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 2:10-3:6]
 – 2022년 07월 03일
– 2022년 07월 03일 –

2장 10절부터 18절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창조주이시지만 인간이 되셨는데, 이는 모든 인간들의 구원을 이루어 주시기 위해서 임을 밝힌다. 예수님의 하나님의 자리에서 인간으로의 낮아지심으로 구원이 시작 된 것이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인간이 되셔서 고난을 당하셨기에, 능히 고난당하는 형제들을 도우실 수 있다고 확신한다.

3장 1절부터 6절은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천사보다 더 낮아지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권면한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1.깊이 생각하기
생각이라고 해서 다 같은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근심 걱정하는 생각이 있고 기뻐하는 생각이 있다. 미래를 계획하는 생각이 있고 과거를 추억하는 생각도 있다. 이것 저것 생각하는 꺼리들은 무척이나 많다. 하지만 생각이 많아질 수록 그만큼 염려와 걱정거리도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

또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일에 대하여 그 의미를 되짚어 본다는 뜻일 것이다.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깊이 생각하다 보면 좀 더 선명하게 바라볼 수도 있는 가능성도 있다. 깊게 생각할 수록 불평과 불만거리가 넘칠수도 반대로 감사가 넘칠 수 있다.



2.왜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할까?
“깊이 생각하라”는 “카타노에오”라는 단어를 썼다.원 뜻은 ‘깊이 생각하고 곰곰이 생각한다’는 뜻이다. 저자가 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라고 명령했을까?


2-1.예수님이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에(3장 1절)
“그러므로 하늘의 부르심을 함께 받은 거룩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사도요,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십시오.”(새번역_1절)

저자는 “신앙의 사도요, 대제사장인”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이에서 중보자 역할”을 한다. 번제를 통하여 죄인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이 대제사장의 역할이었다. 이처럼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분이시기에 깊이 생각해야 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사람이 없다.”(새번역_요 14:6) 이 구절은 예수님이 대제사장적인 역할을 하고 계심을 분명하게 밝히신 말씀이다.


2-2.예수님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에(3장 3절)
“집을 지은 사람이 집보다 더 존귀한 것과 같이, 예수는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누리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새번역_3절)

예수님과 모세를 비교할 때, 모세는 집의 종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전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집을 지으신 분, 즉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사도 요한은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고 고백하였다.(요 1장) 창조주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것은 그로 말미암아 새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연한 이치이다.


2-3.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3장 6절)
“그러나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하나님의 집안 사람을 성실하게 돌보셨습니다. 우리가 그 소망에 대하여 확신과 자부심을 지니고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집안 사람입니다.”(새번역_6절)

모세는 하나님의 집의 말씀을 전하는 일꾼으로 성실하게 사명을 감당 하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일꾼이 아니라 그 집의 아들 이셨다. 죽 상속자였다. 예수님은 아들이자 상속자로서 하나님의 일에 신실 하셨다.

일꾼이 자기 주인을 위하여 신실하게 일한다고 할 수 있지만, 장차 아버지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아들 만큼이나 신실하게 일할 수 있을까? 실제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신실하고 겸손하게 십자가에 순종하셔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다.



나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찾아온 위기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이 위기는 누구나 직면 할 수 있는 위기다. 오늘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맞닥뜨릴 수 있다. 믿음을 흔드는 수많은 크고 작은 상황들에 직면한다. 그때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묵묵히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생각하라는 것은 따르라는 것이다. 주님도 직접 “나를 따라 오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 가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오라 하셨다(마 16:24). 그렇다면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 이리라.

-생각하며 사는 것…. 어쩌면 기독교 신앙에서 잃어버린 중요한 가치일 수 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먼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것”은 나의 고민, 판단, 결정이 먼저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생각하여 결정 하겠다는 구체적인 행동의 시작이다.

-사실 이것이 쉽지만은 않다. 히브리서 수신자들도 그랬을 것이다. 임박한 다양한 유혹과 압박은 먼저 자신들의 삶을 생각하는 것이 당연 했을 것이다. 가정, 자녀, 삶의 기반을 고려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지극히 정상적인 것은 먼저 “예수님 생각”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삶”이다.

-히브리서 묵상은 도전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지극히 상식적인 삶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이원화 된 틀 속에 안주하고 있다면 이 틀이 흔들리고 다시 정비되어야 할 도전에 직면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도전은 그야말로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다. 지극히 기본적인 것에 대한 도전이다. 바로 예수님은 누구신가?이다.

-예수님을 바로 알 때 믿음은 굳건 해진다. 내가 상식적으로 아는 예수님이 아니라 말씀에서 가르쳐주신 예수님이다. 말씀대로 알아야 힘이 된다. 기본이 든든해 진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 알려주신 예수님을 알아가는 지식과, 이를 나의 가치와 충돌시켜 흔드는 “깊은 생각”이 필요하다. 지식과 생각은 믿음을 굳건하게 세운다. 선택과 결단의 순간, 힘을 발휘하게 하고 물러섬 없는 전진을 가능하게 한다. 아는것이 힘인것과 동시에, 생각함의 힘이다!

-생각하지 않는 신앙은 책임지지 않는다. 생각이 없는 곳에 성숙함도 없다. 오늘 나에게 예수님 생각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특히 꼭 필요한 순간에 더욱 그리되기를 바란다.


*주님, 생각하며 믿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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