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희망이 현실이 되어 간다!… 과감한 도전과 순종 [룻기 3:1-13]
 – 2022년 05월 05일
– 2022년 05월 05일 –

나어미는 룻을 보아스와 결혼 시키려고 한다. 추수 기간 동안 보아스의 헤세드(선대)를 바라 본 나오미는 그가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를 자가 틀림없다고 여겼다. 그리고 보아스에게 이것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매우 위험한 도전을 시작했다.

*텅 빈 마음에 희망이 밀려 들어오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보아스의 선대가 가져 온 변화였다. 나오미는 추수 기간의 끝자락, 그동안 룻에게 보인 선의와 선대를 통해 보아스에게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계대 결혼을 통해 감당할 것을 촉구하는 행동을 준비한 것이다.

*”기업 무를 자(고엘)”은 친족의 재산을 회복하거나 유지하는 책임이 있고, 가난 때문에 몸이 팔린 친족을 속량하는 책임도 있으며, 피의 복수자 역할을 한다. 또한 형제가 자식이 없이 죽었을 경우, 가까운 형제 순으로 그 과부 형수나 재수와 계대 결혼을 통해 죽은 이의 이름을 이어주게 하는 책임이 있었다.



1.룻의 청혼(1-9절)
나오미는 룻에게 구체적으로 청혼할 준비를 시켰다(3-4절). 룻은 나오미의 말대로 전적으로 순종 한다(5절). 하지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룻은 보아스에게 그가 기업 무를 자이기에 그와 결혼하려고 한다고 말한다(9절). 원래 기업 무르는 것은 결혼과 관련은 없다. 이것은 가까운 친척이 땅을 되사주는 제도였다. 하지만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여성이 상속권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남편이 죽으면 그 땅은 일차적으로 아들에게, 아들이 없는 경우는 딸에게 상속 되었다. 나오미는 자녀가 살아있지 못했기에 보아스가 땅을 되사주어도 받을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나오미가 땅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룻과 보아스가 계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룻의 죽은 남편 ‘기룐’의 대를 이어 상속을 받으면 된다. 이렇게 되면 나오미는 아이의 양육자로서 땅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나오미의 텅 빈 마음에 희망이 차기 시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이유에서 나오미의 가르침대로 룻은 타작마당에 숨어든다.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 룻은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옷을 입는(3절)’ 행동은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모습이다. 정성껏 준비하여 타작마당으로 가서 보아스가 다 먹고 마실 때까지 눈에 띄지 말라 한다. 밤중의 타작 마당은 매우 위험한 공간일 수도 있다. 밤 시간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시간대였다. 위험을 감수 하고서 라도 룻은 나오미가 가르친 대로 보아스에게 나아간다.

*이렇게 까지 비정상적으로 결혼의 의지를 확인하려고 하는 것은 룻과 보아스의 결혼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매우 어색하기 때문이었다. 베들레헴에서 유력하고 부유한 나이가 많은 보아스와 모압 여인 이방인 과부 룻은 정식적인 절차로 이루어 질 수 없는 관계였다. 그렇기에 나오미는 보아스에게 룻과 결혼할 동기를 마련해 주기 위해 이 위험한 계획을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나오미가 이렇게 결심한 이유는 추수 기간 동안 보아스가 룻과 자신에게 베푼 선대(인애_헤세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선하게 반응할 것을 확신했을 것이다.

*룻은 확정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기 위해 나오미의 말대로 크나 큰 도전을 순종 한다. 보아스는 이미 룻이 엘레멜렉의 집안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도전의 순종은 하나님께서 보아스를 통해 이 쓰러지고 텅 빈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 채워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분별하는 것도 어렵다. 나오미는 보아스의 선대를 기초로 그가 고엘의 의무를 저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곡식 한 에바를 주워 올 때부터 마음에 그런 희망이 올라왔다. 하지만 희망이 현실이 되기 위해,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저 기대와 소망만 가지고 있으면 곤란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대담한 순종”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한 발을 내딛어야 한다. 나오미와 룻, 이 가련한 과부들을 통해 이를 도전한다.

“”누구요?” 하고 물었다. 룻이 대답하였다. “어른의 종 룻입니다. 어른의 품에 이 종을 안아 주십시오. 어른이야말로 집안 어른으로서 저를 맡아야 할 분이십니다.”(새번역_9절 하) 개역 개정은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라고 번역했다.

