오미가 희망을 보았다. “보아스라면 어쩌면…” 희망이 쓰디 쓴 마음을 밀어내고 있었다. 마라가 나오미로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보아스와 같이 약자 중의 약자에게도 인격적으로 선대하는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되어야지 라고 도전을 받는다. 단지 형식적인 선대를 넘어 “이리와서 먹으라”, “초를 찍어 먹으라”, “책망하지 마라(부끄럽게 하지 마라)”, “꾸짖지 마라”고 자신에게서 공동체 전체가 환대하도록 이끄는 그의 성품을 닮고 싶다.

-나의 만족을 위한 선대, 율법을 따르기 위한 형식적인 환대가 아니라, 진정 하나님 나라 공동체, 하나님의 가족처럼 대하는 그이 성품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유지 된다는 것도 놀랍다. 사사시대…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보다, 더 힘 있는 것, 더 풍성한 것을 따라 자기 생각과 결정에 더 우선순위를 두는 시대에… 우직하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추수법(레 19장)과 환대의 가치를 진심으로 행하는 사람이라니….

-오늘날, 사사시대와 견주어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 자기 만족과 유익만을 위해 사는 세상에서 나는 보아스를 흉내내며 살아야 하겠다. 그의 선대하는 삶을 나의 일상에서 흉내내며 살아보리라…. 지금은 흉내로 시작하지만, 진심으로 이웃을 선대하고 섬기도록 하나님께서 먼저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리라!


-마라가 나오미로 다시 회복되도록 문을 연 것은 보아스의 말씀을 따라 산 삶의 영향이었다. 룻이 나오미에게 선대하여 고난의 자리로 기꺼이 함께 나온 것을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리라”는 보아스의 말이 자신의 선대를 통해 마라가 된 그녀를 다시 나오미로 회복하도록 문을 열어 주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이들의 곁에는 이처럼 마라가 나오미로 다시 회복되는 사람들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살린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이들을 통해 쓰디 쓴 고통과 절망에서 허무와 좌절 속에 체념하는 이들에게 회복의 희망을 열게 하신다. 말씀이 들어가면 희락이 함께 들어온다. 일상을 가득 채운 절망, 쓰라림(마라)를 밀어내고 희락, 기쁨이 채워진다. 말씀이 기쁨이고, 말씀이 힘이다.

-그 말씀은 보아스처럼 “말씀대로, 한결같이” 선대하고 환대하는 삶을 살아내는 이들을 통해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다. 말씀은 지식이 아니라 생명이어서 말씀대로 사는 이들을 통해 세상에 구현된다. 나도 역시 보아스와 같이 말씀의 가치대로 “한결같이” 살아내어 주변의 삶 속에서 절망과 쓰디 쓴 고통을 밀어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희락으로 채움 받는 이들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주님, 환대하는 교회 되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이 수치스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며 선대하겠습니다.
*주님, 주님의 은혜로 제 인생에서 마라가 물러가고 나오미가 회복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나의 일상에서 이런 역사가 끊기지 않고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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