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의 기쁨이 돌아왔다. [룻기 4:7-22]
 – 2022년 05월 07일
– 2022년 05월 07일 –

해피엔딩이다. 이런 기쁨의 결말은 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룻과 보아스의 결혼의 제약이 될 수 있었던 기업 무를 자의 우선권을 가진 “아무개”는 그 의무를 물렸다. 보아스와 장로들 앞에서 자기의 신발을 벗음으로 확정했다(7-8절). 이제 보아스가 기업 무를 당사자가 되었다. 보아스는 머뭇거림 없이 성문 앞에서 선언하였다(9-10절). 장로들과 백성들은 보아스와 룻을 축복하였다(11-12절). 보아스는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고 아들을 낳았다.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안고 양육자가 되었다(16절). 그 아기의 이름은 “오벳”이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시 회복 시키셨다. 마오미에서 마라로, 다시 마라에서 나오미로 회복 시켜 나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사시대의 암담함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알려주신다. 마라에서 나오미로 다시 회복 시키시는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룻기는 “퐁요”를 찾아 떠난 엘리멜렉의 가족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오미는 흉년이 든 베들레헴을 떠나 물이 풍부하고 소산물이 넘치는 모압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물과 소산물을 풍요 했을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 희망을 찾아 떠난 모압에서 절망만 가득 안고 돌아 왔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온 후 스스로 “희락, 기쁨”이라는 의미의 나오미라는 이름을 버리고 “쓰다, 괴롭다”라는 뜻의 마라 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압에서부터 함께 온 룻과 베들레헴의 유력한 자 보아스를 통해 일 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경험 하면서 쓴 괴로움의 마음이 물러가고 다시 기쁨의 마음이 들어왔다.

이 기쁨의 이야기는 결국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이룩한 다윗왕의 출생의 연결 고리였음을 증언하고 마무리된다(18-22절).



나는?
-눈에 보이는 풍요를 따라 갔던 모압에서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 절망의 여인 나오미, 마치 사사시대의 혼란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한 한 가족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회복의 기쁨으로 마무리 된다.

-보아스는 기업 무르기를 거절한 “아무개”가 신발을 벗으며 증거한 순위를 받아들인다. 장로를 열명이나 세운 것은 그 만큼 확고하게 룻과의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그들을 통해 보아스의 행보는 축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서사가 이와같이 개인에게는 손해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는 이들로 인해 지속되어 간다.

-모압 여인 룻은 이스라엘 민족을 세운 열 두 아들의 어머니 레아와 라헬처럼, 유다 가문이 끊어지지 않게 했던 다말처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을 이어가는 도구가 된다.

-풍요를 따라 하나님의 땅을 저버린 나오미가 풍요로운 땅에서 모든 것을 잃은 절망 속에서 다시 베들레헴에 돌아왔다. 쓰디 쓴 삶의 고통과 텅 빈 허무한 마음이 함께 동행한 룻의 성실함과 순종을 통해 보아스의 손길로 다시 기쁨이 하나 둘씩 회복되었다.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지 나오미의 희망이 싹튼 것이 아니었다.

-이 모든 과정은 사사시대의 어두운 시대 속에서 베들레헴 주민들에게도 기쁨이 되었다. 보아스의 고엘 승계를 증인으로 함께 한 열 명의 장로들 뿐 아니라 함께 한 주민들도 기뻐하며 축복했다(11절). 또 오벳이 태어나자 베들레헴의 이웃 여인들은 자기 일인 양 기뻐하며 축복했다(14-15절).

-보아스의 엘리멜렉 가문을 위한 섬김, 손해가 분명함에도 약속한 대로 지키는 그의 올곧은 모습은 베들레헴 주민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쳤다. 사사시대의 혼란과 어두움 속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인해 기쁨이 돌아왔다. 자기 소견대로 사는 삶에는 절망이 넘쳤지만, 말씀대로 순종하는 한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의 인애(헤세드)를 직접 목격하며 감격하며 기뻐했다.

-이로 인해 룻기의 마지막은 끊어질 뻔 했다가 보아스의 헤세드로 인해 다시 가문이 이어진 나오미(엘리멜렉)의 계대를 소개하며 마무리 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아스의 계대를 소개하며 보아스, 오벳, 이새를 거쳐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살아가며 이스라엘을 역사상 가장 하나님 나라 답게 통치한 다윗을 언급하며 끝난다(18-22절).


*절망 가득한 삶에서 기쁨이 소생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밖에 없다. 룻기 이야기는 고엘 제도와 형사취수제도가 배경에 깔려 있다. 형제가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어서 대를 잇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남겨진 과부가 시동생과 결혼하여 형의 대를 잇게 하는 것이 형사취수제도다(신 25:5-6). 그렇게 시동생을 통해 태어난 첫 아들을 죽은 형의 이름을 이어 그 가문을 보존한다는 의미이다.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제도이지만, 고대 이스라엘은 이를 통해 혈통을 보존하여 가문이 단절 되는 것을 막고,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딸을 잘 관리하며, 홀로 된 과부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런데 만일 시동생이 형수에게 장가드는 것을 기피할 경우 공공의 장소인 성문 곁에서 “시동생으로서 의무를 수행하지 않겠다”고 밝혀야 했다. 장로들이 설득해도 듣지 않는다면, 형수는 그의 신을 벗기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욕을 하게 했다. 그리고 시동생은 “신 벗긴 집안’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개인적인 수치일 뿐 아니라 공동체안에서의 수치가 된다. 이렇게 해서라도 이 제도가 잘 이행 되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홀로 된 과부, 가장 사회적 약자인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룻기의 배경이 사사시대였기에 이런 제도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제대로 작동 되었을리 만무하다. 나오미조차 흉년이 들었다는 이유로 조상에게 물려 받은 땅을 버리고 모압으로 이주 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보아스는 이런 사회상 속에서 충실하게 고엘제도와 형사취수제도를 하나님의 뜻대로 충실하게 순종했다.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도 말씀대로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베들레헴 공동체는 이렇게 말씀대로 순종하는 보아스의 모습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을 맛보았다. 태어난 아이의 이름 “오벳(섬기는 자)”에서 알 수 있듯이 보아스의 섬김을 기억하며 온 동네가 기뻐하고 기뻐했다.

*이 기쁨은 다윗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통치하며 온 백성이 누리게 될 기쁨을 예시하는 듯 하다. 한 사람의 섬김과 순종이 공동체의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가져다 준다.

*기쁨이 돌아왔다. 나오미에게, 룻에게, 베들레헴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돌아왔다…..

*내가 그런 존재로 살고 싶다. 더욱 충실하게 순종하고 , 더욱 마음을 다해 섬기며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즐거움이 공동체에 넘쳐나도록 섬기리라!


**주님, 섬기는 자의 사명을 잊지 않겠습니다. 충실하겠습니다.
**주님, 순종이 기쁨을 가져온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공동체에도 나의 순종으로 기쁨이 넘치도록 더 순종하겠습니다.


**바로잡습니다. 어제 묵상하면서 제가 룻의 남편을 기룐이라고 했더라구요… 제가 이렇습니다. 룻의 남편은 말론(10절) 입니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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