“당신의 옷자락을 펴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라는 번역을 직역하면 “당신의 날개를 당신의 여종 위에 펼치소서”이다. “날개(키나프)”는 보아스가 2:12에서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서 안식처를 얻기를’이라고 말한 것과 연결 된다. 룻은 그 보아스의 말을 기억하고 보아스에게 “그 하나님의 날개 아래”를 “보아스의 날개”로 자신을 덮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룻은 참 지혜롭기도 하다.

*특히 “날개를 덮다”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결혼을 의미하기도 한다(겔 16:8; 신 22:30, 27:20). 룻은 그가 기업을 무를 자이기에 결혼을 당당하게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보아스와 결혼하면 그가 나오미의 땅을 되찾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룻은 나오미를 위해 재혼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2.보아스의 응답(10-13절)
보아스는 그런 룻의 행동에 감동한다. “….”이봐요, 룻, 그대는 주님께 복 받을 여인이오. 가난하든 부유하든 젊은 남자를 따라감직한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지금 그대가 보여 준 갸륵한 마음씨는, 이제까지 보여 준 것보다 더욱더 값진 것이오.(새번역_10절)” 개역 개정은 “….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라고 뒷 부분을 번역했다.

보아스는 룻의 행동을 보고 그녀의 인애(헤세드)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라며 감동한 것이다. 이것은 보아스가 룻이 이렇게 청혼한 것이 그녀의 시어머니 나오미에 대한 인애(헤세드)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 챈 것이다. “이제까지 보여준 것”과 “더욱 더 값진(인애)”는 무엇을 가리킬까?

*”이제까지 보여준 인애(헤세드_처음 베푼 인애)”는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에 와서 이삭을 주워 나오미를 돌본 것을 가리킨다. 이비 보아스는 이런 룻의 행동을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라고 축복했다(2:11-12). 그리고 “더욱 더 값진(인애)”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위해 젊은이와의 결혼을 포기하고 자신의 아버지뻘 되는 보아스와 결혼하기로 기꺼이 결심한 것을 가리킨다. “이봐요, 룻, 그대는 주님께 복 받을 여인이오. 가난하든 부유하든 젊은 남자를 따라감직한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새번역_10절 상)”

*보아스는 본성을 따르지 않고 나오미를 위해 희생하는 룻의 심성을 매우 인상 깊게 인정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부터는 걱정하지 마시오, 룻. 그대가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겠소. 그대가 정숙한 여인이라는 것은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소.(새번역_11절)”

*보아스는 룻의 이런 과감한 행동이 나오미를 위한 것임을 너무도 잘 이해 했기에 “정숙한 여인(현숙한 여인)”이라고 부르며 두려워 할 수 있는 룻을 안심 시켰다. 그리고 대범하게 룻의 청혼을 수용한다. 하지만 먼저 말씀의 이치를 따라 기업을 무를 의무를 먼저 가지는 이가 있기에 그가 거부하면 기꺼이 맡겠다고 수락한다(13절)

*”현숙한 여인(정숙한 여인)”은 성경에서 사회적, 종교적, 그리고 가족에 대한 책임들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여인을 가리킨다(잠 31:10-31절). 룻은 모압에서 온 이방 여인이었지만, 그 인성과 성품이 이처럼 “현숙”했다.

*보아스… 사사시대에 이렇게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 있었구나! 자신에게 분명한 손해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원칙과 절차를 지키려는 모습 하며, 여인을 존중하며 보호하여 주는 모습 하며, 굳이 담당하지 않아도 되지만, 하나님의 날개 아래 거하려 온 여인을 지켜주기 위해 기꺼이 책임을 지는 모습이라니…. 이런 사람이 있었다니…

*이런 모습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들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일 것이다.



나는?
-나오미의 마음이 희망과 기대로 가득하다! 룻을 위하여 보아스와 결혼 시키려는 분명한 목표가 생겼다. 희망은 삶에 생기를 가져온다. 보아스의 선한 행동을 보았을 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지키며 살아가기에 고엘의 의무를 기꺼이 감당할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이를 확인하여 담대 하게 감당하며 나아가기 위해 결단과 도전이 필요하다. 룻은 나오미의 마음과 뜻을 따라 기꺼이 이 도전을 감당한다. 자신의 생명과 인식을 걸고 도전한다. 믿음의 도전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결단과 도전하는 것과 동의어이다.

-룻은 현숙한 여인(11절)이었다. 보아스는 그녀의 나오미를 위한 인애(헤세드)를 잘 알고 있었다(2:11). 그런데 아직은 젊었음에도 자신의 욕망대로 따르지 않고 나오미를 지키고 죽은 남편의 이름이 이어지도록 자신을 희생하는 인애(헤세드)에 다시 감동 받은 것이었다(10절). 이런 여인이라니…

-보아스는 룻의 이런 성품을 본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젊음과 외모가 아니라 수치와 위험을 무릎쓰고이삭줍기를 통해 나오미를 책임지는 모습과 자칫 ‘음란한 여인’이라는 오명을 받을 수도 있는 타작 마당에서의 청혼을 나오미를 위해, 죽은 남편의 이름을 잇기 위해 무릎 쓴 그 마음과 자세, 태도를 바라 본 것이다. 이미 이삭을 줍고있는 모습에서 이런 룻의 인애(헤세드)를 보았던 보아스는 깊은 밤중 타작마당 한켠에서 다시 이 모습을 본 것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웠을까!

-그럼에도 자신보다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가진 사람이 있음을 알고 있기에 한밤의 로맨스에 휘둘리지 않는다. 오히려 룻을 보호해 주며 약속한다. 그가 기업 무를 책임을 이행하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여(13절)” 룻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고엘 제도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유지하는 당시로서는 좋은 사회보장 제도의 형태였지만, 자기 희생, 자기 손해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매우 헌신을 전제로 한 제도였다. 그래서 이 의무를 저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이 의무를 저버리는 이들이 멸시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신 25:9-10).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이처럼 “자기 헌신, 자기 손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영역이 있다. 말씀대로 살아내기 위해 세상 가치로 얻고 누리는 것을 내려 놓아야 할 때도 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손해를 감수하며 사는 삶이다. 이 땅에서의 손해가 아까우면 결코 살아낼 수 없는 삶일 것이다.

*오늘날 고엘의 의무는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제도를 만드신 의의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 공동체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짊어지며 슬픔을 나눠 지라는 의미다. 기쁨도 함께 하라는 의미다.


*한편 나오미가 이렇게 서두르는 것은 어떤 마음 때문일까? 1절은 젊은 룻에게 이방 땅에서 “안식할 곳”을 구해 주려는 마음인 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베들레헴에 돌아 올때 나오미의 마음에 “고엘”의 의무를 요청할 이들이 누구인지 몰랐을까?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염치가 없었다. 희락의 여인이었지만, 모든 것을 다 잃고 마라(쓴디 쓴) 라고 스스로 불러 달라고 할 정도로 비루해 졌다. 보아스는 “유력한 사람”에다가 자기 가족들이 모압으로 떠나기 전까지도 도움을 베풀던 인자한 어른이었다. 당장 달려가서 손을 벌리면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오미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염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룻에게 보아스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도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룻이 한 가득 보리를 가지고 들어온 날, 룻에게서 보아스에게 선대 받은 일을 들은 그 날, 나오미는 알아차렸다. 과부 둘의 삶이 “하나님의 보호의 날개” 아래 거하게 되었다고 생각이 미쳤다. 그것이 바로 “기업을 무를 자”였다. 룻에게 보아스에 대하여 그제서야 털어 놓는다. “그는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다(2:20).”

보리와 밀을 추수하는 4월부터 6월까지 보아스에게서 계속 선대를 받자 나오미는 확신하게 된다. 보아스의 날개 아래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긍휼의 제도를 기대기로 결심했다.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실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의 책임은 룻을 위해 “안식할 곳을 구하여” 그녀를 “복 되게”하는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임을 담대하게 이행하기로 결심했다.

*나오미는 자신을 마라 라고 스스로 이야기 하고 “텅 빈” 마음 때문에 무력하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는 민감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어떻게 거해야 할 지를 아는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그런 삶의 연륜이 있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확신이 들자 주저하지 않았다. 믿음으로 고엘의 의무를 보아스에게 확인하는 대담한 행동을 룻에게 명했다.

*말씀으로 약속한 하나님의 희망을 현실이 되게 하는 것은 담대한 믿음의 순종이다.


**주님, 말씀에서 약속한 희망이 믿음의 순종을 통해 현실이 되어가는 것을 봅니다. 오늘도 순종 하겠습니다.
**주님, 나오미나, 룻이나, 보아스나.. 사사시대에 어찌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 있을까요? 오늘날 내가, 우리 교회가 이런 믿음의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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